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22:46:45

사토시 나카모토

사토시 나카모토
サトシ・ナカモト| Satoshi Nakamoto
<colbgcolor=#000><colcolor=#fff> 이름 Satoshi Nakamoto
사토시 나카모토
일본식 이름 サトシ・ナカモト
[ruby(中, ruby=なか)][ruby(本, ruby=もと)][ruby(哲, ruby=さと)][ruby(史, ruby=し)](비공식 표기)
거주 국가 불명[1]
국적 불명[2]
출생 불명[3]
연구분야 암호학, 컴퓨터과학, 금융공학
업적 블록체인 기술 창시
최초의 개방형 암호화폐 창시
비트코인 네트워크 창시
Bitcoin Core 창시
자산 최소 100만 BTC[4]
링크 P2P foundation

1. 개요2. 상세3. 정체 추측
3.1. 도리언 사토시 나카모토3.2. 할 토마스 핀니 2세]3.3. 닉 자보3.4. 모치즈키 신이치3.5. 크레이그 라이트, 데이브 클라이먼3.6. 제임스 빌랄 칼리드 칸(James Bilal Khalid Caan)3.7. 일론 머스크3.8. 레니 세서만3.9. 아담 백(Adam Back)
4. 기타
4.1. 딜레마4.2. 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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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초의 암호화폐 비트코인을 창시한 신원 미상의 인물.

2. 상세

2007년, 비트코인 코드작성을 시작으로 2008년 10월에 "Bitcoin: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이라는 제목의 9쪽짜리 논문을 암호기술 메일링 리스트(The Cryptography Mailing List)에 올렸고, 2009년도에 Bitcoin Core 프로그램이 공개되며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되었다.

위치 추적이 어려운 토르 등을 이용해 비트코인 활동을 했다, 언어는 영어만을 사용했는데, 사실 사토시가 활동한 사이트는 영어권 사이트였고,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으며 구태여 영어 외의 언어를 사용할만한 일도 없었기 때문에, 일본어를 쓰지 않았던 것은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

한자명은 비록 밝히지 않았지만 일단 가장 일반적으로 인명에 사용되는 한자를 통해 '中本哲史'라는 표기로 사용한다. 일본 이름에서는 '사토시'가 성씨로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나카모토는 흔하게 있는 성씨인 점, 그리고 동양권은 영어로 이름을 소개할 때 성씨와 이름을 바꾸어 쓰기 때문에 본래대로 읽는다면 나카모토 사토시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본인이 사토시 나카모토로 사용했기에 이 문서에서는 존중 차원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부른다.

Bitcoin Core도 사토시 나카모토가 최초 개발자다.

그는 2010년까지 다른 개발진들과 직접 비트코인 소스코드를 수정하였고, 2011년에 비트코인 개발을 이어나갈 후계자를 선정한 뒤 떠났다.

2021년 2월을 기준으로 세계 27위의 부자이다. # 이 재산 규모는 오로지 그가 갖고 있는 비트코인으로만 계산된 것이다.

참고로 2009년 1월 3일 사토시 나카모토 혼자서 비트코인 첫 채굴을 시작[5]하였다. 이후 보름 정도 당대 유명 암호학자였던 할 핀니와 함께 15일 정도의 디버그 작업[6]을 하였고, 그 뒤부터 다른 이들도 채굴을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사토시가 가진 지갑들[7]에 있는 비트코인을 단 한 번도 판 적이 없다.[8] 즉 사토시는 자기가 만든 비트코인의 값어치가 수천만 배로 늘어나고, 90% 이상의 하락폭을 수차례 겪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출금하지 않고 수 년간 계속해서 채굴만 했다는 것이다. 이는 사토시가 비트코인의 미래를 다른 수많은 학자들과는 달리 굉장히 낙관적으로 판단했으며,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강심장이라는 결론이 나온다.[9][10] 오히려 이에 따라 암호화폐 유저나 투자자들은 "비트코인이 진짜 멸망의 길을 걷는다면 그것은 사토시의 지갑에서 비트코인이 빠져나갔을 때"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2024년 기준으로 밝혀진 것만 최소 100만 BTC(약 100조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이는 비트코인을 가장 많이 보유한 암호화폐 투자회사 그레이스케일 트러스트가 보유한 65만여개의 1.7배에 이르고, 전문 암호화폐 투자회사는 아니지만 엄청난 양을 보유하고 있는 MicroStrategy가 보유한 10만 5천개의 10배 이상이다.

