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0 13:34:41

식자

1. 識者2. 植字
2.1. 전통적인 인쇄 과정에서의 식자2.2. 현대 아마추어 만화 번역에서의 식자
2.2.1. 요구되는 기술2.2.2. 주로 쓰이는 프로그램


1. 識者

학식, 지식, 견문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조선 시대에도 쓰였을 정도로 오래된 한자 어휘지만 현재도 여전히 많이 쓰인다. 오늘날에는 '식자층'이라는 형태로도 많이 사용된다. 지식인과도 의미가 비슷하다.[1]

2. 植字

typesetting

2.1. 전통적인 인쇄 과정에서의 식자

프린터 복사기가 없었던 옛날에는, 문서를 여러 부 인쇄하려면 목판이나 활판을 만들어야 했다. 활판을 만들려면[2], 우선 인쇄할 문단 모양의 틀을 준비한 뒤, 문서의 글자 하나하나에 해당되는 활자를 틀에 끼워넣어야 했다. 이렇게 틀에 활자를 끼워넣는 과정을 글자()를 심는다()고 해서 식자(植字)라고 한다.

활판인쇄의 식자는 굉장히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다. 예를 들어 10포인트 크기의 글자 1천 자가 들어간, A4 종이 1페이지 분량의 문서를 인쇄한다고 해 보자. 단 1페이지 분량의 이 문서를 인쇄하기 위해, 활판인쇄에서는 1천 개의 활자를 일일이 끼워넣는 식자 작업이 필요했다. 게다가 글자 간격이나 행 간격을 조절하고 싶다면 활자를 일일이 이동시켜 줘야 했고, 폰트 크기를 바꾸려면 다른 크기의 활자를 준비해서 끼워야 했다. 게다가 활자들은 도장처럼 좌우가 뒤집혀 있기 때문에, 작업자가 숙련되지 않았다면 실수하기 십상이었다. 이 모든 과정이 사람 손을 엄청나게 타는 일이었고, 때문에 옛날에는 식자 작업만 담당하는 식자공()이라는 직업이 있었다. 이들은 신문사 인쇄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일종의 기술자였다.

식자작업은 수 천 개의 자모가 서가 진열대처럼 배열된 문선대(文選臺)에서 해당 내용에 필요한 활자를 뽑아서 모으는 문선(文選, 활자 뽑기) 작업과, 뽑은 활자들을 식자틀에 차례로 줄 맞춰 적당히 배열해서 한 페이지 분의 활판을 만드는 조판(組版, 페이지 짜기) 작업으로 구성된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20세기 초 라이노타입이라는 조판기계가 제작되어, 식자 작업이 매우 편리해졌다. 하지만 한자 한글[3]을 사용하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는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그 대신 이 3국에서는 인화지에 글자가 들어간 필름을 대고 한 글자씩 감광시키는 사진 식자[4] 방식이 더 빨리 보급되었다. 화면에 보이는 내용 그대로 바로 출력이 가능한 현대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당시로서는 금속활자가 차지하는 부피와 무게를 수천 분의 일로 줄여 준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그 이후엔 컴퓨터 데이터베이스와 결합한 사진식자기인 전산사식() 이 등장하기도 했다. 알파벳을 사용하는 미국 등 서구에서는 일찍 디지털화 되어 글자꼴 폰트 정보를 필름이 아닌 컴퓨터 메모리에 저장해 바로 오프셋 인쇄용 사진필름에 전사하는 방식이 나오며 품질과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LinoType 이나 CAT phototypesetter 대표적이다. CAT 는 초창기 Unix Troff 등 인쇄할 텍스트 내용에 여러 문자 수식이나 페이지 배치 명령어 등 인쇄에 필요한 정보를 더한 markup 언어의 발전을 촉진했다

하지만 필름기반 사진식자기가 등장한 후에도 한국에서는 활판 자체로 인쇄할 종이에 바로 찍는 광고지 등 소량 인쇄물이나, 지형(紙型)[5] 제작 과정을 거쳐 대량인쇄를 하는 소설책 등 출판물, 일간 신문의 윤전기 등은 여전히 납활자에 의존했다. 그래서 옛날 인쇄물을 자세히 보면 종이가 납활자에 눌린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한국에서는 사진식자 방식은 고급인쇄물인 오프셋 인쇄 등 일부에서만 잠깐 쓰이다가 바로 다음에 설명하는 쿽익스프레스로 넘어가서 사진식자는 한국에선 자리잡지 못했다.

하지만 1980년대 매킨토시 쿽 익스프레스로 대표되는 DTP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조판 과정 전체를 컴퓨터 하나로 전부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컴퓨터 화면에 보이는 그대로 바로 인쇄를 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이러면 당연히 식자라는 작업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DTP는 전통적인 활판인쇄를 빠르게 대체하였고, 이제는 아무리 오래되고 영세한 인쇄소라고 해도 활판인쇄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6] 이에 따라 식자 작업은 서서히 그 자취를 감췄고, 식자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식자공"이라는 단어도 잊혀지게 되었다.

