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13 01:33:22

외부의 적

공동체에 있어서 그 공동체 전원이 공유하는 어떤 공통의 요소를 공유하지 않는 존재가 외부에 있다고 가정했을 때, 공동체는 그 실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존재를 으로 규정하고서 공동체의 일치단결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원시시대부터의, 인류 인간으로 진화하기 이전부터의 습성으로 여겨진다. 집단생활을 영위하는 생물이라면 이러한 성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동물 집단에서 이러한 성향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집단생활을 하더라도 위기상황에서 ' 단결'이라는 해답을 찾아낼 정도의 지능이 없는 생물의 경우는 그저 적을 피해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인간은 '적이 있으면 단결한다'는 DNA에 새겨져 있는 습성을 역으로 이용하여 '집단의 단결을 이루어내기 위하여 적을 만들어내는' 행위도 할 수 있다. 이질적인 존재를 상정하여 개개인의 공포를 자극하는 것이 단결을 만들어내는 방법 중에서 가장 비용이 적게 들고 효과가 우수하다고 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어떤 것보다 공포에 쉽게 굴복하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항을 기꺼이 양보하기 때문이다.

종교, 사회, 정치의 지도자들이 예로부터 이 방법을 선호해왔다. 집단의 단결은 일단 이루어지면 그 에너지를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용할 수 있으며, 자신의 권력이 그로 인해 공고해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권력자들로서는 실로 나쁠 것이 없는 꽃놀이패이며, 유능한 리더일수록 적을 규정하여 구성원에게 공포를 확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오월동주의 원리에 따라 외부의 적을 만들어 내부를 통일하려고 시도하곤 하는데, 이는 독재 정권의 상투적인 수단이며 동시에 민주주의 정권에서도 마찬가지로 활용하고 있는 수단이다.
아주 훌륭한 인류사상 이의 일례로 나치 독일 존속연간 나치즘의 대표적인 근간중 하나로 활용된 반유대주의가 있다. 이는 실제로 홀로코스트로 이어졌다.

문제는 '외부의 적'에게 실체가 없거나 공동체에 위협이 되지 않는 경우이다. 단결을 와해시키지 않기 위해서 권력자들은 거짓을 양산하여 적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유포한다. 그럼에도 '외부의 적'이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공동체의 일부를 떼어내어 차별과 박해의 대상으로 지정해 '내부의 적'으로 삼는다. 이것이 이지메의 실체이다. 집단괴롭힘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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