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8 12:04:16

룩 롱리

룩 롱리 관련 틀
{{{#!folding ▼
룩 롱리의 수상 이력
{{{#!fold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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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1997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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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 롱리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등번호 13번
팀 창단 룩 롱리
(1991~1994)
펠리페 로페즈
(2001~2002)
시카고 불스 등번호 13번
찰스 존스
(1984)
룩 롱리
(1994~1998)
켄달 길
(2003~2004)
피닉스 선즈 등번호 13번
스티브 내시
(1996~1998)
룩 롱리
(1999~2000)
스티브 내시
(2004~2012)
뉴욕 닉스 등번호 13번
앤서니 보위
(1998)
룩 롱리
(2000~2001)
마크 잭슨
(200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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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엔 제임스 롱리
Lucien James Longley
출생 1969년 1월 19일 ([age(1969-01-19)]세)
빅토리아 주 멜버른
국적
[[호주|]][[틀:국기|]][[틀:국기|]]
출신학교 뉴멕시코 대학교
신장 218cm (7' 2")
체중 120kg (265 lbs)[1]
윙스팬 228cm (7' 6")
포지션 센터
드래프트 1991 NBA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지명
소속 팀 퍼스 와일드캣츠 (1986)
미네소타 팀버울브스 (1991~1994)
시카고 불스 (1994~1998)
피닉스 선즈 (1999~2000)
뉴욕 닉스 (2000~2001)
지도자 호주 대표팀 어시스턴트 코치 (2013~)
등번호 13번 - 미네소타 / 시카고 / 피닉스 / 뉴욕

1. 개요2. 선수 경력
2.1. 시카고의 주전 센터2.2. 피닉스로 이적2.3. 닉스에서의 은퇴
3. 플레이스타일4. 평가
4.1. 배경4.2. 옹호
5.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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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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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최초의 NBA 선수로, 포지션은 센터. 한국에서는 '롱리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2]

2. 선수 경력

1969년 1월 19일 빅토리아의 멜버른에서 태어난 그는 16세에 호주의 U-19 팀의 일원으로 참가할 정도로 농구 센스가 좋았으며, 1986년에는 호주 프로농구 리그(NBL) 팀인 퍼스 와일드 캐츠에서 데뷔하기도 했다. 1987년 미국에 위치한 뉴멕시코 대학교 유학을 갔고 NCAA에서 뛰게 된다.

2.1. 시카고의 주전 센터

농구 선수로서는 좋은 신체 조건 덕에 1991년 미네소타 팀버울브스의 드래프트 1라운드 7순위로 지명되었다. 그러나 7피트 2인치라는 신장과 좋은 체격 조건을 갖췄지만, 일단 느렸고 운동능력도 좋은 편이 아니어서 데뷔 후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덩치에 걸맞게 힘은 상당히 강했으나 버티는 힘이 좋은 편은 아니었고[3][4] 포스트업 기술도 없었으니 결국 무용지물... 그를 드래프트한 미네소타가 참지 못하고 루키 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시카고 불스로 트레이드해버렸을 정도.[5][6] 불스에 가서도 초반엔 윌 퍼듀와 빌 웨닝턴이랑 세트로 묶여 불스의 바보 센터 3인방이라고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7]

퍼듀가 로드맨과 트레이드되고 주전 센터로 올라섰는데 3연패 당시 시카고 불스의 주요 전술이었던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정석대로 돌아가지 못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불스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코트를 세로로 나눴을때 공이 있는 쪽인 strong side의 반대쪽인 weak side에서 자리를 채워주는 역할이었다.



이는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원형과는 거리가 멀다. 이 공격전술은 한 명[8]이 로우 포스트[9]에서 자리를 잡으면 다른 2명[10]이 윙과 코너에서 자리를 잡아 삼격형 모양을 만들어 이 삼각형 위주로 공격을 하게 된다. 나머지 두 명은 반대쪽에 하이 포스트와 top of the key[11]에 자리를 잡게 된다. 당연히 농구에서는 포스트업을 주로 쓰는 선수가 빅맨이기 때문에 공격의 핵인 삼각형의 꼭지점 부분은 센터 파워 포워드가 맡게 된다. 실제로 레이커스에서 필 잭슨이 도입한 트라이앵글 오펜스에서는 이 역할을 샤킬 오닐 파우 가솔이 각각 맡은 바 있으며 이게 더 정석적이다. 그러나 불스에서는 포스트업이 강한 빅맨이 없었기 때문에 이 역할을 못하는 게 없는 조던이 맡게 된 것.[12]

대신 원래 보통 포워드가 맡은 반대쪽 하이 포스트에 서 있는 역할을 롱리가 맡았다. 여기서 롱리가 허수아비가 아닌 사람 구실을 했는데 위에 언급했다시피 조던이 로우 포스트에 자리를 잡았는데 롱리 같은 엄청난 덩치가 골밑에 있으면 공간을 서로 잡아먹게 돼서 비효율적이 된다. 그러나 롱리는 골밑에서 무가치한 대신 중거리 슛이 평균 이상은 되어서 하이 포스트에서 버티고 있다가 조던이 빼주는 공을 받아 슛으로 연결시킨 것. 후술하겠지만 결코 중거리 슛이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다. 당시 센터 기준으로 평균 이상 정도였는데[13] 그나마 쓸모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서 그것만 하게 시켰다. 조던이 로우 포스트에서 포스트업을 하면 당연히 더블팀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롱리에게 오픈 찬스가 많이 갔고, 자연스럽게 롱리는 시카고에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물론 그 전성기를 일반적인 탑플레이어들의 전성기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팀의 승리에 기여하고, 제 몫은 그럭저럭 했다는 수준. 또한 불스에서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선수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공을 돌리면서 오픈 찬스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기본적인 패싱 센스는 있던 선수라 볼 돌리는 건 할 수 있었다.

거대한 덩치를 이용해 상대 센터를 괴롭힌 적도 있었지만 수비 자체는 형편없었다. 불스를 상대하는 특급센터들[14]은 평상시보다 더 활약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샤킬 오닐과의 매치업이 대표적인데, 가끔씩 연속으로 오닐의 슛을 블럭한 적도 있었지만 바로 무자비하게 응징을 당하곤 했다. 둘은 덩치만 비슷했을뿐 매치업됐을때 힘, 기술, 스피드 모든 면이 우월한 오닐이 롱리를 탈탈 터는 게 기본이었다. 물론 그 외 선수들을 틀어막아 불스 전체적으로는 실점을 매우 적게 했지만.

하여간 어떻게든 써먹기 위해 갖은 애를 썼음에도 운동능력과 스피드가 딸리고 볼을 다루는 스킬도 부족하고 어리버리해서 요령도 부족하고 종종 쓸데없는 파울까지 저질러 필 잭슨과 조던의 속을 끓게 했다. 거기다 조던이나 피펜이 만들어 준 찬스를 어이없이 날리는 장면을 종종 보여줘 현지는 물론 당시 우리나라 NBA팬의 대다수 지분을 차지하던 불스팬들에게 장난 아니게 까이기도 했다. 마이클 조던은 98년 당시 기자들에게 센터 트리오인 롱리, 빌 웨닝턴, 조 클레인을 지칭하며 "내가 뭐랑 같이 뛰어야 되는지 알아요? 21피트 (6.3미터) 짜리 똥덩이리죠"라고 독설을 날리기도 했다.[15][16]???: 롱리는 놔두라고 40분 내내 이야기했는데 안 들어먹으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도 3연패 과정에서 점점 경험이 쌓이면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3연패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7-98 시즌은 출전시간을 경기당 평균 30분 가까이로 끌어올리고 적극적으로 오펜스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며 경기당 평균 11.4점, 5.9리바운드를 거두는 쾌거(...)를 올렸다. 둘다 커리어 하이.

