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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드/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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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역사
3.1. 태동기(1980년대 후반)3.2. (1990~2000년대)3.3. (2010년 이후)
4. 비판
4.1. 양산형 발라드

1. 개요

한국에서의 발라드 장르에 대한 문서.

2. 특징

1980년대 후반 태동한 이후부터 한국 가요계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장르로서 2000년대까지 최절정기를 달렸고, 오늘날에도 아이돌 댄스 음악과 더불어 여전히 주류 대중음악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발라드'라는 용어가 오래 애용되는건 여러 장르와 결합되기 쉬운 용이성 덕분도 있어보이는데, 예를 들어 ' 가요 발라드'(이른바 팝발라드, 가요가 영어론 k-pop이기 때문에 팝발라드를 번역하면 가요 발라드가 적절하다. K발라드.), '발라드', ' 재즈발라드', ' R&B발라드', ' 컨트리발라드', ' 댄스발라드' 등이 있다.

한국에서 '발라드'라는 장르는 '가요 발라드(팝발라드, k-pop ballad)'를 줄여 '발라드'라 칭하는 준말로 봐도 무리가 없다. (물론 부활, 김경호, 박완규, M.C The Max와 같은 록가수나 그룹들의 ' 록발라드'도 발라드라 하고 있으나, 다수는 '팝발라드(가요 발라드)'이며, 팝은 대중음악 전체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에 '팝발라드'의 준말로 보면 무리가 없다. 센티멘틀 발라드의 준말로 보아도 됨.)

3. 역사

3.1. 태동기(1980년대 후반)

유재하
' 사랑하기 때문에' (1987)
이문세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1988)
변진섭
'너에게로 또 다시' (1989)
신승훈
' 미소 속에 비친 그대' (1990)

198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대중음악계는 발라드가 장르처럼 자리잡기보다는 대개 포크, 트로트, 신중현 사단의 록 사운드가 가요계의 대세였고, 그중에서 그나마 발라드와 접점을 찾자면 포크풍[1], 트로트풍[2], 록풍을[3] 차용한 서정적이고 애절한 분위기를 부르는 형식이 일종의 발라드 프로토타입 역할을 대신해오곤 했다. 그러나 이들은 보다 기타[4] 신디사이저 음향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고[5], 멜로디 구성에서도 뽕짝의 느낌이 적잖이 들어 현대적인 발라드와는 형식상 거리가 있었다.

한국에서 정석적인 '발라드'라는 장르는 대개 유재하로 하여금 시작되었다는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전에도 조용필 김현식 등이 포크송 R&B 형식으로 서정적인 노래를 발표해왔지만[6], 트로트 형식의 뽕끼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했던 한계가 있었던 반면, 유재하가 1987년 발표한 앨범 사랑하기 때문에는 클래식과 오케스트라 선율, 단조 대신 장조 코드 선호, 브릿지라는 곡 형식을 도입하며 한국의 현대식 발라드를 처음 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해당 앨범은 신드롬급 판매고를 올리진 않았지만 충분히 대중적 인기를 누렸고, 뭣보다 그에 영향을 받은 많은 가수들이 이후 한국 대중음악 주류 장르 자체를 바꿔놓게 된다.

또 다른 발라드의 대부라면 이문세 & 이영훈 듀오를 꼽을 수 있다.[7] 이들은 포크송 블루스[8]의 영향을 받은 서정적인 음악을 구사했는데, 단적으로 이문세 3집 이문세 4집을 교차해서 듣자면 한국 발라드의 태동 과정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같은 이문세, 이영훈 콤비가 제작한 앨범임에도 1년을 주기로 3집에 만연하던 뽕끼가 4집에 들어 클래식 작법이 가미되어 세련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앨범 단위로 세련된 작법을 알뜰하게 채워 넣어 팝송 부럽지 않은 콤팩트한 트랙 행렬을 보여준 이런 구성은 한국 발라드의 상업적 가능성을 최초로 증명해 내었다.

