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0:38:36

에디 게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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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DIE GUERRERO

1. 프로필2. 소개3. 커리어
3.1. 프로레슬링 입문부터 WWF 데뷔까지3.2. WWE 재복귀3.3. 말년
4. 사망5. 유족들6. 여담7. 사건 사고8. 둘러보기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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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A 명예의 전당 헌액자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Eduardo Gory Guerrero Llanes
에두아르도 고리 게레로 야네스
별칭 Latino Heat
출생 1967년 10월 9일
미국 텍사스 주 엘패소
사망 2005년 11월 13일 (향년 38세)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신체 173cm, 100kg
가족 배우자 비키 게레로, 슬하 3명, 형 차보 게레로 시니어, 조카 차보 게레로
피니시 무브 프로그 스플래시
라쏘 프롬 엘 파소[1]
사기 체어샷[2]
쓰리 아미고스[3]
유형 테크니션 + 루차 리브레 + 힐 스타일
테마곡 Bad Man
Eddie Guerrero
Latino Heat
Mamacita[4]
Lie Cheat Steal(Can You Feel The Heat?)
I'm Your Papi[5]
Lie, Cheat, Steal[6]
주요 커리어 AAA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IWA 미드 사우스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LAWA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PWF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
WWA 인터내셔널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1회
WWA 트리오스 챔피언 1회
WWA 월드 웰터웨이트 챔피언 1회
ECW 월드 텔레비전 챔피언 2회
신일본 베스트 오브 더 슈퍼 주니어 1996 우승
WCW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2회
WWE 챔피언 1회
WWF/E 인터컨티넨탈 챔피언 2회
WWE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챔피언 1회
WWF 유로피언 챔피언 2회
WWE 태그팀 챔피언 4회

2.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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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La Raza!"
I Lie, Cheat and Steal!
Mamacita!
Cheat 2 Win

미국 프로레슬러.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한 명이었고, 연기력과 경기 운영 모두에 능했던 레슬링계의 거목 중 한 사람이었다. 그 이유들로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던 레슬러였다.

WWE에서는 비겁한 선역이라는 특이한 컨셉으로, 선역이지만 적절한 반칙과, 악역들을 골탕먹이는 모습으로 많은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악역일 때는 얄미운 악동 스타일을 보여주며 후대 레슬러들에게 새로운 기믹의 패러다임을 제시한 기념비적인 인물. 이러한 성향과 언더독 스타일을 교합한 스토리텔링은 수많은 팬들의 지지와 호응을 받았으나, 안타깝게도 불의의 사고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으며, 이에 수많은 선수들이 요절한 그를 추모하며 위로하곤 했다.

지금까지도 에디 게레로는 종종 WWE에서 회자되곤 하며 루스레스 어그레션 시절 그를 비롯한 테크니션 레슬러들의 언더독 스토리가 팬들에게 추억되곤 한다. WWE의 전성기라 불리던 애티튜드 시대 이후 짧았던 이 시기를 잊지 못하는 팬들이 아직 있고, 그가 유난히 사랑받던 선수였기 때문에 그런 경향도 크다. 그리고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였던 이가 그와 반대되는 위치로 몰락하면서 이 시대는 끝이 나고, 북미 프로레슬링 업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3. 커리어

3.1. 프로레슬링 입문부터 WWF 데뷔까지

멕시코의 유명한 레슬러 가문인 게레로 가문의 일원 고리 게레로(1921~1990)의 막내 아들로 태어나 자연스레 프로레슬링에 입문하였다.[7] 초창기에는 일본 멕시코의 중소 단체에서 활약했으며, 1987년 매직 마스크라는 링네임으로 멕시코에서 정식 데뷔전을 가졌다. 1992년부터 멕시코의 AAA에서 태그팀 '라파제라 아토미카'로 활동했으나, 팀 동료였던 아트 바가 1994년 28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추모의 의미에서 아트 바의 피니시였던 프로그 스플래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8]

1993년부터 1996년까지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블랙 타이거 2세라는 링네임으로 마스크를 쓰고 활동했으며, 이 당시 페가수스 키드라는 링네임으로 같이 신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던 크리스 벤와와 각별한 관계가 되었다. 1994년 11월 16일에 AAA에서 아트 바와 태그팀을 맺어서 엘 이호 델 산토&옥타곤을 상대해 데이브 멜처로부터 5성 만점을 받는 한편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서 선정된 1994년 올해의 경기 4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ECW에서 TV 타이틀을 2회 획득하는 등 짤막하게 활동하다가 WCW에 데뷔해 U.S 타이틀 및 크루저웨이트 타이틀을 석권하며 미드카더로 정착해 꾸준한 활동을 보여줬고, nWo가 한창 위세를 떨치던 시절엔 이에 대항하기 위해 LWO(Latino World Order)라는 스테이블을 결성해 그 수장으로써 활약하기도 했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공백을 가지게 되어 LWO는 해체 수순을 밟았다.

부상에서 회복하여 복귀한 이후에는 코난, 레이 미스테리오, 빌리 키드먼과 함께 필시 애니멀즈라는 스테이블을 만들어 활약하기도 했으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이 너무 커서 진통제에 중독되다시피했다.

2000년에는 절친들인 딘 말렌코, 페리 새턴, 크리스 벤와와 함께 당시 망조를 걷고 있던 WCW를 벗어나 1월 31일 RAW에서 뉴 에이지 아웃로즈를 집단구타하며 래디컬즈라는 이름의 악역 스테이블로 WWF에 데뷔했다. 하지만 다른 단체들에 비해 큰 WWF의 링에 적응을 못한 상태에서 프로그 스플래시를 잘못 써 팔을 다쳤다.

복귀한 후 4월 3일 RAW에서 차이나의 도움으로 크리스 제리코 유로피언 타이틀을 획득한 뒤에는 자신에게 라티노 히트라는 별명을 붙이고 차이나를 "마마시타"[9]라 부르며 연인 관계로 나왔지만, 9월 4일 RAW에서 에디와 차이나는 커트 앵글과 트리플 쓰렛 매치 인터컨티넨탈 챔피언십이 있었는데, 커트 앵글이 차이나에게 벨트샷을 날려, 에디는 차이나를 구하기 위해 커트 앵글을 링 밖으로 내보낸다. 그 때, 쓰러진 차이나를 보살펴주는 척하면서 은근슬쩍 커버해 차이나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챙겨가거나[10], 차이나를 이용해 타이틀전에서 DQ패로 타이틀을 방어하는 등 야비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어진 각본과 캐릭터를 능글맞게 잘 수행했다. 그러나 차이나와의 관계는 에디의 배신으로 깨졌고[11], 또 한, 계속해서 차이나를 괴롭히기 시작해[12], 래디컬즈와 다시 재결합하게 되고[13], 차이나의 친구인 빌리 건 상대로, 11월 21일 스맥다운에서 인터컨티넨탈 타이틀 매치 패배해 인터컨티넨탈 타이틀을 잃게 된다. WWF 레슬매니아 17에서 테스트를 상대로 유러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는 한편 리타와 얽히는 각본을 진행하던 중 진통제 중독과 음주운전 사건으로 2001년 5월 WWF에서 방출당했다.

