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 | |||
출생 | 미상 | ||
사망 | 1396년 12월 또는 1397년 1월 (향년 ?세) | ||
왈라키아 공국 | |||
재위기간 | 왈라키아 보이보드 | ||
1394년 ~ 1396년 또는 139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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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부모 |
아버지:
단 1세? 어머니: 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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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단 2세? | ||
가문 | 다니슈티 가문? | ||
종교 | 기독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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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왈라키아 공국 제7대 보이보드.2. 생애
기원은 불분명하다. 일부 연대기에서는 왈라키아 귀족 출신이었다고 하고, 또다른 기록에서는 단 1세의 아들이자 단 2세의 형제라고 한다. 1394년 가을 오스만 술탄국이 술탄 바예지트 1세의 지휘하에 왈라키아 공국을 대대적으로 공격하고 미르체아 1세가 헝가리 왕국으로 망명한 뒤 보이보드에 선임되었다. 1395년 7월, 지기스문트가 이끄는 헝가리 원정대는 미르체아 1세의 지원을 받아 투르누 요새를 점령한 뒤 자신에게 충성하는 수비대를 남겼다. 이후 미르체아 1세는 지기스문트의 지원을 받으며 블라드 1세와 항전했다. 헝가리 국왕 지기스문트는 1395년 말에 왈라키아의 통치자 블라드가 친오스만 정책을 펼치는 걸 성토하는 문서를 발행했다. 하지만 지기스문트는 그해 12월 28일에 블라드에게 보이보드 칭호를 수여한다는 문서를 발행했다.1396년 5월 28일자 문서에서, 블라드 1세는 폴란드 왕국에 다양한 특권을 부여한다는 문서를 발행했다. 이는 블라드 1세가 폴란드 왕국과 접촉해 상당한 지원을 받아냈음을 암시한다. 1396년 9월 25일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참패 후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십자군이 다뉴브 강을 건너려 할 때, 블라드 1세는 이들을 습격해 사로잡은 뒤 몸값을 지불할 수 있는 자들만 살려주고 나머지는 처형했다. 그 해 10월, 트란실바니아의 보이보드인 오스토야의 스티보르가 이끄는 군대에게 참패해 생포되었고, 포로 신세로 지내다가 1396년 12월 또는 1397년 1월에 사망했다. 그 후 미르체아 1세가 1397년 1월 왈라키아로 돌아와서 보이보드로 복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