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1 03:22:39

베르나르 라마

베르나르 라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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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파일:B.Lama_Profile.jpg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이름 베르나르 라마
Bernard Lama
본명 베르나르 파스칼 모리스 라마
Bernard Pascal Maurice Lama
출생 1963년 4월 7일 ([age(1963-04-07)]세)
프랑스 앵드르에루아르주 생생포리앵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프랑스령 기아나|
파일:프랑스령 기아나 비공식 상징기.svg
프랑스령 기아나]])
신체 183cm
직업 축구 선수 ( 골키퍼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선수 LOSC 릴 (1981~1989)
SC 아브빌 (1982~1983 / 임대)
라싱 베상콩 (1983~1984 / 임대)
FC 메츠 (1989~1990)
스타드 브레스트 29 (1990~1991)
RC 랑스 (1991~1992)
파리 생제르맹 (1992~2000)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1997~1998 / 임대)
스타드 렌 (2000~2001)
감독 케냐 축구 국가대표팀 (2006)
국가대표 44경기 ( 프랑스 / 1993~2000)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기록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4.3. 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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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B.Lama_PSG.jpg

프랑스의 前 축구선수.

90년대 초중반 리그앙 최고의 골키퍼이자 파리 생제르맹 역사상 위대한 수호신으로 평가받고 있다.

2. 클럽 경력

프랑스에서 태어난 라마는 어린시절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령 기아나로 가게 된다. 1981년, 그는 축구선수의 길을 걷기위해 아버지의 동의없이 자신이 태어난 프랑스의 대도시로 떠난다. 이후 LOSC 릴과 계약을 맺은 라마는 SC 아브빌로 임대를 떠나지만 단 한경기도 출전하지 못했고 라싱 베상콩으로 다시 임대를 떠난다. 베상콩에서는 몇 차례 출전 기회를 가졌고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다. 베상콩에서의 성공적인 임대생활로 그는 임대 복귀 후 릴의 주전으로 올라섰고 1989년 5월 31일, 8:0으로 이긴 라발과의 경기에서는 골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확고한 1번은 아니었기 때문에 라마는 릴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릴을 떠나 FC 메츠 스타드 브레스트 29에서 1년간 리그 1 전 경기를 뛰며 주전으로 활약했고 다시 1년만에 RC 랑스로 이적 후 리그에서 돋보적인 골키퍼로 거듭나며 맹활약을 한다. 랑스에서의 퍼포먼스를 눈여겨본 자국 명문팀 파리 생제르맹 FC는 그에게 5년 계약을 제의했고 그는 얼른 수락한다.

당시 프랑스의 전설적인 골키퍼였던 조엘 바츠의 대체자로 영입된 라마의 임무는 막중했지만 그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PSG에서 확고한 넘버원으로 올라섰다. 첫 시즌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많은 이들의 기대에 충족했고 쿠프 드 프랑스를 들어올리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라마는 대표팀에도 소집되며 뢰 블레의 넘버원으로 올라선다.

다음 시즌에도 변함없이 든든하게 골문을 지키며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이후에도 1995년에 쿠프 드 프랑스 우승과 1996년에는 UEFA 컵 위너스 컵을 들어올리며 파리의 넘버원으로 활약했다. 이 시기에 그는 돋보적인 리그앙 최고의 골키퍼였고 UEFA 유로 1996에도 주전으로 참가하여 준결승을 이끌며 전성기를 보낸다.

1996-97 시즌을 앞두고 라 리가의 거함 FC 바르셀로나가 그에게 제의했지만 라마는 팀에 남기로 결정한다. 9월 15일 AS 칸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선방 후 무릎 부상을 입으며 잠시 결장한다. 복귀 후 다시 주전으로 활약하며 리그 32경기 27실점 14개의 클린시트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그러다 1997년 2월 대마초 소지 혐의를 받게 됐고 이후 5월 초 FFF 위원회에 소환된 뒤 출전정지 징계를 받게된다. 이로 인해 PSG는 급하게 새로운 골키퍼를 물색해야 했고 크리스트퍼 르볼을 영입해야만 했다.