이후 1980년대 후반, 가수 변진섭이 '발라드 왕자'라는 애칭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면서 '발라드'라는 명칭이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고 대중화되는데[9] 공을 세웠고, 그 이후 발라드라는 장르는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 그리고 이승철[10], 이승환[11], 조정현 등의 인기를 끄는 발라더들이 점점 나오는 와중 90년 데뷔한 신승훈은 국민가수급 신드롬으로 그것도 장기간 군림하며 발라드의 황제라는 애칭을 얻게 된다. 정권교체 신승훈은 적인 발라드로 시작했다가 후에 재즈 맘보 등의 라틴 리듬을 발라드에 접목하기도 하는 등 그 스펙트럼을 넓혀 싱어송라이터의 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이 올린 판매량은 거의 수백만 장 단위였는데, 이는 종전 잘해야 수십만 장을 호가하던 판매고에서[12] 큰 발전을 이뤄낸 거라 가히 비약이라 할 수 있었다. 수백만 장의 판매고는 당대 해외 팝송의 한국 내 판매량과 견줄 만한 수치인데, 이를 토대로 한국 가요의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아 한국 가요사 전체를 통틀어도 중요한 분기점이 되어주었다.

3.2. (1990~2000년대)

015B
' 아주 오래된 연인들' (1992)
전람회
' 기억의 습작' (1994)
더 클래식
' 마법의 성' (1994)
이승환
' 천일동안' (1995)
임창정
' 그때 또 다시' (1997)
토이
' 여전히 아름다운지' (1999)
조성모
' 아시나요' (2000)
이소라
' 제발' (2000)
브라운 아이즈
' 벌써 일년' (2001)
박정현
' 꿈에' (2002)
이수영
'덩그러니' (2003)
성시경
' 거리에서' (2006)

1990년대 들어 가요 발라드는 가요계에 완전한 대세로 자리 잡게 되어 수많은 뮤지션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신승훈, 이승철, 이승환, 김민우, 전람회 김동률, 더 클래식 김광진, 토이 015B 사단[13], 임창정, 조성모, 김범수 등의 가수들이 활약하며 발라드는 하나의 메인스트림으로 우뚝 서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록발라드라는 장르도 하나의 트렌드로 형성되는데, 기존의 부활, 시나위 등으로 다져진 메탈 저변에 당시 매니아층에서 인기를 끌던 옆 동네 엑스 재팬도 이런 현상에 영향을 줬다. 발라드와 락을 같이 하던 이승환 등에 의해 다채로운 록 음악적 요소가 가미되었고, 이후 김경호, 김종서, K2, 김민종, 김정민, 플라워, , 야다, 엠씨더맥스[14], 더 크로스, 버즈 등으로 대표되는 전성기를 누렸다.

한편, 동아기획은 90년대까지 활약을 이어나가며 김현철, 빛과 소금 등은 재즈적 감성을 더했고 한국 특유의 K- 시티 팝 감성을 선보여내기도 했다. 사족으로 시티 팝 항목에도 있지만, 본산지였던 일본의 영향보단, 김현철 본인이 (일본문화 수입금지라는 당대 정책상) 시티 팝이란 트렌드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언급도 한 점을 봐서는 한국만의 독자적인 흐름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오늘날 와서 아귀가 비슷한 시티 팝으로 편의상 분류되는 현상에 가까울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턴 여성 발라드 시장도 생겼는데, 이소라, 양파, 박정현부터 시작해서 왁스, 이수영이 대표적이었고, 이후 거미, 백지영 등으로 연결되었다. 또 오리엔탈 발라드는 이수영이 유행시킨 장르였다. 피리, 해금 등 동양풍 악기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등장하는게 특징 중 하나. 1999년 이승환의 ' 당부'를 시초로, 2000년대 이수영의 곡들이나 이선희의 곡 ' 인연' 등이 대표적이다. 그 특성상 사극 OST 등에도 꽤 활용된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록발라드 천하에서 벗어나 R&B 형식이 보다 진하게 가미된 이른바 R&B발라드 형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를 사실상 처음 유행시킨[15] 주인공은 윤건, 나얼이 소속되어있던 브라운 아이즈라는 듀오 팀으로 당시 Brown Eyes 앨범은 방송 활동 같은 대외 활동도 거의 없이 입소문으로만 수십만 장의 판매고를 달성하며[16] 당대 발라드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점차 강하게 발전하여 기교와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적 요소를 진하게 넣은 바이브, 박효신, 더 원, 먼데이키즈, SG워너비, 씨야, 포맨 등의 이른바 미디엄 템포 발라드가 2000년대 유행으로 찾아왔고, 이는 대중들에게 소몰이창법이란 이름으로 명명되기도 했다.[17] 물론 항목에도 있듯 오늘날 와선 비판도 받는 창법이나, 하여튼 이때 인기는 당대 또다른 주류였던 아이돌 시장의 밥그릇도 상당 부분 강탈해갈 정도로 시대를 풍미하던 트렌드로 자리잡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자극적인 장르 혼합 발라드에 지쳐 성시경, 김동률, 이기찬 등 정통파 발라더들이 선호되면서[18] 2000년대 명맥을 지켜내기도 했다. 그리고 아래 비판처럼 신파, 자극적인 요소만 강조하던 양산형 발라드는 대중들의 호응을 장기간 이끌어내진 못했고, 결국 이러한 반동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2000년대 후반 이후 대중가요계의 중심은 후크송으로 대표되는 댄스 아이돌 그룹들이 차지하게 된다.

