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30 13:19:59

수월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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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 시대 수월관음도
1.1. 보물 제926호1.2. 보물 제1286호1.3. 보물 제1426호1.4. 보물 제1903호
2. 조선 시대 수월관음도

1. 고려 시대 수월관음도



파일:메트관음.jpg
파일:메트관음상세.jpg
파일:메트관음베일.jpg
파일:메트관음치마.jpg

水月觀音圖.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전세계 약 160점 정도 남은 고려불화 중에서[1] 수월관음도가 40점이나 된다. 그 정도로 많이 그렸고 인기 있는 주제였다. 중국에서 당송 시대 이후 형성된 33변화관음 중 수월관음의 모습을 도상화한 불화가 수월관음도이다.

화엄경에 따르면 선재동자가 여러 스승들을 찾아 순례를 한다. 선재동자가 찾아가는 선지식(스승) 중에 관세음보살도 있는데, 관세음보살은 보타낙가산(補陀洛迦山)의 연못가 바위 위에 앉아 선재동자를 맞이하였다. 수월관음도는 화엄경에서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기본 구성으로 한다. 중국 당말(唐末) 오대(五代) 돈황(敦煌)에서 제작된 수월관음도들이 현존하는 수월관음도 중 가장 이시기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제작된 관세음보살화 대부분이 수월관음도이다.[2]

수월관음이 상징하는 의미를 두고 여러 해석들이 있지만, 관음보살의 자비가 물에 비친 달처럼 멀리 퍼져나가서 중생에게 깨우침을 준다는 것이 주된 해석이다. 수월관음도가 여러 고려불화 중 가장 인기 있는 이유는 도상에서 장식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나 관음보살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고있는 장식적인 사라(투명하고 얇은 비단) 베일이 인상적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에는 매미 날개만큼이나 얇고 투명한 비단을 직조해서 원나라 공주가 탐을 냈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직조술이 발달했었다고 한다.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음보살이 씨스루의 투명한 베일에 금으로 정교한 원형 덩굴과 꽃 문양을 그려넣은 것이 특징이며 이러한 묘사는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관음도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요소다.

대부분의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14세기에 그려졌으며, 일반적으로는 관음보살이 물가 위 암벽 위 앉아서 대각선 방향으로 깨우침을 받으러 온 선재동자를 지긋이 쳐다보며 그 뒤에는 대나무 두 그루가 자라난 것을 묘사한 것이 일반적인 고려 수월관음도의 특징이다.
두 그루의 대나무가 묘사된 것은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접견한 설화에서 유래되었다는 학설이 지지받고 있다.

국내에 남은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공식적으로 6점인데, 이 중 삼성 리움이나 호림박물관, 아모레퍼시픽 등 사립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국외 매입하여 환수된 것이 5점이다.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도 사업가 윤동한이 일본에서 구입한 고려 수월관음도를 기증하여 겨우 한 점을 소장하게 되었으나 보존상태는 그리 좋지 아니하다. 국내에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고려불화가 많이 남아있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고려말 왜구의 수탈도 있겠지만, 조선 전기에는 일본에 고려의 불교 문화재를 종종 하사했으므로 무조건 약탈된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외에 일제강점기에 고미술경매를 통해 유출된 경우도 많다.

파일:국중박수월관음도.jpg

2016년 한국 콜마의 윤동한 회장이 기증한 수월관음도의 경우 오랫동안 말려있던 상태 때문에 말린 부분의 안료가 떨어진 부분이 많은 것으로 보존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역으로 얼굴을 비롯해서 대부분의 부분이 고려시대 원형 그대로 보존되고, 추가적인 보수가 후대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얘기로도 볼 수 있다. 국내에 소장된 대부분의 고려 수월관음도는 특히나 얼굴 부분이 후대에 다시 칠해져서 원형을 알 수 없게 된 경우가 많은데 콜마 수월관음도의 경우 고려시대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2021년 이건희 회장이 사후 방대한 고미술품을 기증했는데, 그 목록에 고려시대 수월관음도와 천수관음도가 포함되었다.

파일:이건희 기증 수월관음도.jpg
파일:이건희수월관음치마.jpg
파일:이건희고려관음베일.jpg

본디 호암미술관에서 간간히 전시에서 공개하던 수월관음도는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보물로 지정된 수월관음도와는 달리 좌우가 잘리고
선재동자도 없는 상태지만, 베일을 비롯하여 관음의 치마 등은 고려시대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파일:고려 천수관음도.jpg

천수관음도는 관음의 대자대비의 힘이 극히 광대함과 최대함을 강조하여 천의 손과 천의 눈을 갖고 있다는 천수관음을 그린 그림인데
이건희 회장이 사후에 기증한 이 고려 천수관음도는 국내에 현존하는 천수관음도 중 제일 오래되고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고려 천수관음도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서 보물로 현재 지정되어 있는 작품이다.