3.2. WWE 재복귀

재활의 기간을 거치며 WWA, ROH 등의 인디단체를 돌아다니면서 경기를 가지는 한편 진통제 중독에서 벗어나 2002년 WWE RAW에 복귀해 랍 밴 댐이 가지고 있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을 빼앗으며 악역으로써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는다. RVD와의 대립이 끝난 후엔 같은 RAW 소속이었지만 부상으로 오랫동안 출연을 하지 못하던 절친 크리스 벤와가 복귀하자 태그팀으로 활동해 버버레이&스파이크 더들리 형제와 대립하다가 크리스 벤와와 같이 스맥다운으로 이적한다.[14]

스맥다운에서 자신의 조카인 차보 게레로[15] 로스 게레로스라는 태그팀을 결성해 WWE 태그팀 타이틀을 몇 차례 획득했다. 이때부터 Lie, Steal, Cheat라는 구호 아래 얍삽한 기믹과 날렵한 테크닉으로 본격적인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으며, 차보 게레로가 부상으로 공백기를 가지자 타지리와 함께 WWE 태그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한편 RAW의 인터콘티넨탈 타이틀에 대응하기 위해 스맥다운에서는 WCW의 U.S 타이틀을 부활시키고 토너먼트를 개최했는데, WWE 벤전스(2003)에서 라이노의 난입 덕에 크리스 벤와를 꺾고 우승을 차지, 초대 WWE U.S 챔피언에 등극했다. 그 뒤 존 시나와 단기 대립을 벌여 주차장 매치로 격돌해 승리를 거두었고, 빅 쇼와 대립할 때는 설사약이 든 브리또를 먹이고 조롱하거나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등 유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자다. 그러나 WWE 노 머시(2003)에서 빅 쇼에게 아쉽게 패하면서 U.S 타이틀을 내줬다. 게다가 가지고 있던 WWE 태그팀 타이틀마저 바샴 브라더스에게 내주면서 점차 갈등이 커져갔고 끝내 차보 게레로와 그의 아버지 차보 게레로 시니어하고 대립해 WWE 로얄럼블(2004)에서 차보 게레로와 싱글 매치를 가져서 그를 꺾었다.[16] 경기 후에도 차보 게레로 시니어를 린치하고는 차보를 넥타이로 묶어 응징해버렸다.

2004년 30인 로얄럼블 매치 우승자인 크리스 벤와가 RAW로 이적하면서, 그 직후에 열린 스맥다운 15인 로얄럼블에서 우승해 당시 브록 레스너가 가지고 있던 WWE 타이틀에 도전할 권리를 얻었다.[17] WWE 노 웨이 아웃(2004)[18]에서 브록 레스너 F5를 WWE 벨트 위 토네이도 DDT로 반격한 뒤 프로그 스플래시로 핀을 따내며 WWE 챔피언에 등극해 생애 최초이자 최후의 월드 타이틀을 따냈다.[19][20] 에디 게레로는 이로써 WWE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데 성공했다. 공식 풀경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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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WWE 레슬매니아 XX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커트 앵글을 물리치며 타이틀을 방어했고, 메인 이벤트에서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에 오른 오랜 지기 크리스 벤와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감동적인 피날레를 만들었다. 이 장면은 비록 공식적으로는 없었던 일 취급받고 있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현재까지도 레슬매니아 최고의 엔딩하면 십중팔구 이 장면을 뽑을 정도로 평가가 좋았다.

이전까지 에디 게레로가 익살스러운 태도로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농락[21]하면서 팬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줬던 것에 비해 지나치게 진지하고 월드 챔피언으로서의 중압감에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팬들에게 호평을 받지 못했다.[22]
그 결과로 이어진 시청률 하락에 부담감을 느껴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름과 기믹을 새롭게 바꾼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에게 텍사스 불로프 매치[23]를 통해 WWE 타이틀을 내줬다. 이후 에디의 친구 멕시코 챔피언 마스크 맨(El Grand Luchadore)이 JBL와 챔피언 대 챔피언 도전을 받아 경기를 했다. 경기도중 링 아래에 숨어있던 똑같은 복장의 마스크 맨과 본래의 마스크 맨이 슬쩍 교대해서 JBL을 공격했는데, 특유의 제스쳐나 목소리가 빼박 에디 게레로(...).

이후 스맥다운 메인 이벤트 경기로 에디 게레로 vs JBL(c) 스틸 케이지 경기를 가진다. 에디가 철장에서 나가려다 마음을 바꿔 그대로 초 고공 프로그 스플래쉬를 시전한다.[24] 이어서 다시 철장 위로 나가려고 했지만 예의 마스크 맨이 갑자기 나타나서 에디를 붙잡고 탈출을 방해하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JBL이 철장에서 탈출해 타이틀을 유지했다. 이후 도망가는 마스크맨을 붙잡아 마스크를 벗겨보니 커트 앵글이였다. 이후 몇 개월 동안 에디 게레로와 커트 앵글 신경전이 계속 된다.

한동안 WWE 챔피언십에서 멀어져서 커트 앵글 사단과 대립하다가 부커 T와 함께 태그팀을 이뤄서 활동했다.[25]

3.3. 말년

WWE 로얄럼블(2005)에서 등장번호를 뽑으러 온 그와 RAW의 릭 플레어와 만나게 되었다. 릭은 운 좋게 등장번호 30번이 나와 신이 났지만, 에디는 1번이었던 나머지 절망하고 있다가, 릭의 번호와 몰래 바꾸어 도망간다. 릭이 에볼루션 멤버와 단장 시어도어 롱까지 대동하고 와서야 돌려주지만, 와중에도 릭의 지갑을 슬쩍했다가 들키는 것도 백미.

2005년 레이 미스테리오와 WWE 태그팀 챔피언이 되지만, 과거 WWE를 비롯한 다른 단체에서 레이 미스테리오를 상대로 경기할 때는 항상 패배하던 중[26] 레슬매니아 21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에디 게레로는 점점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 시작해 급기야 레이 미스테리오를 공격하고 나서 감정적인 대립을 시작한다.

4월 21일 스맥다운에서 에디와 레이 미스테리오 vs M N M WWE 태그팀 챔피언 경기를 가졌는데 레이를 배신하고 타이틀을 잃게 된다. 1주일 후에, 레이 vs JBL의 경기 중에 에디가 나타나 경기를 방해하여 JBL의 승리를 줬다.[27] 그 이후에, 에디가 저번에 MNM한테 습격 받아 도움도 없고 챔피언십 경기에 방해하여 패배를 한 레이가 화가나자, 에디가 오해가 있었다고 사실대로 고백하며 화해를 했다. 5월 5일, 레이가 MNM에게 승리를 거두자 에디의 조카 차보 게레로가 나타나 3:1로 레이를 공격하다가 에디가 나타나 차보는 도망가고 MNM을 내보내 레이를 안부를 하자마자 바로 그를 피 철철나게 공격하고, 쇠계단에다가 브레인 버스터를 날려 턴 힐 한다.

