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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간니발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반 간니발
Иван Ганнибал|Ivan Gannibal
이름 이반 아브라모비치 간니발
Иван Абрамович Ганнибал(러시아어)
Ivan Abramovich Gannibal (영어)
출생 1735년 6월 5일
러시아 제국 에스토니아 주 카리아쿨라
사망 1801년 10월 12일 (향년 66세)
러시아 제국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적
[[러시아 제국|]][[틀:국기|]][[틀:국기|]]
부모 아버지 아브람 간니발
어머니 크리스티나 레지나 폰 쇠베르그
형제자매 남동생 표트르, 오시프, 아이작
여동생 옐리자베타, 안나, 소피야
학력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 포병 학교 (졸업)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사관학교 (졸업)
종교 러시아 정교회
복무 러시아 제국 해군
최종계급 제너럴 앙 셰프(Général en Chef)
상훈 성 게오르기 훈장 3급
성 안나 훈장 1등급
성 알렉산더 네프스키 훈장
성 블라디미르 훈장 1등급
파일:이반 간니발 노년.jpg
노년의 이반 간니발

1. 개요2. 생애
2.1. 해군에 몸을 담다2.2. 헤르손을 건설하다2.3. 말년
3. 수훈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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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러시아 제국의 장군, 귀족으로 오늘날 우크라이나에 위치한 헤르손을 건설한 인물이며, 아프리카 노예 출신이었으나 표트르 대제의 총애를 받아 러시아의 귀족이 된 아브람 간니발의 아들이자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큰할아버지이기도 하다.

2. 생애

2.1. 해군에 몸을 담다

1735년 아브람 간니발과 스웨덴계 독일인 아내 크리스티나 레지나 폰 쇠베르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9살의 나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해군 포병 학교에 입학했다. 해군 포병 학교를 졸업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 해군사관학교에서 공부한 끝에 러시아 제국 해군에 입대했다. 1769년 2월 10일 포병 중령으로부터 해군 포병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해군 포병에서 복무하며 많은 해전에 참여했다.

제7차 러시아-튀르크 전쟁이 발발하자 1770년 4월,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고 있던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요새 나바리노를 함락시키기 위해 파견된 알렉세이 그리고리예비치 오를로프 백작의 지휘 아래 36살의 나이에 해군 포병 준장으로써 종군하여 흑해 함대의 분견대인 함선 3척과 300명의 병력, 다수의 포병대를 태운 선봉대를 이끌고 나바리노 인근 해안으로 다가가 요새를 며칠 간 포위하고 계속해서 포격을 가한 끝에 1770년 4월 10일에 나바리노를 지키던 오스만 군대를 항복시키는 데 성공했고 덕분에 러시아군은 몇 달 동안 나바리노를 임시 해군 기지로 사용할 수 있었다.

1770년 7월 체스메 전투에도 참전했는데 전투 중 그는 전함 "성 유스타티우스(St. Eustathius)"에 탑승했다가 격렬한 전투의 결과 전함이 폭발하면서 바다에 빠졌으나 다른 선원들에 구조에 의해 살아남아 계속해서 전투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그는 나바리노 포위 작전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770년 11월 27일에 성 게오르기 훈장 3등급을 수여받았다.

1772년 12월 7일에 소장, 1776년 7월 7일에는 제국 해군의 전체 해군 포병대 장군, 이듬해인 1777년 제국 해군의 최고 통치 기관인 러시아 해군성의 위원으로 승진했다.

2.2. 헤르손을 건설하다

파일:1792년 헤르손 요새.jpg
1792년 헤르손 요새
1778년에 그는 예카테리나 2세의 명령에 따라 헤르손 건설 임무를 맡았고 같은 해 7월 25일에 헤르손 요새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열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해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기능하는 요새와 항구를 세웠다. 12개의 장인 회사를 결성한 그는 드네프르 강 상류에서 미리 목재 재료를 준비하여 현장으로 전달하도록 했고, 러시아 내에서 500명 이상의 목수를 고용하여 짧은 시간 안에 조선소를 설립하고 8월에는 헤르손을 요새 도시로 만들었다. 3년 후 헤르손은 궁전, 해군성, 주조소, 무기고, 막사, 대외 무역관 및 개인 주택을 갖춘 신도시가 되었으며 요새에는 수비대와 대포 220문을 소지하고 있었고 군항에는 항상 군함과 상선이 주둔해 있었다.

많은 그리스 이탈리아 이민자들을 헤르손과 주변 지역으로 끌어들이는 등 간니발의 헤르손 건설과 번창에 대한 노력으로 예카테리나 2세는 그를 1779년 1월 1일 중장으로 승진시켰고, 1780년에는 헤르손 남서쪽에 있는 10,000 에이커 규모[1]의 영지를, 1781년 4월 21일에는 성 알렉산더 네프스키 훈장과 예카테리나 2세의 초상화, 보석으로 장식된 코담배 상자를 받았다.

2.3. 말년

1783년 5월 16일에 그는 성 블라디미르 1급 훈장을 받았으나 예카테리나 2세의 정부 그리고리 포템킨과의 불화와 질병까지 얻게 되자 1784년 제너럴 앙 셰프(Général en Chef)의 직위로 은퇴하게 되었다.[2] 이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근처 수이다(Suyda) 마을에 있는 아버지의 영지에서 남은 여생을 보냈으며 그곳에서 열병으로 인해 자녀 없이 평생 독신으로 살다가 1801년 10월 12일 66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알렉산더 네프스키 라브라(Alexander Nevsky Lavra)의 라자레프스코예(Lazarevskoe) 묘지에 안장되었다 .

3. 수훈 내역



[1] 제곱킬로미터로 치면 40.46㎢로 짐작이 안 된다면 경기도 광명시보다 조금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2] 이는 3년 전 죽은 아버지 아브람 간니발과 같은 계급이었다. [3] 1770년 11월 27일 수훈 [4] 1775년 7월 10일 수훈 [5] 1781년 4월 21일 수훈 [6] 1783년 5월 16일 수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