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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 과다도 Eddie Guarda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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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에드워드 애드레인 과다도[1] Edward Adrain Guardado |
출생 | 1970년 10월 2일 ([age(1970-10-02)]세) |
캘리포니아 주 스톡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프랭클린 고등학교 - 샌 호아킨 델타 대학교 |
신체 | 183cm / 88kg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우타 |
프로입단 | 1990년 드래프트 21라운드 (전체 570번 / MIN) |
소속팀 |
미네소타 트윈스 (1993~2003) 시애틀 매리너스 (2004~2006) 신시내티 레즈 (2006~2007) 텍사스 레인저스 (2008) 미네소타 트윈스 (2008) 텍사스 레인저스 (2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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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국적의 투수.2. 선수 경력
2.1. 미네소타 트윈스
1990년 드래프트에서 21라운드 전체 570순위로 미네소타 트윈스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초기에는 선발 투수 자원으로 기대를 모았고, 특히 1993시즌에는 더블A 내슈빌 사운즈에서 10경기 4승 무패 평균자책점 1.24로 호투하며 빅 리그 콜업이라는 기쁨도 누렸다. 그러나 과다도는 2시즌 간 23경기(20선발) 3승 10패 평균자책점 6.53으로 정착에 어려움을 겪었고, 1995시즌 도중에 불펜 투수로 전향한다.불펜 전환 이후 과다도는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도 많이 기용됐지만, 선발 투수를 준비했던 자원인 만큼 스태미너가 있어 1이닝 소화나 연투도 큰 무리는 없었다. 덕분에 나름대로 준 필승조 수준의 입지까지 올라가기도 했으나 성적은 평이하기 그지 없었는데, 1995시즌부터 1999시즌까지 총 345경기 324⅔이닝을 소화하며 15승 24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4.77로 그저 그런 좌완 계투 정도의 입지였다.
반전은 2000시즌부터 시작됐다. 70경기 61⅔이닝을 소화하며 7승 4패 9세이브 평균자책점 3.97로 나름 진일보한 면모를 보인 과다도는 2001시즌에도 필승조로 활약했고, 여기에 기존 마무리 투수였던 라트로이 호킨스가 삽질을 거듭하자 9월부터 마무리 투수로 승격돼 한 달간 세이브 8개를 수확하며 클로저의 자질도 뽐냈다. 2001시즌 성적은 67경기 66⅔이닝 7승 1패 12세이브 평균자책점 3.51로 커리어 하이.
그러나 과다도의 전성기는 이제 시작이었다. 2002시즌에도 팀의 마무리로 낙점된 과다도는 때때로 흔들리는 모습도 있긴 했으나 68경기 67⅔이닝 1승 3패 45세이브(6블론) 평균자책점 2.93을 기록해 당당히 아메리칸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거듭났다. 45개의 세이브는 AL 1위였고, 88%에 달하는 세이브 성공률도 인상적. 덕분에 생애 처음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됐다.
미네소타 역시 1991년 월드 시리즈 이후 포스트시즌 문턱도 넘지 못하던 10년의 암흑기를 뚫고 정규시즌 94승을 챙겨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돌아왔고, 과다도도 데뷔 후 처음으로 가을야구 무대를 경험하게 됐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ALDS 1차전에서는 9회 말 2점 차 상황에서 올라와 세이브를 수확했지만, 당락이 걸린 5차전에서는 4점 차로 앞설 때 경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올라왔다가 마크 엘리스에게 추격의 쓰리런을 맞고 크게 흔들렸다. 그나마 동점까지는 내주지 않고 경기를 마치며 팀도 3승 2패로 ALCS에 올라섰다.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ALCS에서는 1차전 9회 초에 등판해 1점 차 리드를 지켜내며 팀의 2:1 승리에 힘을 보태고 포스트시즌 2번째 세이브를 챙겼지만, 이후 팀은 4경기를 내리 지면서 과다도는 더이상의 등판 없이 생애 첫 포스트시즌을 마쳤다. 도합 성적은 3경기 3이닝 2세이브 평균자책점 9.00.
2003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7월 들어 월간 평균자책점 5.23을 기록한 것이 살짝 흠이긴 했지만, 그래도 시즌 종합 성적은 66경기 65⅓이닝 3승 5패 41세이브(4블론) 평균자책점 2.89로 여전히 솔리드한 활약을 펼쳤다. 세이브 수는 조금 줄었으나 세이브 성공률은 91%로 올랐고, 2년 연속으로 올스타에도 선정되며 FA를 앞두고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써 입지를 공고히 했다.