경매에 수월관음도를 비롯한 고려불화가 출품되면 약 20~40억 정도 가격에 매매되며, 보존도가 좋은 경우에는 그 이상 가격에도 입찰된다고 한다. 이렇게 귀한 고려시대의 불화를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9점 이상 소유하였는데, 그 중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만 2점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과연 삼성미술관 리움의 소장품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3]

파일:13세기 수월관음도.jpg

2024년 호암미술관에서 특별전으로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라는 불교미술 전시를 개최했는데, 여기서 삼성가에서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특이하고 귀한 13세기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새로 등장하였다. 본디 1997년 국내 고려불화 연구의 대가인 동국대학교 정우택 교수가 일본 교토의 개인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학술지에 발표한 이 작품은 다른 14세기 고려 수월관음도와는 달리 관음보살이 몸을 틀어 선재동자를 바라보고 있고, 관음보살의 옷차림도 보살이 아닌 부처가 입는 옷의 형식과 유사하여 매우 귀하고 특이한 작품이라 가치가 높다. 특히 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불화는 대부분의 고려불화가 14세기에 제작된 것을 생각하면 매우 희소하다. 이 작품은 전시에서는 개인소장품으로 소개되었다.

파일:13세기관음.jpg
파일:13세기 수월관음도 얼굴.jpg
파일:13세기문양.jpg

하지만 흔히 저작권 때문에 본인들이 소장한 작품의 이미지로 전시실 내 디지털 컨텐츠를 제작하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경향과, 리움미술관의 유투브에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가 해당 전시에 출품된 기타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들은 제외하고 삼성가에서 본디 소장하고 있던 보물로 지정된 수월관음도와 해당 13세기 수월관음도만을 별다른 유리나 보호장비 없이 공기 중에 노출된 상태로 설명하는 영상 컨텐츠를 찍은 것을 통해 이 작품 역시 보물 지정작과 함께 삼성가의 소유가 아닐까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본디 유물은 본래 소장된 소장처가 아닌 다른 기관에 대여되면 매우 까다롭고 엄격한 절차와 관리를 요구받는다. 호암미술관도 이번 불교미술전에서 대여한 유물들의 상태 체크와 빌려온 기관에서 요구한 상세한 조건들을 모두 맞추는 조건으로 유물을 대여받았고, 일본에서 소장한 작품들의 경우 조건이 더욱 까다로워서 6주간만 대여가 되어 전시 중간에 작품이 대거 교체되는 일이 발생했다.)

공식적으로 이 작품이 국내 소장품으로 공인된다면 국내에 소장된 고려 수월관음도는 총 7점이 된다.
리움미술관에 공식적으로 문의한 결과 이 작품은 공식적으로 국내의 개인이 소장한 작품으로 확인되었다.
이 점을 통해서 국내에 현존하는 고려불화가 학계에서도 소수의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해당 작품이 비록 연구자라고 하더라도 작품의 소재지를 파악하는 것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 고려불화가 소장이 되면 좋은 점은 해외 개인이 소장한 작품에 비해 연구자들이 연구하는데 훨씬 편의가 보장이 되고, 대중의 입장에서도 추후 전시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기회의 가능성이 높아져서 훨씬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한번 국내로 환수된 문화유산은 다시는 한국 밖으로 나갈 수 없기에 이제 해당 유물은 다시는 해외로 나갈 일이 없다.

파일:수월관음보살도(보물 제926호).jpg 파일:수월관음도(보물 제1286호).jpg
보물 제926호 보물 제1286호
파일:수월관음도(보물 제1426호).jpg 파일:고려 수월관음보살도(보물 제1903호).jpg
보물 제1426호 보물 제1903호

1.1. 보물 제926호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

관음보살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중생 앞에 나타나 자비를 베푼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보살이다. 가로 53㎝, 세로 86㎝ 크기의 이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이 사는 화려한 정토(淨土)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중앙에 표현한 관음보살은 바위에 왼쪽으로 비스듬히 걸터 앉아 선재동자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관음은 풍만한 얼굴과 섬세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으며, 가는 눈과 작은 입 등에서는 부드러우면서도 근엄한 인상이 풍긴다. 머리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높이 쓰고, 몸에는 투명하고 부드러운 옷과 화려한 팔찌·목걸이 등을 표현하였다. 등 뒤로는 한 쌍의 푸른 대나무가 보이고 바위 끝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그 주위를 둥근 광배(光背)가 둘러싸고 있다. 관음의 발 아래에는 붉고 흰 산호초와 연꽃 그리고 이름 모를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

