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3 05:45:15

미즈키 이치로

미즈키 이치로
水木一郎|Ichiro Mizuki
파일:미즈키 이치로.jpg
본명 [ruby(早川 俊夫, ruby=はやかわ としお)] (하야카와 토시오, Toshio Hayakawa)
출생 1948년 1월 7일
도쿄도 세타가야구
사망 2022년 12월 6일 (향년 74세)
국적 [[틀:깃발|]][[틀:깃발|]][[연합군 점령하 일본|
연합군 점령하 일본
]] →
직업 가수
활동 시기 1968년[1] - 2022년
배우자 쿠죠 마리코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생애2.2. 사망
3. 주제가를 부른 작품들4. 이야깃거리
4.1. 애니송 부흥의 일등공신4.2. '아니키(アニキ)'4.3. 노익장 게이머4.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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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가수, 성우, 배우. 도쿄도 세타가야구 출신. 이름만으로는 잘 모르겠다 했던 사람들은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주제가를 불렀던 사람이라고 하면 연배 있는 사람들은 다 알 정도였다. 별명은 아니키(형님). 취미는 게임하기.[2]

사사키 이사오[3], 호리에 미츠코, 카게야마 히로노부[4] 등과 더불어 일본을 대표한 애니송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손꼽혔다.

2. 생애 및 활동 내역

2.1. 생애

유년시절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 어려서 부터 음악을 자주 접할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그중에 특히나 재즈를 많이 듣고자랐으며. 성장한 후 재즈 카페에 들락거리던 중 더 드리프터즈의 2대째 리더였던 사쿠라이 테루오를 만나, 그의 추천으로 가수를 지망하게 된 이후 외국 드라마의 일본판 주제가 등을 간간히 불렀지만 이 곡들은 일반 매장에 판매되지 않았고, 1968년 '그대에게 바치는 나의 노래'로 정식 레코드 데뷔를 치렀다. 그러나 저조한 성적과 매니저와의 불화 등으로 일시적으로 가수를 은퇴하였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캬바레나 나이트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가수를 그만두고 작곡가로 전향하겠다고 결심하려던 중, 니혼 컬럼비아(現 컬럼비아 뮤직 엔터테인먼트)에서 호리에 미츠코의 담당 프로듀서를 맡던 키무라 히데토시 디렉터의 제안으로 '원시소년 류'(1971)라는 TV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담당한 것을 계기로 이후 애니송계로 뛰어들었다.[5] 그리고 1971년부터 4년간, 150곡의 애니송을 불렀는데 그만큼 당시에 애니메이션이 많이 방송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셈.[6]

그리고 1973년 일본 애니메이션계는 물론, 한국 애니메이션계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된 기념비적인 작품, 마징가 Z의 여러 곡를 부르면서 그의 인지도를 거장으로 우뚝 서게 해주었고, 당시 애니송은 5만장 정도 팔리면 성공이라는 인식이 컸던 당시 마징가 Z의 OST는 무려 70만 장을 파는 대히트를 기록했다.[7]

애니송 가수로 활동하던 1976년에서 1979년 3년간 NHK의 최장수 아동 교육 프로그램인 엄마랑 함께(おかあさんといっしょ)에서 노래담당으로 노래를 하기도 했다는 특이한 경력이 있다.


1998년 진 겟타로보 세계 최후의 날 1기 오프닝 '지금이 그때다'.[8]

51세인 1999년 8월 30~31일 당시 그가 출연했던 '쾌진격 TV 우타에몽'의 기획으로 24시간에 걸쳐 야마나시현 후지카와구치코마치에 있는 카와구치코 스텔라 시어터에서 1000곡 라이브를 완수한 기록이 있었다. 당시 클라이막스 부분이 후지 테레비에서 방송되었던 프로그램인 '쾌진격 TV 우타에몽'에 생중계로 방송되었는데, 보통 저 정도면 목소리가 어딘가 이상할 정도였지만, 방송으로 나가서도 변함이 없는 목소리를 들은 시청자들이 방송국에 문의했던 것이 "실제로 24시간 동안 부른 것 맞나?"라는 질문이었고 이 질문이 엄청나게 몰리자 방송국이 애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 후폭풍이 장난 아니었던게, 원래 3일 뒤였던 1999년 9월 3일과 4일 마츠모토 레이지의 만화 관련 이벤트인 『마츠모토 레이지〜환상궤적1999〜』에 참가해 캡틴 하록을 라이브로 부를 예정이었으나, 라이브의 후유증으로 목소리가 안 좋아졌다는 것이 확인되는 바람에 결국 출연은 불발되었고 영상 메세지만 전달해야 했다는 부작용이 있었다.