미네소타도 90승을 거둬 중부 지구 1위에 올라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에 나갔고, ALDS에서 뉴욕 양키스를 상대하게 됐다. 그러나 과다도는 1차전부터 3점 차 리드 상황에서 한 점을 주고 불안하게 세이브를 챙기더니, 팀이 1승 2패로 탈락 위기에 몰린 4차전에서는 1:7로 뒤진 9회 초에 올라왔다가 데릭 지터에게 양키스의 ALCS행을 자축하는 솔로포까지 얻어맞으며 2경기 연속으로 실점했다. 끝내 팀도 1승 3패로 광탈. 물론 과다도의 잘못은 미미했고, 범인은 4경기 도합 6득점(...)에 그친 물타선이었다.
아무튼 끝이 조금 찝찝하긴 했어도 훌륭한 활약을 남긴 과다도는 FA 자격을 얻어 시장에 나오게 됐다.
2.2. 시애틀 매리너스
2003년 12월 9일, 과다도는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며 서부 지구로 무대를 옮기게 됐다. 보장 계약은 1년이며, 팀 옵션이 전부 실행되면 총액 $13M의 연봉과 $4M의 인센티브 보너스를 수령할 수 있는 계약이었다. 그리고 이 계약으로 과다도는 의도치 않게 전설의 명단장의 시애틀 시절 첫 외부 투수 FA 영입이라는 타이틀의 주인공이 됐다(...).그렇게 대마신의 후계자로 기대받으며[2] 세이프코 필드에 입성한 과다도지만, 첫 해인 2004시즌의 성과는 다소 아쉬웠다. 표면적인 성적은 41경기 45⅓이닝 2승 2패 18세이브 평균자책점 2.78로, 회전근개 부상으로 7월까지만 출전한 점을 고려하면 괜찮아보이나 문제는 블론세이브. 세이브가 18개인데 블론이 7개에 달해 세이브 성공률이 72%로 뚝 떨어졌다. AL 세이브 1위를 차지했던 2002시즌에도 블론이 6개였는데 그보다도 블론이 늘어난 것. 여기에 6월까지는 블론 4개가 있긴 했어도 2승 무패 15세이브 평균자책점 1.19로 꽤나 호투하고 있었지만, 7월 들어 단 7⅔이닝 동안 피홈런 6개를 얻어맞는 등 월간 평균자책점 10.57로 탈탈 털린 끝에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점은 여러모로 실망스러웠다. 팀도 팻 길릭 단장이 떠나고 빌 버베이시 체제로 바뀌자마자 93승 팀에서 99패 팀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체면을 구겼으나 팀 옵션이 실행돼 시애틀에 잔류한 과다도는 2005시즌에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팀의 처참한 성적 탓에 세이브 기회가 다소 줄었음에도 58경기 56⅓이닝 2승 3패 36세이브(5블론) 평균자책점 2.72로 반등했고, 세이브 성공률도 87.8%로 전성기 수준을 되찾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조금씩 하락세의 기미는 보이기 시작했다. 8월까지 평균자책점 1.81로 완벽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보이다가 9월 들어 블론 3개를 연달아 기록하고 평균자책점이 수직 상승해 체력 문제를 노출했고, H/9는 2000시즌 이후로 가장 높은데 K/9은 2000시즌 이후로 가장 낮고 이 탓에 피OPS도 .680으로 마무리 정착 이후 가장 높게 찍히는 등 세부 지표가 나빴다. 나이도 어느덧 34세였으니 슬슬 에이징 커브가 와도 이상하지 않았고, 직전 시즌에 입은 회전근개 부상의 여파도 문제였다.
이러한 우려는 2006시즌 들어 현실이 됐다. 과다도는 4월 한 달간 평균자책점 8.31로 무너졌고, 5월 3일 시카고 화이트삭스 원정 경기에서 시즌 3번째 블론세이브를 저지른 것을 계기로 J.J. 퍼츠[3]에게 마무리 자리를 넘겼다. 이후로는 평범한 중간 계투로나 활약했는데, 중간계투 전환 이후로도 평균자책점은 3.38로 평이했으나 피OPS가 .865에 달할 정도로 불안감을 노출했다.
2.3. 선수 생활 말년
끝내 시애틀에서의 입지가 좁아진 과다도는 2006년 7월 6일 트레이드를 통해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다. 과다도와 함께 현금을 레즈에 건네고, 레즈는 더블A 우완 투수 트래비스 치크를 매리너스로 보냈다.당시 신시내티는 베테랑 데이비드 웨더스와 영건 토드 커피가 순서대로 마무리를 맡았으나 약간씩 불안감을 노출하던 차였는데, 과다도가 합류 직후 첫 7번의 세이브 기회에서 모두 세이브를 수확하는 등 호투를 펼치며 이 고민을 지우는 듯했다. 그러나 8월 들어 블론 세이브 2번을 기록하는 등 급격히 흔들리다가 팔꿈치 부상으로 조기에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시즌 종합 성적은 43경기 37이닝 1승 3패 13세이브(5블론) 평균자책점 3.89. 신시내티 이적 이후만 따지면 15경기 8세이브(2블론) 평균자책점 1.29였다.
