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7 17:46:41

오사카 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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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명 오사카 구장(大阪スタヂアム,大阪球場)
소재지 오사카부 오사카시 나니와구(大阪府大阪市浪速区)
홈구단 난카이 호크스(1950~1988)
긴테쓰 펄스(1950~1957)
다이요쇼치쿠 로빈스(1953~1954)
개장일 1950년 9월 12일
폐장일 1998년 11월
좌석수 32,000명
크기 좌우 91.5m
중앙 115.8m

1. 소개2. 역사3. 철거

1. 소개

일본 오사카시에 존재했던 야구장. 난카이 호크스 후쿠오카로 이전하기 전까지 홈구장으로 사용하였다.

2. 역사

오사카 남부 최대의 번화가인 난카이 난바역 부근 담배 공장 부지에 건설됐다. 1950년 9월 착공 8개월만에 완성했으며 오사카 시내의 중심부에 대규모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서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야구 경기 외의 부수입을 얻기 위해 일본 구장 최초로 관중석 아래에 다수의 세입자를 입주시킬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공간 확보 및 좁은 부지에 최대한 많은 객석을 마련하기 위한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고자 스탠드를 급경사로 설계했다. 내야 스탠드의 기울기는 37도에 달하고, 타구음이 총격 소리와 비슷한 독특한 반향을 띄었다고 한다. 또한 술에 취한 관객이 미끄러 스탠드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는 -당연한- 일화까지 전해져온다.

이 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하던 난카이 호크스의 모회사인 난카이 전기철도의 난카이 본선 선로 바로 옆에 있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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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를 자랑하는 내야 스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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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가 좁은 관계로 외야로 타구가 뜨면 펜스를 넘어 홈런이 되어 버리는 등 투수한테는 좋을 게 없는 구장이었다. 니시테츠 라이온즈 나카니시 후토시가 이 구장에서 홈런을 많이 기록했으며 난카이의 명 투수들인 스기우라 타다시, 미나가와 무스오 등이 자랑했던 절묘한 제구력은 이 구장에서 길러졌다는 말이 있다.

1951년 라이트 시설을 설치했으며 내야 스탠드에 박스석을 마련한 것도 이 구장이 일본 처음이었다. 난카이는 1950~60년대 츠루오카 카즈토 감독의 지도 하에 매년 우승 경쟁을 벌이면서 황금기를 구가했으며, 간사이에서는 한신 타이거즈를 능가하는 인기 구단이었다. 1963년 경기에서는 비로 젖은 그라운드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수분을 증발시키는 방식을 사용하기도 했다.[2] 그러나 1970년대 후반부터 팀이 몰락하기 시작하며 관중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퍼시픽리그 약칭 파리그는 파리 날리는 리그 뜻의 약자 그리고 자동차 시대의 개막으로 전철 이용객이 감소세로 돌아서면서 난카이 구단의 경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난카이의 홈구장이지만, 1957년 까지 긴테쓰 펄스도 홈구장으로 삼았다. 긴테쓰 펄스가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로 변경된 후 후지이데라 구장 일본생명 구장을 사용했으나, 후지이데라 구장은 야간 조명 시설이 없었고 일본생명 구장은 최대 수용인원이 일본시리즈 개최 기준인 3만명에 미달했다. 이로 인해 긴테쓰가 1979년~1980년 일본시리즈 진출 당시 앞서 서술한 이유로 오사카 구장을 임시로 홈구장으로 삼았다[3].

난카이의 마지막 홈경기는 1988년 10월 15일 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전이었다. 경기 종료 후 오사카의 난카이 팬들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오사카 구장에서 열린 고별식 장면. 스기우라 타다시가 난카이의 마지막 감독이자 다이에의 초대 감독이었다. 스기우라의 유명한 마지막 인삿말은 "다녀오겠습니다"였다. 그 말을 끝으로 호크스는 후쿠오카로 여행을 떠나고 말았다.

노무라 카츠야의 1963년 시즌 52홈런(경신 전까지 한 시즌 최다), 1979년 일본시리즈 에나츠의 21구 등이 이 구장에서 나왔으며,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많은 3차례의 퍼펙트 게임이 기록된 구장이기도 하다.[4] 재밌는 건 정작 홈팀이었던 난카이 호크스는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이 구장에서 2번이나 퍼펙트 게임의 희생양이 되었다(...)

전광판이 다른 구장과 다르게 백스크린 뒤가 아닌 우중간 방향에 있었다. 고시엔 오사카 지역 예선 구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1983년 PL학원고등학교의 1학년 투수가 예선에서 맹활약했고 그를 지원하는 몸집이 큰 1학년 타자가 있었는데 바로 구와타 마스미 기요하라 카즈히로였다.

