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13:59:00

엘리자베스 2세(더 크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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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시기 제2차 엘리자베스 시대 · 사건 일람
생애 생애 · 사망
가족관계 아버지 조지 6세 ·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배우자 필립 마운트배튼 · 동생 마거릿 공주 · 장남 찰스 3세 · 장녀 프린세스 로열 앤 · 차남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 3남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기타 퀸 엘리자베스 · 퀸 엘리자베스 제도 · 퀸 엘리자베스 2세 파크 · RMS 퀸 엘리자베스 2 · 엘리자베스 여왕배 · 기타 창작물 · 더 크라운 ( 엘리자베스 2세(더 크라운)) · 벤틀리 스테이트 리무진 · 영국 왕실과 정부의 전용기 · God Save the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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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87061><colcolor=#fffffd>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파일:엘리자베스 2세 시즌 1.jpg
파일:더크라운 시즌3-4 엘리자베스 여왕.jpg
파일:더크라운 시즌5-6 엘리자베스 여왕.jpg
클레어 포이 올리비아 콜먼 이멜다 스턴톤

1. 개요2. 작중 행적
2.1. 시즌 12.2. 시즌 22.3. 시즌 32.4. 시즌 42.5. 시즌 52.6. 시즌 6

1. 개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크라운의 등장인물로 주인공.

2. 작중 행적

2.1. 시즌 1

왕위에 오르기 전인 1947년부터 여왕 재위 초기인 1956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조지 6세가 피가 섞인 기침을 하는 모습으로 그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작품이 시작된다. 엘리자베스 공주의 약혼자인 필립 왕자는 그리스/덴마크의 왕자 신분과 작위, 국적을 포기하고 영국 해군의 필립 마운트배튼 대위로 귀화하며 조지 6세에게 에딘버러 공작의 작위를 수여받는다.[1] 이후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젋은 공주 부부가 1남 1녀(현재의 찰스 3세와 앤 공주)를 낳고 필립의 해군 복무지인 몰타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기는 와중에 조지 6세의 건강은 비밀리에 점점 악화되어 간다. 조지 6세는 폐 절제 수술을 받는 등 회복을 위해 힘쓰지만 결국 향년 56세로 사망하고, 엘리자베스는 아버지를 대신해 필립과 함께 떠난 아프리카 순방 중에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을 듣고 급하게 귀국하여 여왕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2] 할머니인 메리 대왕대비는 엘리자베스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보낸 편지 [3] 에서 '이제 엘리자베스 마운트배튼이라는 한 개인이 아닌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우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당부한다.

대영제국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은 어려운 시기에 준비없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한창인 젊은 시기에 예상보다 이르게 갑자기 해군 커리어를 포기하고 여왕의 국서로 살게 된 삶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필립과의 갈등, 16살 연상의 이혼남인 피터 타운센드와의 결혼을 원하는 동생 마거릿 공주와의 갈등 [4], 미숙한 상태에서 관록의 정치인인 처칠 총리를 대해야 하는 어려움 등 군주로서의 정치적, 상징적 위치와 왕실 가정 내에서의 개인적 위치 사이에서 내외적으로 고군분투하며 여왕으로서의 처신과 위치를 깨달아 간다. 국정 운영에 중요한 사안인 건강 문제를 숨긴 일로 처칠을 소환해 호되게 질책하는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점점 여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시작한 엘리자베스는 6개월간 13개국을 방문하는 고된 장기 해외순방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5] 시즌 후반을 향해가며 여왕으로서의 위치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지만 반대로 필립과의 부부사이는 위기를 맞게 되고, 어느새 조언자로 의지하게 된 자신의 첫 총리인 처칠은 은퇴해 곁을 떠나며 끝내 마거릿의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면서 동생과도 사이가 멀어진 엘리자베스는 왕관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 나가며 점점 외로워진다.