더 이상 그의 로우 라이더 등장은 안 나타나고 대신 "lie, cheat and steal" 등장 음악도 바꾸고, 자기 두 발로 천천히 걸으면서 등장한다. WWE 저지먼트 데이(2005)에서 그가 레이를 체어샷을 날려 반칙패로 인정했고, 이후로도 둘간의 대립은 심화되며 6월 30일, 에디가 레이와 그의 아들 도미닉에게 에디의 비밀을 드러낸다고 그들을 위협하여, WWE 그레이트 아메리칸 배쉬(2005)에서도 레이와 신경전을 또 벌어진다. 그 중에, 원 나잇 스탠드에서 크리스 벤와와 경기에서 패배하고,[28] 비밀을 말하려 순간 에디의 아내 비키 게레로와 그의 딸들도 등장해 에디를 말려 진정을 시키라고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에디가 그녀들을 강제 끌고 차에 태워 집에 가라고 고함 질렀다. 직원들과 대화 나누었던 하드코어 할리가 나타나 에디에게 자식들 생각해서, 애들 앞에서 그러지 말라고 말리려고 노력했는데, 에디가 할리를 세계 밀쳤다가 할리도 에디를 세게 밀쳐 어쩔 수 없이 아내와 자식들을 차에 태워 집에 보냈다. 하드코어 할리와 경기에 승리 후, 아내에게 사과하려다가 욕설을 퍼붓기 시작하여 계속 레이와 도미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시어도어 롱이 에디를 찾아 그의 상대는 "Secret Opponent(비밀 선수)"라고 발표하여 링에 출전한다. 에디의 상대는 제일 친한 친구인 크리스 벤와였다! 친구와 싸우기 싫어서 도망가려고 했으나, 벤와가 마이크를 꺼내 에디에게 링에 와서 할 말이 있다고 형제처럼 대화를 나눴는데[29], 에디는 정신을 잃고 친구를 때린다. 더 이상 못 참는 에디는 링 밖으로 나와 도망가려다가 뒤에서 레이 미스테리오가 의자를 들고 에디에게 체어샷을 날려 퇴장한다. 스맥다운에서 레이에게 만약 에디가 지면 자기가 비밀을 얘기 꺼내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그 이후, 경기에 패배했는데도 불구하고 약속을 어기고 바로 비밀을 말한다. 에디의 잠잘 때 읽어주는 동화와 그의 진짜 아들은 '도미닉'이라고 누명을 쓴다. 그들이 떠난 후에 이야기는 계속 읽었고, 다음 날에는 에디가 레이에게 다음 주에 그의 아내와 딸, 도미닉 까지불러 도미닉을 에디에게 양육을 넘기라고 경고준다. 다음 날, 에디가 양육권 변호사 미스 크랩트리를 데리고, 진짜로 레이와 그의 아내, 도미닉까지 나와 양육을 하려다가 대신 에디가 경기에서 이기면은 가지라고 도전권을 내민다.[30]

에디 게레로는 레이 미스테리오의 아들 도미닉이 (각본상)자신의 친자라는 것을 폭로하고 도미닉의 양육권을 요구하기 시작해 WWE 섬머슬램(2005)에서 래더매치를 가지나 타락한 에디를 보다 못 한 비키가 에디를 방해하면서[31] 에디는 다시 한 번 패했다. 그 다음 스맥다운에서 열린 레이 미스테리오와의 스틸 케이지 경기에서, 철창을 빠져나가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프로그 스플래쉬로 핀폴승을 거두며 대립을 종결했다.[32][33]

이후, 에디 게레로는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데이브 바티스타의 도전자가 되어 겉으로는 호의적으로 다가가면서 속으로는 바티스타의 빈틈을 노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때 야비하기보다는 익살스러웠고, 바티스타에게 심리전에서 역관광을 당하는 해학적인 모습도 많이 보여줬기 때문에 반응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34] 결국 이러한 흐름 속에 WWE 노 머시(2005)에서 타이틀전을 치르지만 패배한다. 이렇게 바티스타와 불안불안한 관계가 이어지던 중 갈수록 팬들이 에디 게레로를 바티스타보다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자 에디가 태그팀 경기 중에 자신의 파트너인 바티스타가 미스터 케네디에게 체어샷을 당할 위험에 처할 때 자신이 대신 맞기도 했으며, 레이 미스테리오를 괴롭혔던 일을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며 극적으로 턴페이스했다.

바티스타가 케인& 빅 쇼에게 더블 초크슬램을 맞고 나서 어깨에 부상을 입어 장기간 결장이 불가피하게 되자 바티스타(c) vs 에디 게레로 vs 랜디 오턴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대진이 잡혔다.[35]
생전 마지막 경기까지도 그다운 승리였다.[36]

마지막 경기에서 실제 월드 챔피언에 오를 가능성도 있었는지, 그의 사망 직후 슈퍼스타들의 헌사에서 스테파니 맥맨이 "그가 한번 더 월드 챔피언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걸 이루어주지 못하고 떠나보내 너무 후회되고 미안하다"며 서럽게 우는 장면이 나온다. [37]

4. 사망

하지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경기를 가지기 전인 2005년 11월 13일에 호텔에서 죽상동맥경화증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내려서 항상 가던 호텔에 간 뒤, 로비에서 크리스를 만나 항상 하던 것처럼 다음 날 일곱시에 만나 운동을 하기로 하고 각자 방으로 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다섯시 반쯤에 로비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 삼촌 분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아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래서 경비원이랑 같이 에디네 방으로 가면서 하는 얘기가 "삼촌 분께서 기상 콜을 안 받으시더군요. 그래서 노크를 해봤는데도 반응이 없으시고, 문을 열어보니 걸쇠는 또 걸려있더군요."

그렇게 걸쇠를 자르고 들어갔는데 화장실에 에디가 엎드린채 쓰러져있더군요. 속옷 차림에 한 손에 칫솔을 든채로요. 그래서 잡고 막 흔들었는데 그때까지도 조금씩 움직이면서, 그르륵그르륵 소리를 내더군요. 그래서 소리를 치면서 얼굴을 닦던 중에 갑작스레 저희 곁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말 그대로, 제 품에서 떠나버리고 만거죠.
차보 게레로, 다큐멘터리 Dark Side of the Ring 벤와 (1편)
WWE 공식 추모 영상

그의 사망소식을 접한 RAW 및 스맥다운은 그를 추모하는 헌정 쇼로 진행되었으며, 쇼 시작과 함께 빈스 맥마흔 회장의 헌정 메시지 발표와 함께 조종 9회를 울리며 에디를 추모하였고, WWE의 선역, 악역을 가리지 않은 모든 선수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팬들에 의해 눈물바다가 되었다. 고인의 생전의 활약상과 고인을 기리는 선수들과 관계자들의 인터뷰, 그리고 각본과 무관한 추모 경기[38]로 쇼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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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친이던 크리스 벤와는 인터뷰 도중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네가 널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거야 친구. 네가 정말 보고싶다."며 오열했다. 하필이면 스맥다운에서 감동적인 피날레를 마친뒤 얼마 안되어 친구를 잃은 셈이니... [39] 심지어 후술되는 RAW에서 트리플 H와 추모 경기를 펼쳤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치루는 걸 포기하려고 할 정도로 눈물을 흘려서 트리플 H가 포옹하며 위로를 해주다 오열하는 모습을 보이고 경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에도 야유나 불만은 커녕 오히려 트리플 H와 관객들은 그를 이해하며 환호와 위로를 보내줄 정도였으니 에디에 대한 벤와의 우정과 애정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준다.

레이 미스테리오는 인터뷰 마지막에 고개를 숙이고 가면을 벗고 눈물을 쏟으며 슬퍼했다. 루차도르에게 가면을 벗는 것이 레슬러로서의 명예를 포기하는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안다면 레이가 얼마나 슬퍼했는지를 알 수 있다.[40]


각본상 철전지 원수 사이였던 빅 쇼도 추모 인터뷰에서 에디는 아주 특별하고 훌륭하다며 칭찬을 해줬고,(그래도 2004년에는 커트 앵글이라는 공공의 적에 맞서 잠시 연합하여 서바이버 시리즈에서 팀으로 출전하기도 했다.) 링 밖에선 정말 훌륭한 친구사이였다고 한다. 빅 쇼는 인터뷰 당시 에디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게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엄청 눈물을 흘렸고, 케인과 함께 태그팀 매치를 승리한 이후 에디 게레로의 어깨춤을 어눌하게나마 따라하며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에디 특집 RAW의 메인 이벤트는 크리스 벤와와 트리플 H의 싱글 매치로 진행되었다. 벤와는 2004년의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시절보다 다소 내려온 위상이었음에도 이날 좀처럼 지지 않던 트리플 H에게 클린핀폴 승리를 거두었고, 오래 전 은퇴하고 WWE 프로듀서로 일하던 딘 말렌코[41]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에디를 그리워했다.