2000년에는 " JAM Project"를 결성, 다시 한 번 새로운 행보를 시작함으로써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다른 고전 애니송 가수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나이가 나이였던지라 잼프 활동을 줄였지만(특별한 공연에만 출연) 콘서트 등 일부 행사에서 팬들에게 모습을 보이며 신곡도 계속 냈다.

2006년과 2007년, 한때 다운타운의 방송(링컨, 가키노츠카이)에 자주 개그 기믹(...)으로 출연해 "제에엣트!"를 외쳐주기도 했고, 가명을 쓰면서 가라! 갓맨의 오프닝을 부른 과거도 있었다.

2008년 1월 6일에는 자신의 환갑 기념 및 가수 데뷔 40주년 기념으로 "내 나이 만큼 노래 부른다!" 라며 60곡 연속 라이브를 펼쳐 건재함을 확인시켜 주었고[9] 2008년 1월 13일에는 키타다니 히로시와 함께 한국을 방문, 홍대 근처 롤링홀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공연으로 온 건 처음이지만 그 전에 한국에 온 적이 2번 더 있었다고 한다. 당시 밝히기론 젊은 시절 주한미군 기지에서 공연을 가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무적코털 보보보 게임판의 보보보보 보보보, 제3차 슈퍼로봇대전의 케이사르 에페스 등에서 성우로 출연하기도 하였다.

개인 보컬 스쿨도 가지고 있다. 그가 참가하는 공연마다 같이 나오는 애플파이[10] 및 더 카인즈는 바로 그가 키운 제자들. 심지어는 해적전대 고카이저의 주제가를 맡은 마츠바라 츠요시도 그의 제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11]

배우 활동 경험도 있어서 '시공전사 스필반'의 벤 박사 역을 맡았고 가면라이더 W 23, 24화에서 오프닝을 부른 카미키 아야 & TAKUYA와 함께 특별 게스트로 출현했다.

2010년 9월 17일 도쿄 무도관에서 열리는 잼 프로젝트의 콘서트에 사카모토 에이조와 함께 스페셜 게스트로 출장 확정. 2007년 도쿄 추가공연 이후 3년 만에 잼 프로젝트의 공연에 모습을 나타냈다.

참고로, 잼 프로젝트 한정 활동이었다지만 란티스 역사상 최고령인 아티스트였다. 그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아티스트 또는 성우는 바로 하야미 쇼와 현재는 고인이 된 LAZY 히구치 무네타카였을 정도.

천하제일상 거상의 이미지 송인 화조풍월을 부르기도 했다.

2002년부턴 주니치 드래곤즈의 응원가 불타라! 드래곤즈의 메인 보컬을 맡아 사망하는 2022년까지 2006~2008년판과 작곡가 야마모토 마사유키가 직접 부른 몇몇 판본을 제외하곤 계속 새 판본이 나올 때마다 메인 보컬을 담당해왔다.

2011년 Animelo Summer Live 8월 27일차 공연에 사사키 이사오와 함께 특별 출연했다. 팬들은 당연히 환영을 했다.



2011년에 애니송 가수 데뷔 40주년을 기념해 발매한 앨범 The Hero~Mr.애니송~(THE HERO~Mr.アニソン~)의 타이틀곡 영상.



2012년에는 제에에에엣-!!라는 특유의 기합을 동반하여 예능계 방송 및 광고계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했다. 모 차(茶)광고 CM송 도중에 깨알같이 등장하여 박력 넘치는 제에에에엣-!!을 외쳐서 많은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였다.

동년에는 특명전대 고버스터즈의 신 메카인 LT-06 타테가미 라이오를 개발한 하즈키 사부로역으로 게스트 출연했다. 게다가 음성만 나왔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 얼굴도 비춰주었다.

