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5 12:01:07

소냐 헤니

소냐 헤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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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bordercolor=#ffffff,#1f2023>
역대
'''[[틀:역대 동계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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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스웨덴 국기.svg 마그다 율린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6회 1952 오슬로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캐럴 하이스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11회 1972 삿포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미국 국기.svg 도로시 해밀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15회 1988 캘거리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옥사나 바이울 18회 1998 나가노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미국 국기.svg 사라 휴즈 20회 2006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아라카와 시즈카
21회 2010 밴쿠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22회 2014 소치 파일:러시아 국기.svg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23회 2018 평창 파일:오륜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24회 2022 베이징 파일: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기.svg 안나 셰르바코바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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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회(1906년) ~ 50회(1945년)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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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1회 1906 다보스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2회 1907 빈 파일:영국 국기.svg 마지 시어스
13회 1908 트로파우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4회 1909 부다페스트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5회 1910 베를린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6회 1911 빈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릴리 크론베르거
17회 1912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18회 1913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19회 1914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오피가 본 메러이 호르바트 20회 1915 취소 WWI
21회 1916 취소 WWI 22회 1917 취소 WWI
23회 1918 취소 WWI 24회 1919 취소 WWI
25회 1920 취소 WWI 26회 1921 취소 WWI
27회 1922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28회 1923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29회 1924 맨체스터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0회 1925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1회 1926 스톡홀름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헤르마 스자보 32회 1927 오슬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3회 1928 런던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4회 1929 부다페스트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5회 1930 뉴욕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6회 1931 베를린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7회 1932 몬트리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8회 1933 스톡홀름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39회 1934 오슬로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0회 1935 빈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1회 1936 파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2회 1937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43회 1938 스톡홀름 파일:영국 국기.svg 메건 테일러 44회 1939 프라하 파일:영국 국기.svg 메건 테일러
45회 1940 취소 WWII 46회 1941 취소 WWII
47회 1942 취소 WWII 48회 1943 취소 WWII
49회 1944 취소 WWII 50회 1945 취소 WWII }}}}}}}}}
51회(1946년) ~ 100회(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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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1회 1946 취소 WWII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2회 1947 스톡홀름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3회 1948 다보스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4회 1949 파리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55회 1950 웸블리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56회 1951 밀라노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57회 1952 파리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자케린 두 비에프 58회 1953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59회 1954 오슬로 파일:독일 국기.svg 건디 부쉬 60회 1955 빈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텐리 올브라이트
61회 195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2회 1957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3회 1958 파리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4회 195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캐럴 하이스
65회 1960 밴쿠버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캐럴 하이스 66회 1961 프라하 취소사베나 548 비행기 추락사건
67회 1962 프라하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68회 1963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69회 1964 도르트문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0회 196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캐나다 국기.svg 페트라 버카
71회 1966 다보스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2회 1967 빈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3회 1968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페기 플레밍 74회 1969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5회 1970 류블랴나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6회 1971 리옹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77회 1972 캘거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78회 1973 브라티슬라바 파일:캐나다 국기.svg 카렌 마그누센
79회 1974 뮌헨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80회 1975 콜로라도 스프링스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다이앤 더레이우
81회 1976 예테보리 파일:미국 국기.svg 도로시 해밀 82회 1977 도쿄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83회 1978 오타와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4회 1979 빈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85회 1980 도르트문트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6회 1981 하트퍼드 파일:스위스 국기.svg 데니스 비엘만
87회 1982 코펜하겐 파일:미국 국기.svg 일레인 자약 88회 1983 헬싱키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89회 1984 오타와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0회 1985 도쿄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1회 1986 제네바 파일:미국 국기.svg 데비 토머스 92회 1987 신시내티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3회 1988 부다페스트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4회 1989 파리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이토 미도리
95회 1990 핼리팩스 파일:미국 국기.svg 질 트레나리 96회 1991 뮌헨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97회 1992 오클랜드 파일:미국 국기.svg 크리스티 야마구치 98회 1993 프라하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옥사나 바이울
99회 1994 치바 파일:일본 제국 국기.svg 사토 유카 100회 1995 버밍엄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
101회(1996년)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1회 1996 에드먼턴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2회 1997 로잔 파일:미국 국기.svg 타라 리핀스키
103회 1998 미니애폴리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4회 1999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105회 2000 니스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6회 2001 밴쿠버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7회 2002 나가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08회 2003 워싱턴 D.C.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09회 2004 도르트문트 파일:일본 국기.svg 아라카와 시즈카 110회 2005 모스크바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1회 2006 캘거리 파일:미국 국기.svg 키미 마이즈너 112회 2007 도쿄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113회 2008 예테보리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14회 2009 로스앤젤레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15회 2010 토리노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16회 2011 모스크바 파일:일본 국기.svg 안도 미키
