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1 21:12:40

마드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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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원3. 현대4. 주요 마드라사5. 여담6. 대중매체에서

1. 개요

마드라사(مدرسة, madrasah)는 ' 학교', '학당'으로 번역되는 아랍어 어휘다. 보통명사로 아랍권에서는 학교의 종류에 상관없이 폭넓은 교육기관을 마드라사로 총칭하며 전통적인 형태의 시설도 포함된다.

근대화 이후 현대식 교육이 보편화되기 전에도 마드라사는 여러 가지 종류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신학교도 있었지만 기술학교나 법률학교도 마드리사라고 불렀고 신학교라고 해서 이슬람 신학만 전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의 이름 높은 마드라사들은 이슬람 문화를 꽃피우는 요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름이 높았으며 어쨌든 20세기 이후에는 아랍권도 근대화되고 현대식 마드라사들이 공교육의 보편화에 따라 대규모로 세워짐에 따라 전통적인 마드라사의 상당수는 한국의 향교 서원, 서당처럼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다만 전통식 마드라사라고 해도 다 소멸된 건 아니고 명문학교들은 여전히 이름을 날리는 등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인다.

2. 기원

수니파의 6대 하디스 모음집들이 대개 트란스옥시아나 지역 출신 학자들에 의해 편집된 것을 봐도 알 수 있듯이[1] 마드라사 시스템의 직접적인 기원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래하였다.

이슬람 역사 초창기 아라비아반도 메카 메디나에서는 종교 생활과 일상 생활이 일치하는 것이 당연시되어서 따로 모스크와 분리된 형태의 마드라사가 들어설 이유가 적었다. 이를테면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교우들도 전업 성직자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양을 치고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이슬람화 이전 중앙아시아에서는 불교 혹은 마니교가 대세였지만 이슬람화 이후 중앙아시아의 대다수 지역에서 이슬람이 널리 퍼지고 기존의 불교와 마니교를 믿던 주민들도 대세에 따라 무슬림으로 개종하는 과정을 거쳐 절이나 마니교 사원도 모스크와 이슬람 교육 시설로 개조되는 와중에 마드라사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불교나 마니교 사원에는 결혼하지 않는 독신 승려들이 모여서 외부 일반인들의 외부의 시주를 받으면서 따로 경전을 암송하고 좌선을 한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특히 아프가니스탄 발흐의 나우바하라 사원의 시스템이 중세 마드라사 시스템의 직계 기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2][3] 사찰에는 따로 마당이 있고 명상을 하는 건물과 경전을 암송하는 건물이 분리되어 있다. 불교나 마니교 경전을 암송하던 곳은 마드라사가 되면서 쿠란과 하디스를 암송하는 별개의 건물이 되었고 좌선을 행하던 곳은 이슬람식 예배를 근행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중앙아시아에서 확립된 마드라사 시스템은 이후 이슬람 세계 각지로 급속히 확대되었다.

파일:1280px-KhojaMahshad,S.jpg

초창기 마드라사의 구조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타지키스탄의 호자 마슈하드 마드라사[4]
감각지각을 수용하고 과거와 미래를 포용하며 권위 있는 해설을 강조한, 좀 더 실용적인 설일체유부 학파를 선호한 중앙아시아인들이 훗날 예언자 무함마드의 하디스를 주도적으로 집대성하고,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의 저작을 아랍어로 번역한 책에 주석을 달고, 순니 이슬람 법학파 가운데 실리적인 하나피파 혹은 시아파 마드하브 가운데 이스마일파를 선호한 일이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중앙아시아 관료들에 의해 본격화되고 보급되었던 이슬람 교육기관인 마드라사의 전형적인 물리적 설계가 줄줄이 늘어선 방과 집회장으로 이루어진 중앙아시아의 불교 도량( Vihara) 양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또 어떠한가?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 프레더릭 스타 저

