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 atentados del 11 de marzo de 2004(11M)
1. 개요
사건 직후의 모습을 담은 뉴스 영상
2004년 3월 11일 스페인의 마드리드에서 알 카에다에 의해 발생한 대규모 열차 폭탄 테러 참사.
당시 배낭에서 13개의 폭탄이 다발 폭발해 큰 폭발이 일어났다. 이 사고로 스페인은 순식간에 초토화되었으며 사망자들의 시신 상태는 매우 처참해 시신이 토막나 신원 파악이 불가할 정도로 시신 훼손이 심한 경우도 많았다.
2. 이후 여파
사건 직후 테러 배후를 두고 잠시 논란이 있었는데 당시 집권 정부인 아스나르 정권은 바스크 독립을 주장하는 테러단체인 ETA의 소행일 수 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는 곧 반박되었는데 먼저 테러 방식이 ETA의 기존 방식과는 상당히 달랐다. 본래 ETA는 사전에 테러 경고를 한 뒤 공격을 감행하고 곧바로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히는게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번 테러는 그런 사전 경고가 전혀 없었고 테러 직후 ETA 본인들도 적극 부인한 대신 알 카에다 등 이슬람계 테러 단체들이 스스로 행했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조사 결과 알 카에다의 소행으로 밝혀졌다.이 테러의 원인은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스페인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원하고 자국 군대를 이라크 전쟁에 파병한 것 때문으로 추정된다. 결국 아스나로 총리가 선거를 앞두고 알 카에다가 아닌 ETA라고 서둘러 주장해 부정적 영향을 잠재우려는 무리수를 두었던 것.
총선 직전까지만 해도 부동산 호황으로 인민당이 승리를 거둘것으로 예측되었고, 선거운동 기간 동안에는 격차가 점차 축소되었지만 그럼에도 인민당이 근소한 차이로 승리를 거둘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테러 직후에 판세는 역전되어 정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 테러가 일어난 직후의 총선거에서 승리, 집권한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이라크에 파병한 자국 군대를 전군 철수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 중인 테러리즘에 타협해 버린 씁쓸한 사건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워낙 없었던데다가, 미국이 후세인 축출 이후에도 이라크에서 치안 유지에 실패하면서 파병된 미군 및 동맹, 우방국 병력들이 계속 위험에 놓여 국내외의 비판을 받고 있었기에 스페인의 결정은 그다지 큰 비판을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스페인 내 철도 승객 보안 조치가 강화됐는데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달리 유독 스페인에서 철도 승강장에서 보안검색을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공항처럼 X-RAY 검사기로 승객의 모든 수화물을 꼼꼼히 보고 사람도 금속탐지기를 건너가야 열차를 탈 수 있다. 그래서 공항 위탁수하물 운송 때는 반입이 허용된 과도 등도 열차 보안검색에서는 얄짤없이 뺏긴다.
3. 기타
상당히 큰 규모의 테러였으나 당시 국내에선 대통령 탄핵 소추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많이 묻혔다.우연이든 의도적이든, 9.11 테러와도 관련된 점이 있다. 둘다 11일에 발생했고, 알 카에다에 의해 발생한 테러며, 사건 발생일은 9.11 테러 발생일로 부터 정확히 911일이 지난 날이다.
지문 감식이 잘못되어 지구 반대편의 엉뚱한 사람이 FBI에 붙잡혀 2주간 구류되는 일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현장의 지문이 폭발의 영향으로 변형되면서 벌어진 실수였다고 한다. 잡힌 것은 미국 오리건 주의 무슬림 변호사였는데, 막상 조사해보니 스페인 출입국 기록은커녕 살면서 단 한 번도 여권을 만들어본 적조차 없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구류로 인해 미국 정부로부터 사과와 200만 달러의 보상금을 받았다. #
4. 재판 결과
2007년 11월 1일 스페인 반테러 법정은 테러 가담자 모로코인 자말 조우감을 포함한 3명에게 각각 징역 4만 3000년 형을 선고했다.[4] 사실상의 장기 징역형인데, 이유는 스페인 형법에는 사형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없다. 심지어 징역 40년을 복역하면 출소가 원칙이라고 한다. 그만큼 죄질이 무겁다는 얘기.5. 둘러보기
역대 스페인의 대형 사고 및 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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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일 | <colcolor=#000> 사망 | 사건명 |
2023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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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 카나리아 제도 난민선 침몰 사고 | |
2022년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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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 2022년 멜리야-모로코 국경 사건 |
- [ 201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17년 8월 17 ~ 18일24 2017년 스페인 연쇄테러 2015년 3월 24일150 51 저먼윙스 9525편 추락 사고 2013년 7월 24일79 스페인 갈리시아 고속열차 탈선사고
- [ 200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2008년 8월 20일154 스팬에어 5022편 추락 사고 2006년 7월 3일43 발렌시아 지하철 탈선 사고 2004년 3월 11일193 마드리드 열차 테러 2003년 5월 26일75 62 우크라이나-지중해 항공 4230편 추락 사고 2001년 11월 14일22 우엘바 버스 전복 사고 2000년 7월 6일28 소리아 버스 충돌 사고
