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2 10:57:52

스티그 순드크비스트

파일:Stig Sundqvist.jpg
이름 스티그 순드크비스트
(Stig Sundqvist)
생년월일 1922년 7월 19일
사망년월일 2011년 8월 3일 (향년 89세)
국적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출신지 보덴
포지션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신체조건 180cm | 75kg
소속팀 IFK 노르셰핑 (1949-1950)
AS 로마 (1950-1953)
국가대표 13경기 3골 (1949-1950)
감독 GIF 순스발 (1955-1958)
옌셰핑스 셰드라 IF (1968-1971)
옌셰핑스 셰드라 IF (1973)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감독2.3. 이후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뒷이야기5. 수상
5.1. 선수
5.1.1. 클럽5.1.2. 국가대표
5.2.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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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감독.

2. 생애[1]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순드크비스트는 여러 스포츠를 즐겼지만 그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인 분야는 크로스컨트리 스키 점프였다.

1947년, 순드크비스트는 철도 직원간의 축구 경기에서 그를 본 IFK 노르셰핑으로부터 오디션을 보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직업을 버리고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스키에 더욱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순드크비스트는 스키 선수권 대회 출전이 목적이었지만 선발되지 못했고 이때 스키를 잠시 내려놓고 축구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빠른 경력 성장을 이뤘다.

1949년 5월, 순드크비스트는 노르셰핑으로 내려가던 중에 로순다 스타디온에서 스웨덴 잉글랜드를 3:1로 꺾는 것을 보았고 그의 기차 좌석 옆자리에는 스웨덴 국가대표 선수들이었던 군나르 노르달, 닐스 리드홀름, 토르스텐 린드베리 등이 타고 있었다. 그들은 경기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순드크비스트도 대화에 참석시켰지만 정작 순드크비스트는 그들이 누군지도 몰랐고 긴장으로 대화를 거의 나누지 못했다. 노르셰핑에 도착한 순드크비스트는 옆구리에 신문을 끼웠다. 이는 노르셰핑 구단 관계자가 그를 알아보게 하기 위한 약속이었다.

5월 21일, 순드크비스트는 IK 슬레이프네르와의 연습 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어 노르셰핑의 4:2 승리를 이끌었고 바로 다음날에 알스벤스칸 데뷔전을 치렀다. 노르셰핑은 그 경기에서 졌지만 그가 최고의 선수로 꼽히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순드크비스트는 노르달의 고별 경기였던 AC 밀란과의 친선 경기에도 뛰었고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기 시작했는데 이 일들이 모두 노르셰핑의 유니폼을 입은 지 한 달남짓한 시간에 일어났다.

노르셰핑은 1949-50 시즌 개막전에 노르달을 밀란에 보내며 침체기에 빠졌지만 순드크비스트는 21경기에서 13골을 넣으며 침체기에 팀의 에이스로 활약했다.

1950년 월드컵이 끝나고 순드크비스트는 AS 로마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51 시즌의 로마는 부진에 허덕이다 세리에 B로 강등되었다. 그래도 로마는 다음 시즌에 바로 세리에 A로 재승격을 이뤘고 순드크비스트는 1953년까지 로마에 남아있었다.

순드크비스트는 1953년에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탈리아에서 프로 선수로 뛰었다는 이유때문에 스웨덴에서 더 이상 선수로 뛸 수 없었다.

2.1.2. 국가대표

순드크비스트는 1949년 6월 19일에 블로굴트의 유니폼을 입었다. 상대는 헝가리였고 스웨덴은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1949년 10월부터 순드크비스트는 대표팀의 경기에 본격적으로 출전했고 1950년 월드컵에서 스웨덴의 주전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로 활약했다. 그는 스웨덴의 5경기에 모두 출전해 3골을 넣었고 스웨덴은 3위의 성과를 내고 돌아왔다. 그는 스키 선수권 대회 대신 13만 명이 지켜보는 마라카낭에서 경기를 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러나 순드크비스트는 월드컵이 끝나고 AS 로마로 이적하면서 당시 스웨덴에서 뛰던 아마추어 선수들만 국가대표팀에 선발하던 스웨덴 축구 협회의 방침으로 더 이상 국가대표 경기를 뛸 수 없었다.

2.2. 감독

순드크비스트는 GIF 순스발, 옌셰핑스 셰드라 IF에서 감독직을 맡았으며 1968년에는 옌셰핑스를 알스벤스칸에 승격시켰다.

2.3. 이후

노년의 순드크비스트는 IFK 노르셰핑에서의 시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않았으나 그는 평생 동안 노르셰핑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다른 많은 노년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하부 리그에서 인재를 추천할 때 가끔 IFK 경영진에 연락했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순드크비스트는 속도와 양발을 이용한 테크닉, 게임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갖춘 아웃사이드 포워드였다.

그는 좋게 말하면 이타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우유부단할 때가 있었는데 1950년 월드컵 경기 중에 자신이 더 괜찮은 위치에 있었음에도 동료에게 찬스를 주다 기회를 놓친 적이 있었다. 순드크비스트는 이를 평생에 걸쳐 아쉬워했다.

4. 뒷이야기

  • 순드크비스트는 길거리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5.1.2. 국가대표

5.2. 감독



[1]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노르셰핑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