2.2. 피닉스로 이적

이 당시 롱리의 활약에 낚인 피닉스 선즈가 5년계약을 안겨주며 롱리를 데려가지만, 그의 활약은 어디까지나 트라이앵글 오펜스 한정이었다는것이 뽀록나 그 이후론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롱리는 스스로 득점을 만들 수 있는 선수도 아니고, 골밑에서 득점감각도 별로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있지 않으면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게다가 불스에서 그는 역대급 수비수 세명과 같이 뛰었고 같이 뛰는 론 하퍼도 수비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라 이 네 명이 수시로 헬프 수비수를 들어오는 혜택을 누렸다. 그러니 혼자 골밑 수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전혀 위력이 없었던 것. 또한 스탯을 보면 알 수 있지만 그는 그 덩치에도 리바운드가 그리 강하지도 못했다. 결국 공격도 못해, 수비도 못해, 리바운드도 못해, 잘 뛰지도 못해... 그야말로 무용지물이었던 것.

참고로 당시 그가 받던 연봉은 스스로의 연봉을 자진해서 깎았던 유타 재즈의 슈퍼스타 존 스탁턴보다도 많았는데, "스탁턴이 룩 롱리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는 당시 젊은 선수들이 별로 보여준 것도 없이 거액의 연봉을 받던 트렌드를 비판할 때 단골메뉴로 등장하기도 했다. 물론 롱리도 1998 시즌 기준으로 29세라 그렇게까지 젊은 건 아니었지만.

롱리는 선스에서 첫시즌 게임 평균 8.7득점, 5.7리바운드를 기록했다. 그리고 1999-2000 시즌에는 게임 평균 6.3득점, 4.5리바운드라는 처참한 기록을 남기고 '킹콩센터' 패트릭 유잉이 포함된 4팀간의 대형 트레이드를 통해 닉스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2.3. 닉스에서의 은퇴

닉스 유니폼을 입고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2000-01시즌 발목부상에 시달리며 고작 25경기를 출전해 평균 2.0득점 2.6리바운드의 처참한 스탯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 곧바로 은퇴하며 NBA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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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호주로 귀국하여 오스트레일리안 부머스[17]의 어시스턴트 코치로 재직중이다.

3. 플레이스타일

전반적인 능력은 여타 주전급 센터들과 비교해 부족했으며, 나름 준수했던 중거리 슛과 패싱 센스도 1990년대 센터 중 평균 이상은 됐다 정도일 뿐 강점이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다.[18] 골밑에서 벗어나 복합적인 롤을 소화할 수 있는 센터들이 여럿 있는 현대를 기준으로 보면 더더욱 장점이라 할 만한 것을 찾기 어려웠던 선수. 장점이라면 218cm의 큰 신장, 폼은 우스꽝스러워도 80%대의 성공률을 자랑해 상대 팀의 파울작전을 봉인시키는 자유투, 센터치고 준수한 어시스트/턴오버 비율과 슛레인지, 딱 거기까지였다.

골밑 득점력은 형편없었고 보드장악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블락 능력은 큰 키 덕분에 나쁘지 않았지만, 그거 하나 믿고 가기에는 영 좋지 못했다. 상술했듯이 중거리 슛과 패싱 센스는 그럭저럭 쓸만했다는 점이 그가 NBA에서 약체 센터로나마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인 셈. 특별히 잘 한다고 내세울만한 능력은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몇 안 되는 그를 써야만 했던 불스는,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꼭짓점에 박아서 조던이 상대 수비를 끌어내면 오픈 찬스에 중거리 슛을 쏘거나, 아니면 볼 돌리는 거나 시켰다. 덩치에 걸맞게 힘은 센 편이었지만[19] 그 강한 완력을 인게임에 활용하지는 못했고, 당시 올스타급 센터들의 주무기였던 포스트업 역시 롱리에게 기대하기는 힘들었다.

당시 불스 오펜스는 조던과 피펜, 쿠코치 등을 중심으로 돌아갔기에 롱리를 비롯 빌 웨닝턴 등 백인센터들은 몸빵으로 로포스트에서 자리만 채우고 노마크가 될 때 중거리 점퍼만 제대로 성공시키면 되는 역할을 맡았다. 또한 처음문단에 기술된 것처럼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대한 이해도가 나쁘지 않아서 꽤 오랫동안 주전센터로 나왔고 조던, 피펜이 스크린을 받아 백 컷으로 갈때 롱리가 적시에 주는 패스도 불스의 주요 공격전술 중 하나였다. 물론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그정도 외에는 딱히 없었기 때문에 딱 그만큼의 역할만 맡게 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제한적인 역할만큼은 나름 쏠쏠하게 해주었다는 평.

일단 느려도 너무 느리고 수비 리바운드 간수도 좋지 않아 빈말로도 좋은 수비수는 아니었는데, 덩치가 덩치이니 만큼 몸빵이나 림프로텍팅은 그나마 봐줄 만 했다. 하퍼-조던-피펜-로드맨이라는, 동적인 수비에 능한 동료들이 많다 보니 롱리는 수비자 3초 룰에 구애받지 않고[20] 최대한 정적인 수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팀 덕을 많이 본 편이다. 롱리가 잘 못잡는 리바운드는 데니스 로드맨이 대신 십수개씩 잡아주니 롱리 입장에선 부담이 상당히 덜했고, 헬핑 디펜스도 좋은 팀이라 주요 길목만 막으면 다른 선수들의 협동 수비가 금방 이루어졌기에 센터가 할 거라곤 골밑에서 제대로 비벼주면서 블락슛을 제대로 날려주는 정도였다.[21]

게다가 그나마 쓸만하던 몸빵이나 림프로텍팅 역시 막강한 슬래셔나 로우포스트 득점원들 앞에 믿고 세워둘 수준은 아니었다. 로드맨이 수비를 잘한다지만 사이즈의 한계가 있어 센터를 아주 전담해서 막기는 어려윘고, 따라서 로드맨이 매치업할 수 없어 롱리가 막아야 했던 선수들 중 공격력이 좋은 선수들은 불스 상대로 할거 다 하는 경우가 많았다.[22]

롱리의 문제는 1대1에서의 기술적인 측면보다 팀플레이에서 센스가 형편없었다는 점이었다. 롱리는 사실 머리는 제법 좋은 선수였고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대한 이해도가 분명 있었다. 볼을 잡고 생각할 여유가 생겼을때는 패스를 적재적소에 찔러주거나, 덩치를 이용해 득점을 해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순간적인 상황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 엉뚱한 선택을 하거나, 워낙 둔하다 보니 엉뚱한 장소로 이동했다가 제때 빠지지 못해 동료들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23] 트라이앵글 오펜스는 선수들과 볼이 끊임없이 움직이며 오픈 찬스를 만드는 전술이다. 그런데 롱리는 포스트맨이나 슈터로서의 역할이 제한적이니 적재적소에 스크린을 해주는 것이 중요했는데, 조금만 공격흐름이 빨라지면 스크린을 걸 타이밍을 헷갈리기 일쑤였으며 엄청나게 빨리 변하는 상황에 대응하기엔 너무 둔했다.

