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26:29

마난(고려)

파일:고려 의장기 문양.svg 고려 삼한벽상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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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국공신
1등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2등
견권 능식 권신 염상
김락 연주 마난
3등
2천여 명(사서에 전하지 않음)
삼한공신
유금필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양유 · 김견술 · 서필
이상 배향공신
강공훤 · 강궁진 · 권행 · 금용식 · 김극렴 · 김선평 · 김유렴 · 김인윤 · 김일긍 · 나총례 · 류차달 · 박지윤 · 소격달 · 왕경 · 염형명 · 원극유 · 윤신달 · 이금서 · 이능일 · 장정필 · 최정헌 · 허선명
그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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麻煖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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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삼국시대 고려왕조 개국공신. 대부분의 나말여초의 인물들이 다 그렇듯 마난도 제대로 된 기록이 거의 없어 고려사에 이름이 1번(...) 언급될 뿐이다. 영평 마(麻)씨의 시조로 전해지고 있으나 마난이 이름만 적힌 것인지 성씨인지는 불명. 같은 공신인 신숭겸도 고려사 기록은 이름으로 능산으로 되어있다.

당시에는 신라 삼국 출신의 왕족, 귀족이 아닌 이상 명가 호족들도 성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1]

2. 행적

고려 태조 천수 원년( 918년) 8월 신해일 마난은 태봉 폭군 궁예를 폐위시킨 논공행상으로 견권(堅權)· 능식(能寔)· 권신(權愼)· 염상(廉湘)· 김락(金樂)· 연주(連珠)와 이등공신으로 책봉되고 금은으로 만든 그릇, 채색 비단옷, 화려한 이부자리, 능라와 포백을 차등 있게 하사받았다.

사서의 기록은 영 좋지 않지만 역성혁명에 참여한 7명의 2등 개국공신이라면 호족 출신으로써 나름 당대의 저명한 고관대작이었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현존하는 기록이 거의 없는 것이 영 아쉬울 따름.


[1] 중국에서 유래한 성씨를 굳이 쓸 이유가 없어서 상당수가 성씨가 없었다가 고려 문종 때 성씨가 없는 사람은 과거 시험을 못본다는 법령인 봉미제도(封彌制度)가 생긴 뒤에야 한국의 성씨들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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