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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누미디아 왕국 2-1대 군주 ⵎⵉⵙⵉⵒⵙⴰ | 미킵사 |
||
제호 | 한국어 | 미킵사 |
베르베르어 | ⵎⵉⵙⵉⵒⵙⴰ | |
라틴어 | Micipsa | |
가족 |
마시니사(아버지) 굴루사(동생) 마스타나발(동생) 아드헤르발(장남) 히엠프살 1세(차남) 유구르타(조카) 가우다(조카) |
|
생몰 년도 | 미상 ~ 기원전 118년 | |
재위 기간 | 기원전 148년~기원전 1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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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통합 누미디아 왕국 2-1대 군주.2. 생애
누미디아의 통합과 번영을 이끌어내며 54년간 집권한 명군 마시니사의 장남이다. 두 아우 굴루사, 마스타나발이 있었다. 기원전 151년, 그는 동생과 함께 카르타고를 방문하여 카르타고에서 추방되어 누미디아 궁정에 머물고 있는 친 누미디아 정치인 40명이 도시에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단호히 거부당하고 도시에서 쫓겨났다. 이때 동생 굴루사는 삼니움인 하밀카르라는 사람에게 공격을 받았다. 이리하여 양자의 갈등은 폭발했고, 카르타고군이 누미디아를 전격 침공했으나 대패했다. 로마는 카르타고가 허락없이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조약을 어긴 것에 분노하여 카르타고를 상대로 제3차 포에니 전쟁을 벌였다.기원전 148년 아버지 마시니사가 사망했다. 마시니사는 사망하기 전에 세 아들에게 영토를 삼분한다는 유언을 남겼고,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를 유언 집행인으로 지정했다. 왕권 역시 세 왕자에게 분배되었다. 그는 수도 키르타의 통치를 맡았고, 굴루사는 군대의 지휘권을 맡았으며, 마스타나발은 법률 집행과 봉신 부족 지도자들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두 아우가 기원전 140년이 지나기 전에 잇따라 사망하면서, 그는 누미디아의 단독 군주가 되었다.
그는 마스타나발과 함께 카르타고를 공격하는 로마군을 지원했다. 기원전 146년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카르타고를 파괴한 후, 루시타니아 전쟁을 치르고 있던 로마 장군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밀리우스 세르빌리아누스가 전투 코끼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이를 받아들여 기원전 142년까지 코끼리 10마리와 300명의 누미디아 기병을 보냈다. 스트라본에 따르면, 그는 아프리카 경작지의 양을 늘리도록 노력했으며, 수도 키르타를 대대적으로 확장해 10,000명의 기병과 2배의 보병을 자체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거대한 규모로 육성했다고 한다. 이 도시에는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다.
기원전 134년, 그는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누만티아 전쟁을 치르고 있던 히스파니아로 아우 마스타나발의 아들 유구르타를 보냈다. 로마 역사가 가이우스 살루스티우스 크리스푸스에 따르면, 그는 영특하고 야망이 많은 조카가 두 아들 아드헤르발과 히엠프살 1세의 앞날에 장애를 끼칠 것을 우려했고, 유구르타가 이 전쟁에서 죽기를 바랐다고 한다. 그러나 유구르타는 전쟁에서 맹활약하여 아이밀리아누스의 극찬을 받고 로마 장군들의 인망을 샀다. 아이밀리아누스는 미킵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훌륭한 젊은이를 친척으로 둔 당신과 그의 할아버지 마시니사는 진실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구르타를 어찌할 방도가 없던 그는 기원전 121년 계획을 변경해 유구르타를 양자로 삼고 자녀들과 공동 상속인으로 삼았다. 기원전 118년 사망했고, 두 아들 아드헤르발과 히엠프살 1세, 그리고 양자 유구르타가 왕국을 삼분할했다. 그러나 그의 예견대로 유구르타는 기원전 112년까지 온갖 공작을 벌인 끝에 두 사람을 죽여버리고 누미디아를 독차지했다. 이 과정에서 로마와 마찰을 벌이면서, 유구르타 전쟁이 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