이 영상의 6분 18초부터 보면 조던이 매치업을 놓친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더블팀하다가 자기 마크맨을 완전히 놓치는 수비실수, 상대팀이 슛을 하는 즉시 자기 마크맨을 박스아웃하는 게 빅맨으로서 상식인데도 불구하고 멍때리고 있다가 완전히 놓쳐 골대 바로 밑까지 가게 하는 실수가 찍혀있다. 부연 설명을 하자면 빅맨이 커버 들어오는 걸 헤지 앤 리커버리라고 하는데[24], 문제는 저 때 롱리처럼 견제 수준에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아예 깊이 들어오면 리커버리를 못하고 자기 마크맨을 완전히 놓쳐버리게 된다는 것. 이 때문에 롱리가 마크하던 선수는 골밑에서 오픈찬스가 났고, 파울로 막을 수 밖에 없었다. 잭슨이 곧장 "Goddamn it!"한 게 이 때문으로, 기초적인 실수다. 더 큰 문제는 조던이 애초부터 볼핸들러에게 크게 뒤쳐져있지 않았기 때문에 뚫린 게 아니라서 헤지가 필요조차 없었다는 것.[25]

즉 롱리는 1) 더블팀을 들어오지 않는다 2) 만약 더블팀을 할거면 볼핸들러에게 바싹 붙어 압박수비를 해서 패스나 드리블조차 어렵게 한다, 두 가지 중 하나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무슨 압박수비도 아니고, 헤지도 아니고 중간에서 어정쩡한 플레이를 하니 열이 터지지 않을 수가...[26] 참고로 위 영상을 찍은 기자 말에 따르면 불스 코치진은 경기 내내 롱리에게 소리를 쳤다.[27] 사실 워낙 조던이 동료들에게 가혹한 편이라 그 대상이 되었던 롱리에게 동정론도 있지만, 롱리는 조던 뿐 아니라 잭슨을 포함한[28] 코치진들에게도 욕을 들어먹을 정도로 답답한 선수였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NBA에서 살아남을만한 체격과 툴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단 하나의 확실한 강점은 없는 선수였다. 롱리가 만약 NBA 센터 중에서도 상위권인 덩치와 완력을 제대로 살릴 줄 알았더라면 묵직한 정통 센터로, 꽤 괜찮은 패싱 센스나 전술 이해도를 십분 살릴 수 있는 빠릿함이 있었더라면 컨트롤 타워로, 5번에서 나름대로 평균 이상이었던 슛이 좀 더 확실하게 좋았더라면 미드레인지 기반의 스트레치 빅으로 활약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NBA 선수로서의 오버롤 자체가 너무 낮았고, 잘한다고 할만한 것들도 파고들어보면 대단치 못해서 수준급 센터로 활약하기엔 한계가 명확했다.

4. 평가

상기 플레이스타일에서도 나와있듯이 눈에 띄게 잘 하는 부분이 없는 평범한 백업 센터 수준의 선수였고, 하필이면 같은 팀 동료들이 워낙 쟁쟁했기에 못하는 부분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다만 이러한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인지 다른 팀이었다면 가비지타임에나 뛸만한 폐급 선수 수준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는데, 적어도 그는 NBA에서 일정한 출전시간과 롤을 소화할만한 최소한 기량은 있었으며 아예 써먹지도 못할 폐급 선수는 결코 아니었다. 그냥저냥 써볼만한 1차 백업센터 수준은 되었다는 소리.

오히려 능력의 크기에 맞게 백업 센터로만 뛸 경우 수비에서 덩치는 있고 공격에선 미들을 그럭저럭 꽂아준다는 점에서, 감독 역량에 따라서는 적재적소에 투입하여 효과를 볼 수도 있는 유닛이었다. 그런데 롱리는 하필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불스 왕조 소속의 주전 센터이다 보니, 그가 볼을 흘리고 바보같은 실수를 하는 모습이 허구헌날 전세계에 중계되면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씌여진 것.

실제로 주전치고 못하기는 했지만, 만약 평범한 팀 소속이었으면 그냥 적당히 흔한 백업 센터로 눈에 띄일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NBA 기준 돋보일 것 없는 능력을 가진 평범한 센터들 중 하나였을 뿐이고, 보통 이정도 급의 선수들의 단점들이 이렇게까지 깊게 서술되지는 않는다. 이런 선수들은 딱 필요한 만큼, 필요한 용도로만 기용받기 때문. 다만 제대로 된 센터가 없는 불스의 팀 사정 덕분에 롱리는 주전으로 나와 능력대비 많은 플레잉타임을 얻었고, 그 반작용으로 동급 선수들에 비해 단점이 더 확실하게 보이게 된 셈이다.

불스에 스타팅 평균 수준이라도 되는 센터가 있었다면 롱리는 주전급 식스맨까진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백업 센터로 평가받았을지도 모른다. 롱리가 비록 1차 3연패 시절의 '스테이시 킹'처럼 포워드부터 센터까지 커버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었지만[29], 만약 카트라이트가 조금만 더 젊어 건재했더라면 (노장이라 평균 30분대를 뛰기 어려운) 그의 뒤에서 적당히 만족할만한 출전시간을 받으면서도 삽질할 땐 바로 벤치로 들어가면서 바보짓 하이라이트는 확실히 줄어들었을테니까. 문제는 2차 3연패 시절 불스는 롱리가 삽질을 한다고 바로 불러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30]

4.1. 배경

롱리가 까이는 이유는 결국 롱리가 주전으로 나와야 할 정도로 열악한 골밑 사정, 즉 불스의 센터 기근으로 귀결된다.

불스의 센터진은 원래부터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갈수록 처참해진다. 우선 첫 우승 당시 빌 카트라이트는 공격능력은 거의 사라졌지만 수비력만큼은 상당히 괜찮았고[31], 그 뒤를 윌 퍼듀란 평범한 백업센터가 커버해주고 있었기에 그래도 나쁘진 않은 수준이었다.[32] 그러나 노화기색이 역력했던 카트라이트의 출장시간이 28분->23분->19.9분까지 떨어지는 동안 그의 후계자가 되어야 할 퍼듀의 실력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스테이시 킹이란 선수는 키는 크지만 골밑에서 그리 강한 편이 아니라 4번으로 출장하고 있었는데, 센터 공백 때문에 불스는 그를 5번으로 쓰기도 했으며 자주 다치는 카트라이트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 1993-94시즌 킹을 트레이드하여 롱리를 데려오는 동시에 빌 웨닝턴을 영입했다. 여기에 4번인 스캇 윌리엄스까지 센터로 기용해 센터 5명씩을 부상자 명단에 넣었다 뺐다 하며 땜빵하는 처참한 지경에 이른 것.

이후 카트라이트가 떠나자 퍼듀를 주전, 롱리/웨닝턴을 백업으로 썼으나, 그 퍼듀조차 잃고 1995-96시즌엔 롱리가 주전에 웨닝턴 백업 체제가 자리잡았다. 문제는 저 둘도 합쳐서 48분을 채워쓸만한 선수들은 아니었다 보니,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잭 헤일리란 완전 무명의 선수와 한 때 뛰어난 센터였으나 나이가 40을 넘겨 은퇴하기 직전인 배드 보이즈 출신 제임스 에드워즈까지 데려왔다. 에드워즈 은퇴 후엔 마찬가지로 은퇴 직전이었던 로버트 패리쉬와 더불어 시즌 도중엔 클리퍼스의 주전센터였던 브라이언 윌리엄스[33]를 데려왔고, 윌리엄스가 떠나고 패리쉬가 은퇴한 이후엔 롱리와 비슷한 급의 센터인데다 노장이기까지 했던 조 클라인을 데려왔다.
즉, 불스엔 항상 센터들이 여럿 있기는 했다. 그러나 카트라이트 이후 한번도 주전급 센터가 뛴 적이 없었고, 롱리, 퍼듀, 그리고 많은 시간을 떼워주긴 힘들었지만 중거리 슈팅력과 BQ는 상당히 높았던 웨닝턴, 시즌 중엔 비중이 적었지만 동부결승/결승에선 롱리와 비슷한 수준으로 뛰어준 윌리엄스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가 머리수 채우는 수준으로 데려온 센터들에 불과했으며 그만큼 별 활약도 없었다. 한마디로 확실하게 믿을만한 센터는 없으니 꾸역꾸역 물량으로 땜빵을 한 것이고, 그 7푸터 물량 중 억지로나마 장기 주전으로 써볼만한 센터는 롱리 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나마 브라이언 윌리엄스(=바이슨 델리)가 퍼듀나 롱리 등에 비해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긴 했다. 그는 1996-97시즌 막바지에 불스에 합류한 뒤 롱리와 로테이션으로 나오며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이때 두 자리수 출장시간을 받은 2라운드부터 치면 롱리와 대동소이한 수치[34]를 기록하며 우승에 일조했다. 비록 6'9"의 언더사이즈 센터인 그를 로드맨과 기용하면 높이가 너무 낮아진다는 문제는 있었지만 당연히 웨닝턴보다는 훨씬 좋은 선수였고, 별 의미없는 가정이긴 하나 예전 퍼듀-롱리처럼 출장시간이 비슷한 로테이션으로 기용하면 좋았을 것이다. 실제로 델리는 그 직후인 1997-98 시즌에 16-9 가량을 기록할 정도로 나름 준수한 폼을 선보였기 때문.