3. 정체 추측

비트코인 시스템을 발명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누군지 그 정체를 밝히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양한 음모론이 만들어졌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P2P재단 웹 사이트에 등록해 놓은 정보를 보면 2024년 기준 49세이며, 일본에 거주한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그는 일본어를 전혀 사용한 적이 없으므로 나이, 거주지, 이름 등 어떤 것도 진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정도 영향력이면 전세계의 정보기관들이 탐낼 만한데 아직까지도 영국 MI6, 중국 MSS, 러시아 SVR, 대한민국 NIS, 일본 CIRO 등은 고사하고 심지어는 모사드 CIA(!!) 조차도 결국 끝내 정체를 밝혀내지 못했다.[12]

반대로 한참 전에 이미 사망한 인물이라는 사망설도 있다. 비트코인 공개 이후 10여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는데 전 세계가 가장 관심갖는 사람의 정체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라는 것은 자신을 각국의 정보기관도 모를 정도로 철저하게 잘 숨기고 있다는 가능성보다는, 정보기관들의 본격적 추적 이전 시점[13]에 이미 질병이나 사고로 죽었기에 추가 활동을 전혀 안 해서 못 찾는 것이거나, 이미 죽은 걸 정보기관이 확인했기에 공개하지 않는 것일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알려지다시피 사토시의 조력자 할 핀니나 데이브 클라이만 역시 이미 사망했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용하는 영어표현중 미국식 영어표현과 영국식 영어표현이 혼재되어있었으며 특히 그가 2년 동안에 작업했다고 주장하는 비트코인 프로그래밍 작업은 한 사람이 수행하기에는 힘든 작업이라는 점으로 보아 사토시 나카모토가 개인이 아닌 '집단'이라는 추측도 있다. 또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일본식 이름을 사용하며 영국식 영어를 쓰다가 미국식 영어를 가끔 섞어 쓰는 것이 의도적으로 신분을 감추기 위한 일종의 속임수일 수도 있다.[14]

사토시 나카모토의 이름의 유래가 사실은 ' Samsung'[15], ' Toshiba', ' Nakamichi', ' Motorola'로, 4개 기업 이름의 조합으로 상기한 네 기업이 비트코인을 개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억지로 끼워 맞추기식에 가깝다.

SBS 시사 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는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에 대한 제보를 받았었다. 이것을 찾아내면 그알 팀은 CNN, BBC, NHK도 못해낸 세계적인 탐정방송 팀으로 주목받을 정도로 큰 소재. 1000여 개 소재 중에서 비교하자면 나머지 모든 소재를 합친 것보다 국제적으로 관심도 높은 이슈이기도 하다.

코인시장이 상상 이상으로 커지면서 오히려 철저하게 익명성을 유지해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그가 가지고 있는 100만 비트코인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기 위해 목숨까지 노릴 사람들이 세상에 널렸으니, 살고 싶다면 익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지만, 억측이기도 하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이 천문학적인 금액인 것은 맞지만, 해당 논리대로라면 세계적인 대부호들은 전부 신변의 안전을 위해 공식석상에 나서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직 생존해있고, 의도적으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면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비트코인의 신뢰도와 시세를 유지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수록 익명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는 비트코인의 신뢰도는 계속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토시 나카모토가 만약 살아 있는 개인이라면, 비트코인의 위상이 그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때까지 절대로 공공에 모습을 비추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정체를 드러내거나 그의 코인 지갑에서 거래가 발생하는 순간, 비트코인이 다단계 스캠과 비슷해지며 신뢰도가 급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16]

반대로 말하자면 만약 사토시 나카모토가 사망했고, 이 사실이 언론에 공표된다면 그에게는 아쉬운 이야기일 수 있지만 비트코인의 현금 가치는 올라갈 것이다. 가장 많은 물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물량이 사망으로 인해 아예 묶여버리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에서의 자사주 소각을 빗대어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물론 가족이나 다른 사람이 암호키 등을 이어받는다고 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리하자면, 여러 추측에도 불구하고 현재 정체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3.1. 도리언 사토시 나카모토

2014년에 뉴스위크에서 나카모토 사토시의 정체에 관한 특종 기사를 올렸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미국에 거주하는 일본계 미국인이고 Caltech을 졸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이름은 도리언 프렌티스 사토시 나카모토(Dorian Prentice Satoshi Nakamoto, 1949 ~ )[17]이며 자신이 비트코인의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밝혔다.