이 추모 특집 에피소드에서는 당시 각 쇼의 챔피언이던 존 시나 데이브 바티스타 역시 에디를 추모했다. 시나는 링 위에 에디 게레로의 티셔츠를 벗어놓고 그 위에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얹어 놓고 링을 떠나며 그를 한명의 전설로서 확실히 추모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바티스타도 에디가 세상을 떠났을 때 누구보다도 슬퍼했는데[42], 에디의 추모식에 등장해 "만약 내가 에디 게레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지금 내가 이 자리에 나와 애처럼 울고 있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안하다 에디, 난 어쩔 수 없어." 라면서 정말로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에디가 사망한 후에 열린 스맥다운에서는 에디의 등장음악과 등장씬을 재현해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자신의 챔피언 벨트를 에디를 상징하는 로우라이더 위에 올리고 퇴장하며 에디를 추모하였다.

심지어 에디의 소꿉친구이자 WWE의 수뇌부였던 스테파니 맥마흔 역시 처절하게 울며 죄의식을 느낀다고 괴로워 했는데,[43] 생전 에디가 스테파니에게 반 농담으로 WWE 챔피언 벨트를 얻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의 소원을 못들은 척 해서 이루어주지 못한 게 자신의 인생에 있어 용서받지 못할 실수이자 천추의 한이라며 크게 슬퍼했다.

이후 한동안 에디 게레로의 마지막 티셔츠인 ‘I'm Your Papi!' 티셔츠나 에디 게레로의 이니셜인 EG가 새겨진 팔찌를 착용하는 선수들도 있었다.[44] 레이나 벤와 등은 한 동안 입장할때 에디를 추모하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에디 게레로는 항상 정통 백인이 최고 자리에 오르는 WWE에서도 뛰어난 입담과 유머, 그리고 정열적인 경기로 팬들의 큰 인기를 얻은 레슬러였다. 하지만 원래 작은 키(175cm)로 빠른 스타일의 테크니션 레슬링을 주로 하던 그가 WWE에서 활동하려면 거구의 레슬러들과 체격을 어느정도 맞춰야 했기에 스테로이드 등 무리한 약물 복용으로 체중을 늘렸고 이는 에디의 건강에 심한 무리를 줬다.[45] 그리고 위에 언급된 과거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생기는 고통을 견디기 위한 진통제를 과용한 게 그의 삶을 갉아먹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특히나 사망 1년 이전 경기들을 보면 에디가 각본도 아닌데 몸을 못가누고 실신하는 장면을 여러 번 만들어냈는데 이미 이때부터 그의 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죽음이 임박했던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2020년에 스티브 오스틴이 진행하는 브로큰 스컬 세션에서 커트 앵글은 에디가 교통 사고를 겪고 난 후에 에디의 몸상태가 확실히 안 좋아졌다고 밝혔다. 어느 날은 에디가 경기 도중에 몸이 말을 안 들었고 굉장히 혼란스러워하면서 숨을 쉴 수 없게 되어 자신과의 경기가 중단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46] 이후 에디가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몸이 안 좋아보일 때가 자주 있어서 에디가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을 때, 앵글은 동료들과 함께 이러한 에디의 심각한 상태 때문에 어느 정도의 짐작을 했었다고 밝혔다. [47]

이후 크리스 벤와, 레이 미스테리오, 차보 게레로에 의해 2006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5. 유족들

아버지 고리 게레로는 멕시코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레슬러로서[48], 텍사스주 엘 파소에 엘 파소 콜로세움이라는 레슬링 도장을 만들었다.

아버지 고리 게레로의 영향으로 형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49], 헥터 게레로, 만도 게레로 또한 레슬링 업계로 진출했다. 그중 헥터 게레로는 TNA의 스페인어 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WWE에서는 Gobbledy Gooker로 유명하다(...)

삼촌인 엔리크 레인즈와 그의 아들인 헤비어 레인즈도 멕시코에서 프로레슬러로 활동한다.

아내였던 비키 게레로와는 1990년 결혼해 장녀인 샤울 게레로와 차녀인 셰레린 게레로를 낳았으나, 에디의 약물과 음주문제 때문에 잠시 이혼했었다. 이혼 당시에도 비키는 에디를 챙겼으며, 셋째 딸 케이린 게레로를 낳았다. 후에 에디가 사랑을 고백하며 재혼하였다.

에디 게레로 사후 3명의 딸을 먹여살려야 했던 비키 게레로는 WWE에 고용되어 스맥다운의 단장으로도 임명되었었고, RAW에서는 단장을 2번이나 했었다. 이후 스맥다운의 이미지 컨설턴트 및 돌프 지글러의 애인 기믹으로 놓여져 악역을 수행하다가 2014년 6월 WWE와 결별하고 제약 회사 직원으로 입사했다. 장녀 샤울 게레로 또한 한때 라켈 디아즈라는 링네임으로 WWE의 산하단체에서 활동하다 그만두고 수의학을 전공했다. 이후 보드빌런스 에이든 잉글리쉬가 샤울 게레로와 약혼을 발표했다.

조카인 차보 게레로는 에디의 사후, 잠시 선역으로 활동하였으며[50] 그 뒤에도 꾸준히 WWE에서 활동하다 2011년 스스로 방출을 요구해 WWE를 떠나 루차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한다.

6. 여담

  • 2002년 5월 27일, RAW에서 RVD와 IC 타이틀 래더 매치 경기 중, 에디가 사다리에 올라가자, 어떤 술 취한 관중[51]이 나타나 사다리를 밀어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에디를 방해하여, 심판 얼 헤브너가 관중에게 헤드락을 걸어 방어하는데다가 경비원이 나타나 관중을 태클을 거는데다가 에디는 관중에게 원 펀치에다가 발로 차 관중을 링 밖으로 보낸다.

  • 2004년 5월 20일에 열린 스맥다운에서 식스맨 태그 팀[52] 경기 도중 에디가 디본에게 쓰리 아미고스를 시전한 뒤, 자신의 마무리 필살기인 프로그 스플래쉬를 준비하려다 갑자기 의식을 잃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디본을 비롯하여 JBL 버버레이도 예기치 못 한 상황에 당황했고 심판마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고 그저 에디의 이름만 연거푸 부르며 상태를 살필 뿐이었다.

    그렇지만 실제 돌발상황이 터졌다는 걸 파악한 JBL이 디본과 태그한 뒤, 에디를 재빠르게 핀폴하여 심판에게 소리를 지르고 자기가 심판 팔 붙잡고 핀까지 할 기세로 경기를 끝냈다. 이후 에디는 급히 출동한 의료진에 의해 들것에 실려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그가 쓰러졌던 이유는 전날 저지먼트 데이 PPV에서의 블레이드 잡 실수로 발생한 과다출혈 후유증으로 인한 빈혈이라고 한다. **