2012년 9월부터 최근까지 슈퍼로봇 초합금의 테마송 가수로도 활동했다.

2013 07 12 가면 라디레인저의 게스트로 나왔다. 방송의 오프닝을 불러주시길 부탁드리려고 했다는데 이 예고가 나간 전주 방송에서 아무말도 없이 작곡가인 후지바야시 씨를 불러 다짜고짜 부탁드린 일이 있어서 이번에도 두 퍼스널리티의 걱정한 모습이 조금 나왔다.

2014년 2월 22일에는 니코니코 동화에 LILY와 함께 마징가의 오프닝을 열창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사람들은 목소리가 비슷한 다른 사람인 줄 알았으나 본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패닉상태. ... 니코동 주의

2016년 7월 모바일 게임 그랑블루 판타지의 시나리오 이벤트 로보미 외전의 BGM을 담당. 당시 니코동 생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은 뜬금 없이 들려 온 아니키의 목소리에 벙찌다가 열광.

2016년 경주 지진때 한국어로 한국팬들을 걱정하는 트윗을 올렸다 #

가을에 신곡을 발표하는데, 충격과 공포스럽게도 라이벌 가수와의 듀엣이며 인선도 굉장히 화려했다. 작곡 와타나베 츄메이에 작사 나카가와 쇼코, 아베 아키라, 여기에 편곡은 타나카 코헤이였다고. 관련 기사

2017년 11월 미즈키 나나의 팬클럽 행사에 게스트로 참석하셔서 콜라보 라이브를 펼쳤다. 더블 미즈키의 라이브 또한 11월 28일, 가수 AKINO의 결혼 피로연 및 라이브에 참가하셨는데, 문제는 이 행사에 갔다는 소식을 2일 뒤인 2017년 11월 30일에 트위터에 올리셨다. orz ##

2018년 1분기 애니인 용왕이 하는 일!에서 히로인 히나츠루 아이의 아빠인 히나츠루 타카시 역을 맡게 됐는데 히나츠루 아이의 어머니인 히나츠루 아키나역을 맡은 애니송계의 여왕 호리에 미츠코와 사상 처음으로 부부연기를 하게 되었다. 2018년 칠순 겸 가수 데뷔 50년을 기념해서 1월 6일, 1월 7일 양일간 라이브를 펼치기도 했다. 연기는 전체적으로 무난했다는 평이 많았다. [12]

2018년 3월 28일 NHK BS 프리미엄을 통해 방송되는 단막극 한밤중의 슈퍼카(真夜中のスーパーカー)에 아니키 역으로 출연, 주제가도 불렀다. 참고로 이 작품은 NHK 나고야 방송국 제작.

2021년 4월, 성대부전마비 증상을 앓고 있음을 밝혔다. #[13] 이후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는데, 2021년 7월 11일 슈퍼로봇대전 30주년 기념 강철의 초감사제 2021에 등장하여 마징가 Z의 오프닝, 엔딩 곡과 JAM Project 시절 열창했던 강철의 메시아 라이브를 하였다. 하지만 한창 치료중인 몸인지라 노래하는 것 자체를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안색도 눈에 띄게 나빠지고 굉장히 여윈 모습에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강철의 메시아 라이브 때는 다른 잼프 맴버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팬들은 무리하지 말라며 걱정했지만, 이는 미즈키 이치로 본인이 꼭 라이브를 하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의지로 출연한 것이라고 한다.[14] 비록 100%의 역량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근성으로 지르는 "쩨에~~ㅅ!!"으로 모두를 감동시켰다. "35주년 때도 스케줄 비워놓을게요"+계속해서 재활에 힘내겠다는 의지표명과 함께.[15]

2022년 7월 26일, SNS를 통해 새로운 근황을 전해왔는데 성대부전마비 치료 과정에서 검진을 통해 림프절과 뇌 전이를 동반한 폐암을 발견했다고 한다. # 2022년 6월에도 새로운 폐암을 발견해 수술을 받았고 양호한 상태에서 재활중에도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가며 데뷔 50주년 기획도 진행하겠다며 기대해달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2022년 11월 27일, 도쿄 요미우리 오테마치 홀에서 진행되었던 라이브[16]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지만, 투혼을 불태우며 마징가 Z를 열창하여 팬들에게 복귀에 대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2.2. 사망

2022년 12월 12일, 소속사를 통해 엿새 전인 12월 6일[17]에 폐암으로 사망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 향년 74세. 장례는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친척들만 모여서 조용히 치러졌다.