3.3. (2010년 이후)

디셈버
' 별이 될께' (2010)

' 시간을 거슬러' (2012)
한동근
'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2014)
M.C The Max
' 어디에도' (2016)
윤종신
' 좋니' (2017)
아이유
' 밤편지' (2017)
폴킴
'너를 만나' (2018)
마크툽
' 찰나가 영원이 될 때 (The Eternal Moment)' (2021)
박재정
'헤어지자 말해요' (2023)

상술한 후크송을 위시한 아이돌이 가요계를 탈환하자 발라드 시장은 전성기 시절 독보적인 위세에선 내려왔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가듯 차트 상위권에선 여전히 발라드가 건재한 존재감을 보였다. 기존 세대들의 활약은 물론 아이유, 디셈버, 베베미뇽, 허각, 에일리, 한동근, 정승환, 폴킴, 버나드박 등의 신예들 또한 2010년대를 풍기했다. 아이돌의 경우도 발라드에 발을 걸치는 경우가 많아 소녀시대 태연 등 발라드 활동을 겸하며 차트를 호령한 경우도 상당수 있었고, 다비치, 2AM, 비투비[19] 등 아예 발라드를 주력으로 내세우는 아이돌 그룹도 등장했을 정도였다. 보아 Only One처럼 댄스발라드 형식의 곡도 있었다.

하지만 전성기 때처럼 발라드 형식상의 큰 변혁은 찾기 어려워졌고[20] 기존 닦아놓은 터를 답습하는데 그치고 있는 생태계로 돌입한 시기이기도 하다. 더 이상 쥐어짤 것이 없는 발라드는 2010년대 이후론 스펙트럼을 넓히기엔 한계를 맞이했고 아래 비판처럼 사랑타령, 이별을 울부짖는 등 진부한 그림만 그리고 있는 형국이며 이는 대중의 귀를 질리게 만들고 있단 비판도 나온다.

90~2000년대 데뷔한 임창정, 나얼, 박효신, 이수 등의 가수들이 2010년대 차트를 여전히 점령하는 모습 또한 보였는데, 이들의 뛰어난 역량도 크지만 달리 말하자면 세대교체가 지지부진할 정도로 좋은 신예가 좀처럼 등장하지 못한다는 의미도 된다. 2020년대 들어선 이들도 예전만큼 히트하진 못하고 있고... 그래도 정통 발라드의 계보는 폴킴, 규현, 정승환, 버나드박, 박재정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2017년 윤종신 좋니처럼 방송 홍보를 통한 역주행송이 그해 최고 유행곡 중 하나가 될만큼 대박을 치기도 했다.

한편, 활로 개척을 모색하는 관계자들은 발라드 특성상 사랑 얘기가 많은 드라마 OST와 궁합이 잘 맞는다는 점을 이용해[21] 이쪽으로 영향력을 넓혀나가기 시작해서, 드라마 OST를 통해 발라드 가수들의 음원 시장에서의 선전이 이어지기도 하였다. 백지영 등이 이 분야의 대가로 활약했다.

발라드와는 별개로 사이드에 가까운 흐름이지만, 90년대 중후반 홍대 인디 음악씬에서 시작된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 모던 록 조류는 꾸준히 인디 음악 신의 대들보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다 2010년대 중후반 들어 발라드의 어법을 접목시킨 모던 록풍 장르가 언더그라운드 인디의 대세를 넘어 오버그라운드 차트까지 입성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는데 혁오, 멜로망스, 장덕철, 닐로, 잔나비 등이 이런 흐름의 주인공으로 볼 수 있었다.

