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차트 역대 1위곡 | ||||
It's My Party | → | Sukiyaki(3주) | → | Easier Said Than Done |
<colcolor=#373a3c> 위를 보며 걷자 上を向いて歩こう Sukiyak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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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 출시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1961년 10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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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1962년 5월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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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 | 에이 로쿠스케 [1] | |
작곡 | 나카무라 하치다이[2] | |
노래 | 사카모토 큐 | |
앨범 | 저 아가씨의 이름은 무엇일까(1961) | |
라벨 | 도시바 레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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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사카모토 큐 「위를 보며 걷자」 |
일본의 노래 「위를 보며 걷자」(우에오 무이테 아루코)는 일본의 국민 가수인 사카모토 큐가 부르고 에이 로쿠스케(永六輔)의 작사, 그리고 世界の国からこんにちは와 明日があるさ의 작곡가 나카무라 하치다이(中村八大)의 작곡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내일이 있잖아와 마찬가지로 이 곡 역시 1960년대 전후 복구와 경제 성장의 과정에서 일본 사회는 미래에 대한 강한 희망과 낙관을 품고 있던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곡으로,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위를 보고 걷자는 의미로, 힘든 현실을 희망(하늘)을 보며 이겨내자는 이야기. 이 노래가 나왔던 1960년대 일본의 당시를 생각해 보면 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고 있던 일본의 모습을 그리는 노래라고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국민가요이며, 지금도 여러 가수들이 커버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이다. 일본의 고속성장기인 60년대를 대표하는 일본가요의 명곡이라서 그 시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로 21세기에도 쓰이고 있다. 그래서 그 시대를 경험한 노인 세대들 뿐 아니라 비교적 젊은 세대들에게도 친숙한 곡으로 자리잡았다.
해외에는 SUKIYAKI 라는 뜬금없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이 곡을 수입하기로 한 미국의 레코드사 사장이 원 제목인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우'를 발음하기 힘들어 해서 제목을 발음하기 쉬운 스키야키로 바꿨다고 한다.
2. 가사
上を向いて歩こう 위를 보며 걷자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우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나미다가 코보레나이 요우니 思い出す春の日 그 봄날이 생각나는구나 오모이다스 하루노 히 一人ぽっちの夜 혼자뿐인 밤 히토리폿치노 요루 上を向いて歩こう 위를 보며 걷자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우 にじんだ星をかぞえて 하늘에 번진 별을 세면서 니진다 호시오 카조에테 思い出す夏の日 그 여름날이 생각나는구나 오모이다스 나츠노 히 一人ぽっちの夜 혼자뿐인 밤 히토리폿치노 요루 幸せは雲の上に 행복은 구름 위에 시아와세와 쿠모노 우에니 幸せは空の上に 행복은 하늘 위에 시아와세와 소라노 우에니 上を向いて歩こう 위를 보며 걷자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우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나미다가 코보레나이 요우니 泣きながら歩く 울면서 걷는 나키나가라 아루쿠 一人ぽっちの夜 혼자뿐인 밤 히토리폿치노 요루 思い出す秋の日 그 가을날이 생각나는구나 오모이다스 아키노 히 一人ぽっちの夜 혼자뿐인 밤 히토리폿치노 요루 悲しみは星のかげに 슬픔은 별 그늘에 카나시미와 호시노 카게니 悲しみは月のかげに 슬픔은 달 그늘에 카나시미와 츠키노 카게니 上を向いて歩こう 위를 보며 걷자 우에오 무이테 아루코우 涙がこぼれないように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게 나미다가 코보레나이 요우니 泣きながら歩く 울면서 걷는 나키나가라 아루쿠 一人ぽっちの夜 혼자뿐인 밤 히토리폿치노 요루 一人ぽっちの夜 혼자뿐인 밤 히토리폿치노 요루 |