이로써 11월 27일의 무대가 고인의 마지막 활동이 되었다. 당시 만난 동료들에게 '나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거나 '나는 살아있는 한은 계속 현역이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일화도 전해졌다.

마지막 무대를 함께한 가수 호리에 미츠코 #, 나카가와 쇼코 #, 타카하시 요코 #, 타카토리 히데아키 #, 마츠모토 리카 #, 모리구치 히로코 #, 성우 후루카와 토시오 #, 오가타 메구미 #, 미야무라 유코 #, 후루야 토오루 #, 히다카 노리코 #, 오키아유 료타로 #, 아카바네 켄지 #, 타치키 후미히코 #도 추도사를 올렸다. 작곡가 타나카 코헤이도 그를 추모하며 예전에 그를 만났던 일을 회상했다. #

배우이자 가수인 시마 다이스케[18]는 오랫동안 일선으로 애니송계를 이끌어 온 공적은 대단하다며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

같은 시대에 애니송계에서 활약한 라이벌이자 동료이며 절친한 형동생 사이였던 '대왕' 사사키 이사오는 '나보다 젊은데 너무나 빨리 갔다. 도쿄역 근처 잔디에 드러누워 함께 노래했던 것이 엊그제같다'며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

2년 선배인 쿠시다 아키라는 '부고를 들었을 때 목이 메고 가슴을 조르는 느낌이었다'며 믿겨지지 않았던 데다 '애니송은 아는데 가수 이름은 모른다.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노력했다. 진짜 애니송계의 분위기를 고조시킨 제왕이었다'고 추모의 메시지를 남겼다.[19]

오쿠이 마사미도 부고를 들었을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하면서 '몸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무대에 서는 것은 그만큼 용기와 근성을 보여준 것이다. 평생 현역의 자세를 유지한 아니키가 멋졌다. 그걸 가슴에 담아 계속 노래할테니 하늘에서 지켜봐달라.'는 추모의 트윗을 남겼다. #

오랫동안 JAM Project로 함께 활동하기도 한 업계의 절친한 후배인 카게야마 히로노부는 '즐거운 추억이 잔뜩 있지만, 이제 형님과 함깨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고통스럽다. Aniki Forever'라며 짤막하게 추모의 글을 남겼다. #

파일:마징가 Z가 끝난 뒤에 나온 미즈키 이치로의 추모 메세지.jpg
마징가 Z의 주제가를 부른 미즈키 이치로씨가 사망하셨습니다. 진심으로 명복을 빕니다.
2022년 12월 13일 TOKYO MX에서 방영된 마징가 Z 제11화 종료 이후 방영분에서 나온 자막

마징가 Z를 방영한 TOKYO MX는 미즈키의 부고 소식 하루만인 12월 13일에 추모 메세지를 올려 애도를 표했다.

3. 주제가를 부른 작품들

오프닝, 엔딩이 아닌 삽입곡만 부른 작품은 ☆로 표시.

4. 이야깃거리

4.1. 애니송 부흥의 일등공신

1989년 개그맨 코사카이 카즈키와 세키네 츠토무가 진행하는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코사킨'의 한 코너에서 "절규계" 애니송이 픽업되면서 소소하게 고전 애니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미즈키 이치로도 '코사킨'에 출연하며 재평가 받으면서 1986년 6월에 자신의 첫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이후로도 1년에 1장의 페이스로 베스트 앨범을 꾸준히 발매했다.

그러던 중 90년대 중반 애니메탈이 히트를 치면서 고전 애니송의 재평가가 이루어지자, 미즈키는 이 붐을 놓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애니송을 21세기까지 전승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자신과 동 시기에 활약했던 애니송 아티스트인 사사키 이사오, 호리에 미츠코, 카게야마 히로노부를 불러모아 전국 각지에서 고전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SF 특촬곡 위주의 라이브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게 된다.