높이가 떨어지는 대신 더 역동적이고 골밑 득점력과 보드장악력이 있는 델리, 느리고 리바운드도 떨어지지만 덩치 하나는 크고 중거리 슈팅 능력도 그럭저럭 쓸만하던 롱리는 장단점이 서로 달라 번갈아 내보내기 딱 좋은 자원들이었다. 또한 단순 2로테를 넘어 로드맨이 쉬는 동안에는 델리가 4번을 볼 수도 있기 때문에[35] 롱리-로드맨 주전에 델리가 4~5번을 모두 백업하며 주전급 식스맨으로 뛰었다면 조던era의 마지막 한 시즌은 꽤 준수한 빅맨진이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36] 그러나, 불스 샐러리캡은 이미 상한선을 넘은 통에, 디트로이트가 무려 7년 규모의 패닉바이를 저지르며 동행이 더 이어지지 못했다. 다른 팀이 큰 돈을 지른 마당에 불스 입장에서는 무리해서까지 잡을 정도로 그가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으니...

사실 다 떠나서 1차 3연패 시절의 팀내 3인자였던 호레이스 그랜트를 제 값 주고 잡기만 했어도 센터 문제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랜트는 주 포지션이 파워포워드였지만 208cm(착화 211cm)의 신장에 드래프트 당시의 체중(97kg)보다 약 30lbs를 증량하여 충분히 센터로 뛸 수 있는 피지컬이 있는 선수였기 때문.[37] 여기에 평균 12~15득점을 올려줄 수 있는 공격력, 디펜시브팀을 다회 수상할 정도의 수비력, 준수한 보드장악력 등이 있어 그랜트 주전에 롱리 백업이라면 꽤 준수한 센터진이 된다. 물론 저가 자원이 아니었던 그랜트를 잡는 만큼 다른 부분에서 공백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사실상 팀 프랜차이저이자 쓰리핏의 주역이며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선수를, 헐값을 제시했다가 그냥 보내버린 건 좋은 선택이라고 보기 어렵다.[38]

4.2. 옹호

사실 쏠쏠하게 잘 뛰던 백업급 선수가 팀 사정때문에 무리하게 주전으로 올라오자 단점이 두드러지는 일은 흔하다. 특히 롱리의 경우 백업급 센터를 어떻게든 주전으로 써먹으려던 팀의 고민과 노력이 아래에 깔려있었고, 때문에 불스에서의 활약만을 보며 거액을 배팅한 피닉스 선즈가 쪽박을 당하기도 했던 것.

사실 롱리 정도만 되어도 당시의 비미국인 농구선수로서는 엄청난 것이다. NCAA나 타 해외리그에서 슈퍼스타로 이름날리던 선수들 중 극소수만이 NBA의 문턱이나마 넘어볼 수 있고, 그마저도 가비지타임 로테이션 멤버 수준에서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NBA를 뜨는 선수들이 발에 치일 정도로 넘쳐난다. NBA에서 가비지멤버를 넘어 백업으로써 유의미한 출전시간과 역할을 할당받는 것 자체가 무시못할 성취이며, 적어도 롱리는 NBA에서 10년은 버틴 선수이다. 실제로 롱리는 호주 역사상 최초의 NBA선수이며, 호주에선 당연히 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르고 국가대표팀 감독도 맡았으며 농구영웅 취급받는다. 한국으로 치면 허재나 서장훈 정도 위치의 선수. (물론 이 둘과 달리 호주에는 그를 능가하는 후배들이 몇 있다.[39])

실제로 악평과는 별개로 시카고 불스 입장에선 소중한 선수긴 했다. 앞서 언급되어 있듯이 그의 백업은 빌 웨닝턴, 말년의 로버트 패리쉬와 제임스 에드워즈 등이 맡았는데, 은퇴 직전의 패리쉬와 에드워즈는 당연히 별 도움이 안되었으며 웨닝턴은 롱리외 마찬가지로 중거리슛과 패스 말곤 능력이 없었는데 피지컬조차 롱리보다 떨어졌다. 그나마 롱리와 2로테를 돌릴 만 했던 윌리엄스마저 잠시 동행하는 데에 그쳤으니, 롱리가 빠지면 차라리 쿠코치를 스타팅라인업으로 올리고 로드맨을 센터로 올리고 피펜을 파워포워드로 두거나 아예 쿠코치를 센터로 올리는 변칙 라인업을 써야했다. 즉, 저런 롱리조차 없으면 비상이 걸릴 정도로 당시 시카고의 골밑사정은 심각했다. 이에 따라 필 잭슨은 제한된 환경에서 롱리라는 센터를 최대한으로 활용했고, 롱리 또한 본인에게 맡겨진 임무는 그럭저럭 수행해주며 능력 이상의 기회를 받을 수 있었다.

불스에 준수한 붙박이 주전급 센터가 하나라도 있있거나[40], 혹은 롱리와 비슷한 수준이라도 장단점이 달라 16분씩 3로테라도 안정적으로 돌릴 수 있는 센터 뎁스가 있었다면 팀의 상황은 더 좋아졌을 것이다.[41] 당대 환경에서 센터포지션에 약점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약점이고, 이를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불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42][43] 물론 센터가 아쉬울 뿐 당시 불스는 강한 팀이었고, 돈을 잘 안 쓸 뿐 불스 프런트의 역량 자체는 (어느정도 평은 갈릴지언정) 인정받는 편이다. 센터 보강이라는 키워드만 두고 봤을 때 명백히 애매한 운영을 했다는 것.

