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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삼니움 전쟁 시기인 기원전 309년, 로마군이 삼니움 편에 가담한 에트루리아군을 격파한 전투.2. 상세
기원전 310년,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페루시아 전투에서 에트루리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다. 수트리움 공방전을 치르고 있던 다른 에트루리아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퇴각했고, 에트루리아 연맹의 페루시아, 코르토나, 아레티움이 평화 협약을 요청했다. 로마는 이들과 30년 휴전을 맺기로 했다. 그러나 다른 에트루리아 도시 국가들은 군대 징집에 응하지 않는 자는 신의 처벌을 영원히 받을 것이라고 선포해가며 병력을 최대한 끌어모은 뒤 로마에 대한 항전을 이어갔다.에트루리아인들이 또다시 대군을 모집했다는 소식을 접한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는 전직 집정관 자격으로 에트루리아군을 물리치러 출진했다.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양측은 티베르 강변의 바디모 호수에서 격돌했다. 전장이 매우 비좁았기 때문에, 보통 양 측면에 배치되었던 기병대는 이번만큼은 후방에서 대기해야 했다. 또한 양자는 서로에게 자신들의 용맹을 보여주기 위해 투창, 투석 무기를 교환하지 않고 곧바로 돌진했다고 한다.
로마군은 1열에 이어 2열과 3열을 잇따라 투입했지만, 이번만큼은 반드시 이기겠다는 에트루리아군의 투지가 워낙 강렬했던 터라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했다. 온종일 치러진 격전으로 병사들이 탈진하자, 룰리아누스는 후방에 얌전히 있던 기병들에게 말에서 내린 뒤 최전선에 나아가라고 명령했다. 기병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도보로 수많은 시체와 값옷, 방패 등을 밟으며 달려들었고, 로마인들 만큼이나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던 에트루리아군은 또다시 적이 몰려오자 전의를 잃고 퇴각했다.
기원전 308년, 집정관 푸블리우스 데키우스 무스가 에트루리아 원정을 감행했다. 그는 해안 도시 트라퀼리니와 40년 휴전 협정을 맺은 뒤 티베르 계곡에서 볼시니의 여러 요충지를 점령하고 파괴했다. 이에 전의를 상실한 에트루리아인들은 평화 협약을 맺어달라고 호소했다. 데키우스는 자기 선에서 평화 협약을 맺기를 거부하면서도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군에 1년 급여를 지급하고 모든 군인에게 튜닉 2벌을 제공하는 대가로 1년 휴전에 동의했다. 그러나 데키우스가 임무를 완수하고 로마로 돌아갈 때, 움브리아인들이 그의 진군로를 틀어막고 나머지 병력으로 로마를 급습하려 했다. 이를 알게 된 원로원이 삼니움과의 전쟁에 투입된 룰리아누스를 소환해 움브리아인을 막게 하면서 메바니아 전투가 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