    영상을 보면 JBL은 놀랐다는 게 표정에서부터 역력히 드러나고 버버레이는 물론 당장 에디와 싸우는 중이던 디본도 원래의 악역 캐릭터대로라면 쓰러진 에디를 공격해야하는데 그러기는 커녕 놀라서 어쩔 줄 모르고 서성거리기만 하고 있다. JBL이 일단 경기부터 끝내려고 디본의 등을 쳐서 태그를 하자 디본이 태그할 타이밍이 아닌데 태그를 해서 그런지 잠깐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심판이 JBL와 더들리 보이즈의 승리를 선언하는 와중에도 JBL이 승리의 세레모니를 하는 게 아니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에디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부터 7일 후인 5월 27일에 열린 스맥다운에서 악역 태그팀이었던 '바샴 브라더스'와 경기를 치르고자 에디가 입장할 때, 기분 좋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려다 당시 경기장 구석에 미리 배치된 안전요원들과 들것을 본 에디가 정색을 하며 안전요원들을 밀치고 들것을 냅다 뒤집어 버리며 안전요원들에게 필요 없다, 꺼지라며 격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마도 최대한 7일 전의 실신이 돌발상황이 아니라 다 예정되어 있었던 각본상 실신이었고 에디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WWE의 연출인 것으로 추측된다.[53] 그리고 그 여파가 WWE에 계속 지속되었는데, 블레이드 잡이 해당 사건 이후로 축소되기 시작하더니[54], 심의를 낮추려는 전략과 더불어 블레이드 잡 자체가 벌어지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머리에 출혈이 나는 상황은 일어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블레이드 잡이 아닌 사고로 일어난 경우라는 것.
  • 위의 일화에 이어서 말하자면, 에디의 WWE 챔피언 자리를 이어받은 뒤 캐릭터 상으로는 라티노를 멸시하며 끝없이 에디와 대립했던 JBL이지만 실생활에서는 에디와 매우 친한 사이였다. JBL은 에디의 추모 스맥다운 당시 에디가 자신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서 준 것이 인생 최대의 영광이었다며 에디를 그리워했다.
  • 크리스 제리코의 두 번째 자서전 'Undisputed'에는 에디와 관련된 일화 하나가 소개된다. 어느 날 에디와 제리코가 함께 식사를 했는데, 제리코가 10%의 팁을 남기자 에디가 "적어도 20%는 줘야지. 너야 2달러나 4달러나 큰 차이는 없지만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겐 그 돈이 한 달치 전기세를 낼 수 있느냐 마느냐의 차이라고"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제리코도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 뒤로는 항상 팁을 최소 20%를 낸다고. 레슬러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의 배려를 볼 수 있는 일화다.
  • 생전에 씀씀이가 컸다고 한다. 그래선지 에디 사후에 유족들이 한동안 빚을 갚느라 힘들었다고 하는데 레슬러들중 특히 WWE를 거쳐간 선수들중엔 WWE에서 나간뒤에도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파산하거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례들이 많다.
  • 절친한 동료였던 하드코어 할리, 크리스 벤와,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만큼은 아니지만 에디도 레슬러로서 보면 상당히 옛날식 마인드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특히 벤와와 함께 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프로레슬링의 고질병인 똥군기를 배워온 탓에(...) WWE 시절 커트 앵글에게 기무라를 걸면서 시멘트를 건 다니엘 퓨더에게 본보기를 보여줄 목적으로 실제 경기를 할 때 할리, 벤와와 셋이서 경기를 가장한 집단 구타를 하기도 했다.[55] 하지만 그래도 동료들 사이에선 배려심이 좋았던 선수로 기억되고 있으며 무하마드 핫산 커트 앵글에게 속아서[56] 에디에게 카멜 클러치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했을때도 핫산에게 화내지 않았고 이후에도 핫산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핫산이 에디에게 무례하게 굴었단 이상한 소문이 퍼져서 핫산은 이후로 백스테이지 생활이 매우 고달퍼졌다. 어쨌든 구시대 마인드를 가졌으나 JBL이나 벤와처럼 후배를 심하게 갈궈대는 타입까지는 아니었다.
  • 에디 게레로 본인도 한 성깔하고 싸움을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레전드 태그팀 로드 워리어즈의 '호크'와 시비가 붙어 싸웠다가 체격도 싸움 실력도 성깔도 엄청났던 호크에게 마구 두들겨맞고 도로가 중앙에 집어던져지는 굴욕을 당했다(...) 더군다나 이때는 호크가 지병으로 사망하기 겨우 4~5일 전이었다고.(...) 물론 호크는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스캇 스타이너 급의 상또라이로 유명하기도 했지만[57] 그걸 감안해도 에디가 너무 변명의 여지 없이 털렸다는게 중론인데 이 사건에 대한 내막은 에디 게레로의 자서전에 실려있다. 자서전에 따르면 에디 게레로는 원래 집안 사람들 전통으로 주사가 심하기로 악명이 높았는데 이날 술집에서 다른 레슬러들과 함께 술을 마시다 너무 취한 나머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사를 부렸는데 그 꼴을 보다못한 로드 워리어즈의 호크가 "내 앞에서 X지랄 그만 떨어라! 안그러면 일 나는수가 있어!" 하고 강력히 경고했는데 그 즉시 에디가 호크를 밀치고 선빵을 갈겼다고.(...) 일단 에디가 WWE내 싸움꾼들이자 실세들이었던 하드코어 할리, 크리스 제리코, 크리스 벤와와 베프이고 자기도 나름 어디가서 실전 싸움으로는 한가닥 한다고 생각한데다가 회사에서의 위상도 높아져 있어서 그런걸 믿고 들이댄 감이 있었으나 그 즉시 호크가 무자비한 강펀치 10연타로 실신 KO시키고 도로가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러나 둘다 술깨고 난뒤에 쿨하게 화해했다는 이야기. 어쨌든 자기 자서전에 자기가 현피에서 깨끗하게 발렸다고 솔직히 쓴걸 보면 에디도 꽤나 정직한 상남자라 할 수 있다.
  • 이외에도 한번은 술김에 커트 앵글한테 덤볐다가 단번에 제압된 일도 있었는데, 주변에서 왜 하필 커트 앵글한테 덤볐냐고하자 자기가 멍청해서 그랬다고 한다. 아무리 술김이었다지만 업계내 실전 최강자로 꼽히는 커트 앵글한테도 덤빈걸보면 거친게 맞고, 호크한테도 주사부린게 이해가 될 정도.
  • 위에서도 여러 차례 나와있지만 데이브 바티스타와도 친분이 있었다. 에디와는 바티스타가 OVW에 있던 시절에 만난 적이 있는데 이것저것 친절하게 조언해주었다고 하며, RAW에서도 만나게 된다. 하루는 바티스타의 고등학생 딸이 아이를 낳았는데 딸과 손주 모두 위험하다는 연락을 받고 어쩔 줄 몰라 락커룸에서 울고만 있을 때 에디가 자초지종을 듣고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 진심어린 조언을 해줬고, 바티스타는 딸에게 달려갔다고 한다.
    스맥다운에서 만났을 때 바티스타는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는데, 에디는 자신보다 레슬링 경력이 한참이나 차이 나는 바티스타를 챔피언으로서 대우해주었다고 한다. 후에 바티스타가 부상으로 타이틀을 내줘야 했을 때 WWE에서는 랜디 오턴을 차기 챔피언으로 내정했었다. 하지만 바티스타는 에디가 차기 챔피언이 되길 바라서 에디에게 "당신이 챔피언이 되어야 한다고 윗선에 말하겠다."고 했는데 후에 에디에게 부재 중 메세지가 왔다고 한다. 내용은 이렇다. "네 말은 고맙지만 챔피언은 랜디가 되어야 한다. 빈스의 결정은 틀린 적이 없다."[58]
  • WWE 관련 게임에서의 능력치나 위상은 뛰어나지 못한 편이었으나[59][60], 노 웨이 아웃 이후로 최상위권 능력치가 되었었다.[61]

7. 사건 사고

2005년 12월 10일, CZW의 "Cage Of Death 7"라는 PPV가 있었다. 경기 전 모든 선수들과 팬들은 3주 전 사망한 에디 게레로를 추모하기 위해 종을 10번 치는 동안 침묵하기로 했는데, 4번째 종이 울리는 와중에 어떤 관중이 욕설을 퍼부었다. 당연히 팬과 레슬러 모두 크게 분노했고, 결국 추모가 끝난뒤 쫓겨났다.

