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아마가사키시에서 발생한 시청 방화 사건에 대한 내용은 아마가사키시청 방화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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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尼崎連続殺人事件일본판 관계도
영문판
한글판[1]
2012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한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
키타큐슈 감금 살인사건에 맞먹는 막장성, 사건의 주범이 할머니라는 점 등등 희대의 사건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자신의 가족들로 이루어진( 시누이, 며느리 및 행동대장 격 조카) 일당과 같이 재산 강탈, 보험금 사기 등을 목적으로 지난 20여 년간 무려 5개의 일가족을 연쇄살인했다. 구속 당시 드러난 살해 및 살해 추정자만 해도 14명이었다.
일본 언론에서는 이 사건의 주범인 스미다 미요코(角田美代子)를 '검은 여왕벌(黒い女王蜂)', '여자 몬스터', '살육의 여제'로, 스미다 집안을 ' 피라냐 패밀리'라고 불렀다.[2]
2. 경과
2011년에 고문 피해자가 탈출하여 경찰서에 신고하면서 이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당시 피해자는 몸무게가 30kg에 불과할 정도로 피폐한 상태였다. 피해자가 진술한 바에 따르면 "스미다의 강압에 어머니를 죽였다."고 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의 집 근처에서 드럼통에 든 60대 여성(피해자의 어머니)의 시체를 찾았다.60대였던 스미다 미요코 본인이 직접 사람을 죽였던 건 아니고 밑에 행동대원들이 있었다. 스미다 미요코의 시누이, 조카, 며느리들이 실행범이었다.
사건이 잘 정리되어 있는 기사
3. 주범 스미다 미요코
<주간포스트>에서는 스미다 미요코의 친오빠에 대해 다뤘는데 친오빠는 아직까지 범인이 잡히지 않는 글리코·모리나가 사건에서 용의선상에 올랐던 인물이다. <주간문춘>에 따르면 스미다의 아버지는 미장이, 어머니는 게이샤[3]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유흥과 주색에 빠져 재산을 잃으면서 어머니와 극도로 냉랭해졌고 가정에는 애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스미다는 조숙하고 냉정한 성격이 되어갔다.
스미다 미요코는 1948년 10월 12일에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때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 행여 주변에서 괴롭히려고 하면 "아버지가 야쿠자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때리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또래를 때려 소년원에 가기도 했다. 여러 번 그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손을 쓸 수 없는 문제아가 됐는데 학교 선생님들조차 학기 초에 그녀가 들어간 반을 맡지 않으려고 몸을 사렸다고 한다. 고등학교 담임은 그녀의 고등학생 시절 일화를 털어놓았다.[4] 등교가 매번 늦어 때렸더니 정색을 하면서 "부모님은 한 번도 날 때리지 않았다."며 "잘못을 깨닫게 해줘 고맙다."고 몹시 감사해하더란 것이었다.
그녀의 성장 과정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20대 전후의 일이다. 그녀는 19세 때 16세 소녀에게 성매매를 시켜 체포된 전력이 있는데 서너 해가 지나고 젊은 나이에 술집을 차렸다. 항간에는 그녀가 술집을 경영하면서 성매매 업주를 했단 소문도 떠돌았다.
그녀는 3번 결혼했는데 첫 번째 남편은 간통하다가 들켜 한겨울에 속옷만 입은 채로 집에서 쫓겨났으며 이후 그를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2번째 남편은 공범인 시누이 미에코의 오빠다. 미에코 남매는 외모가 매우 뛰어났는데 그녀는 2번째 결혼에서 잘생긴 아들을 얻자 매우 기뻐했다고 하며 아들을 탤런트로 키우겠다며 학교도 제대로 보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고 손녀를 매우 끔찍이 여겨 어린 손녀에게 샤넬 옷을 입히고 손녀가 금붕어가 귀엽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금붕어를 600마리나 사서 선물했다고 한다.
끔찍한 연쇄살인을 하면서 얻은 돈으로 그녀는 어떤 생활을 했을까? 스미다와 미에코는 각기 아우디, 벤츠를 끌고 다녔으며 오에 일가를 감금한 아파트에는 2억 엔(약 26억 원)에 달하는 귀금속, 도자기뿐만 아니라 호화스러운 가구, 그릇이 즐비했고 심지어 고급 맥주 제조기도 놓여 있었으며 짬짬이 자신의 '돼지 군단'을 이끌고 일본 전국 각지의 파친코를 순례하는 여행을 다녔는데 인기 높은 파친코에 가서 도박을 즐겼고 파친코에 입장객이 많으면 오빠의 애인(시신 3구 중 하나)을 줄 서 있게끔 했으며 그동안 '돼지 군단'과 지방 명물 요리를 먹는 등 식도락을 즐겼다.
같이 흥청망청 놀긴 했지만 스미다 일당의 서열은 엄격했다. 돼지 군단 및 며느리, 시누이 등 스미다 일당 중 스미다의 말을 되받아 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아무리 우스운 농담을 주고받더라도 스미다한테는 격의 없는 반말 한 마디조차 할 수 없었다. <주간포스트>는 "스미다는 여왕벌이었다."고 서술했다.
4. 자살
그런데 스미다가 2012년 12월 12일 효고현 경찰본부 유치장에서 누운 채로 티셔츠를 이용해 자기 목을 졸라 자살하면서 사건 동기와 경위, 공범 관계, 여죄를 밝히는 게 모두 불가능해졌다. 스미다는 누운 채로 티셔츠로 스스로 목을 조였는데 이런 방법으로 자살이 가능한 것인지를 놓고 의문이 증폭되면서 타살설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당연히 아무도 그녀의 시체를 인수하지 않아 무연고자로 처리되었다.주범이 죽어 버려서 법정에서는 관련자들에게 모두 10년 이상의 중형을 내렸다. 처음에는 주범에게 모두 떠넘기려던 관련자들은 주범이 사라져 자신들의 관련 정도를 증명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모두 자기들의 소행으로 간주되어 처벌되었다.
[1]
참고로 한글판은 일부 번역되었거나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는데 위에 가계도의 지인일가의 장녀와 차녀의 설명이 바뀌어 있는 것이 그 예다.
[2]
이 피라냐 패밀리도 평범하게 만들어진 가족이 아니다. 이 사건에 대해 정리한
일본어 위키백과 문서에 따르면 행동대장으로 같이 활동했던 시누이, 며느리, 조카 일당들도 스미다와는 직접적인 혈연이 아니라 빚을 명목으로 이간질 시켜 자신 쪽으로 합병시킨 다섯 가족을 협박 및 구타, 학대 등으로 몇몇 자녀들을 강제 입양시키거나 서류상으로만 혼인시켜 사돈이라는 이름으로 인질로 잡은 것에 가깝다.
[3]
일본 전통의
기녀.
[4]
거의 50년 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