하지만 뉴스위크의 보도 직후 AP통신은 인터뷰 당사자인 나카모토가 자신은 실제 비트코인 창시자가 아니며 영어실력 부족으로 인터뷰를 잘못 알아들었다는 해명 기사를 올렸다. 그는 인터뷰에 게재된 자신의 가족, 이력 등에 대한 얘기는 옳지만 비트코인과는 무관하다고 밝혔고, 뉴스위크와의 인터뷰 3주 전에 아들에게서 처음으로 비트코인이 무엇인가를 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뉴스위크가 보도한 "더 이상 그것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는 말은 뉴스위크에서 자신의 말을 오역한 결과라고 밝혔다.

더불어, 2009년 P2P foundation에 비트코인을 설명하는 게시글을 올린 사토시 나카모토의 계정이 직접 "I am not Dorian Nakamoto."라는 내용의 댓글을 같은 계정으로 작성한 것이 확인되었다. 여담으로 이 댓글 이후 사토시 나카모토는 모든 활동을 중단했다가 7년만인 2021년 12월 24일에 활동을 재개했다. #. 이것으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는 다시 미궁 속으로 빠진 상태. 근데 이 또한 본인이 1인 다역을 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확실치 않다. 여담으로 도리안 나카모토가 뉴스위크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모금운동을 했는데 수많은 비트코인러들이 도리안 나카모토에게 비트코인을 하나씩 기부해 풍족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3.2. 할 토마스 핀니 2세[18]]

할 핀니

3.3. 닉 자보

세계 최초로 스마트 계약을 발명한 컴퓨터과학자, 암호학자이다. 그는 '비트골드'라는 암호화폐를 1998년에 고안했으나 당시의 시대적, 기술적 문제로 인해 실제로 구현되지는 못했다.
"나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것과 금을 채굴하는 어려움 사이의 유사점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퍼즐을 푸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은 가치있는 행위로 여겨질 수 있다. 그 솔루션의 문제를 푼 누군가에게 대가로 디지털 화폐를 보상할 수 있다."
- 닉 자보

이렇듯 초기 암호화폐 개발과 비트코인 탄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인물로 여러 사람들에게서 사토시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금융 저자인 도미닉 프리스비(Dominic Frisby)는 닉 자보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며 "나는 전 세계에 이러한 지식의 특이성뿐만 아니라 넓이를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그 사람이 바로 닉 자보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자보는 "나는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오해받는데 익숙하며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다"라고 부인했다.

여담으로 닉 자보의 업적들은 훗날 러시아 출신 프로그래머 비탈릭 부테린에게 영향을 끼쳤고 당시 19세였던 비탈릭이 스마트 계약을 블록체인에 구현해 탄생한 암호화폐가 이더리움이다.

3.4. 모치즈키 신이치[19]

월간 수학동아 2013년 12월호에서는 일본 교토대학의 수학교수 모치즈키 신이치로 추정했다.

모치즈키 교수는 암호학 컴퓨터과학에 조예가 깊은 점, 2012년 말 경의 자신의 홈페이지에 비트코인의 기본 원리와 비슷한 세계적인 수학 난제 'ABC 추측'을 증명한 논문의 내용이 비트코인의 기본 원리와 비슷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모치즈키 교수가 학술지가 아닌 개인 홈페이지에 논문을 발표했다는 점과, ABC 추측을 증명하면서 '우주 간 기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창시했다는 점이 비트코인 체계를 발표한 논문의 내용과 흡사하다고 한다. 그러나 모치즈키 본인은 한 신문을 통해 자신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라고 밝혔다.