2.2. 시즌 2

영국이 누리던 세계에서의 패권이 크게 줄어든 계기가 된 수에즈 위기가 발발한 1956년 ~ 엘리자베스의 넷째 자녀인 에드워드 왕자가 태어난 1964년까지의 시기를 다룬 시즌. 첫 회부터 필립과의 갈등이 극에 치달은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여왕과 부군이기에 이혼이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엘리자베스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냐며 필립에게 묻는다. 사실 두 사람의 사이는 1시즌부터 갈등이 시작되기는 했으나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이혼위기로 들썩일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오히려 극중에서 필립이 엘리자베스를 대신해 해외 순방을 떠나기 직전까지는 좋은 편이었다.[6][7] 엘리자베스는 순방을 떠나는 필립의 가방 안에 몰래 편지와 선물을 넣어 두려다가 그 안에서 어느 유명 발레리나의 사진이 담긴 브로치를 발견하게 되고, 그 후 총리와의 면담에서도 집중하지 못하며 필립에게도 서먹하게 대하는 등 스스로 쉽게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다. 애써 남들에게 감추려고 하나 쉽지 않고, 식사 자리에서 최근의 이집트와의 수에즈 운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루이 마운트배튼은 필립이 순방 동안 전혀 연락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 두 사람 모두 거친 영혼과 결혼했으며, 너무 사랑해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다른 것들은 감내할 수 밖에 없다." 며 위로를 건넨다.[8] 그는 또한 이집트 사태에 관련해 총리인 앤서니 이든을 유심히 관찰하라고 조언하고, 이를 보고하기 위해 찾아온 이든과 면담을 하며 이스라엘의 군사적 개입을 위해 뒤에서 밀약을 맺었는지를 추궁한다. 이 시점의 엘리자베스는 경험과 지식의 부족으로 총리(1시즌에서는 윈스턴 처칠)와의 접견에서 애를 먹던 즉위 초기와는 다르게 올라온 자료들을 살펴보고 이를 미리 유추해 낼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는 것. 엘리자베스는 총리의 성급한 대처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군주로서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자신의 위무를 지켜 총리를 지지하겠노라 말한다. 이는 결국 2차 중동전쟁(=수에즈 위기)로 발전하게 된다.[9]

그래도 수개월간 떨어져 있던 부부는 조금씩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다시 가지게 되나, 필립의 귀국 시점에 마이크 파커의 이혼 소송으로 스캔들로 불거지며 언론에까지 여왕 부부의 불화설이 보도되고 만다.[10][11] 이후 엘리자베스는 필립의 불만을 들어 애매한 위치에 있던 필립의 작위를 높여주기도 한다. 필립이 그렇게 싫어하는 보좌관들의 수염도 밀게 한 것이 포인트.참사랑 이후 어느 정도 갈등을 봉합하고 무난하게 결혼 10주년을 맞이한다.[12]
한편 급변하는 시대에 보수적인 왕실 인사들에게만 둘러쌓여 기계적으로 공무를 수행하던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재규어 공장에서 했던 시대착오적인 연설로 인해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을 계기로 왕실이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군주제의 존립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수용한다. 국민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성탄절 연설을 티비로 방송하고 버킹엄 궁에 (선별된)국민들을 초대해 인사를 나누는 등 왕실 비판의 계기가 되었던 올트링엄 경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13] 엘리자베스 본인도 자신이 가진 군주제의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인지 올트링엄 경과의 독대에서만 해도 굉장히 차가운 반응을 보였고 연설 방송 중계도 마치 배우가 된 기분이라며 탐탁지 않아했으나, 결국엔 그의 제안을 대부분 수용하여 국민들에게 더 다가가게 된다.
백부인 윈저 공작( 에드워드 8세)과는 가끔 조언도 구하는 듯 그럭저럭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였고 그를 용서하고 공무에 복귀하려는 것을 허락할 마음도 가졌으나, 아버지 조지 6세와 처칠 정부에 의해 비공개 처리된 마르부르크 파일(Marburg File, 일명 윈저 파일로도 불린다)의 공개와 함께 그의 전시중 친나치 행적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된 뒤 공무 복귀는 물론 향후 영국으로의 입국을 불허하고 용서는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14] 이 처사가 얼마나 통쾌했는지 왕대비와 필립, 더불어 그 토미 래슬스가 함께(!) 모여서 술을 마셨을 정도.상상도 못 한 조합 이후 필립과의 사이에 셋째(앤드루 왕자)를 출산하고 [15], 동생 마거릿 공주가 안토니 암스트롱-존스와의 결혼을 결정하자 그의 복잡한 사생활이나 마거릿의 결정이 타운센드의 결혼 소식 때문에 성급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지하였지만 결국 이를 덮고 결혼을 허락한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히 관여를 삼가던 원칙에서 일부 벗어나 영국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행보를 보인 모습도 2시즌에 그려진다. 가나의 독립을 이끈 은크루마 대통령이 친소련 행보를 보이자 직접 가나로 날아가 카메라 앞에서 은크루마 대통령과 직접 춤을 춰 주변을 놀라게 하는데, 1960년대 초기에 백인 여왕과 과거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의 흑인 대통령이 정식 파트너로 사교댄스를 추는 모습은 세계적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16] 이 과정이 케네디 대통령과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영국 방문 일화와 엮어 연출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인사들이면서 또한 동년배(3살 차이)인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은근한 경쟁심과 열등감, 화려한 겉모습 뒤에서 개인보다 공인으로서의 삶을 중시해 살아가야 하는 두 사람의 복잡한 모습을 실제 일화들에 녹여내 전체 작품 내에서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은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17]