3. 인지도
특이하게도 일본뿐만 아닌 서구권에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1963년 6월 15일부터 3주 연속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시아 가수 중 최초이며 빌보드 연말차트 Top 10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아시아 가수다.[3][4][5][6] 곡의 분위기가 50-60년대 미국에서 유행한 스윙풍 노래들과 유사해서 서구에서도 친숙하게 느껴졌을 것. 일본 미군방송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던 미국 라디오 DJ가 이 노래를 방송에 틀었는데 노래를 듣던 청취자들이 이 노래가 뭐지 하는 궁금증이 점점 커져 노래가 서서히 인기가 높아갔다고 하며, 1963년 5월 11일 Hot 100 79위에 진입한 후 45위, 20위, 10위, 2위를 거쳐 6월 15일부터 3주 연속 1위 왕좌에 오르게 되었다. 또 1963년 영국 재즈악단 '케니 볼 앤 히즈 재즈멘'이 위를 보고 걷자를 연주곡으로 리메이크해 영미권에 알렸고, 얼마 뒤 현지 음반사가 원곡을 정식 발매한 것도 위를 보고 걷자의 역주행에 한몫했다.전 세계 70개국에서 발매되어 1300만 장이 팔렸다.[7] 1963년 미국에서 밀리언셀러에 등극하여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전미 레코드협회로부터 골든디스크를 받았다.
우주인들이 우주에서 들은 최초의 음악 중 하나이기도 하다. 1965년 NASA가 21번째 유인 우주 비행이었던 제미니 7호에 탑승한 우주인들에게 라디오로 이 곡을 틀었다고 한다.
한편 이 노래가 일본을 대표하는 가요로 세계에 알려지다 보니 올림픽에서도 연주된 적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8 서울 올림픽 개회식. 선수단 입장 시 입장하는 국가의 대표적인 음악을 행진곡으로 연주하자는 취지에 의거하여 일본 선수단이 입장할 때 이 곡의 초반부가 편곡되어 연주되었다.[8] 2020 도쿄 올림픽에서도 폐회식 때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 곡이 국내외로 대박이 나자 사카모토 큐는 일본의 국민 가수로 떠올랐으며 오늘날까지 워낙에 듣기 좋은 명곡이라 JASRAC의 비싼 저작권료에도 불구하고 일본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여러 작품에서 인용된다.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 곡의 성공을 '전후 일본이 전 세계[9]와 동등한 수준에 오른 첫 번째 사례' '일본의 세계 무대 복귀를 상징'로 보기도 한다.[10] #1 #2
3.1. 한국에서
이 시스터즈 「위를 보고 걸어요」1964[11] |
1964년에는 한국의 여성 그룹 '이 시스터즈'가 '위를 보고 걸어요'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곡을 내놓아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물론 독립으로부터 20년도 안 지났던 시대 특성상 반일감정이 극심했던 한국 내에서는 '미국에서 들어오면 왜색이여도 괜찮다는 말인가?'는 비난 여론이 많았다. # 특히 독립운동가 출신이던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이 고등학생이던 어느 날[13] 아침에 위를 보고 걷자를 듣기 위해 레코드판을 켰는데 장준하가 이를 듣고는 "아침 댓바람부터 일본말 듣게하느냐"고 소리치며 장호권의 방으로 들어와서는 레코드판을 들고 나가 그걸 집마당에 던지면서 크게 혼을 냈다고 한다. 출처[14]
4. 주요 커버
지브리 애니메이션 코쿠리코 언덕에서와 빙과[15], 풀 메탈 패닉![16], 타마코 러브 스토리[17]등 다양한 작품에서도 나왔기 때문에 오타쿠들에게도 어느 정도는 귀에 익은 곡이다.미국 힙합계에서도 이 노래를 샘플링한 사례가 꽤 있다. 대표적으로 비트박스의 대가 '더그 E. 프레시'와 래퍼 '슬릭 릭'(이 당시엔 '리키 D' 명의 사용)이 1985년에 발표한 La Di Da Di.[18][19]
또한 일본 철도의 발차 멜로디로 만들어졌으며 그가 태어난 곳인 카와사키구의 도카이도 본선 카와사키역 1, 2번선, 케이큐 본선의 케이큐카와사키역에 사용 중에 있으며 카와사키시와 멀리 떨어진 조반선 이바라키현의 토모베역의 1번선에서도 사용 중에 있다.[20]
- 1963년 봄 고시엔(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의 입장 행진곡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당 대회 입장 행진곡으로 쓰인 첫 대중가요로 이후부턴 쭉 전년도에 유행했던 대중가요를 입장곡으로 선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이 일어난 후에 일본 가요계의 유명한 그룹 CHAGE and ASKA의 멤버 아스카가 지진 성금 마련을 돕기 위해 이 노래를 커버하여 싱글로 수록하여 발매한 바 있다.