이후 토미 존 수술을 받은 과다도는 신시내티와 마이너 계약을 맺어 잔류한 뒤 재활에 매진했고, 2007시즌 중반 복귀에 성공한다. 그러나 복귀 후 성적은 15경기 13⅔이닝 1홀드 평균자책점 7.24로 폭망. 결국 시즌을 마치고 팀을 나왔다.
2008년 1월 11일, 텍사스 레인저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당시 마무리 투수 C.J. 윌슨을 제외하면 좌완 투수가 극히 모자랐던 텍사스에서 거의 유일한 좌완 불펜 자원으로써 론 워싱턴 감독에게 나름 중용됐고, 8월 하순까지 55경기 49⅓이닝 3승 3패 4세이브 23홀드 평균자책점 3.65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8월 25일, 싱글A 우완 투수 마크 햄버거와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친정팀 미네소타 트윈스로 돌아왔다. 트레이드 성사 당시 미네소타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74승 57패 동률을 기록해 중부 지구 우승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었는데, 팀에 좌완 불펜 자원이 전형적인 LOOGY였던 데니스 레예스와 필승조로 쓰기는 힘들었던 크레이그 브레슬로우 둘 뿐이었다. 이에 과다도를 영입해 좌완 불펜진을 보강하고 팀에 포스트시즌 출전 경험이 있는 베테랑 자원도 보강한 셈.
그러나 과다도는 미네소타 복귀 후 첫 3번의 등판에서 4실점으로 장렬히 불을 질렀고(...) 9월 3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원정 경기에서는 연장 11회에 올라와 2루타와 안타를 연속으로 맞고 끝내기 주자를 쌓은 뒤 마운드를 내려가 패전 투수가 됐다. 이후 빅 리그로 콜업된 호세 미하레스가 오히려 과다도에게 기대했던 역할을 해내며 과다도는 잉여행... 결국 9월 3일 경기 이후 딱 5경기에 더 나서는 데 그쳤고, 그 5경기 중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상대로는 9:8로 앞선 8회 말에 올라왔다가 그래디 사이즈모어에게 동점 솔로포를 맞고 불을 질러주셨다. 결국 그 경기는 11회 말에 조 네이선이 빅터 마르티네즈에게 끝내기 쓰리런을 얻어맞으며 패배.
결국 과다도는 미네소타 복귀 후 9경기 7이닝 1승 1패 평균자책점 7.71로 부진했고, 미네소타도 88승에 그쳐 시삭스와 동률이 된 탓에 타이브레이커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타이브레이커에서 타선이 존 댕크스에게 단 2안타 3볼넷으로 꽁꽁 묶이며 0:1로 패하며 미네소타의 포스트시즌행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과론이긴 하나 과다도가 불을 지른 2경기 가운데 하나만 잡았어도 지구 우승이었으니, 과다도의 복귀는 선수 개인과 팀 모두에게 악몽이 되고 만 셈이다.
미네소타를 떠난 과다도는 2009년 2월 3일 마이너 계약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 복귀했다. 스프링 트레이닝 초청을 거쳐 개막 로스터에도 합류한 과다도는 주로 패전조나 LOOGY로 나서며 48경기 38⅓이닝 1승 2패 5홀드 평균자책점 4.46의 기록으로 2009시즌을 마쳤다.
시즌 종료 후 은퇴를 고민하던 과다도는 현역 연장을 택해 2009년 12월 26일 워싱턴 내셔널스와 계약했지만, 스프링 트레이닝을 마치지 못한 채 2010년 3월 11일 방출됐다. 이후 새 팀을 구하지 못한 끝에 8월에 은퇴를 선언했다.
3. 연도별 성적
4. 여담
[1]
성 Guardado는 스페인어권 성씨로, 스페인어식 발음은 '과르다도'다. 다만 선수는 미국 태생의 미국 국적자이므로 영어식 발음을 적용해 표기한다.
[2]
엄밀히 따지면 사사키는 2003시즌에 이미 에이징 커브를 직격탄으로 맞고 시즌 도중에 일본인 후배인
하세가와 시게토시에게 마무리 자리를 넘겼었다. 그러나 사사키가 2003시즌 후 일본으로 복귀하며 아예 팀을 떠났고, 하세가와는 다시 중간계투 자리로 돌아가는 가운데 새 마무리로 낙점한게 과다도였으니 결론적으로 과다도가 사사키의 직속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3]
과다도가 부상으로 일찍 이탈했던 2004시즌에도 8월 이후 대체 마무리 역할을 맡은 전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