3.5. 크레이그 라이트, 데이브 클라이먼

IT 잡지 와이어드와 기즈모도에서 호주 국적의 크레이그 스티븐 라이트(Craig Steven Wright)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했다. Wired/ Gizmodo 관련 기사(BBC) 한국어로의 인용 기사(ZDNet Korea) 2015년 12월 9일, 와이어드 매거진에서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되는 두 명의 신원이 공개되었다. *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정된 두 사람은 바로 호주 시드니에 거주 중인 암호학자 크레이그 라이트와 그의 친구인 미국의 법의학자 데이브 클라이먼.

2016년 5월 2일에는 크레이그 라이트 자신이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인정했다. 라이트 본인은 2009년의 비트코인 최초 거래 시에 사토시가 사용한 암호블록을 시연했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그게 그냥 운좋게 거래 내역의 HEX값만 맞으면 되는 거라(...) 실제로 뭔가 증명이 된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얽혀있는 탈세의혹에서 빠져나갈 요량으로 사토시 나카모토를 사칭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라이트는 이후 추가 증거들을 공개하여 이러한 의혹들을 일축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돌연 어차피 공개해도 믿지 않는다면서 증명을 포기해버렸다.

사실 진짜 사토시 나카모토임을 증명하는 법은 매우 간단하다. 본인임을 증명하려면 그냥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에서 다른 지갑으로 0.00000001BTC[20]라도 전송하면 되는 것이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을 갖고 있다는 증명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크레이그는 그걸 안하고 쓸데없는 행동을 한 것이며, 그렇기에 당연히 이 사람이 진짜라고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2023년 3월 14일, 영국 고등법원의 제임스 멜러 판사는 라이트가 비트코인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나카모토 사토시'가 아니라고 판결했다.

3.6. 제임스 빌랄 칼리드 칸(James Bilal Khalid Caan)

2019년 8월 20일 뜬금없이 자기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파키스탄에서 대학 석사학위까지 받고 영국으로 이주한 파키스탄계 영국인으로 컴퓨터 전공자이며 비트코인 92만개를 가지고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마스터키를 세탁소(!)에서 분실했다고 한다. 비트코인의 유래 등 여러가지를 자신의 과거나 파키스탄 민족 종교 등과 연계해서 주장했으나 내용이 이상하고, 비트코인 키를 잃어버려 쪽팔려서 잠적했다가(...) 책임감때문에 얼굴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하나도 증명한게 없다. 신뢰도는 크레이그 라이트보다 더 떨어진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1975년생이라 했지만, 칸 본인은 1978년생이라 한다. 기타 사토시 나카모토가 주장한 것과 자신의 신상정보가 다른 부분들은 모든게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해놓고 본인지갑 접근 툴을 다 잃어버리면 더욱 신뢰성만 떨어진다. 몇년전 사망한 할 핀니와 비트코인코어 작업을 동업한 얘기를 하는데 차라리 그 할 핀니가 사토시 나카모토라고 믿는 게 나을 지경. 비트코인 V1이라는 새로운 암호화폐를 2020년에서 2021년 사이에 만들 생각이라는 글까지 쓰고 유튜브채널까지 만들어 영상을 올리며 그 계획, 즉 새 암호화폐에 대한 백서를 독자들에게 기다리라고 한 뒤 쓰거나 새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출시하지는 않고 온라인에서 다시 잠적했다. 참고로 파키스탄과 유럽 이외의 장소, 즉 미국에는 가본 적 없고 영국에서만 살고 있다고 말했다. 부친은 젊었을때 파키스탄의 은행원이었다고 한다.

3.7. 일론 머스크

일각에서는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가 사실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니냐는 주장을 한다. 일론 머스크는 성공한 IT 기업가 출신으로 암호학과 경제학에 능통할 뿐 아니라, 억만장자이기 때문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현금화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계속 비트코인에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러한 추측이 나오게 하는 배경이 된다.[21]