117회 2012 니스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118회 2013 런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119회 2014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120회 2015 상하이 파일:러시아 국기.svg 옐리자베타 툭타미셰바
121회 2016 보스턴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122회 2017 헬싱키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123회 2018 밀라노 파일:캐나다 국기.svg 케이틀린 오스먼드 124회 2019 사이타마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125회 2020 몬트리올 취소 COVID-19 126회 2021 스톡홀름 파일:FSR.svg 안나 셰르바코바
127회 2022 몽펠리에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28회 2023 사이타마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29회 2024 몬트리올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130회 2025 보스턴 파일:국기.svg ?
131회 2026 프라하 파일:국기.svg ? 132회 ? 파일:국기.sv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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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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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회(1930년) ~ 50회(19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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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40회 1930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리치 버거
41회 1931 생모리츠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2회 1932 파리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3회 1933 런던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4회 1934 프라하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5회 1935 생모리츠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6회 1936 베를린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소냐 헤니
47회 1937 프라하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48회 1938 생모리츠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49회 1939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50회 1940 취소 WWII }}}}}}}}}
51회(1941년) ~ 100회(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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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1회 1941 취소 WWII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2회 1942 취소 WWII
53회 1943 취소 WWII 54회 1944 취소 WWII
55회 1945 취소 WWII 56회 1946 취소 WWII
57회 1947 다보스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8회 1948 프라하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1921-1957).svg 바버라 앤 스콧
59회 1949 밀라노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바 폴릭 60회 1950 오슬로 파일:체코 국기.svg 알레나 브르자뇨바
61회 1951 취리히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62회 1952 빈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63회 1953 도르트문트 파일:영국 국기.svg 벌더 오스본 64회 1954 볼자노 파일:독일 국기.svg 건디 부시
65회 1955 부다페스트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한나 에이글 66회 1956 파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잉그리드 벤들
67회 1957 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한나 에이글 68회 1958 브라티슬라바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잉그리드 벤들
69회 1959 다보스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한나 월터 70회 1960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1회 1961 서 베를린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2회 1962 제네바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3회 1963 부다페스트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4회 1964 그르노블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75회 1965 모스크바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레진 하이저 76회 1966 브라티슬라바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레진 하이저
77회 1967 류블랴나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78회 1968 베스테로스 파일:체코 국기.svg 한나 마스코바
79회 1969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80회 1970 레닌그라드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81회 1971 취리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82회 1972 예테보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비아트릭스 슈바
83회 1973 쾰른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84회 1974 자그레브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85회 1975 코펜하겐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86회 1976 제네바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다이앤 데 레이우
87회 1977 헬싱키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8회 1978 스트라스부르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89회 1979 자그레브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90회 1980 예테보리 파일:동독 국기.svg 아네트 푀치
91회 1981 인스브루크 파일:스위스 국기.svg 데니스 비엘만 92회 1982 리옹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클라우디아 크리스토픽스 바인더
93회 1983 도르트문트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4회 1984 부다페스트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5회 1985 예테보리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6회 1986 코펜하겐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7회 1987 사라예보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8회 1988 프라하 파일:동독 국기.svg 카타리나 비트
99회 1989 버밍엄 파일:독일 국기.svg 클라우디아 라이슈트너 100회 1990 레닌그라드 파일:동독 국기.svg 에블린 그로스만 }}}}}}}}}
101회(199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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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1회 1991 소피아 파일:프랑스 국기.svg 수리야 보날리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2회 1992 로잔 파일:프랑스 국기.svg 수리야 보날리
103회 1993 헬싱키 파일:프랑스 국기.svg 수리야 보날리 104회 1994 코펜하겐 파일:프랑스 국기.svg 수리야 보날리
105회 1995 도르트문트 파일:프랑스 국기.svg 수리야 보날리 106회 1996 소피아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07회 1997 파리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08회 1998 밀라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109회 1999 프라하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110회 2000 빈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1회 2001 브라티슬라바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2회 2002 로잔 파일:러시아 국기.svg 마리아 부티르스카야
113회 2003 말뫼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4회 2004 부다페스트 파일:헝가리 국기.svg 율리아 세바스티앙
115회 2005 토리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6회 2006 리옹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117회 2007 바르샤바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118회 2008 자그레브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119회 2009 헬싱키 파일:핀란드 국기.svg 라우라 레피스퇴 120회 2010 탈린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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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회 2017 오스트라바 파일:러시아 국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128회 2018 모스크바 파일:러시아 국기.svg 알리나 자기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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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회 2021 자그레브 취소 COVID-19 132회 2022 탈린 파일:러시아 국기.svg 안나 셰르바코바
133회 2023 에스포 파일:조지아 국기.svg 아나스타샤 구바노바 134회 2024 카우나스 파일:벨기에 국기.svg 루나 헨드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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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선수권 여자 싱글 챔피언
파일:노르웨이 빙상연맹.jpg
인그리드 걸브랜드센
(1924)
소냐 헤니
(1925~1929)
에델 렌덤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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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onja Henie.png
이름 소냐 헤니 (Sonja Henie)
국적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노르웨이
출생 1912년 4월 8일
오슬로
사망 1969년 10월 12일 (향년 57세)
신체 155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페어
파트너
아르네 라이