고려불화는 전 세계에 80여 점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4∼5점만이 전한다. 이 수월관음도는 섬세하고 화려하면서 우아한 종교적인 아름다움과 격식을 지닌 작품으로 고려불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1.2. 보물 제1286호

용인대학교 우학문화재단 소장품

관음보살은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보살로 수월관음도에는 그가 사는 정토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수월관음도는 관음보살이 오른발을 왼쪽무릎에 올린 반가좌 자세로 바위 위에 걸터앉아 선재동자를 굽어보고 있는 모습으로, 『화엄경』의 내용 중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관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주위에 금가루로 원형을 그려 놓았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베일의 바탕과 주름선은 백색으로 그린 다음 금가루에 아교를 섞은 금니로 겹쳐 그렸고 안쪽에는 고려문양의 특징인 연꽃덩쿨무늬를 원안에 넣었다. 입고 있는 치마는 붉은색을 칠하고 백색으로 거북 등껍질 문양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덧그려 문양이 뚜렷하다.

이 그림은 1994년에서 1996년까지 보수작업을 통해 원래의 모습을 거의 되찾은 상태로 색채가 매우 양호하다. 전체적으로 안정되었고 고려 불화의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수월 관음도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으며,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1.3. 보물 제1426호

수월관음도는 비록 조성연대와 작가가 명확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변·퇴색과 수리 및 덧그린 흔적이 엿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 소재의 1323년 작 서구방 필 수월관음도를 위시한 고려시대 14세기 관세음보살도들과 비교해 보면 마치 한 본을 사용하기라도 한 듯 구도와 인물의 형태가 거의 같고,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화사한 색채와 세련되고 우아한 선을 구사한 인물 묘사 등 세부묘사에 있어서도 서로 유사한 점이 엿보여 예술성 높은 동일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화면 구성이 충실하며 표현기법 역시 고려불화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 그리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가 2∼3점에 불과하다는 자료의 희소성, 나아가 이미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두 점의 수월관음도와 비교하여도 질적인 면에서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으로 자료적 가치가 충분하다.

1.4. 보물 제1903호

호림박물관 소장품

고려 수월관음도의 도설내용은 『大方廣佛華嚴經』「入法戒品」에 근거하며, 「입법계품」은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가는 남방순례 중 28번째 관음보살을 방문하여 보살도는 묻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이러한 경전의 내용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것인데, 그림은 관음보살과 선재동자라는 이야기의 두 주인공이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화면의 중심에는 보타락가산 금강암좌에 반가좌 앉은 관음보살을 압도적인 크기로 배치하였고, 우측 하단에는 무릎을 살짝 구부리고 합장하며 공손히 보살도를 묻는 선재동자를 조그맣게 배치하여 두 주인공 사이의 심오한 공간감을 나타내었다. 이외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프를 이루는 청죽·바위·정병 등 경물의 표현과 배치 등은 고려 후기 수월관음도상의 전형을 보여주며, 존상의 형태와 구도 등에서도 고려 불화답게 빈틈없는 짜임새와 균형감을 보여준다. 선묘 역시 굵고 가는 다양한 선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물 흐르듯 유려한 선묘를 보여주고, 화려하고 복잡한 문양을 전신에 걸쳐 시문하였음에도 고귀한 품격을 놓치지 않았으며, 붉은색과 백색, 금색 등 고급스러운 색들이 상호 조화를 이루며 요란하지 않은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출하였다. 이 작품은 비록 박락되고 손상된 부위가 후대에 수리되었지만, 고려 후기 수준 높은 불교회화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판단된다.

2. 조선 시대 수월관음도

파일:수월관음도(조선).jpg

조선 세조 시기에 세조의 편을 든 적개공신 함안군(咸安君)의 부인 윤씨가 왕의 지원하에 발원한 왕실불화이다. 조선시대 수월관음도의 기준이 되는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현재 일본 후쿠이현 쓰루가시 사이후쿠지(西福寺)에 소장되어 있다.

[1] 일본이나 미국, 한국의 개인소장가들이 소장한 작품들까지 포함하면 약 200점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추정도 있다. [2] 예외적으로 삼성미술관 리움에서는 천수관음도가 소장되었다. [3] 이 9점도 리움이나 호암미술관 소장품 도록에 공개된 작품들만 기준으로 추산한 것이며, 공개되지 않은 채 소장한 작품들은 얼마나 더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