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9 04:34:50

에세키엘 라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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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키엘 라베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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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前 축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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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에세키엘 라베시
Ezequiel Lavezzi
본명 에세키엘 이반 라베시
Ezequiel Iván Lavezzi
출생 1985년 5월 3일 ([age(1985-05-03)]세)
아르헨티나 비야 고베르나도르 갈베스
국적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 체중 75kg
직업 축구 선수 ( 윙어, 세컨드 스트라이커[1]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CA 로사리오 센트랄 (1995~2003 / 유스)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플라타 (2003~2004)
제노아 CFC (2004~2005)
CA 산 로렌소 (2004~2005 / 임대)
CA 산 로렌소 (2005~2007)
SSC 나폴리 (2007~2012)
파리 생제르맹 FC (2012~2016)
허베이 화샤 싱푸 (2016~2019)
국가대표 51경기 9골 ( 아르헨티나 / 2007~2016)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대회 기록6. 여담7.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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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 출신의 전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윙어였다.

2. 클럽 경력

로사리오 센트랄의 유스팀에서 활약했다. 18세에 에스투디안테스 데 라플라타로 이적 후 39경기에서 17골을 넣어, 제노아 CFC에 1만 유로의 이적료로 이적했지만, CA 산 로렌소로 임대 된다.

제노아로 복귀 후 제노아가 세리에 C1으로 강등 당하자 결국 산 로렌소로 완전 이적 하게 되었다.

2.1. SSC 나폴리

2007년 세리에 A로 승격한 나폴리와 5년 계약에 6만 유로의 이적료로 이적, 등번호 7번을 달게 된다. 첫 시즌에 AC 피사전에 해트트릭을 하여 아르헨티나의 영웅이자 클럽의 전설적인 존재인 디에고 마라도나의 재림으로 주목 받고 있다.

마라도나의 향수가 남아있는 나폴리 팬들에게 아르헨티나 선수는 더 특별하게 여겨진다.[2] 2010-11 시즌에는 마렉 함식, 에딘손 카바니 등과 함께 팀의 챔피언스리그 출전권의 3위를 놓고 나폴리의 삼각편대로 활약을 펼쳤다.

특유의 역습 축구의 선봉장으로써 볼 운반을 주로 담당하며 세리에 탑급 윙포워드로 등극하게 된다. 11/12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에 진출, 첼시와의 홈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기도 했다.

나폴리에서 주전으로 도약한 라베시의 플레이는 당시 나폴리의 상승세를 이끌던 발테르 마짜리 감독의 전술 하에 나폴리의 실질적인 크랙으로 활약하였다. 나폴리의 공격진 삼각 편대에서 실질적으로 공미와 윙포워드를 오가는 위치에서 거의 프리롤에 준하는 전술적 역량을 부여받은 라베시는 킬패스나 마무리 골 결정력이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님에도 타고난 드리블 센스와 개인 기술로 상대 팀의 수비 라인을 교란시켰으며 이렇게 생긴 틈을 함식이 침투하거나 킬패스로 마무리 or 카바니의 득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말 그대로 나폴리에서의 라베시는 팀의 최대 핵심 크랙.

2.2. 파리 생제르맹 FC

11/12시즌 종료후 파리 생제르맹 FC으로 이적. 주포지션은 윙포워드 혹은 세컨톱으로, 작지만 단단한 체격에 빠른 발과 드리블 실력을 갖췄다. 다만 골결정력은 그리 좋지 못한 편.

파리 생제르맹 FC 이적 이후의 라베시는 본인에게 부여받은 역할을 물론 잘 소화하긴 했으나 나폴리에서처럼 팀 내의 최대 핵심 크랙의 롤을 부여받은 것이 아니었기에 상대적으로 나폴리 시절에 비해서는 팀 내 공격 전술에서처럼 큰 축으로 움직이진 못했다. 공격형 미드필더와 윙 포워드 롤을 오가는 준 프리롤을 부여받았던 나폴리 때와는 달리 파리 생제르망에서는 일단 전방 공격진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라는 사기캐가 있고 플레이메이킹이라는 측면 자체를 2선 공격진이 아닌 3선 중앙 미들진에서 해결해주는 편이었던데다 애당초 공미를 운용한 경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3] 라베시에게 프리롤을 부여할 이유가 없었던 것.

그렇기에 활동 범위는 엄연히 윙 포워드롤로써 제약된 활동 반경 하에 움직여야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빠른 스피드와 개인 기량, 그리고 경기 내적으로 대단히 열심히 뛰어다니는 활동성 덕분에 자기 몫을 다했다는 평. 빈곤하던 득점력도 PSG에서 약간이나마 개선된 편이다.