대외적으로 머스크와 비트코인의 관련성이 생긴 최초의 시발점은 2017년이다. SpaceX의 전 인턴직원이었던 사힐 굽타(Sahil Gupta)가 비트코인을 개발한 사토시 나카모토가 머스크일 것이라는 글을 작성했다. 근거로는 " 페이팔이라는 세계 최초의 인터넷 은행을 만들었고 2000년대 초반 도리안 사토시 나카모토와 서로 이웃관계여서 이름을 따오기도 쉬웠고, 경제, 수학, 고급 프로그래밍에 조예가 깊으며 암호학 논문에도 관심이 많았다"는 것이었다. 굽타는 "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은행 간 신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스크가 비트코인을 개발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22] 이에 머스크는 사토시 나카모토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으며 "몇 년 전 친구가 선물로 약간의 비트코인을 줬는데 잃어버린 게 전부다"라고 말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특별한 증거도 없고, 농담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일론 머스크 본인이 자신을 사토시 나카모토로 추측하는 주장들에 대해 근거 없는 소리라며 직접 일축하여 논란을 종결했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일론 머스크는 가장 가능성 없는 후보인 게, 일단 사토시 나카모토 정신 즉 탈중앙화 정신과 비트코인이 절대 투기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23]는 철학과 정반대로 행동하여 투기선동을 이끌며[24] 사토시의 비트코인 철학을 위협하는 태도만을 보이고 있으며, 그가 2021년 도지코인 어그로를 끌기 전인 2020년 12월[25]에 이미 본인이 트위터에서 "내가 비트코인이 뭔지 왜 관심을 두지 않았을까? 비트코인 초기에 참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같은 어그로 트윗을 날리기 시작했고, 비트코인에 빨리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번 표현했었기 때문이다. 많은 대중들이 2021년에 그가 테슬라 비트코인 결제 도입으로 암호화폐세계에 등장한 줄 알고 있기에 오해가 있지만, 그는 비트코인에 대해 아쉬움만 표현하던 사람이다.

2022년 3월에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SAmsung, TOSHIba, NAKAmichi, MOTOrola 네 회사의 사명을 업로드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끼워맞추기에 불과하며 머스크가 이 트윗을 올린 목적도 불명이다. # 해당목적이 btcs라는 사토시팀의 두번째 암호화폐를 겨냥한거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해당 코인은 꾸준히 바이낸스와 일론머스크를 언급했는데 바이낸스는 협력관계임을 밝혔다.

3.8. 레니 세서만

HBO 다큐멘터리인 "머니 일렉트릭: 비트코인 미스터리"[26] 를 앞두고 "폴리마켓"에서 사토시의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2011년에 사망한 미국 프로그래머 레니 새서만이 사토시 나카모토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 사토시 나카모토가 2011년 4월에 마지막 메일을 보내고 사라졌는데 레니 세서만은 2011년 7월에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또한 세서만은 개인 프라이버시 강화 기술에 기여했고, 오픈소스에 확고한 신념이 있었는데 그런점이 비트코인의 메커니즘과 닮아있다는 주장이다. 정작 HBO 다큐 "머니 일렉트릭"은 피터 토드(Peter Todd)를 사토시로 지목했다. 대부분의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들이 근거없다고 비판하는 가운데 토드 본인도 “나는 사토시가 아니다” 고 부인했다.
폴리마켓, HBO 방영 ‘사토시 나카모토’ 유력 후보로 ‘랜 새서먼’ 지목

3.9. 아담 백(Adam Back)

사토시가 처음 연락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본인이 사토시가 아니라고 확인해주었다.
HBO의 다큐멘터리 "머니 일렉트릭"에도 출연.

4. 기타

4.1. 딜레마

2020년 5월 21일 블록체인을 모니터링하는 @whale_alert라는 트위터 계정에서 2009년 2월에 채굴된 40BTC가 다른 계정으로 이체되었다는 트윗이 올라왔다. 이 결과 비트코인은 일시적으로 4% 하락했다.

이는 사람들이 사토시가 비트코인을 파는 것을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즉, 사토시는 수십조 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한 세계 20위권의 부자이지만 정작 자신이 비트코인을 매각하면 비트코인의 가치가 하루아침에 대폭락하여 물거품이 될 수 있는 딜레마존에 놓여 있는 것이다.[27]

다만 그동안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여러개이며 사실 확실한 것도 있지만 추정인 것도 많은데, 옮겨진 BTC가 비트코인 역사의 극초기인 2009년에 채굴된 것은 맞지만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에서 나오는 고유한 패턴[28]이 해당 지갑에서는 나오지 않는다면서 사토시 나카모토가 아닐 것이라고 한다. # 그러니 그냥 초기 채굴자 중 한 명이 비트코인을 10년 넘게 안 건드리고 살다가, 긴 세월 후 큰돈이 필요해져서 전송한 걸 수도 있는 것이다.