엘리자베스가 넷째 아이를 임신해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국방장관인 프로퓨모가 소련 스파이와 연계된 것으로 폭로된 폭로된 매춘부와 불륜 관계를 가진 것이 발각된 스캔들이 터지는데, 맥밀런 총리가 이를 적절히 수습하지 못한 채 병을 핑계로 사임해버리자 병원을 찾아가 질책한다. 와중에 하필 그 매춘부를 상류층에 소개한 접골사가 자살한 뒤 수습된 소지품에서 목 치료를 위해 그를 만났던 필립의 초상화가 나오는 바람에 왕실까지 스캔들이 번질 뻔 했으나 왕실이 사전에 이를 입수해 회수하였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엘리자베스는 가족들도 만나지 않고 총리 인선만 마친 채 곧바로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버린다. 그나마 필립이 이번에야말로 큰일이라는 것을 알았는지그런 엘리자베스를 찾아가 서로 오래된 오해를 풀게 된다. 이후 버킹엄 궁에서 필립이 출산을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막내 에드워드 왕자가 태어나고[18], 왕실 일가가 모여 가족사진을 찍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2시즌이 마무리 된다.

2.3. 시즌 3

파일:엘리자베스 2세 시즌 4.jpg

1964년부터 1977년까지를 배경으로 다룬다. 배우는 30대 후반에 접어든 엘리자베스 2세를 반영하고자 클레어 포이에서 올리비아 콜먼으로 교체.

1964년 총선을 앞두고 해럴드 윌슨이 이끄는 노동당의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는 상황. 남편인 필립 공은 선거를 다루는 뉴스 보도를 보면서 윌슨이 영 마뜩지 않은지 엘리자베스 2세에게 윌슨이 이기면 공화주의자로 내각의 반을 채울거라느니, KGB 스파이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다느니 험담을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엘리자베스 2세도 그저 소문일뿐이라고 웃어넘기지만 노환으로 몸져누운 윈스턴 처칠 전 총리와의 면담 과정에서 처칠이 총리 시절 윌슨을 스파이로 의심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여왕도 윌슨을 의심하게 된다.[19]

이듬해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에서 여왕은 윌슨 총리가 소련측 인사들과 면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심증을 굳히게 되고, MI5에서 영국 수뇌부에 실제로 KGB 스파이 출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하러 온다. 여왕은 당연하다는듯 윌슨이 아니냐고 묻지만, 윌슨이 아니라 바로 왕실미술수집품 조사관 앤서니 블런트가 그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왕은 격노하지만 왕실의 평판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사실을 은폐하기로 결정한다.