1. 개요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2.2. 페어 경력2.3. 싱글 경력
3. 은퇴 이후4. 평가5. 나치 논란6. 커리어7. 여담

[clearfix]

1. 개요

노르웨이의 여자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하게 여자 싱글 선수로서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3연패를 달성한 인물이다.[1] 이외에도 남녀 싱글을 통틀어 유일하게 세계선수권 10연패와 유럽선수권 6연패를 달성했다.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아버지 빌헬름 헤니는 젊은 시절 사이클링 세계선수권 우승자로 그의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특히 소냐는 운동신경이 매우 좋아 손꼽힐 정도의 발레, 수영, 스키, 승마, 테니스를 두로 섭렵했고 피겨 스케이팅을 하던 오빠에게 이끌려 피겨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2.2. 페어 경력

아르네 라이와 팀을 결성해 활동했으며 1926년부터 1928년까지 노르웨이선수권 3회 우승, 1926 세계선수권 5위의 경력이 있다.

2.3. 싱글 경력

1924 샤모니 동계올림픽 8위, 1924 세계선수권에서 5위에 오르며 국제 무대 데뷔를 치렀다. 2년 뒤인 1926 세계선수권 은메달을 시작으로 메달 적금에 가입했다. 아닌 게 아니라 1927 세계선수권[2]부터 1936년까지 9년 간 올림픽, 세계선수권, 유럽선수권, 노르웨이선수권에서 계속 1위를 차지했다.

3. 은퇴 이후

1936 세계선수권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세상은 이 대스타를 가만두지 않았다. 은퇴하자마자 할리우드에서 러브 콜이 쇄도를 했던 것. 각종 피겨 영화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당시 할리우드의 대세는 코미디 뮤지컬이었던지라 영화를 찍은 뒤 뮤지컬에도 진출해 호평을 받았다. 그 후에도 전문 기술이 필요한 피겨 스케이팅 관련 영화에 출연하면서 동시에 영화 음악, 제작 등 다방면에 걸쳐 활약과 함께 은퇴 후에도 성공적인 삶을 이어나갔다.