한편 13/14 시즌, 에딘손 카바니가 거액에 영입되면서 나폴리 시절의 에이스 중 둘을 보유하게된 파리 내에서 라베시와 카바니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팬들이 많았으나 카바니는 결국 즐라탄의 아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윙 포워드 롤을 부여받고 라베시 본인은 점차 루카스 모라에게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14/15 시즌, 아직 초반부이기는 해도 모라가 지속적으로 주전으로 대우받고있고 이미 저번 시즌 말엽부터 윙 자리에서 하비에르 파스토레가 대각성하면서부터 주전 자리에서 멀어진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자체는 부상신이 강림하신 PSG 현 스쿼드 상 적지 아니 나오고 있다. 얼마전 FC 메츠와의 경기에서도 고전하던 PSG에서 즐라탄이 거의 떠먹이다시피한 것을 라베시가 마무리 득점하며 3:2로 승리.

2.3. 허베이 화샤 싱푸

2016년 에두의 전 소속팀인 중국 슈퍼 리그의 허베이 화샤 싱푸로의 이적이 확정됐다. 그러나 시즌 절반이 다 가도록 한 골도 넣지 못하는 부진에 빠졌고 결국 허베이가 산동 루넝으로부터 공격수 알로이시우를 영입합에 따라 선수등록 명단에서 제외되었고 2군으로 밀려났다. 워낙 거액의 계약[4]인지라 디에구 타르델리처럼 이적도 못하고 경기도 못뛰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2017시즌에는 20골을 넣어 확실히 부활하고, 팀도 4위를 하는 등 좋은 성적을 냈지만 팀은 정규리그에 3장까지 주어지는 아챔 진출권을 얻지 못했다.

2019시즌이 끝나고 조용히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3. 국가대표 경력

2007년 4월 18일 칠레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했다.

이후 2007 코파 아메리카에도 승선하지 못했고 한동안 국가대표팀에 부름 받지 못하다가 2007년 8월 오랜만에 소집되어 노르웨이 친선전에서 교체 출전했다.

하지만 리오넬 메시, 세르히오 아궤로, 곤살로 이과인, 막시 로드리게스 등 슈퍼 루키 및 괴물들이 즐비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자리 잡기란 쉽지 않았다. 따라서 대표팀에 거의 소집되지 못했고 소집되어도 그들의 백업 선수로 교체 출전하거나 벤치 만을 지켰다. 결국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도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2011년 6월 20일 알바니아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전에서 메시와 함께 결승골과 추가골을 합작하며 사이좋게 1골 1도움씩을 기록, 대표팀 데뷔 약 4년 만에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2011 코파 아메리카에는 최종 엔트리에 들어 조별리그 2경기에서 주전으로 뛰었지만 별다른 활약은 없었고 아르헨티나도 우루과이와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8강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면서 자신의 대표팀 첫 메이저 대회를 씁쓸하게 마쳤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남미 지역예선에서 8경기에 출전해 3골 1도움을 올리며 월드컵 본선 진출에 보탬이 되었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인 보스니아전에서는 벤치를 지켰지만 두 번째 경기인 이란전에서는 76분까지 이란의 텐백에 고전한 아궤로와 교체되며 출전하면서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되었다. 경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은 90+1분 메시에게 패스를 건내줬고 골문으로부터 먼 거리에 각도 좁은 위치였지만 메시가 환상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결승골을 터뜨리며 어시스트를 기록하게 되는 뜻밖에 행운을 누렸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지난 이란전보다 이른 시각인 37분에 아궤로와 교체되어 출전하였고 2:2로 팽팽히 맞서던 50분 코너킥으로 마르코스 로호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이러한 활약 덕분에 토너먼트에서부터는 교체 자원이 아닌 주전으로 선발 출전했고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측면에서 활발한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내는 등의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팀이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를 꺾고 결승전까지 진출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결승 독일전에서도 선발 출전하여 측면에서 독일 수비진을 휘저으며 준수한 활약을 이어갔으나 극심한 체력 소모로 인해 하프타임에 아궤로와 교체 아웃되며 대회를 마쳤고 결국 연장전 끝에 아르헨티나가 패하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2015 코파 아메리카에도 출전했지만 앙헬 디마리아의 백업으로 결승전까지 단 2경기에 교체 출전해 약 70여분 만을 소화했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남미 지역예선 브라질전에서 선제골을 터뜨렸다.

이어서 치러진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어시스트했다.