하나 순풍도 잠시, 2018~2019년 음원 사재기 파동에서 이런 류 가수들 상당수가 의심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당시 가요계에 큰 후폭풍을 불러왔으며 이 때문에 발라드는 한동안 침체기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이 알고싶다(#1197)에 제보된 바로는 음원조작꾼들이 노리기 쉬운 타깃이어서 더 그렇게 되었다고... 물론 이에 대해 소속사 측은 아이돌 팬덤 시대에 비아이돌계 가수가 살아남기 위한 홍보의 일환으로 이런저런 곳에 SNS 홍보 의뢰를 맡겼을 뿐 사재기는 의뢰한 적도 인지한 적도 없다는 입장이 많았으니 참고하자.[22] 그래도 하이브리드형 모던 록풍이 아예 죽진 않았는지, 2022년에도 윤하 사건의 지평선이 음원차트 1위를 찍는 등 명맥은 유지하고 있다.

2020년대 들어 발라드가 예전 최전성기만큼 강세를 보이는 건 아니지만, 흔히들 착각하는 게 다른 장르 가수가 발라드 부르면 마치 발라드 가수가 아닌 양 취급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이돌이나 팝 음악이 아닌 딴에야 2020년대에도 한국 음원 시장의 주류 장르 중 하나가 발라드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발라드가 예전만큼의 인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건 사실이다. 매번 똑같고 평면적인 레퍼토리(사랑, 이별, 술)만 반복하는 발라드의 특성 탓에 점차 식상함을 느껴 발라드 노래 자체를 안 듣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일각에선, 사랑 타령만 하는 발라드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고[23] 2010년대 들어 상술한 것처럼 음원 조작꾼들의 주된 희생양이 되고 있는데도 한국 가요계에서 발라드의 수요가 꾸준히 있는 이유는, TV 연속극이나 일부 영화 등에서 계속 남아있는 신파극의 잔향과 더불어 한국인 특유 의 정서 때문 아니냐는 이야기가 반 농담으로 돌아다니기도 한다.[24]

한편 이별을 키워드로 한 발라드의 경우 ''에 관한 내용이 들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덕분에 술을 소재로 한 이별 발라드 곡들을 아예 과 발라드를 합친 '술라드'라는 장르로 부르기도 한다. 2019년 이후로 나온 신생 키워드로서 실제로 가수가 이를 장르명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25] 해당 장르는 대체적으로 클라이맥스에 고음을 내지르기 위한 편곡이 들어간다는 공통점도 있다. 물론 이런 과도한 이별 노래와는 대치되게 마크툽 고백하는 발라드를 만드는 가수들도 많다. 예쁜 가사와 그렇지 못한 음역대

4. 비판

4.1. 양산형 발라드

가요가 근 10년 동안 계속 징징대며 울고만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대단한 대중적인 마취 작용이다. 감히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저 대단한 용기. 사람들에게 거의 아무 생각 없이 10년 동안 우는 소리를 노래라 우겨 듣게 만드는 기술이야말로 대단한 기술이다. 대체 어떻게 하길래 그게 가능한 건지 불가사의하다. 난 그게 정말 궁금하다.
김창완[26]
음원 사재기 논란으로 만들어진 양산형 발라드, 과거 감정 과잉으로 지적받은 소몰이창법과 비판의 궤를 같이 한다.

발라드는 이별, 슬픔과 같은 매번 형식적인 소재만을 사용해 공장마냥 쏟아져 나오는 발라드들이 한국 대중가요의 질적 후퇴를 가져왔다고 평론가들은 말한다. 브런치.

실제로 2010년대 후반부터 음원 사이트를 점령한 대다수의 발라드는 죄다 애도와 슬픔으로 점철된 그저 절규에 가까운 노래다. 노래의 주제나 창법뿐만 아니라, 코드 진행이나 악기 구성, 곡의 전개적인 구조 등에 있어서도 2000년대 초반에서 중반까지 유행했던 양산형 발라드 노래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는 곡들이 많다. 세월이 지남에 따른 음향적인 부분의 발전 외에 10~15년 전에 유행했던 구식 발라드를 그대로 가져온 거나 다름없기에 듣는 이에 따라 촌스럽고 오글거리기만 한 노래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다.