1966년에는 여왕으로서도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애버밴 참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상황 속에서 여왕은 윌슨 총리의 설득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참사 현장에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참사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고, 윌슨은 대중의 적대감이 자신의 내각과 노동당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이 여왕의 무신경함을 욕하도록 방치한다. 대중의 불만과 자신보다 먼저 참사 현장을 방문했던 필립 공의 설득에 마음을 바꾸고 참사 현장을 직접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한 여왕은 이후 아이들의 장례식에서 부른 찬송가 녹음을 들으면서 혼자 눈물짓는다.[20]

이후 필립 공의 모친인 앨리스 공녀가 그리스 군사정변으로 인해 신변이 위험해지자 구출해오도록 지시했다. 이게 여왕으로서는 신의 한수가 되는데, 대중들과 왕실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BBC를 통해 왕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케했다가 역풍을 맞아 당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앨리스 공녀가 왕실폐지론을 주장하는 더 가디언과 인터뷰에 응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개하면서 왕실에 대한 이미지가 다시 긍정적으로 변하고, 이 와중에 서로 어려워하던 필립 공과 어머니의 관계도 개선된다.

시간은 1967년으로 넘어가 여왕이 헨리 허버트(포치)와 함께 경주마 사육법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 사이, 윌슨 총리가 기존의 약속을 깨고 파운드화를 평가절하하기로 하면서 영국 국내 정국이 얼어붙는다. 이에 주변인들의 선동을 받은 루이 마운트배튼이 쿠데타에 동참할 가망이 보이자, 윌슨 총리는 여왕에게 전화해 자신을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 이에 여왕이 복귀해 루이 마운트배튼을 크게 꾸짖고 쿠데타 시도는 무산되었다.

그런 한편 윌슨 총리의 제안을 받아 여왕은 찰스 왕세자 웨일스 공으로 공식적으로 임명되기 전, 웨일스어와 웨일스 문화를 배우라는 목적으로 웨일스로 보낸다.

