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52:23

주적(삼국지)

시적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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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군권 1인자
주유 →  노숙 →  여몽 →  육손 →  주연 →  제갈각 →  손준 →  손침 →  주적 →  정봉 →  육항

1. 개요

朱績/施積
(? ~ 270년)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이며 자는 공서(公緖). 주연의 아들로 후에 아버지의 본래 성을 찾아 시적(施積)으로 바꾼다.

2. 생애

처음에는 아버지 주연의 공에 힘입어 낭중으로 임명되었다가 건충도위로 임명되었으며, 231년에 숙부 주재가 죽자 주적이 그의 병사들을 통솔하게 된다. 그 군사들을 이끌고 태상 반준과 함께 오계만을 토벌할 때 담력있는 모습을 보여 편장군영하독으로 승진해 도적에 관한 일을 겸임했다.

법을 집행하는 것에 치우침이 없어서 손권의 아들인 손패가 주적과 교제하기 위해 관서까지 와서 주적과 같은 자리에 앉아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주적은 땅으로 내려가서 손패를 일어서서 맞이하면서 사양해 결국 손패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49년, 아버지 주연이 죽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평위장군, 낙향독이 되어 250년 이궁지쟁으로 손화 손패 사이에 후계자 다툼으로 수많은 싸움이 벌어져 오나라가 아침 드라마를 찍고 있는 틈을 타 왕창 주태, 왕기와 함께 쳐들어오자 강릉성에서 맞서 싸우지만 경과에 관해서는 두 사서의 기록이 충돌한다.
  • 왕창전에는 강릉 주위에서 주적은 왕창군에게 패배해 강릉성으로 들어갈 때 왕창의 추격을 받아 수백 명의 머리가 베어졌으며, 왕창이 참수한 적의 머리와 약탈한 물자를 싣고 성 주위를 돌아 도발하자 성 밖으로 나와 위나라의 군대를 공격했다가 패배해 종리무, 허민 등을 잃고 도주했다고 한다.
  • 주연전에는 왕창이 강릉성을 공격했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자 먼 곳에 와서 피곤한 상태라 말먹이가 없기 때문에 병력이 줄어들어 달아난 것이라 판단해 제갈융에게 추격해야 한다고 주장해 자신이 먼저 돌격할테니 뒤를 봐달라고 부탁했다. 강릉성에서 30리 떨어진 기남까지 추격해 처음에는 승리했지만 제갈융이 도와주지 않아 결국 패배했다고 하며, 손권은 주적의 편을 들어 제갈융을 매우 심하게 질책했지만 제갈융의 형인 대장군 제갈각의 권세가 커 면직시키지 못했다. 이로 인해 원래 사이가 안 좋았던 주적과 제갈각, 제갈융 형제와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다고 한다.

252년에 진동장군으로 승진했으며, 253년 봄에 제갈각이 신성을 공격할 때 주적에게 도움을 요청해 주적을 반주에 머무르게 하면서 주적의 관할은 제갈융에게 맡겼는데, 겨울에 제갈각이 주살되자 손일, 전희 등과 함께 제갈융을 포위해 자살로 몰아넣어 다시 낙향독이 되어 부절을 받았다. 처음에 아버지 주연이 할아버지 주치의 상을 마칠 때 본래의 성인 시씨로 회복하기를 원했지만 손권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오봉 연간( 254년 ~ 256년)에 표를 올려 성을 시(施)씨로 바꿨다.

257년에 표기장군으로 승진했다가 손침이 정권을 잡게 되자 대신들은 의심하고 다른 마음을 가졌다. 시적은 오나라는 틀림없이 혼란스럽게 될 것이고, 위나라가 그 틈을 타고 차지하려고 할 것을 걱정하고, 곧 은밀히 편지를 보내 촉과 연락을 취하여 이를 방지하고자 했다. 이에 촉은 염우에게 5천의 병사를 주어 백제에 머무르게 하면서 시적의 지시를 따르게 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아무리 동맹이라지만 조정간의 정식 지원요청이 아니라 일개 지방도독이 조정 몰래 다른 나라에 유사시에 병력을 동원해 우리나라의 혼란을 방지해 달라 밀서를 보냈다는거 자체가 뭔가 위험하고 찝찝한 일이다. 그만큼 당시 오나라가 이런 상황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막장이었단 말. 당시에는 들키지 않았던건지 아니면 장수가 부족해 어쩔수 없던건지 그것도 아니면 하도 나라가 개판이었는지라 상황상 그럴만 했다 했던건지 이 일 자체가 유야무야 넘어가긴 했지만.

258년에 상대장군, 도호독으로 승진해 파구로부터 서릉까지의 지역을 관할했으며, 263년에 촉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하자 손휴의 명에 따라 유평과 함께 이후 방침에 대해 상의했다. 264년에는 좌대사마로 승진했지만 조환전에 따르면 손호에게 불만을 품었다고 하며, 270년에 사망해 그 지역의 수비는 육항이 이어받았다.