또한 은퇴 이후 아이스 쇼의 역사도 다시 썼다. 초창기의 아이스 쇼는 코믹하거나 기예단 같은 곡예적 기술에 의존했다. 한마디로 그냥 얼음 위에서 하는 서커스였다. 따라서 위에서 말했듯 소냐 헤니 이전의 엄격하고 예의 바른 피겨 스케이팅은 대중들이 보고 즐기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당연히 경기와 아이스 쇼는 별개였다. 소냐 헤니는 본인이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피겨를 아이스 쇼와 접목해 얼음 위의 서커스였던 아이스 쇼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렸으며 오늘날의 아이스 쇼의 원형을 만든 것도 소냐 헤니다.

1938년에는 노르웨이 왕궁으로부터 26세의 나이로 최연소 기사작위를 수여받았고 2차 세계 대전 전 이미 연 수입이 200만 달러에 달했다.[3]따지면 위에서 말한 대로 아이스 쇼의 변혁를 비롯한 피겨의 대중화에 힘썼으며 1956년 할리우드에서 은퇴한 뒤에는 세번째 남편 온스타와 고향인 오슬로에 돌아와 오슬로 근교에 대규모 현대 미술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으로 훌륭한 미술관인 '헤니 온스타 미술관' 을 건립했고 말년에는 백혈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현대 미술 후원 활동을 하다가 1969년 파리에서 오슬로로 가는 비행 도중 5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녀의 남편과 함께 건립한 헤니 온스타 미술관을 내려보는 언덕에 남편과 같이 안장되었으며 사후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과 세계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 국제 여성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모두 이름이 실렸다.

4. 평가

소냐 헤니를 빼놓고는 피겨 스케이팅 역사의 설명이 불가능하며 여자 피겨 스케이팅으로 좁히면 아예 얘기가 불가능하다. 그녀가 대단한 건 단지 올림픽 3연패나 월드 10연패 같은 결과표를 놓고만 말하는 게 아니다. 소냐 헤니는 피겨 초기의 '남성 위주의 엄격하고 예의 바른 스포츠'였던 모습을 아름다움이 중심이 되는 스포츠로 바꿨다.[4]

단순히 빙판 위에서 곡예를 부리는 정도였던 피겨 스케이팅 발레의 유연하고 부드러운 표현을 접목시키고 극적인 손짓, 몸짓, 표정을 더해 피겨 스케이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으며 스키의 스피디한 움직임을 더해 피겨 선수들의 활동반경을 은반 전체로 넓혀 피겨 기술 전반의 혁신을 가져왔다.

채점에서야 기술적인 부분이 더 높다고 한들 당장 관중들의 눈에 실감나게 와닿는 건 아름다움(예술성)이 더 클 수밖에 없고 유연하고 부드러운 예술성 높은 표현은 여성 선수들이 더 표현하기 더 유리하고 더 수려하니 남성 중심적이었던 피겨 스케이팅이 점차 여성 중심으로 변해가게 한 중심에 바로 그녀가 있었다.

소냐 헤니는 뭔가를 표현하려 한다는 걸 느껴진다. 물론 영상 간 시대 차이도 있고 지금 현재 피겨 스케이팅과는 많이 차이가 있어 이게 뭔가 싶기도 하겠지만 많은 올드 피겨인들이 지금도 소냐 헤니를 말할 때 가슴 벅차하며 그녀의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혹은 TV로 본 것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파일:attachment/Sonja_Henie2.jpg
그리고 여자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의 미니스커트 경기복도 그녀가 처음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 이전에 다 저런 크고 펄럭이는 긴 치마였다. 현대 경영에서 White Skate라고 하면 기존의 개념을 뒤엎는 혁신을 의미하는데, 이 단어가 바로 소냐 헤니에게서 왔다. 현대 피겨의 큰 원형은 소냐 헤니가 다 닦아놓은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나치 논란

선수로는 도무지 결점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그녀에게도 지금까지 논란이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나치와 관련한 이야기들로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동계올림픽의 참가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 지도층 인사들과 쌓은 친분 관계는 그녀가 종종 독일 베를린에서 공연을 하며 히틀러와 많은 독일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심으며 상당한 흥행 수입을 독일 나치 시기에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그녀는 공연에 참석한 히틀러를 나치식 경례로 맞이한 사실과[5]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베르히테스가튼에 위치한 히틀러의 별장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의 참전에 아낌없는 후원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를 점령한 나치에 대항하는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의 지원을 거절[6]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가 논쟁의 중심이었으며 노르웨이를 점령한 나치가 그녀의 노르웨이 재산에 대해서는 압수나 몰수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나치는 그녀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많은 노르웨이인들과 노르웨이계 미국인 사회에서 소외되었다.