정리하자면 이렇다 할 센터가 없어 롱리를 주전 자리에 욱여넣고 능력 이상의 플레잉타임을 주는 상황이 된 건 누굴 탓 할 것도 없는 불스 프런트의 책임이었고[44], 롱리는 주어진 환경에서 본인의 역량 하에 최선을 다했다. 즉, 현 NBA에서도 팬들이 백업 정도의 선수에게 패배나 성적 부진의 책임을 떠넘길 시 '그 선수 때문에 말아먹을 정도라면 너희 팀이 딱 그정도인거다.' 식의 반박이 곧잘 따라붙듯이, 실제 기량과 기대치는 애초에 딱 백업 정도였던 롱리가 주전이라서[45] 생긴 골밑 불안의 책임은 롱리 개인보단 불스 프런트에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5. 여담

롱리의 위엄
  • 최근 호주공영 방송인 ABC에서 록리의 인생 전반을 다룬 다큐가 나왔다. 조던, 피펜, 커 등 불스시절 팀메이트와 필 잭슨까지 모두 나온 초호화 캐스팅. 제목은 One giant leap. 후속으로 ABC에서 마이클 조던과 단독으로 롱리에 대해 30분 인터뷰를 한 영상도 나왔다. 후술하는 유타전 일화도 조던과의 이 인터뷰에서 나온 것. 해석본은 여길 참조.[46]
  • One giant leap에서 재밌는 일화 하나가 조던에 의해서 공개됐는데, 유타와의 정규시즌 경기에서 롱리는 12점-4리바운드-4블락을 1쿼터에 기록했고 불스는 16점차로 앞서고 있었다. 신이 난 조던은 "그래 할 수 있잖아. 그렇게 경기하면 되는거야."라고 롱리를 격려했는데, 이 날 롱리의 최종기록도 12점-4리바운드-4블락(…) 경기는 유타의 16점차 역전승. 극대노한 조던은 "야 임마, 오늘 이후로 내가 경기 중에 너를 칭찬하는 일은 없을줄 알아."라고 대차게 깠다고 한다. * [47]
  • 아이러니하게도 불스 왕조 1기, 2기의 주전 라인업을 통틀어 가장 실력이 떨어지는 선수라는 점에서 오히려 한국팬들 사이에서는 주목도가 높다. 1기 왕조의 멤버였던 BJ 암스트롱의 경우 현재도 나무위키에서 개인항목이 없고, 센터 빌 카트라이트나 2기 왕조의 주전 가드였던 론 하퍼, 주전급 식스맨 토니 쿠코치는 롱리보다 훨씬 나중에 개인항목이 생겨났는데, 여기서 언급된 선수들은 모두 커리어 전체나 단기 시즌 임팩트가 롱리보다는 월등히 뛰어난 선수들이었다.
    • 론 하퍼는 특히 커리어 초기 클리퍼스 시절해도 평득 20점이 가능한 리그 상급 스코어러이자 슈팅 가드였는데, 부상으로 커리어가 처지고 나서부터 불스에 와서 반지 3개를 챙기면서 인지도를 얻은 대신 포인트 가드인줄 아는 사람이 매우 많다. 사실 더 심한 경우는 빌 카트라이트. 이 선수는 데뷔 이후 성장을 못한 특이 케이스긴 하지만 엄연히 롱리와 비교를 불허하는 올스타 출신 센터다. 평득 20점을 넘긴 시즌도 2번. 그러나 커리어 후반기에 불스로 왔고 그시절 득점력이 크게 뛰어나지 않았던 탓인지 대부분 롱리와 똑같은 수준의 식물 센터 취급을 받고 있다. 하향세긴 했어도 카트라이트는 불스에서 평득 10점 넘긴 시즌도 2번이다. 게다가 롱리와 달리 골밑 존재감과 수비력이 수준급이었던 선수다.[49]
  • 성격이 엄청 순한 편이라 훈련 때마다 조던이 다그쳤다는 일화는 유명하고, 1994-95 시즌 올랜도 매직과의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노마크 오픈슛 상황에 샤킬 오닐이 쫒아오는 걸 보고 쫄아서 찬스를 놓치는 바람에 엄청나게 갈굼먹는 게 방송을 타기도 했다.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사실 조던이 워낙에 동료들을 다그치는 성격을 지닌 선수라 실력이 안되는 선수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이런 성격이 필요하기도 하다.[50]
  • 1995-96 시즌 휴스턴전에서 롱리가 조던 수비수 픽을 걸어주었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 플레이 일화도 있다. 픽 이후 조던은 돌파를 시도 했으나 골밑에는 하킴 올라주원과 로버트 오리가 있었고 결국 오리에게 파리채 블락을 당했는데 다행히 쿠코치가 리바운드를 잡아 골밑 노마크였던 조던에게 다시 패스 하킴을 앞에두고 훅 슛을 성공시켰다. 이미 조던이 공을 잡는 순간 공격 분위기가 1대1 모드였으나[51] 잘 해보려고 했던 롱리가 눈치없이 다가갔고 조던 공격흐름이 변경되고 말았다. 설사 픽이 완벽하게 이루어져도 상대방이 아직 전성기 시절의 하킴이라 올바른 공격전개도 아니었기에 롱리는 다시 한 번 욕을 진탕먹었다.[52]
  • 위 일화에서 롱리도 대단한 점은 조던이 인상 쓰면서 "i don't need a pick. get out of my way" (픽 필요없으니 꺼져.) 라고 말했는데 문서 전반에 서술되어 있듯이 롱리의 성격상 전혀 위축되지 않고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어찌보면 멘탈 하나는 보통 멘탈이 아닌셈. 여러모로 재미있는 캐릭터이다.[53] 실제로 롱리의 동료들도 그가 굉장히 점잖고 착한 청년이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순둥이 같은 성격이 약점으로 작용해 롱리 본인의 표현으로는 "약간의 MJ스러움(A little bit of MJ)"을 배우려고 애썼다고 한다. 본인 성격엔 그런 치열함이 맞진 않았다고. 사실 룩 롱리 본인도 인정한 것이지만 본인의 삶에서 농구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고, 12세 때 U-14팀에 뽑혔다가 잘린 것도 경기에 대해 그리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농구를 대하는 태도가 그리 집요하거나 진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구도 그가 스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 롱리의 장신은 전적으로 유전이다. 아버지는 6피트10인치(208cm)에 달하는 자신이었고 어머니도 6피트4인치(193cm)였다고 한다.[54] 위에 언급된 ABC의 다큐멘터리에서 두 형제와 함께 출연했는데 정확한 키는 불명이지만 둘 다 롱리보다 약간씩만 작아 7피트 언저리로 보이는 엄청난 장신들이다. 그의 아내 증언에 따르면 한번은 나이트클럽에 갔는데 기도가 롱리가 의자 위에 서있다고 착각해 "의자에서 안 내려오면 당장 쫓아낸다!"고 윽박지렀는데 롱리는 "미안한데 나 의자 위에 안 서있는데?"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믿지 못한 기도가 득달같이 달려와 그를 올라다보고 경악했다고.
  • 위에 언급된 좋은 성격이 극도의 경쟁에 시달리는 프로선수 생활과 안 맞아서 어려움을 많이 겪기도 했다. 롱리는 원래 유쾌하고 (프로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질 정도로) 여유있는 성격이었으나 프로선수로서 성장하기 위해 매일같이 스스로를 비판하고 개선점을 찾는 습관을 들였다. 그러나 젊은 나이에 발목 부상 악화로 갑자기 은퇴하자 이 에너지가 갈곳을 잃어 가족, 그리고 본인에게 향했는데, 이로 인한 갈등 때문에 결국 대학시절에 만난 아내와 이혼하게 된다.[55] 이후 어린 시절부터 오랜 친구인 동갑내기 앤 가레와 결혼했다. 롱리는 은퇴 후 농구에 질려 오랫동안 관련이 없이 살아가다가 결혼 이후 안정감을 찾았는지 호주 대표팀 코치로 재직하게 된다.