그에 더해 해당 노래들은 대다수가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고 있어서 한국 음악씬의 질적 후퇴를 해당 아티스트들 스스로 가져온 것이라 많은 리스너들에게 더욱 큰 반발을 사고 있다. 이런 반발은 2023년 현재까지도 음원 차트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사재기 의혹 음원들의 부정적인 댓글의 의견에서 여실히 실감할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질질 짜고 흐느끼며 슬픔 감정을 대중에게 억지로 강요하는 현재의 발라드 세태 때문에 부르는 가수가 혹시 짝사랑에 미친 우울증 환자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며, 듣는 사람들도 아예 우울증에 걸릴 지경.

길거리의 가게들뿐만 아니라 밝고 신나는 분위기가 필수인 놀이공원 등 여행지, 심지어 술집에서도 양산형 발라드만 주야장천 틀어서 분위기가 가라앉기도 한다.

힙스터 갤러리로 유명한 포스트락 갤러리에서 싫어하는 장르이다. 일명 김발(김치 발라드)이라고 부르며 심심하면 까인다.[27]

이런 노래들이 넘쳐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대중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돌이나 일부 열성적인 팬덤이 있는 가수들을 제외하면 결국 대중성으로 경쟁해야 하고, 대중적인 노래일수록 음원 사이트에서 높은 순위에 오르는 데에 유리하므로, 인기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장 대중적인 장르 중 하나에 속하는 양산형 발라드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대중성이 높은 장르라 하더라도, 그만큼 개성적이고 높은 완성도로 만들지 않으면 인지도 있는 가수라도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기에 마냥 양산형이라고 깎아내릴 수는 없는 작품들도 많긴 하다.

초반에는 담담하게 부르는 척하다가 구렴이 끝나기 직전 절제 없이 지르는 고음과 이에 보답하듯 일관되게 과격하고도 영혼 없이 떨기만 한 감정 전달, 가사만 바꾼 채 똑같은 음을 반복하는 2절[28], 후렴부는 반음(=한키)만 올려 또 똑같은 멜로디가 반복되고 하이라이트에서 고음을 한껏 지르고 폭주하는 것은 색다를 게 없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한국 발라드의 특징 중 하나이다. 또한 십중팔구 가사에 "제발 돌아와~", "못 해줘서 미안해" 따위의 에 취한 냄새가 풀풀 풍기는 판에 박힌 이별 가사를 남발해댄다. 또한 그 주제를 감각적으로 표현해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텐데 그것마저도 못 할 만큼 문장력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부르는 가수가 슬프고 울적한 감정을 애절하게 호소하는 거야 자유지만 여기에 사재기를 통해서 음원 사이트에 차트인을 강제하고 대중에게 자기만 아는 슬픈 감정을 강요하면 문제가 된다.

한국의 발라드 음악 상당수는 아주 획일적인 특징을 가진다. 이런 추세를 비꼬는 용어가 ' 양산형 발라드'라고 한다. 양산화 현상이 매우 심해 최근엔 발라드 앞부분만 들으면 뒷부분이 예측 가능하고 고음이 있다는 것도 예측할 수 있다. 양산형 발라드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곡의 전개가 비슷비슷하다. 양산형 발라드의 상당수가 들을 때마다 어디서 들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표절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수준이다. 거기다 곡을 부르는 가수의 보컬 스타일까지 비슷한 경우가 잦다.
    • 단순 전개 뿐만 아니라 사용되는 악기 및 편곡들도 거의 미디로 대충 찍어내듯 만드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도입부에서 발라드 특유의 요정이라도 등장할 것 같은 차임음은 대표적인 클리셰 중 하나. 드럼과 같은 악기에서 나오는 리듬도 곡마다 차별점을 찾기 힘들다.
    • 이를 비꼬기 위해 양산형 발라드 여러 개를 리믹스한 영상도 존재한다.
    • 후렴구는 높은 확률로 반음(=한키)만 올려 똑같이 반복한다.
    • 최근 들어 옛날 명곡들을 리메이크하는 트렌드가 생겼지만 대다수의 곡들의 편곡도 양산형과의 차이가 없어 특색이 없을 만큼 획일적이고 그만큼 클리셰 범벅인지라, 리스너들에게 불쾌함을 주기도 한다.
  • 고음병의 영향인지 많은 발라드 곡들이 중간에 시작되는 고음 부분이 존재한다. 처음엔 잔잔하게 시작하다가 중간부터 점점 소리를 키우더니 절정 부분에 고음을 지른다. 고음 부분이 끝나면 다시 잔잔해지며 슬픈 목소리로 속삭이듯 부르며 마무리를 짓는 것이 양산형 발라드의 주된 클리셰다.
    • 사실, <야생화>처럼 평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발라드 곡들도 이와 같은 형식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한국 대중의 취향에 맞기 때문에 나타난 형식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며, 따라서 이 자체만으로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수 있다. 예를 들면, 가사와 음이 부조화하거나, 흐름에 완급 조절이 결여되어있다거나 등.
  • 가사 내용 전반이 연애와 관련된 것, 특히 사랑 타령 + 이별 타령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며 주제의식도 모호하다.[29] 다른 장르도 문제지만 특히 이 분야는 사랑 타령에 관련된 건 없는 게 없다. 특히 이별 내용은 지겹게 우려먹기로 유명하며, 가사 내용도 식상하기 그지없다.
    • 양산형 작품에 있어서 최적의 조건인 높은 대중성과 생산성, 떠올리기 쉬운 소재를 모두 만족하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 양판소 등 다른 양산형 장르에서도 사랑 타령 작품들의 독점은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명곡들은 공감도와 이해도 있게 단순하고 간결하며 의미심장하지만, 양산형은 두 수준이 비교적 떨어지며 대충 쓴 것마냥 독창성과 깊이감이 없을 만큼 너무 직설적이다.
      • 특히 에 관한 가사는 양산형 발라드에 가장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친숙한 것을 넘어서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의 소재와 단어 선택, 특히 번화가 거리 실명이나 포차 메뉴 같은 불필요한 디테일과 비효율적인 묘사도 굳이 가사에 집어넣어서 감성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 유행마냥 번져나갔다.[30]