2.2. 현대 아마추어 만화 번역에서의 식자

외국어 만화의 이미지 파일( 스캔본 등)에서 글자가 나오는 부분을 지운 뒤, 번역자에게 한국어 번역문을 받아서 만화 이미지에 삽입하는 작업을 뜻한다. 어원은 당연히 1번 문단의 식자 작업에서 나왔다. 번역팀 문서에서도 나오는 내용으로, 역자()는 번역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식자()는 텍스트를 바꾸는 '작업,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역자 누구, 식자 누구'보다는 '번역 누구, 식자 누구'가 옳은 표기이다. 하지만 한자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현대 한국어의 특성상, 번역팀에서 식자 작업을 하는 사람 자체를 그냥 "식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번역과 식자를 혼자서 하는 경우 역식자 라고 부른다.

속된 표현으로 식자 작업을 '식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식자는 역자보다 구하기가 더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루마루에서도 식자 확보에 주력하던 모습이 보였으며, 지금 활동하고 있는 대다수의 번역팀에서도 '역자들이 만든 역본은 넘쳐나는데 그걸 처리해 줄 식자를 구하기가 힘들다'라고 하는 팀들이 많기 때문. 번역은 해당 외국어만 어느 정도 할 수 있으면 식자보다 진입장벽이 낮은 반면 식자는 이미지 보정이나 리드로잉, 그리고 기본적인 포토샵 능력까지 번역에 비해서 갖춰야 할 역량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나마 존재하는 작품들도 장편은 거의 없고 주로 원본 만화, 동인지, 웹코믹의 대사만 바꾸는 짤방이나 단편 등이 많다.

2.2.1. 요구되는 기술

포토샵 같은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의 사용 능력을 갖춰야 한다.[7] 경우에 따라 직접 아트를 그려 메꿔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8] 그림 실력도 어느 정도 갖추면 좋다. 또한 대사에 맞게 폰트를 바꿔가며 작업해야 하니 상황에 따라 적절한 서체를 사용할 수 있는 감각이 있어야 한다.

실제 업계에서 식자, 조판 역할을 하는 전문 프로그램은 포토샵이 아니다, 포토샵은 어디까지나 사진 수정, 편집을 위한 프로그램이고, 출판 원고를 만드는 것은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인디자인, 오토데스크, 코렐드로우 같은 DTP 프로그램이다. '포토샵으로 만들어서 업체로 주면 바로 인쇄 들어가나보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줘 봐야 거기서는 포토샵으로 만든 이미지 파일(psd, jpg, tif...)을 그냥 쓰는 게 아니라 일러스트레이터로 불러다가 수정하고 인디자인에서 다시 전부 편집해야 한다. 코렐드로우는 벡터 제작/편집 프로그램이면서 자체에 조판 기능까지 다 들어 있는데, 업체에서는 코렐드로우를 거의 안 쓰고 주로 일러스트레이터와 인디자인을 쓰니 제작자는 그냥 같은 어도비의 프로그램이라 호환이 잘 되는 포토샵 파일(.psd)로 주면 된다. 가능하면 포토샵에서 일러스레이터로 데이터를 보내서 글자까지는 넣어서 ai 파일로 주는 게 낫다.

2.2.2. 주로 쓰이는 프로그램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식자들이 포토샵을 사용하지만, 다른 프로그램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식자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1] 다만 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좁은 지적 분야에 속박된 식자 대부분이 통합적 교양 부재로 인해 통찰적인 기능을 상실했고 대중과 같이 수동적인 태도를 띈다며 이들을 무식한 식자라 칭하여 지식인과 대비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철학적 관점에서 지식인과 식자는 실존적이고 넓은 통찰력 탑재의 유무에 따라 궤를 달리한다고 볼 수도 있다. [2] 판을 짠다고 해서 조판()이라고 한다. [3] 한글은 표음문자긴 하지만 초성+중성+종성이 결합되어 한 글자를 이루고, 글자마다 초성, 중성, 종성의 위치와 모습이 조금씩 바뀐다는 점 때문에 일종의 완성형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 [4] 사식(寫植)이라고도 했다. 영어로는 Phototypesetting. [5] 두껍고 딱딱한 종이판지에 납 활자를 찍어 활자의 요철을 남긴 것. 이렇게 만든 지형에 다시 녹인 납을 부어, 활자의 요철이 통채로 새겨진 납판(연판, 鉛版)을 만든 뒤 인쇄한다. 이후 인쇄가 끝난 연판은 녹여서 재활용하고, 지형은 출판사가 나중에 재판을 찍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보관한다. [6] 아무리 낡은 장비를 쓰는 영세 인쇄소라도 30년 묵은 파워 매킨토시 쿽 3.3k를 쓸지언정 활판인쇄기는 안 쓴다. [7] 사실 그림판으로도 기본적인 식자는 가능하긴 하다. [8] 반투명 말풍선이나 배경글 등. [9] 포토샵의 가격에 부담을 느껴 무료 프로그램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는 국방망 PC에서 사용하다가 사회로 넘어와서 쓰는 사람들. [10] 포토샵보다는 덜 복잡하면서도 글씨 넣을 때 장평/자간 조절이 가능한 게 장점. [11] 대부분의 번역팀에서 권장하지 않는 프로그램이다. 결과물의 퀄리티가 영 좋지 않기 때문. 식질 난이도 자체도 높기에,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생각인 자만 가능하다. [12] 텍스트 파일에 적어놓은 번역을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에 손쉽게 복붙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식자 보조 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