[1] 말년 기준. 시카고 시절엔 292파운드(132.4kg)까지 나갔다. 96-97시즌 도중 나온 롱리의 트레이딩 카드를 보면 신장이 7피트2인치, 몸무게 292파운드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이 때 샤킬 오닐은 310파운드(138kg) 정도로 프로 커리어 통틀어 가장 슬림했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는 덩치는 둘이 비슷했다. 물론 바윗덩어리 같은 근육질인 샤크와 물살이 많은 롱리는 차이가 컸지만... [2] 물론 조롱성의 별명이다. 축구로 따지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별명 중 하나인 '신두형'의 느낌이 아니라 여기서 파생된 ' 신무형'이나 ' 신누형'처럼 조롱성 의미이다. [3] 포스트에서 버티는 건 단순히 힘만 무식하게 세다고 되는 게 아니다. 220파운드 정도인 데니스 로드맨이 300파운드를 가볍게 넘기는 샤킬 오닐의 백다운을 버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강력한 하체 힘과 더불어 외부 힘에 대응해 균형을 잡고 자세를 제대로 잡는 (이걸 못하면 넘어지지 않으려 뒷걸음질 치다 자리를 뺏기기 십상이다)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롱리는 단순히 육체적인 힘만 따지면 로드맨보다 강했을 수 있지만 그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능력은 현저히 부족했다. [4] 슬램덩크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힘을 자랑하는 강백호 신현필을 처음 맞닥뜨린 직후에는 그의 덩치와 힘에 밀려 골 밑에서 밀려났지만, 신현필의 약점을 깨닫고선 자세를 낮춰 균형을 잡고 하체 힘으로 밀어붙이자 오히려 신현필이 꼼짝 못하게 되는 지경이 되었었다. [5] 참고로 1995년에 가넷이 합류하기 전의 미네소타는 전형적인 약체팀이었는데 롱리는 여기서도 붙박이 주전은 못했고 돌아가면서 나왔다. [6] 시카고 불스의 트레이드 상대는 백업 파워 포워드였던 스테이시 킹이었다. 참고로 스테이시 킹은 2010년대 들어 시카고에서 불스 전담 해설자로 활동 중이다. 불스 경기를 보면 찰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7] 소위 "2차 쓰리핏 기간"이라고 불리는 1995~98 시즌의 불스는 1차 쓰리핏을 달성한 1990~93 시즌까지의 불스보다 센터진이 매우 약했다. 1차 쓰리핏의 경우 부상과 나이로 전성기에 비해 상당히 떨어졌지만 수준급 수비형 센터 빌 카트라이트가 있었고 그 뒤를 윌 퍼듀가 서포트하는 체제였지만, 2차 때는 퍼듀보다 더 실력이 떨어지는 롱리가 주전 센터였다. 물론 로드맨이 있긴 했지만 이때 로드맨은 부상과 나이 (35세~37세) 때문에 전성기 기량은 아니었다. 샤킬 오닐을 막을 정도로 대단하긴 했지만, 조던과 비슷한 체격의 로드맨이 경기 내내 샤킬 오닐을 막을 수 있던 것도 아니고... [8] 주로 센터나 포워드. [9] 골밑 가까운 곳. [10] 주로 가드와 포워드가 역할을 맡았다. [11] 자유투 서클 위쪽의 부분. [12] 물론 그렇다고 해서 조던이 주구장창 포스트업만 했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포스트업을 하는 횟수 이상으로 외곽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1대1 플레이를 하거나 수비수를 스크린을 이용해 떼낸 후 공을 잡아 바로 슛하는 catch&shoot 플레이도 자주 했다. 자연스럽게 삼각형의 꼭지점 역할도 로드맨, 롱리 등이 맡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선수의 공격능력은 한심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꼭지점 위주로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공을 돌리는 역할만 했다. 그나마 로드맨, 롱리가 패싱 센스는 빅맨치고 괜찮은 편이었기 때문에 트라이앵글 오펜스가 잘 돌아간 것. 그렇기 때문에 코치 텍스 윈터가 고안해낸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원형에는 오히려 이 때 불스 왕조보다 레이커스 왕조 당시가 훨씬 가깝다. [13] 상당수 센터, 파워 포워드들이 (성공률과 별개로) 3점 슛을 성공시킬 수 있으며, 최소 중거리 슛은 무난한 현재 NBA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당시는 경기 중 3점 슛이 가능한 센터 자체가 별로 없었다. 물론 전부 다 잘하는 4대 센터나 아비다스 사보니스, 릭 스미츠, 블라디 디박처럼 확률 높은 중거리 슛 능력을 가진 센터들도 있었지만, 평범한 센터 중에는 롱리처럼 15~18피트까지 공격범위가 안 되는 선수들도 있었다. 물론 롱리의 중거리 슛이 뛰어났던 것은 결코 아니지만, 당시 파워 포워드들의 영역에서 센터가 중거리 슛을 무난히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센터들의 평균치는 넘어선 것이었다. 롱리의 수비, 리바운드, 포스트득점, 기동력, 점프력 등 모든 게 NBA센터 평균 이하였는데 패스랑 중거리 슛이라도 평균 이상이 아니면 그냥 가비지타임 전용 폐급 센터다. 롱리는 어쨌거나 최소 백업~식스맨 급은 되는 선수였다. [14] 대표적으로 동부라 자주 붙은 유잉과 오닐 [15] 조던이 어느정도 수준의 센터를 원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센터들의 비중과 위상이 지금보다 높았던 시대에 백업급 센터를 주전으로 골밑에 세워둬야 하는 상황이 꽤나 답답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 1 식스맨이자 스몰포워드인 토니 쿠코치가 센터를 본 적도 있었으니. 덕분에 시카고는 플옵만 되면 센터의 공격비중이 높아지는 다른 NBA팀과 달리 조던의 공격비중이 높아져야 했다. [16] 사실 빌 카트라이트의 경우 이적해온 초창기에 전성기 시절 기량을 모두 잃어버린 그에 대한 불신+믿음직한 빅맨이자 친구인 찰스 오클리를 대가로 치른 것에 대한 불만으로 조던이 첫 시즌인 1988-89시즌엔 그를 엄청 갈궜지만, 이후 3연패 기간동안은 그를 상당히 존중했다. 실제로 카트라이트는 당시 팀의 공동주장이었다. 그는 공격력은 없었지만 든든한 수비버팀목이었기 때문에 롱리가 그만큼의 존재감이라도 있었다면 저렇게 갈굼받진 않았을 것이다. [17] 호주 농구 국가대표팀의 애칭. [18] 만약 롱리의 슈팅력이 더 좋아서 수비를 끌어올 수 있는 스트레치 빅맨 정도였다면 주전 중 3명(조던, 피펜, 하퍼)이 돌파&미드레인지 위주인 불스 특성상 꽤 도움이 됐을 것이다. 당대에 슈팅력 좋은 센터 겸 파워포워드였던 샘 퍼킨스의 경우 206cm에 불과한 단신임에도 3점까지 가능한 슈팅레인지로 전성기가 지나서까지 중용되었다. 혹은 롱리와 비슷하게 체격이 거대함에도 골밑공격력보다 스트레치 빅맨으로 존재감이 컸던 올스타급 센터 릭 스미츠의 경우도 있다. 