1997년 8월에는 슈퍼로봇대전 F의 발매 기념 이벤트를 겸하여 로봇 애니메이션 주제가 콘서트인 'ROBONATION SUPER LIVE'를 아카사카 브릿츠에서 개최했고, 이것이 큰 성공을 거두어 다음해인 1998년부터는 슈퍼로봇 스피릿츠(魂)로 명칭이 변경되어 연 1회 페이스로 개최되는 인기 이벤트가 된다. 'ROBONATION'의 출연진은 미즈키, 카게야마, 호리에, MIO의 4인이었으나[26] 이후 게스트가 점점 늘어나서 대규모 공연이 된다. 슈퍼로봇 스피릿츠는 현재까지 매년 열리고 있으며, 미즈키 이치로 역시 생전 마지막으로 참석한 2022년 라이브까지 계속 참가했다.[27]

미즈키 이치로가 주축이 되어 탄생한 슈퍼로봇 스피릿츠는 애니송 아티스트의 위상을 비약적으로 상승시켜주었다는 것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행사였다. 애니송을 전문으로 활동하는 가수들은 그때까지 작품 내에서 노랫소리로 출연할 뿐 음악 방송에 출연하거나 콘서트를 가질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 앞에 설 기회가 없었고, 미즈키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에는 애니송을 부른다는 이유만으로 일반 가수들에 비해 평가절하받기까지 했었다. 또한 80년대 후반~90년대 초중반부터는 아이돌이나 유명 아티스트들이 타이업을 통해 애니메이션의 주제가를 부르는 케이스가 부쩍 늘어났기 때문에, 애니송을 전문으로 부르는 아티스트들의 설 자리가 더더욱 좁아지고 있는 추세였다.

그러나 슈퍼로봇 스피릿츠를 계기로 과거의 애니메이션 명곡들이 재조명받게 되고, 새로운 젊은 팬층과 당시 작품을 즐겼던 리얼타임 세대 팬들이 함께 애니송을 열창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됨으로써 그때까지 무대 뒤의 존재였던 애니송 아티스트들의 위상도 높아지게 되었다. 훗날 JAM Project를 결성하기도 하는 등, 미즈키 이치로는 늘 애니송을 부흥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한 일등공신이었다.

4.2. '아니키(アニキ)'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미즈키 이치로의 애칭으로, 한국어로 '형님'에 해당하는 아니키(兄貴)가 어원이지만 미즈키 이치로를 지칭할 때에는 전부 카타카나로 'アニキ'라 표기하는 것이 정석이다.
사실 미즈키 이치로가 '아니키'라고 불린 경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으며, 정확한 계기는 불분명하다.
  • 라디오 프로그램 '코사킨'에 출연했을 당시 개그맨 루 오시바가 '형님이라고 부르게 해주세요~'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해당 방송 내에서 '아니(兄ぃ)'라고 불리기 시작했다는 설.
  • NHK 교육 프로그램에서 '노래하는 형'을 다년간 담당하여 '오니상'이라고 불린 것이 '아니키'로 변화했다는 설.
  • 상술한 1999년의 TV 프로그램 '우타에몽'에 출연했을 당시 미즈키가 "애니송 계에서 사사키 이사오는 '대왕', 호리에 미츠코는 '여왕'이라고 불리는데 나만 그런 칭호가 없다"며 농담삼아 투덜댔는데, 이 때 사회를 담당한 개그맨 이마다 코지가 "그럼 '아니키'라고 부를까요?"라고 제안한 것이 계기라는 설.
  • 1997년 아카사카 브릿츠에서 열린 최초의 슈퍼로봇 주제가 라이브 'ROBONATION'에서 관객들이 원로 가수인줄만 알았던 미즈키 이치로의 건제함에 놀라 '형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

종합하자면 미즈키 이치로는 90년대 중후반 이후 팬덤에서 이미 '아니키'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었고,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출연이 부쩍 늘어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졌고 이 때 "애니송 계의 '아니키'"라고 소개됨으로써 애칭이 정착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사사키 이사오가 댄디하고 중후한 매력으로 '대왕' 그 자체의 이미지라면, 미즈키 이치로는 특유의 호탕한 이미지와 힘차게 지르는 창법 덕에 '아니키'라는 애칭이 실로 잘 맞아떨어졌다.