전반기 동안 경기에 나설수 없었던 라마는 리저브팀과 함께 훈련했고 월드컵을 반년 앞둔 상황에서 경기 출전이 필요했던 그는 12월 21일, 잉글랜드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단기임대 계약을 맺었다. 1998년 3월 2일, 28라운드 아스날 FC와의 경기에서 첫 출전을 한 라마는 실전감각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클레스를 입증했다. 이후 해머스에서 잔여경기를 모두 선발로 출전하며 반개월 동안 리그 12경기, FA컵 1경기에 출전했다.

월드컵을 마치고 복귀한 라마는 시즌을 앞두고 팀과 재계약을 했다. 임대 복귀 후 맞은 1999-00 시즌 동안 주전으로 괜찮은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시즌 종료 후 팀의 세대교체 정책으로 인해 27살의 리오넬 레티지에게 주전을 내줘야만 했다.

세대교체 일환으로 PSG를 나온 37살의 라마는 스타드 렌으로 팀을 옮긴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렌에서 나이를 잊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이후 그는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브라질 클럽에서 뛰고 싶다는 열망을 표현했으나 불행히도 어떤 구단도 그와 계약하는 데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끝내 은퇴를 선언하게 됐다.

3. 국가대표 경력

파일:B.Lama_National.jpg

출중한 실력에도 대표팀의 암흑기로 인해 조명받지 못한 골키퍼

늦게 빛을 본 선수여서 1993년이 돼서야 30살의 나이에 국가대표에 소집될 수 있었다. 1993년 2월 17일, 미국 월드컵 예선 이스라엘과의 월드컵 예선경기에서 대표팀 첫 경기를 치룬 그는 클린시트까지 기록하며 4:0 대승을 이끌었다. 이후 PSG에서 맹활약으로 뢰 블레에서도 주전으로 거듭났지만 정작 이 시기는 프랑스 축구의 대표적인 암흑기였고 팀은 예선에서 졸전을 거듭하며 월드컵 자력 진출이 무산되는 상황에 놓인다. 결국 비겨도 올라가는 불가리아와의 최종경기에서 추가시간 역전골을 먹고 패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만다.

에릭 칸토나, 에릭 디 메코, 장피에르 파팽, 다비드 지놀라와 함께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 중 한명으로서 한동안 메이저대회와 인연이 없나 싶었지만 에메 자케의 부임 이후에는 추락하던 대표팀이 살아나며 UEFA 유로 1996 본선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선 전 경기를 출전하며 팀의 준결승 진출에 기여한다.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의 멤버로 참가한 라마는 조국의 역사적인 우승을 함께 했지만 정작 주전은 파비앙 바르테즈였다.[1]

UEFA 유로 2000에 참가하는 최종명단에도 포함되었으나 여전히 후보 키퍼였다. 3차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오래간만에 국제 메이저대회 경기에 출전했으나 2:3으로 패했다. 그러나 이미 2승을 거두고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한 터라 별 문제는 없었다. 이후 팀은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서 연장전반 13분, 트레제게의 골든골로 승리하며 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 하는 영예를 누린다. 그리고 라마는 월드컵과 유로 우승팀의 일원으로 대표팀 경력을 마무리했다.

전성기를 맞이하며 뢰 블레의 넘버원으로 활약하던 90년대 초중반에는 팀의 암흑기였으며 이후 월드컵, 유로 우승을 거두고 부활에 성공한 90년대 후반~00년대 초반에는 이미 전성기 내려온 시점이었고 후배에게 밀려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한 불운의 골키퍼로 요약할 수 있겠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 프랑스 풋볼 선정 최고의 프랑스 축구선수 : 1994
  • 옹즈 드 옹즈: 1993, 1994, 1995

4.3. 수훈



[1] 심지어 이 대회에서 야신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