3. 현대

20세기 후반 이후에는 서방 및 비이슬람권 언론에서 극보수적인 전통 이슬람 신학교를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하며 종종 해당 국가들의 정치인들도 사이비 교육과 이슬람 극단주의를 전파시키는 문제가 많은 이슬람 신학교라는 뜻으로 쓰지만 아랍인이나 '극보수파 및 극단주의자를 제외한 무슬림'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멀쩡한 단어를 엉뚱한 용어로 소개하는 것인데 마드라사는 그냥 학교라는 뜻의 단어지 극보수적인 미션스쿨 자체를 뜻하는 단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친다면 어떤 사이비 종교나 극보수적 종교인들이 자체적으로 학교나 학원, (유교 계통 사이비 종파 또는 극보수파 유학자일 경우) 서당, 서원을 만들어서 문제를 일으켜 대는데 이게 외신을 통해 사이비 종교 신자 또는 극보수파를 양성하는 요람이 "학교" 또는 "학원", "서원", "서당"으로 소개되는 꼴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어쨌거나 문제가 되는 마드라사는 주로 극보수파들[5] 이슬람주의자들 또는 종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무장 테러집단이 돈을 대 만드는 사이비 신학교들이며 특히 정규교육 인프라가 아주 열악한 인도네시아 아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의 빈곤한 지역 혹은 국가에서 극단주의의 산실과 토양이 되고 있어서 악명이 높다. 이런 지역의 많은 마드라사들은 장학금을 주거나 숙식을 해결해 주는 식으로 정규 학교에 갈 여력이 안 되는 가난한 학생들을 모집하고 기본적인 읽기, 쓰기와 쿠란 암송, 이슬람 교리만 가르치고 다른 세속 학문은커녕 이슬람 교리조차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악명높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계 마드라사는 애초부터 쿠란에도 없는 자기들만의 율법 파슈툰왈리를 이슬람인 양 세뇌교육하는 한국에도 보이는 기독교계 사이비 종교와 비슷하지만 훨씬 지독한 수준. 멀쩡한 종파에서 만들어 최소한의 이슬람 율법을 제대로 배우는 마드라사들도 당연히 적지 않으나 이런 식으로 극단주의 전사들을 키워서 정치논리, 군사논리로 이용하는 마드라사가 파키스탄이나 그 외 이슬람권에서 극보수파들이 해당 지역의 기득권층 또는 (수니파 계열 한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왕가 및 카타르 왕가의 비호를 받고 있어서 목소리가 크고 그들에 의한 테러 및 폭력 사태도 자주 일어나는 만큼 더 주목받을 뿐이다.

4. 주요 마드라사

파일:터키 마드라사.jpg

13세기에 세워진 튀르키예 콘야의 카라타이 마드라사
  • 이라크: 아바스 왕조의 중심지였던만큼 많은 마드라사들이 있었으며 무스탄시리야 마드라사가 대표적이다.
  • 이집트: 가장 규모가 큰 마드라사가 있다. 이곳 이맘의 영향력도 꽤 커서 교황이 대면하기도 했다.
  • 한국: 한남동 서울중앙성원에서는 무슬림 초등학생들을 위한 방과후 이슬람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다만 1986년 부산에 무슬림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슬람 미션스쿨 알리고등학교[6]가 세워진 적은 있었다.
  •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들 지역의 마드라사는 그 지역의 이슬람 극단주의자 양성소라고 불릴 정도로 이슬람 근본주의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다. 극보수파들이 마드라사 설립에 자금을 대 주는 경우가 많고 자연히 선생님들의 성향도 치중되어 있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다. 물론 이들 나라에도 여러 정치 성향을 지닌 이들이 있다 보니 사회복지와 빈민구제에 주력하는 나름대로 멀쩡한 마드라사들도 적지 않게 있기는 하다.

5. 여담

옛날 옛적의 학교라는것이 대개 그렇듯이 재래식 마드라사들도 학생들에 대한 구타와 체벌이 일상적이었다.[7] 이슬람 교리에서는 원칙적으로 구타를 금지하지만 과거에는 어린이들을 교육할 때 강제로 때려서 외우게 시키는 일이 워낙 보편적이었으며 아동심리학이 따로 발달한 것도 아니라 마드라사에서만큼은 전통적인 관습으로 굳어졌다.

그래도 단 하나 예외가 있는데 학생의 얼굴만큼은 함부로 때리면 안 된다. 교사가 학생들을 체벌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에서도 머리를 마구 때리는 동영상이 유출되면 교사의 신상이 유출되고 조리돌림당하는 등 난리가 나는데 하디스에 "노예라고 해도 함부로 얼굴을 때리면 안 된다"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학생의 얼굴을 때렸다는 증거가 나오면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자녀가 맞아서 기분 나쁨 + 졸지에 자기 가문 구성원이 종놈만도 못한 취급당했다는 모욕감 때문에 노발대발하게 되고 마드라사에서 따로 변명거리가 없기 때문에 해당 교사를 해고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19세기/20세기 초반 살라프파들이 그나마 잘했던 점이자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슬람 신학교에서 구타와 체벌을 상당 부분 근절한 것이다. 그만큼 마드라사의 체벌 남용 문제가 심각했다.