의외로 2009년~2010년에 채굴된 비트코인 중 거래가 안되는 비트코인의 양은 매우 많다. 비트코인 코어의 구조가 초기에 많은 양을 채굴하게 되어 있어서 2년이면 2100만개 중 500만개 이상인 25퍼센트나 채굴된 시기이기 때문이고, 시간 내에서는 적은 분실[29] 비율이 나온다 해도 엄청난 양이 분실되기 때문이다.

4.2. 그 밖에

바티칸 기적 조사관의 작가 후지키 린이 소설 투고 사이트 카쿠요무(カクヨム)에 2019년 2월부터 올리고 있는 단편 《 투명인간 살인사건(透明人間殺人事件)》에서는 로렌 디루카가 사용하는 가명 중 하나로 나온다. 가상화폐를 발명해 벌어들인 돈이 한 국가의 예산을 넘길 수준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사카시 나카모토, 나토시 사카모토 등 이름 오자 표기가 자주 나오는 편이다. 당장 사카시 나카모토로 검색되는 기사들이 있을 정도.

2021년 9월 17일, 헝가리 암호화폐 단체들이 만든 사토시의 흉상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원에 설치되었다. #



[1] 프로필에는 일본인이라고 적혀있지만 일본 시간대로 오후 2시~8시에 인터넷 활동이 급감하여 수면 시간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일본에는 거주하지 않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2] 본인은 일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이름과 할 핀니가 유서에서 "일본 혈통의 지적인 청년'을 상대하는 것 같았다"라고 언급한 것 외에는 외에는 일본어를 구사하는 모습을 보였다거나, 일본의 표현을 인용한다거나 하는 등의 일본인으로 추측할만한 근거가 거의 없어서 일본인을 자칭한 것일 뿐 일본인은 아니라는 추측도 있다. 또한 사토시가 작성한 소스코드 주석과 포럼의 글 등에 영국식 영어표현(grey·colour·bloody hard 등)이 자주 보이는 것과, 제네시스 블록에 영국의 언론 타임지 1면을 암호화하며 인용한 것을 미루어보아 영국인이라는 설도 있다. 물론 위와 같은 영국식 영어표현 역시 영국인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이 아니고, 타임지의 경우에는 비영어권에서도 유명한 언론이기 때문에 이를 인용했다고 영국인이라고 하는 것은 근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자신을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철저히 숨기고 활동했기 때문에 어느 추론에도 확실한 근거가 없어 국적이 불명으로 남아있다. [3] 언론에서는 주로 1975년생이라고 추측한다. [4] 2024년 11월 기준 최소 120조 원 이상 [5] 이 최초의 블록을 제네시스 블록이라고 부른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제네시스 블록과 함께 처음 만든 자기의 최초 지갑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아서 딱 첫 채굴인 비트코인 50개가 있는채로 두었고 퍼블릭 키는 공개된 상황이었는데, 훗날 사토시 나카모토를 존경하고 추종하는 사람들이 그가 나타나지 않게 된 뒤로 10여년간 계속 그 지갑에다가 존경의 의미로 비트코인을 0.1~0.00001개까지 다양하게 보내기 시작했고, 현재는 67.몇개의 비트코인이 들어있다. 약간 민간신앙의 돌탑 쌓는 심리와 비슷하다. [6] 디버깅을 하면서는 단둘이서만 계속 채굴과 전송을 테스트개념으로 했었다. 처음에 다른 컴퓨터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을 보면서 몇몇 디버깅해야 할 오류를 보고, 채굴은 커녕 비트코인포럼에서 비트코인과 사토시 나카모토를 까기만 하고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비트코인의 어마어마한 암호학적 가치를 정확히 인지한 암호학 전문가 할 핀니 혼자 적극적으로 도왔다. 처음에는 퍼블릭키-프라이빗키 시스템을 구동하는 코딩에 약간 문제가 있어서 할 핀니가 사토시 나카모토에게 이메일로 조언하여 고치게 한걸로 알려진다. 이후 그게 문제없이 해결됐는지 보려고 비트코인 최초의 전송을 사토시 나카모토가 할 핀니에게 했던 것이다. 당시 할 핀니는 게임베타버전 돌리듯이 70개가 넘는 정도의 비트코인 블록을 채굴하며, 문제되는 부분을 모두 사토시에게 조언하였다. [7] 한 개의 지갑에 넣은 것이 아니라 십여개의 지갑을 만들어 분산 저금했다. 