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08:30:32

민병렬

파일:민병렬진보당.jpg
<colbgcolor=#e60020><colcolor=#ffffff> 이름 민병렬(閔丙烈)
본관 여흥 민씨[1]
출생 1961년 9월 9일[2]
부산광역시
본적 전라남도 화순군[3][4]
학력 서울대학교 ( 사회학 / 학사)
소속

혈액형 B형
홈페이지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2.1. 학창 시절2.2. 정계 입문 이전2.3. 정계 입문 이후
3. 여담4.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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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2. 생애

1961년 9월 9일 부산광역시에서 아버지 민완식(閔玩植, 1928. 12. 20 ~ 2017. 1. 29)[5]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규남(李圭南, 1930. 8. 4 ~ 1998. 3. 20)[6] 사이의 1남 5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2.1. 학창 시절

재수를 해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며, 1982년에는 거기에서 학회장까지 지냈다. 하지만, 민주화시위로 구속되었고, 다시 훈방이 되었지만, 1985년 서울대학교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재차 구속되었다. 결국 제적을 2번 당한 결과 1989년이 되어서야 졸업을 했다.

2.2. 정계 입문 이전

1988년 부산광역시 사상구에 있는 사상공단에 용접공으로 입사했고, 1990년에는 부산 노동단체협의회에서 노동자를 상담하기도 했다.

이후 1995년에는 5.18학살자 전원처벌 특별법(5.18 특별법) 제정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그리고 이로부터 1년 뒤 김영삼 정부이 노동법을 날치기 통과를 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법 날치기 원천무효 범시민대책위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한 적 있다.

2.3. 정계 입문 이후

1997년에 당시 국민승리21의 대통령 후보였던 권영길의 부산선대본 기획위원장 자리에서 활동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보법 철폐, 기본권 보장등 많은 활동을 했다. 그리고 1999년, 민주노동당 창당 발기인으로서 참가함으로써 본격적으로 시작을 하게 된다. 이후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부위원장을 지내고 2009년부터 위원장을 맡았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 진구청장 후보로 출마를 했지만 12.4%(19,287표)를 받고 3위로 낙선했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부산진구 을 후보로 출마했지만 이때는 민주당이 워낙 죽을 쓴 선거였기에, 5위로 낙선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를 바꿔, 통합진보당 당적으로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출마를 했지만 이재균 후보와 불과 3600여표 차이로 낙선을 했다. 만약 3700표만 더 얻었더라면 부산에서 최초로 진보정당 당선자가 나왔을 것이다. 득표율은 37.6%.[7][8]

2012년 9월 25일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선언을 하였으나 이정희 후보에게 밀렸다. 그리고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또 영도구 후보로 출마했지만 이번에는 12.3%를 받아 3위로 낙선했다.[9]

최근까지 민중의 꿈[10] 부산대표를 지냈다.

3. 여담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6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부산 부산진구청장

[[민주노동당|
파일:민주노동당 흰색 로고타입.svg
]]
19,287 (12.41%) 낙선(3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부산진 을 3,810 (6.15%) 낙선(5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영도

[[통합진보당|
파일:통합진보당 흰색 로고타입.svg
]]
23,718 (37.64%) 낙선(2위)
2013 상반기 재보궐선거
( 국회의원)
5,090 (11.95%) 낙선(3위)


[1] 의암공파 30세 병(丙) 항렬. [2] 음력 7월 30일. [3] 깃발사건 다큐멘터리의 나레이션 12초 쯤에서 전라남도 화순군이 민병렬의 고향이라고 소개했다. # [4] 조부 민영근(閔泳根)과 아버지 민완식(閔玩植, 초명 민남식閔南植)의 묘소가 전라남도 화순군 춘양면 용두리에 있다. [5] 초명 민남식(閔南植). [6] 이흥신(李興信)의 딸이다. [7] 부산은 민주당계 정당이 선전하는 지역이지, 울산광역시, 창원시 성산구, 거제시, 고양시, 인천광역시 동구, 남동구처럼 정의당 등 진보 정당이 강한 지역이 아니다. 기껏해야 한진중공업이 있는 영도구에서 그나마 강세이다, 민병렬이 영도구에 나온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8] 당시 통합진보당 당선자가 선전한 곳이 부산에 한지역이 더 있었는데, 바로 고창권이 있는 해운대구- 기장군 갑. 물론 이름과 다르게 기장군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2019년 현재는 해운대구 을) [9] 여담으로 이때 2위는 바로 김비오다. [10] 새민중정당 창당준비위원회 전신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