그러나 롱리는 저들처럼 수비를 끌어오는 수준은 되지 못해 활용도가 여러모로 애매했다. 또한 퍼킨스의 경우 일찌감치 로테이션 주전으로 자리잡아 효율적인 조력자로 평가받았지만, 아래 설명됐다시피 불스는 저런 롱리에게 기대야 할 정도로 센터진이 처참했기에 중요 역할을 맡아야 해 약점이 더욱 부각되었다. [19] 운동능력과 완력은 다르다. 롱리는 운동능력은 매우 떨어졌지만 단순 완력은 어지간한 근육질 빅맨들보다 뛰어났고, 성격이야 순하지만 신경전 이후에 다른 빅맨이랑 시비 붙을 때 알론조 모닝이나 크리스 웨버를 완력으로 완전히 압도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qxxr9upzEc 특히 이 영상에서 보면 롱리가 모닝을 한손으로 가볍게 한번 밀치자 모닝이 발을 헛디딜 정도로 나가 떨어졌으며, 본격적으로 붙자 황소처럼 돌진하는데 근육질인 래리 존슨이 뒤에서 잡고 있는데도 전혀 저지를 못하고 질질 끌려가는 걸 볼 수 있다. [20] 수비자 3초룰은 2001-02 시즌부터 적용된다. [21] 그래서 2차 3연패 시절에 팀내 블락슛 1위가 롱리였다. 조던이나 피펜은 포지션 대비 뛰어난 블라커이나 결국 스윙맨이고, 로드맨은 뛰어난 수비력과 별개로 전성기때도 블락을 많이 찍어내는 타입은 아니었다. [22] 실제로 플레이오프에서 순항했던 96년 파이널 당시에도 닉스는 1승4패에 그쳤음에도 패트릭 유잉은 23.4점 11.2리바운드 야투율 46.7%, 샤킬 오닐은 스윕당하면서도 27점 10.8리바운드 야투율 64%를 기록해 각각 정규시즌 성적인 22.5점 10.6리바운드 야투율 47.2%, 26.6점 11리바운드 야투율 57.3%보다 근소하게나마 나은 성적을 기록했다. 같은 시리즈에서 뉴욕 팀 전체가 정규시즌에 비해 평균 득점이 10점, 매직은 평균 득점이 20점이나 떨어졌다는 걸 생각하면 불스의 질식 수비에 다른 매직, 닉스 팀원들이 허우적대는 사이 센터만 제 몫을 해줬다는 것이다. 96년 동부 결승 1차전에서 로드맨을 300파운드가 넘는 오닐에게 붙이는 무리수를 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하다. [23] 롱리같은 덩어리들이 움직임을 제대로 못 가져갈 경우 팀원들의 방해물이 되는 경우는 흔하다.실제로 롱리는 상대팀의 먹잇감이 되곤 하였고, 롱리의 움직임을 봉쇄하여 트라이앵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 상대팀의 주 전술 중 하나였다. [24] 1선에서 수비하는 선수(조던)이 볼핸들러에게 돌파당했을 경우 2선 수비수(롱리)가 도움 수비로 견제하고(헤지), 자기 마크맨에게 돌아가는(리커버리)를 의미한다. [25] 저 상황에서 만약 롱리가 더블팀이 오지 않았다고 치면, 공격수(바비 필즈가) 바로 슛을 바로 올라갔다면 사이드라인 근처에서 견제받는 터프샷을 쏘게 됐을 것이다. 혹은 돌파를 했다면 그때 기다리던 롱리에게 꼬라박는 셈이 된다. 공격수를 사이드라인 쪽으로 유도할 수 있다면 수비에서 어느 정도 성공은 거둔 셈인데, 한쪽으로 방향진행이 완전히 막혀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보기도 전에(=파울을 내주기 전에) 롱리가 더블팀을 들어온 것만 보고 잭슨이 욕을 내뱉은 게 그 때문이다. 저 때는 더블팀을 들어와서 마크맨에게 골밑에서 완전 오픈 찬스를 줄 필요 자체가 없었다. [26]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플레이로, 조던이 91년 플레이오프에서 돌파하다가 스탁스와 오클리의 더블팀을 기가 막히게 따돌리고 유잉 위로 덩크를 찍은 아주 유명한 장면이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Xrdy37zSV8. 이 장면에서 오클리는 결과적으로 (상대가 전성기 조던이니까) 뚫리긴 했지만 더블팀을 들어가는 순간 (파울 안 불리려고) 팔을 높이 들고 배부터 내밀면서 조던이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 정도로 압박을 가한다. 이게 제대로 된 압박 더블팀이고, 리커버리를 포기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 또한 닉스의 경우 뒤에 버티고 있는 선수가 수비력이 매우 뛰어난 패트릭 유잉이기 때문에 그를 믿고 오클리가 자기 마크맨에 대한 수비를 포기하고 조던에게 밀착마크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블팀은 한명을 포기하는 도박성 수비기 때문에 당연히 다른 선수들이 로테이션으로 커버해주고, 더블팀을 하는 수비수는 볼핸들러가 오픈된 선수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도록 강한 압박을 가해야한다. 상대가 워낙 강해서 뚫리긴 했지만 이건 상당히 잘 된 압박수비였다. [27] 영상에서 나오는 필 잭슨은 (수비 실수에서) "젠장 루크!(Goddamn it, Luke!)" 박스아웃 실수에서 "늦었잖아! 젠장할 루크!(You're late! Goddamn it Luke!)"라고 한다. [28] 잭슨의 별명은 "Zen Master"인데다가 레이커스 시절엔 너무 흐름대로 가고 타임아웃도 안 부르고 여유를 부린다고 팬들이 불평했던 사람이다. 물론 잭슨도 경기 중에 화내고 욕하고 하곤 했지만, 그 유명한 바비 나이트나 돈 넬슨처럼 얼굴이 시뻘개지면서 경기 내내 악을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이 저렇게 답답해할 정도였던 것. [29] 롱리는 센터 기준으로도 굼뱅이였기에 4번 슬롯로 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30] 당시 시카고 불스에서는 롱리조차 없으면 골밑에 심각한 공백이 생기는 수준이었다. 이때는 로우포스트 위주 농구가 비중이 높고 이들이 상대한 강팀들에는 패트릭 유잉이나 샤킬 오닐 같은 강력한 센터들이 있었는데, 힘과 덩치로 일단 버티는 건 가능했던 롱리가 빠지면 이들을 물리적으로 막아낼 방법부터 없었다. 96년 2라운드에서 붙었던 닉스vs불스 시리즈는 양팀의 강한 수비에 서로가 막힌 저득점 시리즈였는데, 닉스의 득점이 10점 가까이 떨어지는 와중에 주전센터 유잉은 팀에서 소폭이나마 득점과 리바운드가 오른 거의 유일한 선수였다. 이후 올랜도 시리즈에서 오닐도 마찬가지. 그런데 풀타임으로 이들과 매치업해줄 수 있는 선수는 불스에 롱리 밖에 없었다. 만약 롱리조차 없었다면 실력은 롱리와 대동소이하면서 피지컬이 더 약한 빌 웨닝턴이나 키가 작은 로드맨, 아예 빅맨도 아닌 쿠코치가 막아야 하는데 이 선수들은 일단 체격과 운동차이 때문에라도 풀타임 매치업은 불가능하다. 결국 미우나고우나 롱리가 코트 위에서 최대한 오래 있어줘야 했는데, 압도적인 실력 차이 때문에 농락 당할 수 밖에 없으니 팬들에겐 그 인상이 강력하게 남은 것. [31] 블럭은 0.2개에 불과했지만 큰 사이즈를 활용한 수비존재감과 맨투맨 골밑수비력은 상당했다. [32] 리바운드가 아쉽긴 했지만 이 역시 한창 쌩쌩하던 그랜트-피펜-조던의 가담으로 충분히 가릴 수 있었다. 