- [ 199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99년 9월 19일28 라무엘라 버스 사고 1998년 10월 8일21 로카호 침몰 사고 1998년 9월 25일38 파우큰에어 4101편 추락 사고 1996년 2월 28일29 안달루시아 버스 충돌 사고 1992년 8월 19일46 토레블랑카 버스 전복 사고 1992년 7월 3일43 오렌세 버스 추락 사고 1990년 1월 14일43 플라잉 디스코 화재
- [ 198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87년 12월 5일23 케이손호 침몰 사고 1987년 7월 3일38 우에스카 관광객 버스 추락 사고 1987년 6월 19일21 1987년 바르셀로나 폭탄 테러 1985년 2월 19일148 이베리아 항공 610편 추락 사고 1983년 12월 17일82 알카라 20 나이트클럽 화재 1983년 12월 7일93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 충돌 사고 1983년 11월 27일181 아비앙카 항공 011편 추락 사고 1982년 10월 20일30 토우스 댐 방류 사고 1982년 9월 13일50 스판탁스 995편 이륙 사고 1981년 9월 29일23 톨레도 버스 충돌 사고 1980년 10월 24일58 마르셀리노 우갈데 초등학교 가스 폭발 사고 1980년 9월 24일27 치리베야 건널목 사고 1980년 4월 25일146 단 에어 1008편 추락 사고
- [ 197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79년 10월 19일21 프랑스 세메악 스페인 관광객 버스 사고 1979년 7월 12일80 코로나 데 아라곤 호텔 화재 1979년 4월 10일49 오르비고 강 버스 추락 사고 1978년 12월 31일34 안드로스 파트리아호 폭발 사고 1978년 12월 21일32 무뇨스 건널목 사고 1978년 7월 11일217 로스 알파케스 참사 1977년 12월 30일28 산 미겔 데 라스 두에냐스 버스 충돌 사고 1977년 3월 27일583 테네리페 참사 1977년 2월 28일22 바르셀로나 열차 충돌 사고 1974년 11월 3일30 피골스 광산 폭발 사고 1973년 12월 11일23 보나폰테 직물 공장 참사 1973년 8월 28일24 휴에바 미 공군 C-141 추락 사고 1973년 8월 13일85 아비아코 항공 118편 추락 사고 1973년 3월 5일68 낭트 상공 공중충돌 사고 1972년 12월 3일155 스판탁스 275편 추락 사고 1972년 8월 18일21 알리세다 버스 추락 사고 1972년 7월 21일86 엘 쿠에르보 열차 사고 1972년 1월 7일104 이베리아 항공 602편 추락 사고 1970년 7월 3일112 단 에어 1903편 추락 사고 1970년 4월 8일52 K-8 침몰 사고
- [ 196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68년 3월 15일28 로브레도 데 챠벨라 열차 충돌 사고 1967년 11월 4일37 이베리아 항공 062편 추락 사고 1966년 12월 18일30 비야 플랑카 델 캄포 열차 충돌 사고 1965년 12월 18일31 비야르 데 로스 알라모스 열차 충돌 사고 1965년 12월 7일32 스판탁스 C-47 추락 사고 1965년 10월 22일30 ~ 70 토레혼 댐 붕괴 사고 1965년 5월 5일30 이베리아 항공 401편 추락 사고 1965년 3월 31일50 이베리아 항공 CV-440 추락 사고 1965년 2월 10일34 그리센 열차 화재 1964년 10월 2일80 UTA DC-6 추락 사고 1961년 11월 29일23 클라벨 작전 비행기 추락 사고 1961년 1월 9일24 Hospitalet de Llobregat 열차 충돌 사고
- [ 195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59년 8월 19일32 트랜스에어 DC-3 추락 사고 1959년 4월 29일28 이베리아 항공 DC-3 추락 사고 1959년 1월 9일144 리바델라고의 참극 1958년 12월 4일21 아비아코 항공 SE.161 추락 사고 1957년 10월 28일21 헤타페 이베리아 항공 C-47 추락 사고 1957년 5월 9일37 아비아코 항공 111편 추락 사고 1954년 3월 24일34 과달레테호 침몰 사고 1953년 12월 4일23 아비아코 브리스톨 170 추락 사고 1951년 9월 12일39 STAAP DC-3 추락 사고
- [ 194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49년 2월 12일40 바르셀로나-마드리드 급행 열차 탈선 사고 1948년 12월 23일27 이베리아 항공 C-47 추락 사고 1947년 10월 16일41 TAI 브리스톨 170 추락 사고 1947년 9월 6일24 알칼라 데 에나레스 폭발 사고 1947년 8월 8일150 카디즈 폭발 사고 1946년 6월 27일44 C4 잠수함 침몰 사고 1945년 11월 14일41 알쿠비야스 열차 충돌 사고 1946년 12월 17일20 신코 카사스역 열차 탈선 사고 1944년 1월 11일41 알레발로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1월 3일78 1944 토레 델 비에르조 열차 충돌 사고 1943년 10월 15일20 주지사 열차 충돌 사고 1944년 1월 3일200 ~ 250 토레 델 비에르소 참사 1941년 12월 3일22 롤라 강 열차 탈선 사고 1940년 12월 3일55 빌리야 데 에브로 열차 충돌 사고 1940년 9월 21일106 피나르 데 안테케라 폭발 사고
- [ 1930년대 ]
- ||<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1f2023><width=33%>발생일
<colcolor=#000> 사망 사건명 1939년 12월 21일48 푸리타 페레즈호 침몰 사고
[1]
단순히 열차 시종착지 뿐만이 아니라, 주변에 프라도 미술관 등의 관광지도 있어 관광객들도 많이 오가는 곳이다.
[2]
1년 전의
대구 지하철 참사(192명)와 희생자 규모가 똑같다. 해당 사건도 의도적 공격(정확히는 자살 시도를 목적으로 한 방화)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며, 일부에서는 이를 테러로 규정하기도 한다.
[3]
+1명은 사고 이후 생존했으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채 10년간 의식불명상태로 있다가 2014년에 사망했다.
[4]
사망자 1명당 30년, 부상자 1명당 20년씩 적용해 이같은 판결을 내린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