아버지의 백으로 군권 1인자가 들어온 경향이 없잖아 있지만 무능력한 인물은 아니다. 군권 1인자들과는 달리 말년도 나쁘지 않은 편이고, 군권을 잡고 있는 동안 큰 실수나 삽질 또한 없는 것을 보아 인재는 인재인 듯 하다. 게다가 주연이 개인의 실력과는 별개로 큰 권력을 가진 호족 출신도 아닌데다가 동오 처럼 대호족의 힘이 막강한 나라에서 단지 제왕의 직계 소속일 뿐인 명장의 아들로써 대도독이라는 거물이 될 만큼 출세했다는 것은 본인도 대단한 실력자가 아니면 매우 힘든 일이다.[1]

그가 죽고 1년 후 정봉이 죽고 4년 후 육항마저 죽음으로써 동오를 지탱하던 3명의 최후의 명장이 모두 고인이 되며, 그로 인해 그가 죽고 10년 후에 동오는 멸망한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external/san.nobuwiki.org/1314.jpg
삼국지 13 PK, 14

오랫동안 오의 군권 1인자 중에서 유일하게 출연이 없었던 굴욕을 겪었으나 삼국지 13 PK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다만 아버지도 능력치가 저평가 되었던 것처럼 이쪽도 능력치는 시원찮다. 그나마 주적의 활약 시기를 감안한다면 주력으로 굴릴만은 하다. 능력치는 통무지정 순으로 78/52/68/38. 특기는 순찰 3, 교섭 1, 연전 1, 공성 1, 견수 2로 전수특기는 순찰보다 2 낮고 견수보다 1 낮은 연전이며 전법은 궁공강화. 일러스트는 오른손으로 도검을 든 채 왼손을 펼치면서 손짓하고 있다. 원래의 초기 능력치는 통솔이 50도 안 될 정도로 매우 낮고 병종적성도 전부 C급에 무력만 70대였으나 패치를 통해 수정되었다. 무력이 낮아지긴 했지만 오히려 장군으로 많이 활약했던 걸 생각하면 패치로 수정된 능력치가 더 고증에 맞는 셈.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71, 무력 57, 지력 69, 정치 55, 매력 65로 전작에 비해 무력이 5, 지력이 1, 정치력이 17 상승한 대신 통솔력이 7 하락했다. 개성은 규율, 직정, 주의는 왕도, 정책은 학익강화 Lv 3, 진형은 방원, 학익, 장사, 전법은 화시, 저지, 구축, 친애무장은 없고 혐오무장은 제갈각, 제갈융이다.

3.2. 삼국전투기

아버지 주연 아톰으로 나와선지 철완 아톰 아틀라스로 등장.아톰의 주적!! 눈에 띄게 활약하는 모습은 그려지지는 않았고, 오히려 왕창에게 영혼까지 털리는 굴욕적인 장면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정봉과 함께 천하무적 레전드라고 언급은 했다. 신성 전투 (5)편의 타이틀 컷을 장식하기도 했다. 소개컷에서 나중에 성을 주연의 원래 성씨인 시씨로 갈았다는 사실이 언급되기도 했으며, 실제로 전투외편 8편에서는 성을 갈아서 시적으로 등장한다.

신성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당시 제갈융과 강릉을 수비하고 있었으며, 왕창의 남진 소식을 듣고 제갈융에게 강릉을 지키라고 한 뒤 자신은 영격을 나서 양강변에 진을 짰다. 적이 함선으로 도하할 수 있으니 함선이 보이면 바로 종을 울리라고 병사에게 명했으나, 왕창이 함선이 아닌 대나무 다리를 써서 도하를 하면서 제대로 기습을 당했고, 왕창이 퇴각 길목에 심어 놓은 복병에도 당하며 간신히 목숨만 붙인 채 강릉성으로 귀환했다.

왕기가 이릉을 점령한 뒤 강릉을 포위하던 위군이 갑자기 오군을 도발하기 시작하더니 며칠 뒤 갑자기 사라지자 일부러 도발하는 척해서 자신들이 그 의도를 의심해 더욱 안으로 숨어드는 동안 퇴각을 하려 했던 것이라고 추측하였고, 척후에게서 적이 다섯 방향으로 쪼개져 퇴각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병력까지 알아서 쪼개 놨다며 기뻐한 뒤 제갈융에게 병력을 정비하고 뒤따라오라고 말한 뒤 주적 본인은 위군 추격에 나서 흩어진 위군을 꽁무니부터 각개격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은 왕창의 함정이었고,[2] 주적은 왕창의 복병에 제대로 걸려들어 비오는 날 먼지나도록 털리고 부장 2명까지 잃은 채 귀환했다. 제갈융이 후발대로 왔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제갈융은 따라오라는 주적의 말을 제대로 못 들어서 오지 않았고, 그렇게 주적과 제갈융은 원수지간이 되었다고 묘사된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수춘 방면에서 난리가 났으니 여차하면 움직일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위군 측에서는 왕창으로 하여금 이에 대응하게 한 것으로 묘사된다.

검각 전투 편에서는 손휴의 명을 받아 촉 지원을 위해 찾아온 유평과 함께 지원 루트를 상의했다. 유평이 파동 방면으로 가자고 제의하자 보다 안전한 건 백제 방면이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급박해 보인다며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전투외편 8편에서는 손호의 명으로 강릉에서 강하 공략에 착수하지만 당시 형주자사였던 호열에게 막힌 것으로 묘사됐다. 그리고 얼마 안가 270년에 사망했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전투외편 8편에서는 수염이 난 모습으로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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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시 대도독이던 주유, 노숙, 여몽의 아들들 중 주적만큼 출세한 인물이 없다는 점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2] 이를 본 왕창은 "저렇게까지 신났는데 살짝 미안하군."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