하지만 1953년과 1955년 공연을 위해 노르웨이를 방문했을 때 많은 노르웨이인들이 그녀를 환영해주었다. 나치는 그녀를 단지 세계적인 대스타로서 존중해주고 소냐도 그에 맞는 예로 대한 것 뿐이라는 이들도 있으나 노르웨이 레지스탕스의 지원 거절은 어떻게든 변명할 방법이 없다. 다만 그렇다고 나치즘을 추종하거나 나치에 협력하는 등 본격적인 매국노 짓을 한 적은 없기에 상술됐듯 노르웨이에서도 결국은 자국이 배출한 위대한 스포츠 스타로 기억되고 있다.

6. 커리어

올림픽
금메달 1928 생모리츠 여자 싱글
금메달 1932 레이크플래시드 여자 싱글
금메달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여자 싱글
세계선수권
금메달 1927 오슬로 여자 싱글
금메달 1928 런던 여자 싱글
금메달 1929 부다페스트 여자 싱글
금메달 1930 뉴욕 여자 싱글
금메달 1931 베를린 여자 싱글
금메달 1932 몬트리올 여자 싱글
금메달 1933 스톡홀름 여자 싱글
금메달 1934 오슬로 여자 싱글
금메달 1935 빈 여자 싱글
금메달 1936 파리 여자 싱글
은메달 1926 스톡홀름 여자 싱글
유럽선수권
금메달 1931 생모리츠 여자 싱글
금메달 1932 파리 여자 싱글
금메달 1933 런던 여자 싱글
금메달 1934 프라하 여자 싱글
금메달 1935 생모리츠 여자 싱글
금메달 1936 베를린 여자 싱글

싱글 경력
대회 22–23 23–24 24–25 25–26 26–27 27–28 28–29 29–30 30–31 31–32 32–33 33–34 34–35 35–36
올림픽 8th 1st 1st 1st
세계선수권 5th 2nd 1st 1st 1st 1st 1st 1st 1st 1st 1st 1st
유럽선수권 1st 1st 1st 1st 1st 1st
노르웨이선수권 1st 1st 1st 1st 1st 1st 1st
페어 경력[7]
세계선수권 5th
노르웨이선수권 1st 1st 1st

