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18 00:07:11

로베르토 아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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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아얄라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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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디에고 시메오네
(1997~1998)
로베르토 아얄라
(1998~2002)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2002)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2002)
로베르토 아얄라
(2003~2007)
하비에르 사네티
(2007~2008)

SSC 나폴리 주장
로베르토 보르딘
(1994~1997)
로베르토 아얄라
(1997~1998)
주세페 탈리알라텔라
(1998~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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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아얄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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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아얄라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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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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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rowcolor=#000000> 순서 선수 이름 출전 횟수 첫 경기 마지막 경기
1 리오넬 메시 180회 2005.8.17 2023.11.21
2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147회 2003.7.16 2018.6.30
3 하비에르 사네티 145회 1994.11.16 2011.7.16
4 앙헬 디 마리아 138회 2008.9.6 2024.3.26
5 로베르토 아얄라 115회 1994.11.16 2007.7.15
6 니콜라스 오타멘디 111회 2009.5.20 2024.3.26
7 디에고 시메오네 106회 1988.7.14 2002.6.7
8 세르히오 아구에로 101회 2006.9.3 2021.7.3
}}}}}}}}}}}}}}} ||
Selección de fútbol de Argentina
파일:아알라 코치.jpg
<colbgcolor=#ABDDED><colcolor=#2C2D32> 이름 로베르토 아얄라
Roberto Ayala
본명 로베르토 파비안 "엘 라톤" 아샬라[1]
Roberto Fabián "El Ratón" Ayala
출생 1973년 4월 14일 ([age(1973-04-14)]세)
아르헨티나 파라나
국적
[[아르헨티나|]][[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 체중 75kg
직업 축구 선수 ( 센터백 / 은퇴)
축구 코치
소속 <colbgcolor=#ABDDED><colcolor=#2C2D32> 선수 페로 카릴 오에스테 (1991~1994)
CA 리버 플레이트 (1994~1995)
SSC 나폴리 (1995~1998)
AC 밀란 (1998~2000)
발렌시아 CF (2000~2007)
비야레알 CF (2007)
레알 사라고사 (2007~2010)
라싱 클루브 (2010)
지도자 아르헨티나 대표팀 (2019~ / 코치)
국가대표 115경기[2] 7골 ( 아르헨티나 / 1994~2007)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우승 기록5.2. 개인 수상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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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 선수로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 2019년부터 스칼로니 감독을 보좌하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수석 코치를 맡고 있다.

현역 시절 별명은 '생쥐(El Ratón)'

2. 선수 경력

2.1. 클럽

아르헨티나 페로 카릴 오에스테에서 데뷔했고 이내 아르헨티나의 명문인 리베르 플라테로 이적한다. 여기서 단 한 시즌 만의 활약으로 당시 세계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의 나폴리로 이적하였고 얼마 후 유럽 최고 명문 중 하나인 AC 밀란으로 이적하지만 당시 밀란은 밀란 제너레이션의 해체 이후에 여러가지로 흔들리는 엄청난 진통을 겪는 과도기적인 상황이었고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장기회도 제대로 들쭉날쭉했던 아얄라는 라리가의 박쥐군단 발렌시아로 이적한다.

그리고 발렌시아에서 그의 전설이 시작된다. 이미 1999-00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발렌시아는 막대한 자금을 풀어 여러 스타 선수들을 영입했고, 아얄라는 수비라인의 중심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였고 그것은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발렌시아는 2년 연속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진출해서 바이에른 뮌헨을 만났다. 결국 치열한 접전 끝에 승부차기로 웃은 것은 뮌헨이었지만 박쥐군단 발렌시아는 더 이상 8,90년대 심각한 암흑기를 겪었던 클럽이 아니라 당당한 라리가의 강팀으로 돌아오게 된다. 물론 거기에는 아얄라를 중심으로 뭉친 단단한 4백이 있었던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발렌시아의 순항은 2001-02 시즌에 꽃을 피게 된다. 2000-01 시즌 라리가 38라운드 바르셀로나전에서 히바우두에게 극적인 바이시클 킥 버저 비터로 5위로 밀린 발렌시아는 팀의 모든 여력을 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는데 결국 그것이 31년 만의 리그 우승의 발판이 되었다. 특히나 라리가 38라운드 말라가와의 원정 경기에서 아얄라는 경기 결승골이자 선제골을 전반 이른 시간에 뽑아내며 발렌시아의 우승을 이끈다. 이후로도 발렌시아의 전성기는 지속되어 2003-04 시즌에는 라리가와 UEFA컵 더블을 달성하였다.

이렇게 아얄라는 그대로 발렌시아에 레전드가 되는가 싶었지만 2007년 단장과의 불화로 비야레알로 이적, 그리고 얼마 안 가 레알 사라고사로 이적했다. 그러나 30대 중반에 접어든 아얄라는 노쇠화로 인해 레알 사라고사에서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고, 팀의 2부 강등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도 레알 사라고사와 함께 다시 라리가로 승격했고, 이후 2010년 라싱 클루브로 이적하여 선수 경력을 마무리한다.