관중이 CZW에서 추방당하는 장면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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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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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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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AAA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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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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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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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로스 그링고스 로코스 vs AAA
(1994)
에디 게레로 vs 딘 말렌코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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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GEMATCH 이어 앤드 어워드 선정 올해의 WWE 레슬러
창설 에디 게레로
(2003)
크리스 벤와
(2004)
크리스 벤와
(2004)
에디 게레로
(2005)
에지
(2006)
CAGEMATCH 선정 올해의 WWE 스맥다운 TOP 10
브록 레스너
(2003)
에디 게레로
(2004)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2005)


[1] 텍사스 클로버리프 [2] 상대와 심판의 일타쌍피를 날린 다음, 상대와 심판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에 의자를 준비해서, 바닥을 내려치고 심판이 일어나면 심판이 보기 전에 의자를 상대에게 떠넘기고 쓰러지는 척 하는 사기 체어샷으로 유명했다. 생전 마지막 승리도 이런 식. [3] 수플렉스 3연타. 주로 프로그 스플래시를 위한 셋업 무브로 자주 쓰였다. [4] 2000년 4월, 차이나와 첫 만남 이후 그녀에게 "마마시타"라고 불렀다. [5] 이 테마곡은 WWE가 공개하지 않아 에디 사후에도 한참동안 풀버전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WWE Uncaged III 앨범에서 경기장에서 사용하지 않은 버젼인 Crackin'이 공개되었었고, 무려 14년 만에 Uncaged 14에서 풀버전이 공개됐다. [6] 차보 게레로와 함께한 태그팀 로스 게레로스 때는 주어가 We였고, 개인 테마곡으로 쓸 땐 I였다. [7] 에디의 세 형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1949~2017), 만도 게레로(1950~), 헥터 게레로(1954~)는 평범한 형제뻘 나이차이지만, 에디는 유독 늦둥이여서 맏형의 아들인 3살 어린 조카 차보 게레로와 형제처럼 지냈다. [8] 아트 바에게 프로그 스플래시를 전수한 건 에디 게레로였고, 이후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피니쉬 무브로 사용했다. [9] 스페인어로는 "Mamacita(Sexy Mexican Girl(섹시한 멕시코인 여성))"라는 멕시코식 스페인어 뜻이다. [10] 링에서 에디 표정을 보면 엄청난 당황하는 표정을 드러냈다가, 백스테이지에서 차이나와 오해가 생겨, 용서해달라고 안아주는 상황에 썩소를 보여준다. [11] 10월 9일 RAW에서 차이나는 오후마다 에디를 찾기 위해 개고생을 했는데, 에디가 락카룸에 들어와 다투기 시작한다. 에디와 차이나는 'Right to Censor' 맴버인 갓파더 발 비너스 상대로 태그팀 매치 진행 중, 타이트론에서 GTV라는 영상이 뜨자, 에디가 빅토리아와 맨디가 같이 샤워하는 장면으로 에디가 바람을 피는데다가 차이나의 만남 약속 늦은 이유를 목격해, 차이나가 충격을 먹어 경기하다 말고 계단에 앉게 되어 엄청난 상처를 받고 실망과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12] 스맥다운에서 Right to Censor가 나타나 차이나의 친구 빌리 건을 제압하는 중, 부상을 당해 목발로 짚는 에디가 쓰러진 차이나의 목에다가 목발로 눌러 괴롭히는데다가, 노 머시에서 빌리건과 차이나 vs Right to Censor( 스티비 리차드 발 비너스) 매치 중, 심판의 시야가 빌리건이 스티비 리처드를 때리는 현장을 보는 상황에, 차이나가 발 비너스에게 페디그리 피니쉬를 끝내려다가, 갑툭튀 나타난 에디가 차이나의 등짝에다가 꽃다발 샷을 날려 경기 방해하고, RAW에서 차이나와 상대로 인터컨티넨탈 타이틀 매치에서 " 차이닛(Chynette)"이라는 차이나와 똑같이 생기는 여성 레슬러를 고용해 차이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13] 거기다가 크리스 벤와의 크로스 페이스를 당하는 차이나와 말렌코의 헤드락을 당하는 빌리 건에게 조롱을 하는 에디. 거기다가 차이나의 이마에다가 키스를 날려 퇴장. [14] 이 이적은 당시 스맥다운 각본진 수장을 맡기도 한 폴 헤이먼이 적극적으로 그 두 사람을 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WWE의 메인 쇼였던 RAW의 시청률 하락이 계속 되자 스맥다운의 여러 선수들이 RAW로 이적했고, 탑스타 롤로 스맥다운에 배치되었던 트리플 H 크리스 제리코마저 이적하면서 로스터 풀이 얇아지게 되자 폴 헤이먼이 빈스 맥마흔에게 이를 건의했다. 당시 빈스 맥맨을 비롯한 수뇌부들은 그의 요구를 비웃었으나, 이를 시작으로 폴 헤이먼은 스맥다운의 경기력과 각본을 모두 수준급으로 만들었다. [15] 차보는 에디의 조카이지만 에디가 워낙 늦둥이이고 차보는 에디의 제일 맏형인 차보 게레로 시니어(에디와 무려 18살 차이다.)의 아들이다 보니 둘의 나이 차이는 겨우 3살 차이다. 이복형제이긴 해도 실제 친형제인 더스틴 로즈 코디 로즈는 무려 17살 차이라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때문인지 작은아버지 - 조카의 관계보다 또다른 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16] 대립 기간에 커트 앵글이 태그팀 파트너가 되기도 했다. [17] 당시 에디는 차보에게 기습당해 쓰러져 병원으로 향한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배틀 로얄에 참가했던 것. [18] 차보 게레로도 이날 레이 미스테리오를 꺾고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을 따내면서 한 PPV에서 삼촌과 조카가 동시에 챔피언이 되었다. [19] 로얄럼블 2004에서의 앙금이 남아있던 빌 골드버그가 난입해 브록 레스너에게 스피어를 날린 것도 한몫했다. [20] F5 시전 시 심판 기절, 골드버그의 난입 등 에디에게 결정적으로 유리한 변수가 두번이나 작용하면서, 패배한 브록 레스너의 위상도 크게 깎이지 않았다. [21] 커트 앵글과 대립할 당시 롤업으로 핀폴을 시도하는 척 바지를 벗기려고 해서 당황시키거나, WWE 레슬매니아 20에서 신발끈을 미리 풀어놓고 그 발로 앵클 락을 당할 때 신발이 벗겨진 틈을 타 롤업을 해서 타이틀을 사수하는 등. [22] 챔피언십 타이틀 여정까지가 이런 각본이었어서, 유쾌하고 익살스런 에디의 이미지가 순식간에 진지충이 되어서 갭을 체험하는 팬들이 많았다. 