7. 여담

  • 아무리 뛰어난 피겨 스케이팅 선수도 소냐 헤니와 감히 비교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커리어와 당대의 임팩트, 후대에 미친 영향력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신성불가침의 위치에 있는 단 한명의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8] 그 선수가 단순히 소냐 헤니보다 뛰어나냐 떨어지냐를 떠나서 피겨 역사에서 둘도 없을 전설이기에 그 예를 갖추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소냐 헤니와 함께 언급된다는 거 자체가 이미 그 선수가 세계 최정상급이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는 얘기다. 심지어 비교한다고 쳐도 다 하나같이 "○○○와 소냐 헤니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녀는 지금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라는 뉘앙스이다.
  • 자신의 본업인 스포츠는 물론 영화, 음악, 미술까지 거의 예체능 전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동하고 활동한 모든 분야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은 전무후무한 인물이라서 나치에 관련된 오점이 너무나도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살아오며 오점 하나 안 남긴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나치에 관련된 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신음한 유럽인들, 특히 그녀의 모국인 노르웨이인들 관점에서는 오점 하나 수준으로 치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한국에서의 서정주 같은 이미지는 아니고, 돈을 위해 나치에 가서 공연을 하긴 했어도 나치를 찬양하거나 협력한 적은 없기에 이기적이다, 정의를 외면했다라는 비판은 받아도 매국노라는 평가는 없다. 애초에 위의 나치 관련 문단에서도 공연하고 돈벌었다,팬미팅 했다라는 내용 외에는 없다. 결론적으로 노르웨이 현지인들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그녀를 자국의 자랑으로 생각한다.
  • 여성 최초 러츠 및 악셀 점프 성공자로 피겨 관련 역사책들에 기록돼있는데 그녀의 아이스 쇼에 3년 간 참가했던 미국에 거주하는 노장 스케이터에 의하면 소냐의 악셀 점프는 프리 로테이션[9]이 심한 살코에 가깝다고 한다. 하지만 프리 로테이션은 구 채점제 시절 여자 피겨에선 관행적인 것이었고[10] 소냐 헤니가 활동한 당시는 적어도 여성 피겨 스케이팅에 있어선 프리 로테이션이라는 개념조차 희소했을 때라 노장 스케이터의 말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묻혔다. 더군다나 그녀가 아이스 쇼의 개념과 위상을 홀로 뒤바꾸던 때는 은퇴 후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대단한 거다.
  • 그녀가 당시 관행이던 검정 스케이트와 긴 치마 대신 흰 스케이트와 짧은 치마를 입고 경기한 데서 '화이트 스케이트'(White Skate)라는 말이 유래했으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의미한다고 한다.
  • 예쁘고 귀여운 얼굴[11]에 어렸을 적부터 160cm라는 크지 않은 키지만 길고 가는 팔다리를 위시로 한 완벽한 신체비율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며 미니스커트를 최초로 경기복에 도입한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만 패션 센스 또한 상당히 세련되어 노르웨이는 물론이고 전세계의 대스타였다.
  •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2번의 결혼 실패 후 노르웨이의 선박업자이며 예술 후원자로 유명한 닐스 온스타(Niels Onstad)와 3번째 결혼이 그나마 안정된 결혼 생활이었다.
  • 2020년 3월 26일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퀸 오브 아이스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1] 여자 싱글에서 3연패는 고사하고 2연패를 달성한 선수도 카타리나 비트 뿐이다. 다만 남자 싱글은 사정이 좀 다른데 3연패 달성 선수로 일리스 그라프스트룀, 2연패 달성 선수로 카를 섀퍼, 딕 버튼, 하뉴 유즈루가 있다. 페어에서는 이리나 로드니나가 3연패를 달성했다 [2]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한 헤르마 스자보를 꺾었는데 당시 노르웨이 심판 3명, 독일 심판 1명, 오스트리아 심판 1명이 있었다. 이중 노르웨이인 3명은 헤니,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은 스자보의 손을 들어주어 논란이 있었다. 어쩌면 피겨판은 초창기부터 썩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헤니는 다음 시즌에 다시 대결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이미 올림픽 금메달, 세계선수권 금메달 5개와 페어 세계선수권 금메달 2개를 갖고 있던 스자보는 그 대회를 끝으로 은퇴해버렸다. [3] 인플레이션을 고려하지 않고 한화로 따지면 약 24억 원이었다. 인플레이션을 따지면 연 수입이 수백억에 달했다는 뜻이다. [4] 당시 빙상계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이었냐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보다 더 오래 된 유럽선수권이 1931년이 되어서야 여자 싱글을 창설했다. [5] 다만 나치식 경례는 본래 로마식 경례로서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다가 2차 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까지도 미군이 전사한 전우에게 종종 행하는 등 원래는 딱히 금기가 아니었다. 전후 특히 68 이후로 나치즘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이 본격화 된 이후에 금기시 된 것. [6] 이게 가장 치명적이다. 그동안 나치에게 받아온 환대가 신경쓰였다 할지라도 차라리 노 코멘트로 일관하거나 침묵했었으면 좋았을 지도 모른다. [7] 아르네 나이와의 경력이다. [8] 개인사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피겨 스케이터로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나치와 관련해서는 얄쨜없이 까인다. [9] 점프가 시작되기 전에 미리 몸이나 발을 틀어서 반 바퀴 이상 회전을 넣고 점프하는 것이다. [10] 사실 이토 미도리 이전의 여자 선수들한테 프리 로테이션을 가지고 딴지를 걸면 대부분의 선수들이 해당된다. [11] 심지어 엄청난 동안으로 프로필 사진은 30대 중반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