교통의 요지에 입지해서 인기 스타의 공연의 간사이 지역 개최지로 자리잡았다. 대규모 흥행 개최지로 자리 잡았다. 이 곳을 거쳐간 가수들은 사이먼 앤 가펑클, 마이클 잭슨, 마돈나, 에릭 클랩튼, 사잔 올 스타즈, 오자키 유타카[5], TUBE 등이 있다. 프로레슬링 경기도 개최되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점 때문에 난카이 전철에게는 역효과를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현재 철도 회사가 야구를 운영하는 경우인 한신전기철도 한신 타이거스 세이부 철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의 본거지인 고시엔 구장 베루나 돔은 교외에 위치해 각각 한신 본선 사야마선 등 본사의 철도를 이용해야만 도착할 수 있어 이것 또한 본사의 수입원이 되었으나, 오사카 구장은 오사카 제 2의 번화가인 난바에 위치해, 난카이 전기철도의 난카이 본선, 난카이 고야선 뿐 아니라 미도스지선, 요츠바시선, 센니치마에선 오사카 메트로노선, 심지어 킨테츠선을 타고도 구장에 갈 수 있다. 이 점이 오사카 구장의 위기를 불러온 또 하나의 요인이다.

도심 번화가에 구장이 자리잡은 관계로 구장 인근에서 연예인들도 볼 수 있었으며 요시모토 흥업의 극장이 인근에 있었다. 연습과 게임 사이에 횡단보도를 건너지 말라는 말도 있었다. 구장 안에 문화회관이 개설되어 탁구장, 볼링장, 스케이트장, 수영장, 레스토랑에도 사람이 붐볐고 특히 장외마권매장은 인산인해를 이뤄 주말과 공휴일에는 경비원이 교통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3. 철거

1988년 난카이 호크스가 일본 슈퍼마켓 체인점인 다이에(Daiei)에 매각되어 후쿠오카시로 연고지가 이전된 후에도 긴테쓰 버팔로스가 홈경기 일부를 이곳에서 개최했다. 마지막 프로 야구 공식 경기는 1990년 8월이었다. 오사카 구장은 1986년부터 간사이 국제공항의 건설 개시에 따른 난바 지구 재개발 계획에 의해 몇년 이내에 철거되는 것으로 정해졌지만 일본의 경제 거품이 빠지면서 계획은 보류, 오랜 기간동안 방치되었다. 그런 연유로 야구장이 주택 전시장 「난바 오사카 구장 주택 박람회」로 이용되었다. 야구장으로 매우 드문 예로 해외의 건축 전문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소설 화차[6]에도 등장한다. 재밌는 것은 우리나라의 동대문운동장에서도 주경기장 안에 시장과 주차장을 설치했다가 철거된 적이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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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해서 결국 철거되어 2003년 10월에 대규모 복합 상업 시설인 「난바 파크스」로 다시 태어났다. 난바 파크스의 2층 광장에는 홈구장 투수 플레이트와 홈 플레이트가 있던 위치에 기념물이 놓여져 있으며 9층에는 '난카이 호크스 기념 갤러리'라는 구단의 연혁을 보여주는 전시 코너도 설치되어 있다.
[1] 아래 사진은 구단 매각 이후 모델하우스 전시장으로 사용되던 시기에 촬영된 것으로 구장 북쪽 옆이 난카이 난바역. 구장 남쪽의 공터에는 2021년 현재 전자상가인 LABI1난바가 들어서 있다. [2] 현재는 소방법에 의해 이 같은 행위는 금지되어 있다. [3] 당시 긴테쓰의 퍼시픽리그 플레이오프 홈경기도 일본시리즈와 똑같은 이유로 오사카 구장에서 개최됐다. [4] 1955년 6월 19일 타케치 후미오( 킨테츠 펄스 vs 다이에이 스타즈), 1966년 5월 19일 타나카 츠토무( 니시테츠 라이온즈 vs 난카이 호크스), 1970년 10월 6일 사사키 코이치로(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vs 난카이 호크스)가 달성. [5] 무려 데뷔 2년도 채 안 된 시점인 1985년에 이곳에서 2집 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였다. 오자키의 85년도 오사카 구장 공연은 오자키의 상징적인 첫 대형 공연이기에 훗날 영상화, 음원화되기도 하였다. 이후 1987년도에 다시 한 번 여기서 공연하였다. [6] 사진을 찍었는데 이상하게도 경기장용 야간 조명탑이 경기장이 아닌 주택가를 향하고 있었다.여기서 힌트를 얻어 모델하우스로 변해버린 야구장을 찾아간다. [7] 그래서 한국판 화차를 찍을 때 일본과 거의 유사한 시나리오가 나올뻔 했으나 건설회사(모델하우스)가 동물병원(주인공의 직장) 바로 앞에 있는 걸로 간단하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