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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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5C337><colcolor=#6D7585> 보스니아 제7대 반 {{{#fff {{{+1 스테판 1세 코트로마니치}}} }}} {{{#fff Stjepan I Kotromani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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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242년경 |
사망 | 1314년 (향년 71~72세) |
재위 | 보스니아 반 |
1287년 ~ 1314년 | |
아버지 | 프리예즈다 1세 |
어머니 | 바니카 엘리자베타 |
형제 | 프리예즈다 2세 |
배우자 | 세르비아의 엘리자베타 |
자녀 | 스테판 2세 코트로마니치, 블라디슬라프 코트로마니치, 니노슬라프 코트로마니치 |
가문 | 코트로마니치 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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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록상에 등장하는 보스니아 반샤그 제7대 반(Ban).2. 행적
보스니아 반샤그 제5대 반 프리예즈다 1세와 바니카 엘리자베타의 차남이다. 형으로 제6대 반 프리예즈다 2세가 있었다. 1284년, 세르비아 국왕 스테판 드라구틴의 딸 엘리자베타와 결혼했다. 1287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형 프리예즈다 2세는 드리나와 브로보스나 강 사이의 보스니아 서부를 상속받았고, 사바와 브르바스 강 사이의 보스니아 동부는 그가 물려받았다. 1290년 형 프리예즈다 2세가 사망한 뒤 보스니아 반샤그의 단독 반(Ban)이 되었다.1290년, 헝가리 국왕 라슬로 4세가 자녀를 두지 못한 채 사망했다. 이후 라슬로 4세의 사촌인 언드라시 3세가 왕위에 올랐지만, 라슬로 4세의 누이이자 나폴리 국왕 카를로 2세의 왕비인 마리아는 자기 아들인 카로이 마르텔을 헝가리 국왕으로 세우려 했다. 헝가리의 가신이자 보스니아의 명목상 주권자인 크로아티아 반 팔 1세 수비치는 카로이 로베르트의 편을 들었고, 스테판 1세 역시 이에 따랐다. 그러나 카로이 마르텔은 1295년 헝가리에서 권력을 잡기 위한 원정을 벌이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했고, 마리아는 카로이 마르텔의 아들이자 손자인 카로이 로베르트를 새 국왕으로 추대하기로 했다.
1299년, 크로아티아 반 팔 1세 수비치는 자신을 보스니아의 도미누스로 선포하고, 남동생인 믈라덴 1세 수비치에게 보스니아 반 칭호를 수여했다. 스테판 1세는 보스니아에서 수비치 가문의 세력이 커지는 것에 저항했지만, 장인인 스테판 드라구틴은 형제이자 세르비아 공동 국왕인 스테판 우로시 2세 밀루틴과 내전을 치르고 있었기에 그에게 지원을 보내지 못했다. 그래서 스테판 1세는 1302년까지 대부분의 영역을 믈라덴 1세에게 빼앗겼지만, 산악 지대에 틀어박혀 버텼다. 이후 믈라덴 1세가 교황청의 지지를 확고히 받기 위해 보스니아에 여전히 강성하던 보고밀파를 대대적으로 박해하자, 보고밀파는 이에 맞서 스테판 1세 편에 섰다.
1304년 믈라덴 1세가 보스니아에서 파타네리족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뒤, 팔 1세 수비치는 장남인 믈라덴 2세 수비치를 보스니아의 새 반으로 옹립하고 1305년에 자신을 전 보스니아의 군주로 선포했다. 이후 양자간의 전쟁이 간혈적으로 벌어졌지만 별다른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가 1312년 슈바치 팔이 사망하면서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스테판 1세 역시 보스니아를 미처 탈환하기 전인 1314년에 사망했다.
스테판 1세는 생전에 아들 세 아들 스테판 2세, 블라디슬라프를 낳았다. 뒤이어 스테판 2세가 등극했고, 에리사베타가 한동안 섭정을 맡았다. 블라디슬라프는 크네츠 칭호를 받고 스테판 2세의 통치를 도왔고, 1353년 스테판 2세가 사망한 뒤 아들 트브르트코 1세의 섭정을 맡아 1354년까지 통치했다. 니노슬라프는 헬펜슈타인 백작 울리히 5세의 아내인 마리야 코트로마니치를 낳았다. 보스니아 2대 국왕인 스테판 다비샤가 블라디슬라프의 사생아라는 설과 니노슬라프의 사생아라는 설이 제기되는데, 어느 쪽이 옳은지는 불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