[1] 김정호, 송창식, 김수철, 해바라기, 시인과 촌장 등. [2] 심수봉, 조용필 등이 그 주인공. [3] 소프트 록식의 파워 팝 성격의 발라드를 선보인 다섯손가락 헤비 메탈의 대부 부활 등. 헤비 메탈의 경우는 후대 록 발라드의 토대가 되어주기도 했다. [4] 포크는 어쿠스틱 기타, 록은 전자 기타. [5] 1986년 발표된 부활의 ' 희야'나 ' 비와 당신의 이야기', 김현식 3집의 ' 비처럼 음악처럼' 같은 노래가 그렇다. 그나마 이런 노래들은 록풍 특성상 당대 다른 노래들에 비하면 뽕끼가 확연히 줄었다는 점에서(당시 녹음을 들어보면 아예 없는건 아니다), 당대 록 장르가 그나마 다른 장르에 비하면 팝의 영향을 받아 음악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도를 제법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6] 사족으로 유재하 또한 조용필과 김현식 사단에서 활동하던 인연이 있었는데, 이들이 발라드 성격을 띄었던건 유재하의 영향도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7] 발라드의 시조라 불리는 사랑하기 때문에보다도 이문세 4집이 간발의 차이로 먼저 발매되어 유재하와 더불어 공동 시조격 작품으로 추앙받고 있다. 다만 유재하가 이미 1985년 이문세 3집에 '그대와 영원히'라는 곡을 줬고(사실 1983년 1집에도 '그대 내 품에'를 준 바 있다), 이 곡을 제외하면 3집과 4집의 뽕끼차이가 상당한지라 평론계에선 이문세-이영훈이 유재하 영향도 제법 받았다고 보기에 유재하를 조금 더 높게 쳐주는 시각도 있다. 물론 절대적인건 아니고 취향차. 사실 들어보면 현대 발라드는 유재하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는걸 알 수 있다. 이문세-이영훈은 이런 스타일의 곡들이 상업적으로도 대성공(1987년 골든디스크 음반 대상)을 거둘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했다는데서 그 업적을 더 평가받는 케이스. [8] R&B 포함. [9] 이전까진 발라드 느낌의 곡을 그냥 비트로트계 음악 혹은 일반 가요, 이문세식 음악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다만 변진섭은 아직은 뽕과 팝을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스런 발라드 느낌이 있었다. [10] 데뷔는 록밴드 부활 출신의 락커였지만, 애초에 부활 자체가 록발라드 비슷한 감성의 음악을 주로 하던 팀이기도 했고, 이승철 본인도 음색이나 음역대가 발라드에 더 어울렸기에 솔로 데뷔 때부턴 발라더로 전향한다. [11] TV 출연도 없이 1집 B.C 603을 100만장 이상 팔아버린다. [12] 김추자, 산울림 등이 기록한 최고 기록이 40만 장 정도였다. [13] 전자에선 김연우, 후자에선 윤종신 등의 발라드 거물을 발굴하기도 했다. [14] 엠맥은 밴드 음악을 하긴 했지만, 전형적인 록발라드보단 록발라드와 팝발라드를 넘나드는 하이브리드스런 지점에 위치한 밴드였다. 음색적으로 봐도 그렇고, 엠씨더맥스 음악들도 보면 반주에 클래식 비중이 많다. 그래서 오히려 록발라드 쇠퇴 이후에도 롱런할 수 있었다. [15] 90년대에도 솔리드 유영진 등이 R&B 자체는 국내에 소개하고 있었으나, 발라드화되지 못해서인지 인력풀의 한계인지 어쨌든 반짝 인기나 틈새 시장 공략 수준에 머물러 주류였다고 보긴 어려웠다. 