특히 에디의 캐릭터인 속이고, 훔치고, 뺏는다!가 아닌 마약중독, 교통사고, 진통제, 부상 등을 극복하고 이 자리에 두려움이 없이 나왔다라며 절규하는 마이크웤을 보고 당시 해외나 국내방영시절의 팬들도, 저런 과거사를 굳이 왜 말하는거지? 라고 느낄정도로 프로모나 마이크웤등 캐릭터 자체가 180도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록 레스너와 대립하던 당시 세그먼트는 탄탄대로를 걷던 엘리트 중의 엘리트 브록 레스너와 대조되는, 갖은 역경을 버텨내며 나아간 언더독의 처절함을 너무나도 잘 드러낸, 역사에 남을 명프로모로 평가받는다. ## 단지 챔피언 획득 이후에도, 브록 레스너보다 위상이 덜한 상대와 대립할 때에도 이어진 캐릭터가 문제였을 뿐... [23] 경기에 참가하는 두 선수의 팔을 로프로 연결해 놓은 상태에서 일정 시간 내에 4개의 턴버클을 먼저 터치하는[63] 사람이 승자가 되는 룰. [24] 관중들이 점점 폭발적으로 환호하여, 스맥다운 최고의 명장면으로 남게 된다. [25] WWE 아마겟돈(2004) 백 스태이지에서 태그팀 파트너 겸 친구인 에디 게레로와 함께 JBL을 쓰러트리자고 얘기를 했으나, 갑자기 에디가 언더테이커가 큰 장애물이라고 부커가 직접 언더테이커를 쓰러트릴테니 우리랑 힘을 합치자고 얘자고 했는데, 뒤에 지나가던 언더테이커가 둘이 얘기를 다 들어 들통나서 조용해지고 언더테이커는 조용히 앞으로 지나간다. 결국은 둘 다 말다툼을 하고 만다... # [26] 1997년 10월 26일 WCW 할로윈 해벅(1997)에서 타이틀 VS 마스크로 가진 레이 미스테리오와의 WCW 크루저웨이트 챔피언십 경기는 레슬링 옵저버 뉴스레터에서 선정된 1997년 올해의 경기 4위에 이름을 올렸다. [27] 이 경기의 승리로 JBL은 2005년 저지먼트 데이에서 존 시나의 WWE 챔피언십에 도전했다. [28] 6월 9일, 스맥다운으로 돌아 온 크리스 벤와와 오랜만에 만나게 되었지만, 벤와가 에디에게 "너가 계속 친구를 괴롭히는 자가 친구냐? 거기다가 레이 미스테리오한테 못 이긴 주제에, 일요일에 보자, 아미고!"라고 말해 퇴장한다. 몇 분 뒤, 크루저웨이트 챔피언 폴 런던 아키오과 논 타이틀 매치가 있었는데, 에디가 갑툭튀 나와 경기 중에 "내가 솔직히 털어 놓어야 할 거 같다."라고 마이크 웍을 하게 된다. 거기다가 아키오를 링 밖으로 내보내는데다가 폴 런던을 3번이나 링 밖으로 내보낸다. 에디는 계속 "모든 사람들이 날 존중하지 않아! 난 이 링이 존중하지 않고, 난 레슬러들에게 존중하지 않고, 난 여기 계신 여러분들에게 존중하지 않아! 왜? 모든 사람들이 내가 레이 미스테리오를 못 이길 거 알고 있고, 내 약속을 절대로 어기질 않은 거다."라고 프로모를 하고 끝내 퇴장한다. [29] 벤와가 에디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뒤에서 뭐라는지 알아? 네 아내가 여기 와놓고 바로 쫓겨났다고 소문 났었다"라고 말했다. [30] 미스 크랩트리가 레이에게 "도미닉을 에디에게 넘겨줘라!"라고 지시하자, 레이는 에디가 자신을 이긴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에디에게 또 다른 도전장을 낸다. 그와 레이는 말다툼을 벌어지다가, 보다 못한 미스 크랩트리가 둘의 싸움에 잘못 없는 도미닉이 제일 피해를 보고 있다며 두 사람이 해결할 때까지 자신이 도미닉을 가정위탁하겠다고 지시령이 내린다. [31] 사다리에 올라간 에디의 사다리를 밀어버리며 에디를 떨어뜨리고 레이가 사다리에 올라가면서 에디가 레이를 방해하려고 하자 오히려 에디를 붙잡아 에디의 방해를 말렸다. [32] 이 스토리는 WWE 사상 최악의 스토리 중 하나로 꼽히는데, 에디 게레로는 워낙 팬들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는 선수였기 때문에 레이 미스테리오를 공격하고 나서 성사되었던 WWE 저지먼트 데이(2005)까지만 해도 에디를 응원하는 팬들이 레이를 응원하는 팬들보다 많았다. 그래서 양육권 분쟁이라는 희대의 막장 각본을 투입하고나서야 에디 게레로를 응원하는 팬들이 좀 없어졌다. 섬머슬램에서의 래더매치도 당대 WWE 최고의 테크니션인 두 선수 답지않게 실수도 잦았다. [33] 아이러니하게도, 도미닉 본인이 슛으로(각본 외 실제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회고하기를, 당시 어느날 각본 진행 도중 (실제로는 싸우지 않고 백스테이지에서 아버지 레이와 수다를 떠는) 에디를 보고 '정말 에디 삼촌이 아버지인가?' 하고 착각할 뻔한 적이 있었다는 것. 문제는 정말 성장하면서 아버지쪽보다는 어머니쪽 유전자가 발현되면서 아버지와는 다르게 장신 빅맨이 되어 버려, 아버지 레이마저도 "레슬러로써 너는 에디 삼촌같이 해야 한다" 라고 가르칠 정도가 되었다고. 그래서 도미닉 본인은 "물론 아버지는 레이가 맞는데, 내게 스승은 에디 삼촌이다" 라고 하는편, 실제로 레이가 그렇게 가르친게 맞는 방향이긴 했는지 악역 전환 후 도미닉은 에디와 비슷하게 쓰리 아미고스와 프로그 스플래시를 시그니처, 피니셔로 쓰며, 에디 만큼이나 또 잘쓴다! 괜히 도미닉 게레로라 하는게 아니다. 또한 레이로부터 이 각본을 제안 받았을 때 처음에는 고민했으나, 돈을 많이 준다고 하자 두말않고 승낙했다고 한다.이때부터 싹수가 [34] 9월 16일, 스맥다운에서 시어도어 롱이 멕시칸의 영웅 레이 미스테리오를 도전자로 뽑히려고 하는 도중 어떤 백인 에이전트 파머 캐논(Palmer Cannon)이 에디 게레로를 외쳐 그는 바티스타의 상대로 되었다. [35] 바티스타의 자서전에 따르면 당시 빈스 맥맨은 랜디 오턴을 챔피언으로 만들려했으나, 바티스타는 과거 RAW에서 활동할 때 고등학생 딸의 출산 문제로 괴로워하던 중 격려를 해준 적 있는 에디 게레로에게 월드 헤비웨이트 타이틀을 넘기고 싶었다고 한다. 바티스타에게 이 말을 들은 에디 게레로는 빈스 맥맨의 판단은 옳다고 답했다고 한다. CM 펑크 : ??? [36] WWE 서바이버 시리즈(2005)에서 RAW와 스맥다운이 5대5 제거 매치로 격돌하게 되었을 때 스맥다운의 대표선수를 뽑는 경기 중 하나였다. [37] 스테파니는 에디를 아들 같은 남편이자 아버지 같은 친구라며 칭찬도 해줬다. 어릴적 소꿉친구이자 스맥다운에서 한솥밥 먹은 파트너가 하늘나라로 떠난게 마음이 아팠을 것이다. [38] 차보 게레로는 직전까지 수행하던 백인 인종주의자 기믹 커윈 화이트가 아닌 차보 게레로로 링에 올라 많은 환호를 받았다. 이 쇼 이후 커윈 화이트 기믹은 폐기되었고 차보는 선역으로 활동한다. [39] 에디와 벤와 모두의 절친한 친구였던 크리스 제리코는 자서전에서 벤와가 3개월 동안 에디를 시작으로 가까운 사람들을 연달아 잃으면서 사람이 변해버린것 같았단 언급을 남겼다. 