- 2012년 방송된 NHK 연속TV소설 우메짱선생 마지막화에서 주인공의 아버지가 노래자랑에 나갔을 때도 이 노래를 불렀다.
- 2015년, 미국 아마존 스튜디오의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는 라디오에서 나온다. 다만 작중 설정상 일본은 2차 대전에서 승리한 상황인지라 전후 힘든 현실을 노래한 이 곡과는 괴리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21]
5. 기타
- Avicii의 사후 앨범인 TIM의 곡 중 8번 트랙 Freak의 리드 멜로디가 이 곡의 휘파람 소리를 샘플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이 곡이 다시 조명되었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입단한 마에다 겐타가 등판하는 경기에서 투구 혹은 타격 때 응원 구호로 다저 스타디움에서 연주해주기도 했다.
[1]
永六輔
[2]
世界の国からこんにちは,
明日があるさ의 작곡가
[3]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본 곡의 기록을 깰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었으나, 핫 100 차트에서 7주 연속 2위만 하다 내려가는 바람에 역대 아시아 최고 기록 타이틀을 잃지 않았다. 위를 보고 걷자의 빌보드 1위 진입으로부터 무려 57년 후인
2020년
9월 1일에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아시아권에서 두 번째로 빌보드 1위를 하면서 다시 관심이 모아졌는데, 2주 1위하고 내려왔다가 다시 1위로 복귀함으로써 3주 1위라는 동률을 이루었다.
2021년
6월부터
방탄소년단의
Butter가 핫 100 차트 7주 연속 1위, 비연속 8주 1위를 이어가면서 아시아 최장 연속 1위 기록이 깨졌지만 Butter가 2021년 연말차트에서는 11위를 달성해 1963년 연말차트 10위를 달성한 SUKIYAKI가 2024년 현재까지도 빌보드 연말차트 Top 10에 들어간 유일한 아시아 출신 가수의 곡으로 남아 있다.
[4]
심지어 어떻게 보면 사카모토 큐의 기록이 방탄소년단보다도 더 대단할 수밖에 없는 게, 사카모토 큐가 빌보드 1위를 차지했을 당시
비틀즈는
미국 무대 데뷔는커녕 첫 음반을 낸지 단 4달 밖에 안 된 신인 그룹이었으며, 비틀즈가
I Want to Hold Your Hand로 첫 빌보드 1위에 오른 것도 사카모토 큐보다 8개월 가량 늦었다. 그리고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1위 진입 훨씬 전부터 서양에
팬층이 두터웠던 베테랑 가수였지만 사카모토 큐는 위를 보고 걷자가 미국 데뷔곡이었던 (미국에서는) 완전히 신인 가수였으며, 다이너마이트와 버터는 모두 곡 발매 직후부터 빌보드 1위에 진입했지만 위를 보고 걷자는 발매 1년 후에야 요즘말로
역주행을 통해 빌보드 1위에 진입했고, 무엇보다 다이너마이트와 버터는 가사가 전부 영어였지만 위를 보고 걷자는 가사가 전부 일본어였다. 덤으로 그 이전 Volare는
이탈리아계 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스키야키는 그런 빽(?)도 없었다는 것, 당시 미국인들이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고 패전한 지 2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일본에 대한 원한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 비백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지금보다 더 극심했던 것, 동양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수단이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이 좁았던 것(실제로 당시 미국인 중 이 곡의 가사를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던 대신 어설픈 일본어 억양으로 부르고 다닌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게다가
인터넷도 없던 시대라 가사 해석본을 찾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과 비교하면 더더욱 대단한 성과다. 그나마 서양에서 완전한 아웃사이더였던 가수가 국제적 히트를 친 것은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비슷하나 싸이와 달리 사카모토 큐는
유튜브는커녕
인터넷 자체가 없던 시절에 저런 성과를 냈다.