2016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볼리비아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활약으로 아르헨티나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준결승 미국전에서는 선발 출전했지만 67분 부상을 입어 교체 아웃되며 대회를 마쳤다.[5] 아르헨티나는 결승에 진출했으나 결승 칠레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하며 또 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이후 가끔씩 대표팀에 소집되었지만 벤치에 머물렀고 결국 2017년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했다.

4. 플레이 스타일

아르헨티나 출신 윙어답게 상대 측면을 파괴할 수 있는 온더볼 능력을 지니고 있다. 드리블, 테크닉, 볼 컨트롤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스피드와 활동량도 평균 이상이다. 국가대표 동료 아구에로 테베스처럼 키는 작지만 탄탄한 체형이기 때문에 몸싸움에도 능했다. 나폴리 팬들에게는 아르헨티나 국적의 키는 작지만 탄탄한 체형의 테크니션이라는 점에서 국가대표 대선배이자 나폴리의 전설 마라도나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그 때문에 나폴리에서 더욱 사랑받았다.

공격형 미드필더로 나서기엔 킥과 패스 능력이 다소 부족했으나, 워낙 좋은 기술을 갖추고 있는데다 양발을 모두 사용할 수 있어 때때로 공격형 미드필더, 세컨드 스트라이커 또는 폴스 나인으로 뛰기도 했고, 그 자리에서 상당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라베시는 역시 왼쪽 윙 자리에서 인사이드 포워드 내지 프리롤로 뛸 때 가장 파괴적이었다. 실제로 나폴리 시절 이 포지션에서 전술의 핵심으로 자리잡았고, 카바니, 함식과 함께 당대 최고의 삼각편대 중 하나로 이름을 남겼다.

하지만, 라베시가 PSG로 이적한 이후로는 그의 크랙적인 면모를 보기 힘들어졌다. 최고의 스타이자 골잡이 즐라탄에게 PSG의 모든 전술적 초점은 맞춰졌고, 라베시가 활약할 수 있는 자리는 윙 포워드에 국한되었다. 심지어 리그에서 압도적인 강팀인 PSG를 상대할 때마다 다른 팀들은 내려앉기 십상이었기에 라베시가 활약할 공간은 더욱 줄어들었다. 내려앉는 팀을 상대로 PSG는 2선보다는 3선의 마튀이디, 베라티 등에게 플레이메이킹의 전권을 부여했고, 라베시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그의 빠른 발과 많은 활동량 뿐이었다. 국가대표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시가 있는 한 라베시에게 공격의 지휘권이 돌아갈 리 만무했고, 메시를 보좌하는 역할마저 커리어 초기에는 막시 로드리게스가, 중반부터는 디마리아가 차지했다. PSG에서도, 국가대표에서도 물론 번뜩이는 순간이 있었지만, 나폴리에서 보여줬던 팀의 핵심이자 크랙이었던 라베시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아쉬웠다.

5. 대회 기록

6. 여담

  • 파리에 살았던 때에 경찰모를 쓰고 여친 야니나와 검열삭제를 하는 사진이 유출된 적이 있다. #
  • 허베이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던 중 대표적인 아시아인 비하 행동인 눈 찢기를 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본인 말로는 재밌는 사진 찍으려다 나온 실수라고 말했다.
  • 2023년 12월 19일 복부를 칼에 찔린 채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생명엔 지장이 없다고 한다. 가족 간의 돈문제로 싸우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라베찌 측에선 전구를 갈다가 의자에서 떨어져 뾰족한 곳에 찔려서 다쳤다고 둘러대었다.

7. 같이 보기

1 로메로 · 2 가라이 · 3 캄파냐로 · 4 사발레타 · 5 가고 · 6 빌리아 · 7 디 마리아 · 8 페레스 · 9 이과인 · 10 메시
11 M. 로드리게스 · 12 오리온 · 13 페르난데스 · 14 마스체라노 · 15 데미첼리스 · 16 로호 · 17 F. 페르난데스
18 팔라시오 · 19 알바레스 · 20 쿤 아구에로 · 21 안두하르 · 22 라베시 · 23 바산타
파일:아르헨티나 국기.svg 알레한드로 사베야


[1] 이외에도 중앙 공격수도 소화가능했다. [2] 이는 후에 이과인이 영입되었을때도 마찬가지. [3] 안첼로티 부임 초창기에 4231이나 4312를 몇 번 시도하며 공미 운용을 했던 적이 있긴 하다. [4] 풋볼리스크에 의하면 현재 세계 최고 주급을 받고 있다고 한다. 주급이 원화로 11억 원이 넘는다고. [5] 터치라인 밖으로 빠져나가는 볼을 무리하게 따내려다가 광고판 뒤로 넘어가는 바람에 팔 골절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