제리코는 이 당시 WWE에서 잠시 나와 휴식기를 가지던 중이어서 추모쇼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40] 물론 레이의 맨얼굴은 WCW 시절에 이미 알려졌지만 WWE에서는 다시금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기믹이었고 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단 한 번도 가면을 벗지 않았다. [41] 에디와 벤와의 가장 친한 친구로 레슬매니아 XX 당시에도 에디와 벤와와 백스테이지에서 만나 눈물을 흘렸다. [42] 각본상으로도 엮이면서 급속도로 친해진 데다 후술할 기타 항목에도 나오지만 바티스타가 자신의 가족의 건강에 위험이 발생하는 일이 터졌을 때 곁에서 성경 구절까지 읊어주며 바티스타와 그의 가족들을 누구보다도 챙겨줬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기에 그만큼 슬픔이 더욱 컸을 것이다. [43] 2002년 부터 스맥다운에서 함께 한솥밥 먹을 정도로 굉장히 친한 사이다. [44] 대표적으로 존 시나, 레이 미스테리오가 팔뚝에 EG가 새겨진 밴드를 상당히 오랜 기간 차고 다녔다. 심지어 JBL 등의 선수들은 악역임에도 해당 밴드를 착용하고 링에 오르기도 했다. [45] 당장 '블랙 타이거'로 활동하며 주목을 받던 신일본 프로레슬링 시절 몸을 보면 탄탄하지만 날씬하고 마른 체형이었다. 즉, 원래는 체중 자체가 가벼운 선수였던 것이다. 그런데 WWE로 건너오고 사망 직전까지 모습을 보면 몸이 말도 안 되게 커진 걸 알 수 있다. [46] 이후 에디는 커트 앵글이 자신을 굼뜨게 만들었다고 두번이나 서로 티격태격 싸웠다고 한다. 앵글은 ‘이봐 에디, 미안해. 우리 여기서 이만 끝낼 수 없을까?라고 싸우고 싶지 않아도, 에디는 ‘난 아직 그럴 준비 안됐는데’라고 하면서 싸우려고 반응했다고 한다. 이후 빅 쇼가 두 번이나 싸움을 말렸다고 한다. [47] 앵글은 물론 동료들도 에디의 몸 상태가 엉망이라고 느낄 정도로 심각했지만, 에디가 경기장 앞에서만큼은 몸 상태가 심각했던 모습이 거의 안 보이면서 명경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앵글은 에디가 경기를 가질 때와 마찬가지로 밤낮없이 얼마나 계속해서 고통을 느끼고 있었는지 생각하면 에디의 죽음이 너무 슬프다고 말하였다. [48] 차보 게레로가 피니쉬로 사용했던 '페이스버스터 고리 밤'이나 카멜 클러치 같은 유명 기술의 창시자이다. [49] 차보 게레로의 아버지로 2004년에는 차보 클래식이란 이름으로 WWE에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50] 에디가 사망하기 전에는 "커윈 화이트"라는 백인우월주의 기믹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기믹이 영 반응이 좋지도 않은 상황에서 에디의 사망으로 차보에게 많은 동정이 오가 그가 악역으로 활동하는데 상당히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커윈 화이트 기믹을 버리고 다시 차보 게레로로 돌아왔다. [51] RVD 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52]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 & 더들리 보이즈 VS 에디 게레로 & 랍 밴 댐 & 레이 미스테리오. [53] 2010년대 이후라면 이런 상황이 생기면 WWE 측에서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사고 사실을 시인하겠지만, 당시만 해도 돌발상황 시 각본이 아니라는 것을 숨겨야 한다는 암묵의 룰이 있었다. 이게 깨진 사례는 오웬 하트 사망 짐 로스가 실제 상황이라고 실시간으로 말한 것. 다만 현장의 관중에겐 전달이 안되었다고 한다. [54] 그나마 이 때만큼 상당한 블레이드 잡이 나온 경기는 1년 뒤에 나온 2005년 저지먼트 데이의 메인이벤트인 존 시나와 존 브래드쇼 레이필드의 WWE 챔피언십 아이 큇 매치였다. 이 경기 역시 시나와 JBL 모두 상당히 많은 피를 흘렸는데 그나마 반칙패로 끝낸 에디와 JBL의 경기와 달리 아이 큇 매치는 반칙패가 없어서 JBL이 아이 큇을 외치기 전까지 아찔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었다. 그리고 이 경기에서도 JBL은 엄청나게 당했다 [55] 다만 이건 대니얼 퓨더가 수련생을 띄워주려고 초대한 커트 앵글에게 생방송 중 실제 기술을 거는 등 건방지게 행동했던 것이 컸다. 그런 행동들로 인해 터프 이너프 우승 이후 내외적으로 평이 좋지 않았고, 그를 계속 주시하던 벤와와 에디가 로얄럼블을 통해 일종의 참교육을 시전한 것(...). 그러나 똥군기가 작용한 것도 더러 있긴 했다. [56] 사실 속았다기보다는 커트 앵글은 이런 문제에 대해 잘 몰랐거나 무심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더 높다. 앵글은 원래 유명 아마추어 레슬러로 애틀란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뒤 2000년에 늦깍이로 프로레슬링에 데뷔한 선수라 당시에는 백스테이지 정서에 대해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앵글 자신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만큼 위상은 결코 낮지 않았을 테고 아마추어 레슬러인 만큼 기술에 대한 문제에도 잘 몰랐을 가능성도 높았다. [57] 다만 일진이나 양아치처럼 자기보다 약한 상대만 골라 괴롭힌 스캇 스타이너와 비교하기엔 호크에게 실례일 정도로 호크는 스캇처럼 약자만 골라 괴롭힌 찌질이는 절대 아니었다. 단지 상대가 자기 기준으로 맘에 안들면 그게 조폭이든 대기업 회장이든 가리지 않고 일단 달려들고 보는 리얼 미친개여서 그렇지... [58] 사실 랜디는 에볼루션 시절 바티스타보다도 더 기대주였고, 메인 타이틀까지 줬으나 너무 급한 푸쉬라는 역효과가 됐기에 스맥다운으로 건너가 언더테이커와 대립하면서 위상을 회복하는 한편 다시금 푸쉬를 받을 때가 올 필요는 있었다. [59] 예로 히어 컴스 더 페인에서는 오버올이 74인 중상위 능력치였지만 스맥다운 대 RAW에선 88로 껑충 뛰어올랐고 2007에 가면 90에 이르게 된다. [60] 특히 체급차가 존재해 체급간의 차이가 두 단계 이상이되면 들어올리는 류의 기술이 불가능했는데, 이전까지는 크루즈웨이트급으로 분류되어 슈퍼헤비급 선수들(언더테이커, 케빈 내쉬 등등)에거는 기술이 다수 봉인됐지만, 스맥다운 대 RAW에서 헤비급으로 상향되어서 당시 유일한 울트라 헤비급이던 앙드레 더 자이언트를 제외하고는 전부 모든 기술을 시전할수있게 됐다. [61] WWE 2K14에서는 생애 첫 WWE 챔피언을 브록 레스너에게 따낸 것을 반영해서 최고 난이도 노 웨이 아웃에서 브록을 상대로 승리해야 해금된다. 오버롤도 93으로 전체 선수중 헐크 호건 등을 포함하여 공동 2위. 최신작인 2k18에서는 골드로 쉽게 살수 있다. 똑같은 개발사에서 만든 WWE 슈퍼카드에서는 레전드 티어까지 존재하던 시절 숀 마이클스, 더 락과 함께 3대장이라 불리는 끝판카드였다. [★] 오른쪽이 도전자, 밑줄이 승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