[5]
그리고 역대 비영어 노래 중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곡은 빌보드 66년 역사상 단 9곡(스페인어 3곡, 한국어
2곡, 이탈리아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각각 1곡씩)이 전부고, 이들 중 영어가 아예 안 들어간 곡은 위를 보고 걷자를 포함해 단 4곡이 전부다. 나머지 3곡은
Nel blu, dipinto di blu(Volare)(1958, 이탈리아),
도미니크(1963, 벨기에),
라 밤바(1987, 스페인)이고, 위를 보고 걷자는 이들 중 2번째로 빌보드 1위를 기록했다.
[6]
사실 1961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독일어 노래를 번안해 Wooden Heart를 발매해 빌보드 1위를 기록했지만 영어 가사로 번안한 것이었기에 외국어 노래가 차트에 들어간 걸로 간주되지 않는다. 여담으로 그로부터 3년 전 Volare, 2년 후 위를 보고 걷자가 빌보드 1위를 기록한 것이 '
추축국이 빌보드 차트가 생기고 5년 만에 빌보드 차트를 정복했다'는 드립이 나왔다.
#
[7]
어느 정도냐면
Wind of Change가 1400만 장,
I Want to Hold Your Hand,
Con te partirò가 각각 1200만 장,
마카레나가 1100만 장 팔렸다.
[8]
이 곡은 일본 선수단 다음 순서인
이스라엘 선수단이 입장할 때까지 계속 연주되었다.
[9]
구미권
선진국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보인다.
[10]
1964 도쿄 올림픽 개최로부터 1년 전이자 자유진영 2위 경제대국&
선진국 진입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상 수상으로부터 5년 전이기도 하다. 물론 사카모토 큐의 빌보드 1위 이전에도
구로사와 아키라는 거장 영화감독으로 평가받았다.
[11]
영상 설명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현전하는 이 곡의 유일한
LP 음반의 음원을 업로드한 것이라고 한다.
[12]
가장 대표적인 게
동양방송의 라디오 드라마였던 <오늘과 내일 사이>의 OST.
[13]
장호권이 1949년생이므로 1965년~1967년 언저리로 추정된다.
[14]
2019년 한겨레와 장호권의 인터뷰다.
[15]
빙과 제12화 축제에서 합창부가 부른 노래
[16]
투아하 데 다난에 초청받은
치도리 카나메가 승무원들과의 파티에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17]
바톤부가 공연을 펼치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이 곡의
취주악 편곡판이 쓰였다.
[18]
허락을 맡지 않고 실은 거라서 CD화하면서 이 부분이 편집되었다.
[19]
이 곡은
스눕 독이 1집에서 리메이크한 바 있다.(제목은 발음 상 문제로(슬릭 릭은 영국 출신)
미국식 영어 발음에 맞춘 Lodi Dodi로 변경) 샘플링도 아니고, 아예 리메이크를 한 건 힙합에선 드물다. 이 버전은 원곡과는 달리 '위를 보고 걷자'의 원작자에게 허락을 받아서 샘플링 부분이 (피처링한 여성 가수의 보컬로) 온전히 실려 있다.
[20]
토모베역 2, 3번선의 멜로디도 사카모토 큐의 곡이다.
[21]
하지만 일제강점기가 식민지인 뿐만 아니라 일본 서민에게도 팍팍하던 시기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만큼 어울리는 노래도 없다는 평가 역시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