4.3. 노익장 게이머

취미는 비디오 게임으로, 원로 가수 중에서도 굉장한 헤비 게이머로 유명했다.

특히 슈퍼로봇대전 시리즈의 열렬한 팬이자 헤비 유저였으며, 신작 소프트가 발매되면 게임잡지에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플레이 시에 사용한 유니트는 주로 자신이 주제가를 담당한 작품들 위주로 짰기 때문에 슈퍼로봇의 비율이 굉장히 높아진다고 했다. 시리즈 프로듀서인 테라다 타카노부와도 사적으로도 친밀한 관계였고, 게이머로써 게임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테라다에게 여러가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건의하기도 했다. 제 3차 슈퍼 로봇대전 알파부터 채용된 로봇대전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시스템인 'BGM 셀렉트 시스템'을 고안했던 것 역시 다름아닌 미즈키 이치로였다.[28] 이 3차알파에서는 최종보스인 케이사르 에페스 역으로 성우출연하기도 했다.[29]

로봇대전 이외에도 다양한 게임을 70이 넘어서도 즐겨왔다고 한다. 2017년 12월 13일에는 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니코니코 동화 생방송에 게스트로 참가하여 고대 거대 코어를 80개 이상 소지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는데, 아오누마 에이지까지 놀랐을 정도. 해당 영상 참조. 이후 2020년 2월 18일에는 이걸 999개 상한까지 다 모았다고 인증하기도 했다. 트위터 그 밖에 동숲 플레이를 인증하기도 했다.

