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01 17:39:35

라우툴레 전투


삼니움 전쟁의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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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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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2차 삼니움 전쟁 시기인 기원전 315년, 로마군이 삼니움군에게 패배한 전투.

2. 상세

기원전 316년, 삼니움족과 휴전 중이던[1] 로마 공화국은 독재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마메르키누스 프리베르나스의 주도하에 삼니움과 동맹을 맺은 사티쿨라를 포위 공격했다. 삼니움은 사티쿨라를 구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로마군은 삼니움군과 사티쿨라 수비대의 합동 공격을 물리쳤다. 삼니움은 로마군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로마의 동맹시인 플리스티카를 공격했으나 공략에 실패했고, 재차 사티쿨라를 구하려 했으나 격퇴되었다.

결국 기원전 315년 사티쿨라가 로마군에 함락되자, 삼니움인들은 재차 플리스티카를 습격해 며칠만에 함락시켰다. 이후 리리스 강변의 소라 시를 통제하고 현지 주민들을 징발하여 군대 규모를 늘렸다. 당시 기원전 315년 집정관 루키우스 파피리우스 쿠르소르와 퀸투스 푸블리우스 필로가 이끄는 로마군은 각각 아풀리아와 캄파니아로 진군해 삼니움족을 물리치려 했고, 새 독재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룰리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사티쿨라를 공략한 뒤 소라로 진군했다. 로마군이 한창 소라를 포위하고 있을 때, 정찰병들이 대규모 삼니움군이 필로의 군대를 격파했거나 회피하고 라티움으로 진격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파비우스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라우툴레에서 이들을 저지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한 기록에서는 양측이 하루종일 싸웠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고 하며, 다른 기록에서는 기병장관 퀸투스 아울리우스 케레타누스가 이끄는 기병대가 격파당했고 케레타누스는 적장을 손수 죽이는 등 분전했으나 끝내 전사했다고 한다. 디오도로스 시켈로스에 따르면, 로마군은 라우툴레 전투에서 참패했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리비우스가 인용한 무승부를 거뒀다는 기록은 왜곡되었으며 실제로는 참패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삼니움족이 승리한 후, 아우소네스, 아우소나, 민투르노 등 리리스 강변의 세 개 도시들과 캄파티아와 라티움 경계에 위치한 베스키아는 삼니움의 편으로 돌아섰다. 이에 로마는 아우소나에 군대를 파견했고, 몇몇 귀족들이 로마군과 내통하여 성문을 열어준 덕분에 별다른 피해 없이 공략한 뒤 대량 학살을 자행했다. 리비우스에 따르면, 학살이 끝난 뒤 아우소나에 남은 인구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 후 루케리아가 로마 수비대를 삼니움인들에게 넘기고 투항했지만 인근에 있던 로마군에게 도로 공략당한 뒤, 그곳 주민들을 역시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팔려간 후 2,500명 가량의 로마 시민들이 루케리아로 이주되었다.

기원전 314년, 카푸아의 몇몇 귀족들이 로마의 지배에 불만을 품고 삼니움에게 캄파니아로 쳐들어와 준다면 호응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혹한 삼니움인들은 캄파니아로 진군했고, 집정관 마르쿠스 포에텔리우스 리보 가이우스 술피키우스 롱구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이를 저지하면서 타라키나 전투가 벌어졌다.
[1] 티투스 리비우스 파타비누스에 따르면, 로마는 카우디움 협곡 전투 때 삼니움족의 강요로 맺어진 평화 협약을 거부하고 전쟁을 이어가 삼니움족을 연이어 격파한 뒤 기원전 318년에 2년간 휴전 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하지만 에드워드 토고 살몬은 로마군이 기원전 316년에 적대 행위가 재개될 때까지 카우디눔 평화 협약을 존중했으며 기원전 321년과 기원전 316년 사이의 로마와 삼니움의 전쟁은 리비우스가 순전히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