하지만 사토시 나카모토가 첫 채굴을 하면서 수많은 익명의 채굴자들이 등장했고 할 핀니나 훗날의 laszlo 같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중에게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으므로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들을 전부다 명확히 구별할 수는 없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당시 액션을 통해 명확하게 추정되는 지갑은 9개 정도가 있다. 2020년에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으로 추정되던 지갑에서 10년만에 거액의 비트코인이 출금되어 생존설이 나돌았으나, 이후 오히려 그 사람은 사토시가 아니라 그냥 정체를 알 수 없는 초기 채굴자들 중 한명이었다고 암호화폐 세계에서는 결론내렸다. 어떤 사연으로 프라이빗키를 써놓은걸 잃어버렸다가 세월이 흘러 찾았다거나 하는 경우로 간주된다. (할 핀니도 비트코인에서 손 놓은 뒤, 2011년에서야 자신이 채굴한 비트코인을 찾아서 자녀들에게 전송하였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있다.)지금도 사토시 나카모토소유로 추정되는 것 이외에도 장기간 출금 안된 비트코인 지갑들은 꽤 많이 존재하고, 주인이 프라이빗키를 잃어버린 죽은 지갑이라고도 불리지만, 주인이 오랜 세월이 지나 프라이빗키를 찾을 가능성은 있다는 대표 사례이다. [8] 초창기에 할 핀니(사토시에 이어 비트코인 채굴에 두 번째로 참여)에게 시범적으로 10BTC를 보낸 것외엔 아예 지갑에서 꺼내지도 않았다. [9] 초기 비트코인은 화폐나 투자수단이라기보단 일부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의 놀이(?)에 가까웠다. 그런데 장난삼아 5000원을 주고 모은 장난감 지폐가 갑자기 10억원이나 100억원으로 상승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놀이가 아닐 것이다. 심지어 몇 달 뒤 이것이 7천만원으로 급락했고, 시간이 지나 11억원이라는 최고점이 오는 등 급락이 심해 저점에서의 고통, 고점에서의 현금화 욕구를 반복해서 겪는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특히 세계의 경제 전문가들)이 이 장난감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이다. 상황이 이런데 안전한 현금자산으로 바꾸겠는가, 아니면 손해를 보면서도 몇 년에 걸쳐 돈과 시간을 써가며 장난감 지폐를 계속 수집하겠는가? [10] 다만 암호키나 비트코인을 저장한 하드웨어 지갑을 분실했을 가능성도 높다. 장난으로 비트코인 몇 개 캐놓거나 다크웹에서 사놓고 암호키, 하드, 혹은 다크웹 아이디를 분실해서 떡상한 후에 안타까워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꽤 많다. [11] 사토시가 사용했던 컴퓨터에서 채굴된 것으로 추정되는 양이며 이보다 많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12]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정보기관이 반드시 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사람에 대한 정보란 정보기관 입장에서 확실한 대어(大魚)이다. 찾아낸다면 그 자체로 정보기관의 실력을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에 각국 정보기관이 사토시 나카모토를 찾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근데 사실 이렇게 긴 세월 동안 정보기관이 찾지 못했다는 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긴 하다. 아니면 이미 찾았지만 비트코인 시장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굳이 공개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후술하겠지만 암호화폐 시장 초기에 채굴된, 즉 사토시 나카모토의 지갑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르는 40BTC가 다른 계정으로 이체되었다는 것만으로 가격이 4% 하락했는데 개발자의 정체가 알려지는 순간 무슨 일이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13] 초기 비트코인은 딥웹용 거래수단이나 범죄용 화폐 정도 외의 효용이 없었고 이후에도 게임아이템 거래용 정도 화폐로 이용되곤 했기에 사토시 나카모토 역시 세계 여러 정부 측에 딥웹 운영자 정도의 관심 외에 큰 관심을 받지도 않았다. 2011년 비트코인 백서를 중국어로 배포하고 채굴사업에 뛰어든 우지한을 필두로 중국이 채굴시장의 중심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조금씩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2012년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와의 소송으로 유명한 하버드 쌍둥이들의 등장 등 여러 이슈가 나오며 2013년부터는 전세계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 이후부터는 범죄 중에서도 세계규모의 범죄인 불법 마약 거래에서 대규모 거래들이 비트코인으로 발생하며 FBI와 CIA에서 큰 관심을 받게 되었다. [14] 딥웹의 위키백과인 히든위키만 봐도 수많은 트릭으로 자신을 감추라고 친절히 가르치고 있다. 