4.4. 기타

  • 가면라이더 V3의 주제가 "싸워라! 가면라이더 V3"를 제작할 시, 데모버전을 녹음할 겸 주제가를 담당하게 된 미야우치 히로시의 가창 지도를 위해 시몬 마사토와 함께 투입되었었는데, 미야우치가 너무나도 심각한 음치여서[32] 격분하고 한바탕 심각하게 싸웠다. 하지만 한번 크게 다툰 이후로 당시 굉장히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후 미즈키는 미야우치의 또 다른 대표작인 쾌걸 즈밧토의 오프닝을 담당하기도 했다. 미즈키에 의하면 미야우치와 자신은 성격이 비슷해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 아내는 전직 가수인 쿠죠 마리코로, 4살 연상에 과거 소속사의 선배 가수였다. 아내가 선배에 연상이어서인지 미즈키는 가수 중에서도 유명한 공처가였다. 자녀는 장녀와 쌍둥이 아들로 총 셋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고령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등산이었다. 종종 트위터에 다른 가수들과 함께 등산을 간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1] 애니송 가수로 시작은 1971년부터 [2] 본 항목의 본문에 후술할 게임 관련 일화들도 다 이분의 취미 때문이다. [3] 당시 1970~80년대에 엄청난 라이벌 관계로도 유명했지만 1999년 이후 같은 공연에 함께 나오는 일이 많았다. [4] 그런데 사실 카게야마 히로노부는 미즈키 이치로보다 약간 뒷세대의 가수(카게야마 이 양반의 메이저 데뷔가 1977년이다.)로 동 시기에는 시몬 마사토가 대표적이었으나 시몬 마사토는 사람이 싫다고 하면서 은퇴한 후 현재는 야인이 된 상태이고, 여기에 끼워줄 수 있는 것은 쿠시다 아키라 정도인데 쿠시다 아키라는 애니송 보다 다른 쪽이 본업에 가깝다고 말해도, 이 양반도 알아주는 애니송 보컬리스트인지라(...). [5] 미즈키에 의하면 당시 가수들은 애니송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지 않았고, '가수 얼굴도 제대로 안 나오고 애들이나 보는 작품 노래를 왜 부르냐'라며 애니송을 '만화만을 위한 노래'라고 폄하하며 꺼리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음악 업계에서도 애니송은 일반 가요와 동등하게 취급받지 못했고, 몇십만장을 파는 대히트를 기록했었는데도 음악 방송에 나올 수 조차 없었다. 그러나 미즈키는 데뷔 초부터 영화에 나오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컸었기 때문에 애니송 역시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고, 오히려 아무도 안하려 하는 세계이니 찬스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애니송 가수로 전향할 결심을 했다. [6] 이 부분은 미즈키 이치로 사망 후인 2022년 12월 28일 NHK BS 프리미엄을 통해 방송된 '고마워 아니키! 영혼의 애니송 싱어 미즈키 이치로'에 나온다. [7] 마징가 Z가 70만 장 팔렸고 우주해적 캡틴하록 같은 경우 첫판이 15만 장 팔리는 등 당대 최고의 애니송 가수 중 1명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밀리언 셀러는 없다. 당시 라이브 영상에서 마징가 주제곡의 인기가 여전한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관객과 하나가 되어 "제에에에트!!!!"를 부르짖은 장면이 압권이었다. [8] 2기 오프닝 HEATS 카게야마 히로노부가 불렀다. [9]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 특전 DVD에 전곡이 수록되었다. [10] 이쪽을 거친 사람 중에 요시다 사유리는 성우로 전직했다. [11] 마츠바라 츠요시의 공식 블로그 2011년 1월 29일자 글에서 확인 가능. # [12] 아내 역인 호리에 미츠코는 그 이전에도 성우 연기를 해 본적이 꽤 있었기에 염려가 덜한 편이었다. [13]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처음 대중에게 나타난 건, 2021년 4월 25일에 열린 슈퍼로봇 스피리츠 도쿄공연 2일차 때의 일이었다. 공연 직후 트위터를 통해 알린 것. [14] 실제로 테라다 타카노부 프로듀서는 행사 직전까지 미즈키의 라이브는 생략하려는 생각도 했었다고 한다. 시작전에 미즈키 본인이 샤우팅을 해봤는데 생각보다 목소리가 잘 나와서 하기로 결정을 했지만, 막상 본무대에서는 100% 컨디션을 발휘하지 못했다며 본인도 아쉬움을 표했다. [15] 사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미즈키 이치로 본인이었을 것이다. 행사 중에도 몇번이고 제대로 된 컨디션으로 부르지 못해 굉장히 아쉽다는 발언을 했다. [16] 호리에 미츠코와 함께 하는 라이브 이벤트인 두사람의 애니송 #19였다. [17] 마지막 무대를 가진지 9일 만이다. 당시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고통스러웠을 것을 짐작해볼 수 있다. 고인의 무대에 대한 열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18] 초수전대 라이브맨 레드 팔콘 울트라맨 코스모스 히우라 하루미츠 대장으로 유명하다. [19] 여담으로 미즈키 이치로는 쿠시다 아키라를 '쿳시(クッシー)'라는 애칭으로 부를 정도로 친한 사이였다. [20] 시나리오 이벤트 '로보미'의 주제가 담당. 시리즈 3편 '로보미Z'의 예고 멘트도 담당했다. [21] 작중에서 본인이 주인공의 아버지 역으로 직접 반고정 출연하기도 했다. [22] 18화에서 엑스트라로 출연했다.(다만, 목소리는 다른 사람이 담당.) [23] 작중에서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24] TV 방영 버전 한정 [25] 작중 단가이오팀을 추적하는 단역 악역 목소리를 담당했다. [26] 특별 게스트로 와타나베 츄메이가 등장했다. [27] 2022년에는 불참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도쿄공연 2일차였던 stage terra에 참가했다. [28] 미즈키는 이 기능을 활용해서 모든 로봇의 전투 BGM을 'Z의 테마'와 '마징카이저의 테마'로 설정하고 플레이했다. [29] 케이사르 에페스는 미즈키 이치로 자신이 주제가를 담당했던 슈퍼로봇과 전투시키면 그 로봇의 주제가에 나오는 가사를 패러디한 전용대사로 화답하기도 했다. [30] 여담으로 이곳은 후쿠야마 요시키의 고향이기도 하다. [31] 그래서 별칭은 마징가 저택이었다. [32] 사실 코러스가 많이 커버를 쳐주고 곡 자체가 좋아서 그렇지, 미야우치 단독의 가창력은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는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