2.4. 시즌 4

2.5. 시즌 5

2.6. 시즌 6



[1] 필립은 그리스 왕실에서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 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전쟁으로 인한 망명생활 등 어린 시절 여러 부침을 겪다가 10대 후반에 해군으로 복무하기 위해 영국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엘리자베스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후 그리스/덴마크 왕자로서의 계승권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완전히 귀화했으며 '필립 마운트배튼' 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본명인 이름 '필리포스' 와 외가인 '바텐베르크' 공가의 성을 영국식으로 합쳐 이름으로 삼은 것. [2] 귀국과 동시에 남편인 필립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엘리자베스를 앞질러 걸을 수 없고, 어머니와 동생 및 왕실의 가장 어른인 할머니 메리 대왕대비 역시 엘리자베스에게 무릎을 굽혀 커트시를 올리며 예를 표하는 연출로 바뀐 지위를 보여준다. [3] 넷플릭스 자막에는 편지 내용 중 'three great monarchies' 라는 표현이 '세 분의 선왕' 이라고 잘못 번역되었는데, Monarch(군주) 가 아닌 Monarchy(군주제, 군주 일가) 의 복수형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선대왕 3명이 아닌 메리 본인이 보아온 세 왕조 (호엔촐레른, 합스부르크, 로마노프 왕가)의 몰락을 의미한다. [4] 영국 성공회의 수장이라는 국왕으로서의 종교적 위치와 미국인 이혼녀와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의 사례를 고려할 때 사실상 쉽지 않은 결혼이었으나, 엘리자베스는 마거릿이 왕위 승계 가능성의 거의 없는 공주이기에 왕실, 정부와 성공회가 그렇게까지 크게 반대할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결혼을 지지해 주려고 했고 이는 마거릿에게는 희망고문과 다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려 자매 사이에 더 큰 갈등이 빚어지고 만다. 반대로 필립은 마거릿의 열애 사실을 듣자마자 곧바로 이런 상황을 예상한다. [5] 매일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웃어주느라 얼굴 근육에 경련이 생겨 이완제를 맞아가며 정해진 모든 일정을 소화해냈다. 필립은 잠결에도 손을 흔들 지경이었다고. [6] 이때까지만 해도 왕실 외부 인사들이나 궁 내 직원들 앞에서도 애정표현을 서슴치 않았다. [7] 다만 필립은 단독 해외순방을 내키지 않아했다. 가족, 특히 어린 자녀들과 오래 떨어져야 하는데다 왕실이 자신을 문제아 취급해 반성이나 하고 오라고 해외로 보내버린다고 여겼기 때문. [8] 루이 마운트배튼의 부인 에드위나 애슐리는 수차례 불륜을 저질렀으며 그중에서도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와의 염문설이 유명하다. [9] 이후 국제사회의 반발로 유엔의 정전 결의안이 채택되며, 영국은 굴욕적으로 수에즈에서 철수하게 된다. 이든은 이 여파로 총리직을 사임했다. [10] 필립의 개인 비서인 마이크 파커가 순방동안 있었던 소위 '무용담' 들을 적은 편지를 주기적으로 신사들끼리 모이는 그놈의조찬클럽에 보냈고, 남편의 무관심과 부정에 지친 파커의 아내가 남편이 이혼의 유책 배우자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해당 클럽에서 일하는 직원을 통해 편지를 입수한다. 편지에는 여왕이 동행하지 않는 순방에서 남자들끼리 얼마나 현지 여성들과 즐기고 있는지 뽐내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그런데 파커는 그 클럽 직원과도 불륜 관계를 맺었었다.. [11] 필립이 관여되었는지는 극중 직접 묘사되지 않으며, 이혼 스캔들 당사자가 본인과 절친한 사이에 개인 보좌관이다 보니 미디어에 같이 엮여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사태 수습을 위해 필립은 귀국 전 파커를 사임케 한다. [12] 일종의 왕실 내 서열을 정리했다고 보면 무난하다. 왕실은 사실 철저하게 서열에 의해 돌아가는데 여왕의 남편이라는 위치가 선례가 부족하다 보니 이 전까지는 필립이 왕위 계승권을 가진 아들 찰스보다도 서열이 낮았던 것. [13] 어머니 엘리자베스 왕대비는 왕실이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되었다며 탐탁지 않아한다. [14] 단순한 친나치 성향을 넘어 나치 독일 정부가 그를 영국 왕으로 복위시켜주고(+심프슨 부인은 왕비로 즉위) 그 대가로 유럽 지배에 대한 묵인을 얻어내고 조국인 영국을 폭격하는 일에 동조하는 등 사실상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에드워드 8세는 생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5] 앞선 두 자녀는 즉위 전 공주 시절 낳았기에 여왕으로서 재위 중에 낳은 첫번째 자녀이다. [16] 실제로 당시 테러가 빈번해 의회에서는 여왕의 가나 방문을 반대했으나 영 연방의 유지를 자신의 소명으로 여겨온 여왕이 강행했다고 하며, 춤을 추자고 먼저 제의한 것도 여왕이라고 한다. [17] 재클린이 만찬 이후 엘리자베스의 뒷담화를 했다거나 사과를 하러 다시 방문하는 부분은 상상에 의한 창작이다. 다만 국빈 방문 다음 해에 런던을 재방문 하여 여왕과 만남을 가진 것은 사실이며, 측근들에 의하면 단 둘이 대화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 [18] 실제로도 필립이 출산시 참관하였고, 에드워드가 태어날 때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 [19] 심지어는 총선에서 승리한 윌슨 총리가 임명을 위해 버킹엄 궁을 방문하여 알현하자 윌슨의 전임 노동당 당수인 휴 게이츠컬 암살 음모론을 넌지시 꺼내 윌슨을 떠보기까지 한다. [20] 이후 자막으로 훗날 여왕이 재위 중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로 이 당시 참사 현장을 즉시 방문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여왕은 이후 서거때까지 여러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꺼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현장을 방문해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