결국 이들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유영진은 아이돌 프로듀서로 아예 전향한다. [16] 1세대 발라더들의 백만 단위에 비하면 적은 수치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음원 시장이 앨범에서 인터넷으로 돌입하는 시점 속에 줄어가는 음반 시장을 고려한다면 고무적인 기록이었다. [17] 정작 브라운아이즈는 소몰이창법을 하지 않았다. 미디어 템포 발라드가 유행하는 가운데 소몰이창법을 시도한 박효신과 SG워너비가 성공하면서 너도나도 따라하기 시작한 것. [18] 댄스가수 출신이지만 발라더로 변신한 김종국 한 남자도 인기를 끈다. [19] 여긴 첨부터 발라드로 간건 아니고, 부침을 겪다 발라드돌 노선으로 인기를 얻고 그쪽으로 방향을 잡은 케이스. [20] 발라드 지향 아이돌 그룹이었던 2AM이 댄스와 발라드를 융합하는 시도도 했지만 춤신춤왕이란 밈만 낳으면서 무리수라는 평을 들었고, 비투비의 경우 보컬이 되니 발라드돌로 인기를 끈 케이스긴 하나 비중도 상당할 뿐더러, 본인들도 인정했듯 아이돌치곤 댄스를 잘 못한다. 그래도 잔잔한 분위기에 맞춰 가사에 맞는 안무는 느낌있게 추니 댄스랩발라드라고 볼 수 있을지도..? 진짜 제대로 댄스발라드를 보여준건 보아가 2012년 Only One으로 컴백했을 때였는데, 인기나 평도 괜찮았으나 이후에는 이런 곡을 내놓지 않고 있다. [21] 애초에 발라드 전성기에 드라마타이즈 MV들이 유행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22] 실제 이와 무관한 가수들이 음모론에 희생당한 측면도 있었다. [23] 물론 역설적이게도 가장 세대 구분없이 호불호 안타는 장르 중 하나가 발라드기도 하다. 힙합이나 아이돌 음악은 청년층 위주고, 트로트는 노년층이 소비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포크송마저 음원 성적은 발라드에 밀린지 오래니 어찌보면 당연한 소리. 록도 하드록 쪽은 불모지 수준이 된지 오래고, 재즈나 클래식은 애초에 매니아 영역이었으며, R&B도 사실 한국에선 R&B 발라드화 되어있는 게 현실이다. [24] 다만 이건 일제강점기의 한국학자인 야나기에 의해 촉발된 전형적인 문화결정론에 입각된 썰이다. 자세한 것은 한(감정) 문서 참조. [25] 인터뷰 대상인 황인욱은 정작 술라드를 내세움에도 술을 즐겨 마시지 않으나, 먹는 건 잘 먹는데 잘 안 한다고 밝혔다. 또 본인이 어렸을 때 가수를 준비하기 위해 언제든 노래해야 한다며 술을 잘 안 먹는 습관이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26] 다만 해당 인터뷰는 발라드라는 장르를 보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김창완이 당시 유행하던 소몰이창법을 까는 내용이다. [27] 물론 유재하 김동률 같은 가수들은 클래식이라고 호평을 받는다. [28] 물론 브릿지 구간을 도입해서 일정 변화를 주는 경우도 많긴 하다. [29] 물론 야생화 등 사랑 노래가 아닌 발라드도 없는 건 아니지만 가사가 약간 중의적인 편이라 사랑 노래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있는 경우가 많다. [30] 대표적인 예로 황인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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