딥웹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신분감추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다만 여러 영어 화자들도 국제교류가 활성화하며 영국식, 미국식, 호주식, 인도식, 크리올(...)식 표현을 아무렇게나 섞어 쓰는 일이 점점 흔해지고 있다는 점은 감안할 필요가 있다. [15] ' Sanyo'라는 설도 있다. 사토시가 이름 그대로 일본 출신이라면 이 설이 더 가능성이 높다. [16] 비탈릭 부테린도 비슷한 이유로 사적인 이익을 위해 이더리움을 매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하고 다닌다. [17] 출생지는 일본 오이타현 벳푸시 [18] Harold Thomas Finney II, 1956 ~ 201 [19] 望月新一, 1969 ~ [20] 비트코인의 가치가 너무 커지면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10-8BTC를 일종의 비공식 액면분할 성격으로 사토시(약자로 sat)라 칭하곤 한다. 만약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의 바람대로 비트코인이 기축통화가 된다면 대한민국 국민이 1개씩 가지는 것조차 불가능한 희귀템이 되어버렸을 BTC 단위가 아니라 사토시 단위가 실질적인 일상 속 거래 단위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갑 소프트웨어의 단위만 적절히 업데이트해주면 2022년 현재도 여러 주요국 통화들에 비해 화폐단위에 0이 많이 붙는 편인 대한민국 원화와 비슷한 감으로 계산할 수 있다. [21] 그가 테슬라 자동차를 암호화폐로 결제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비트코인이 폭등하는 등 코인 시장이 크게 요동쳤다. [22] 사토시가 비트코인 백서를 작성하였을 당시엔, 미 금융위기 1년전이었던 2007년이였기 때문이다. [23] 위키리크스 비트코인 사태때도 사토시 나카모토는 부정적이었고 적극적으로 말렸었다. 그는 순수하게 비트코인이 화폐가 되기를 원했기에, 투기수단은 용납할 수 없었다. 시세차익에 대한 탐욕만으로 사고파는게 심해지면 화폐의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었다. [24] 주식으로 치면 자본시장법 위반이며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는 더 큰 중범죄로 처벌될 행동이다. 암호화폐에 증권거래법 같은 체계적인 법이 없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국에서 특정 주식회사를 두고 일론 머스크처럼 글을 쓰고 행동하면 감옥에서 10년 넘게 살아야 할 가능성이 높다. [25] 당시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 직후, 즉 트럼프의 낙선이 확정적으로 가면서부터 갑자기 비트코인이 20퍼센트 이상 폭등하면서 역대 최고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26] 관련기사 (“사토시의 비트코인은 절대 반지…그의 정체는?” 다큐 감독이 밝히는 촬영 뒷얘기) [27] 이는 주식도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서, 대주주가 명확한 이유없이 자신의 지분을 매도하면 주가가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대주주들이 블록딜로 거래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비트코인의 문제는 주식보다 등락폭이 훨씬 크다는 거지만. [28] 초기 채굴때 코인베이스 트랜잭션에 암호화된 문구를 종종 넣었다. 하지만 100% 다 넣은 건 분명 아니기 때문에 절대적 시그니처 패턴이라거나 무조건 있어야만 사토시 나카모토이고 아니면 무조건 아니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29] 퍼블릭키나 프라이빗키를 분실하기 쉬웠으며, 하드디스크를 분실하거나 파손될 경우 영영 찾을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