2.2. 국가대표

파일:external/www.reporterosdefutbol.com/60630141154815.jpg
90년대 중후반부터 국가대표 커리어를 시작한 대부분의 아르헨티나의 선수들이 다들 그렇지만 지독한 메이저 대회 불운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우승을 맛본 것이라면 와일드 카드로 출전한 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종목 금메달. 이것을 제외하면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우승도 없다. 대부분 준우승이나 8강이 끝, 게다가 1998 프랑스 월드컵 8강 네덜란드전에서는 1-1로 비기고 있는 상황에서 데니스 베르캄프를 마크하고 있었지만 결국 뚤리며 베르캄프에게 결승골을 내줬다.[3] 심지어 2002 한일 월드컵에는 조별리그에서 탈락까지 하기도 했다. 아얄라가 참여한 월드컵들 당시 아르헨티나의 스쿼드는 언제나 탄탄했고, 2002년에는 남미 예선 1위로 손쉽게 진출하며 강력한 우승후보로, 2006년에는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말그대로 도륙내는 엄청난 포스를 자랑했지만 오심, 승부차기 불운 등으로 언제나 우승 언저리에서 좌절하였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홈팀 독일을 상대로 헤딩 선제골을, 미로슬라프 클로제와의 공중볼 경합에서 이겼지만 클로제가 아얄라의 코 앞에서 헤딩 동점골을 기록해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승부차기에서 실축하면서 패하고 만다.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2004년과 2007년 대회 결승전에서 라이벌인 브라질에 연달아 패하면서 두 대회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2004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는 2-2 무승부 이후 승부차기에서 브라질에 우승을 내줬고, 특히 아얄라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가 된 2007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에서는 전반 40분 다니 알베스의 크로스를 걷어 내려다 자책골을 기록하는 등 졸전 끝에 0-3 완패, 결국 메이저 대회 우승을 이루지 못한 채 국가대표팀을 떠나게 되었다.

3. 플레이 스타일


'El Ratón'. [4]
2000년대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수비수로, 센터백치고 상당히 단신이라 파비오 칸나바로와 함께 월드클래스 센터백으로서 비교되었는데, 단신임에도 엄청난 점프력을 바탕에 둔 뛰어난 제공권 장악력을 보유했었다. 점프력에 더해, 위치를 선점하는 움직임이 좋았다 보니, 헤더로서 결정적인 장면을 많이 연출해냈다.

아얄라는 수비 시, 상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파이팅 넘치게 1대1 맨 마킹을 구사했다. 이때, 워낙에 수비 지능이 뛰어난 선수였기에 경고를 받지 않는 선에서 교묘하게 파울을 시도해 공격을 끊어내는 것에 능했다. 그 당시에는 VAR 같은 기술이 도입되기 전이었기에, 아얄라를 상대하는 공격수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짜증을 넘어서 분노를 치밀어오르게 하는 플레이를 잘 보여줬다. 끈질긴 대인 수비는 물론, 위치 선점과 뛰어난 수비 지능과 기술을 통한 지역 수비에서도 일가견이 있었으며 태클, 블로킹, 가로채기 모두 수준급이었다.

리더십도 워낙에 뛰어나서 수비진을 조율하였고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도 8년동안이나 주장으로서 활약했다. 그는 후방에서 본인이 직접 공을 다루면서 상대의 압박을 무력화시키는 좋은 패스를 배급해주었고 본인이 직접 운반하는 플레이도 자주 가져갔다. 커리어 내내 기복이 적었다는 점도 아얄라의 대표적인 장점 중 하나였다.

다만, 아얄라는 속도가 평범해서, 너무 과하게 전진을 시도했다가 배후 공간이 그대로 열리는 경우도 간혹 발생했다. 또한, 워낙에 적극적으로 수비에 임하다 보니, 잔부상으로 인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아얄라가 전성기였던 2000년대 초반에 칸나바로가 당시에 인테르에서 클래스에 비해 부진했던 시기라, 2006 독일 월드컵 직전 까지만 해도 둘의 비교에서 아얄라의 우위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물론 칸나바로가 2006 독일 월드컵 우승 이후 발롱도르 FIFA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기 때문에 후에 회자되는 건 칸나바로겠지만, 커리어가 부족할 뿐이지 분명 남미 최고의 센터백을 넘어 세계 최고의 센터백 중 한 명이었다. 동세대에서는 칸나바로와 비교되었지만 반세대 정도 아래인 카를레스 푸욜과도 비교되고 있다.

4. 지도자 경력

2019년부터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의 수석 코치로서 리오넬 스칼로니 감독을 보좌하고 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가 2021 코파 아메리카, 2022 카타르 월드컵를 연달아 졔패하면서 선수 시절의 한을 어느 정도 풀었다.

5. 기록

5.1. 우승 기록

5.2. 개인 수상

6. 여담

  • 아르헨티나와 스페인에서는 아얄라를 'El Ratón', 쥐라고 불렀다. 이는 그의 지능적이면서도 민첩한 수비를 잘 나타내는 별명이었다.
  • 의외로 박종윤이 굉장히 좋아하는 선수다. 이스타TV에서 만든 인생 베스트 11에 무려 솔 캠벨과 함께 센터백으로 뽑았을 정도.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였고, 네덜란드 전 중계 화면에 잡히자 팬들이 박종윤에게 채팅으로 아얄라가 카메라에 잡혔다고 알려주었고 비록 박종윤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굉장히 좋아하며 아얄라를 찾았다.


[1] 스페인어 발음: [roˈβeɾto faˈβjan aˈʒala\]. 스페인어에서 y는 /j/로 발음되지만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y는 /ʒ/로 발음된다. 그러나 이런 지역적 특색(방언)은, 표기법에서는 브라질 포르투갈어를 제외하고 무시한다. 한편 영어를 제외한 로망어 게르만어권 인명의 전치사나 관사는, 발음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채 뒤 요소와 붙여 적는다. [2] 아르헨티나 A매치 역사상 최다 주장 출전 기록(63경기) 보유자이기도 하다. [3] 이 골은 월드컵 역대 최고의 골 중 하나로 손꼽히며 아얄라가 뚫린 것도 베르캄프의 터치 자체가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이다. [4] '생쥐'라는 뜻이다. [5] Apertura(아페르투라) [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