6. 대중매체에서

이슬람권 연구기관으로 거의 고정적으로 출연한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에서 인도 왕조 DLC 이전의 사라센 문명의 특수 기술 중 하나로 나오는데 효과는 수도사 사망 시 비용의 33% 반환으로 구현되었다.[8]

문명 4에서 아라비아 문명의 고유 건물로 등장한다. 도서관을 대체하는데 매 턴 문화 2를 제공하는 도서관에 비해 매 턴 문화 4를 제공하며 이 건물이 지어진 도시의 주민 두 명을 사제 전문가로 채용할 수 있게 한다. 문화 보너스는 국경을 빠르게 넓히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문화가 높을수록 도시의 방어도 튼튼해지므로 방어에도 기여하는데 지도자인 살라딘에게 방어적 특성이 있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사제 슬롯은 위대한 선지자를 보다 빠르게 얻을 수 있게 한다.

문명 5에서는 본편에는 나오지는 않고 르네상스로 시나리오의 아이유브 왕조 문명의 고유 건물로 등장한다. 대학을 대체하며 대학과 달리 신앙도 매 턴 2 제공한다.

문명 6에서도 아라비아 문명의 고유 건물로 등장하며 대학을 대체한다. 대학은 중세 시대의 과학 기술인 교육학을 연구해야 지을 수 있게 되지만 이쪽은 고전 시대의 사회 제도인 신학을 연구하면 해금되므로 보다 일찍 지을 수 있다[9]. 일반적인 대학이 매 턴 과학을 4 제공하는 데 비해 5 제공하며 이 건물이 지어진 캠퍼스의 인접 보너스만큼의 신앙을 매 턴 제공한다. 과학 증가치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일찍 지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쏠쏠하며, 정책 카드 등으로 격차를 더 벌릴 수도 있다. 신앙 보너스는 재상 살라딘일 경우 예배 건물을 더 빠르게 구입해 더 많은 과학과 신앙, 문화를 받을 수 있으며, 술탄 살라딘일 경우 더 많은 종교 유닛을 구입해 종교 승리를 노려볼 수 있게 한다. 다만 보다 일찍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좋지만 건설 비용은 대학과 똑같다는 점이 문제인데, 원래 중세 시대 건물인 것을 한 시대 당겨온 만큼 고전 시대에 짓기에는 아무래도 비싸기 때문. 종교를 창시하고 신자 교리를 예수회 교육으로 골라 신앙으로 구입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AI들에게도 이 교리의 인기가 높아 자칫하면 빼앗길 수 있다.


[1] 예외로 사힛 무슬림 하디스 모음집은 호라산 지역의 니샤푸르 출신 학자에 의해 수집되었다. 다만 호라산 지역은 트란스옥시아나와 인접한 지역이고 니샤푸르는 호라산의 주요 도시들과 교류가 활발하였다. [2] 출처 : 실크로드 세계사 / 피터 프랭코판, 중앙유라시아 세계사 / 크리스토퍼 벡위드 [3] 기존의 불교 사원에서는 승려들이 탁발로 직접 음식과 생필품을 공급받은 것과 다르게 나우바하라 사원은 발흐를 오가는 무역상인들이 사업이 잘 풀리게 해 달라고 현금화하기 쉬운 귀중품들을 보시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모인 자금은 불경을 구입하고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는 마드라사가 도회지 상인들에게 정기적으로 돈을 기부받는 시스템의 기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하디스에는 모스크를 건설하는 것과 관련한 내용은 나와 있어도 모스크나 마드라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후원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4] 서기 10세기 지어진 마드라사로 반구형 지붕을 얹은 두 개의 커다란 방을 두었고 마당을 두었으며 학생들의 숙소를 따로 배치하였다. [5] 와하브파, 살라프파, 데오반드파. [6] 현재 명칭은 (부산) 경원고등학교이며 예전의 이슬람 미션스쿨로서의 색채는 완전히 퇴색된지 오래다. [7] 현대에 와서는 체벌이 금지되어 있는 나라들도 다수 있기 때문에 마드라사도 대놓고 체벌하는 것이 옛날 일로 취급되는 나라들도 있지만 지금도 세네갈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지역의 재래식 마드라사 중에는 교사들이 학생들을 신나게 패는 곳이 적지 않다. [8] 한국 정발판에서는 신학으로 번역되었다. [9] 유럽에 근대적인 의미의 대학이 생겨나기 훨씬 전부터 체계적인 학술 연구와 교육을 위한 기관을 마련해 국가적으로 후원했던 중세 아라비아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다. 이 시기 아라비아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철학/과학 문헌들을 수집하고 인도의 학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를 토대로 많은 연구 성과를 이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