셋이 합쳐 리바운드 21~24개는 거뜬히 잡아낼 수 있으니까. [33] 이후 바이슨 델리로 개명 [34] 롱리: 6.6점 4.6리바운드 1.4어시스트 0.9블럭 0.4스틸 야투 58.5%, 델리: 6.5점 4.3리바운드 0.7어시스트 1.1스틸 0.5블럭 야투 48.4% [35] 아예 델리에게 출전시간을 넉넉히 주어 노장이라 체력이 예전같지 않았던 로드맨에게 조금 더 휴식을 줄 수도 있었다. [36] 실제로 당시 인디애나 페이서스 안토니오 데이비스가 딱 그러한 역할을 맡았다. A.데이비스는 어지간한 팀에서 주전 빅맨이 될 수 있는 선수였고 토론토 랩터스로 이적한 후 올스타에도 선정된 바 있지만, 릭 스미츠 데일 데이비스가 주전 빅맨을 구성하던 인디애나에선 스미츠와 D.데이비스 양쪽을 백업하는 키 식스맨에 머물렀다. [37] 실제로 1차 3연패 시절 팀내에서 가장 완력이 강한 선수는 그랜트였다. [38] 실제로 그랜트는 딱 불스가 쓰리핏을 달성한 1997-98 시즌까지는 상위권 빅맨의 폼을 유지했다. 거기다가 그랜트는 실책도 잘하지 않으며 트라이앵글 오펜스의 이해도가 높은 BQ를 가진 블루워커 빅맨이었다. 전술 이해도가 좋은 편이었기에 필 잭슨이 레이커스에 부임 당시 그랜트를 굳이 데려가기도 했다. [39] 앤드류 보것이 루키 시즌 "난 롱리같은 선수랑은 다르다"는 디스멘트를 했는데, 애초에 보것은 똘끼 넘치는 선수인데다 당시 드래프트 1순위였음에도 드래프트 뎁쓰가 낮다, 백인센터라 한계가 있다 이런저런 폄훼가 많아 저런 건방진 멘트를 남긴 것이다. [40] 다른 곳에 눈을 돌릴 필요도 없이 1차 3연패 당시 빌 카트라이트 정도 센터만 있었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트라이트가 노화하는 동안 그의 후계자를 결국 찾지 못해, 카트라이트의 백업급에서 성장하지 못한 퍼듀와 비슷한 수준의 롱리를 주전으로 세워야했던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후반 3연패는 백업을 계속 주전으로 쓴 셈. 실제로 퍼듀는 롱리보다 크게 나을게 없는 실력임에도 그리 많은 욕을 먹는 선수가 아닌데, 이는 그만큼 기대치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로 호레이스 그랜트는 퍼듀보다 훨씬 좋은 선수였음에도 조던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는데, 팀내 넘버3와 백업 센터에게 기대하는 것이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41] 실제로 마땅한 주전급 센터가 없는 팀은 5번 자리에서 이런식으로 3로테를 돌리곤 한다. 1~4번을 준수한 주전으로 채우고 5번은 백인센터 물량으로 땜빵하던 제이슨 키드 era의 뉴저지 네츠가 그 예시. [42] 1997,98시즌에 맥시멈 제도가 없었을때 조던을 잡느라 거액을 써서 묻히는 부분이지만, 시카고는 왕조 시절 돈을 잘 안 쓰기로 유명했다. 심지어 1차 3연패 기간동안에는 3년 내내 샐러리캡 밑이었다. 토니 쿠코치 영입을 위해 2백만달러 언저리의 여유를 남겨놨기 때문인데 (당시 샐러리캡은 1천1백만~1천4백만 달러수준이었다), 심지어 1990-91시즌에는 팀 연봉이 27개팀 중 23위였다. 그 다음 시즌엔 장기계약에 묶여있던 조던과 피펜의 연봉이 큰 폭으로 오르고, 연봉에 불만이 많던 카트라이트, 그랜트, 팩슨 등 우승 공신들의 연봉을 전체적으로 올려주며 리그 3위를 찍고 그 다음 시즌도 4위가 되지만, 조던의 연봉이 빠진 1994, 95시즌은 둘 다 12위 (1995시즌엔 그랜트 연봉이 빠지고 론 하퍼가 들어옴), 조던 연봉이 추가된 1996시즌엔 오히려 15위였다. [43] 전체적으로 시카고 불스는 팀 역사상 NBA에서 총 연봉 1위를 차지한 적이 1997,98시즌 단 두번, 대부분 기간을 10~20위대에서 왔다갔다 할 정도로 투자 안하던 팀이다. 1996-97시즌부터는 마이클 조던이나 데니스 로드맨의 고액계약 때문에 샐러리 캡 압박 때문이었다고 해줄 수 있겠지만, 그 전에 8년간은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심지어 이때는 조던과 스카티 피펜이 샐캡이 뛰기 전 잘못 맺은 장기계약으로 의도치 않은 염가봉사중이던 시절이었다. 거기에 조던, 피펜은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들이고, 로드맨은 스퍼스에서 버리다시피한 걸 주워온 것(퍼듀 주고 받아왔다)이고 존 팩슨은 원래 후보가드로 뛰던 것을 데려와 주전으로 올린 것이다. 즉 이 팀이 왕조 기간 내내 거액을 들여 데려온 선수는 1994년의 론 하퍼가 유일하다. [44] 이 팀은 1996-97시즌에 래리 버드권리가 없던 로드맨에게 무려 9백만달러 연봉을 주고 재계약 후 버드권리를 이용해 조던과 계약했는데, 9백만달러는 해당년도에 전성기이던 디켐베 무톰보 연봉과 비슷하다. 이 시대의 9백만 달러는 올스타급 연봉이다. 게다가 이때 로드맨이 받은 9백만달러는 그의 커리어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액수다. (2위 시즌의 두배) 이 액수를 35세 노장에게 선사한 것. 물론 로드맨의 공헌도는 무시할 수 없지만, 전성기도 아니고 플옵에서의 폼도 이전에 비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기에 조금 더 아끼는 편이 나았다. [45] 롱리의 기량은 윌 퍼듀와 대동소이하며, 실제로 퍼듀가 이적하기 전 퍼듀는 주전, 롱리는 거의 차이 없는 백업으로 로테이션으로 나오고 있었다. 즉 당시 불스 센터진은 백업급으로 땜빵 중이었으며, 저 중 좀 더 경력이 있어 더 입증된 퍼듀가 가치가 더 나았기에 로드맨 트래이드에서 활용된 것이다. 만약 불스에 남은 것이 롱리가 아니라 퍼듀였다면 퍼듀가 지금 롱리의 위치에서 욕받이가 됐을 것이다. 그런데 땜빵 중이던 저 센터진 중 일각을 포기하고 보강은 없었으니 센터진이 빈약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46] 특히나 라스트 댄스가 방송된 이후, 왜 주전이었으면서 라댄에 비중이 전무하냐는 의혹이 달린 선수 중 하나였다. 후술했듯 호주에서는 농구영웅이나 다름없는데, 엄청난 인기를 끈 라댄에서 비중이 없기에 자극받은 ABC가 롱리를 되찾은 면도 있다. [47] 조던은 이를 회고하면서 이를 통해 롱리는 칭찬하면 거기에 만족해 멈추는 스타일이라, 오히려 더 채찍질해야만 기량을 올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다만 마사장 특유의 성격상 이를 너무 과도하게 끌어올린 부분도 있었다고 본인도 이를 인정했다. [48] 엄밀히 따지면 빌 카트라이트도 1차 쓰리핏 멤버지만, 애초에 우스개로 하는 말인데다 최소한 그 시대를 지배한 최고의 선수들의 전유물이던 3연패를 롱리가 달성했다는 게 포인트 [49] 즉, 롱리는 공격력으로 먹고 사는 주제에 (위에 언급했듯 수비력은 극히 평범했다) 그나마 득점력도 수비형 센터인 카트라이트와 잘해야 비슷한 수준인 것. 또한 카트라이트는 조던과 공동 주장으로 무자비한 조던과 대비되는 따뜻한 성격의 리더 역할을 잘해줬다. 현실은 트레이드 대상이 찰스 오클리였던 탓에 조던에게 폭풍 갈굼당했다는 일화만 알려진 불쌍한 선수 취급은 덤. [50] 대표적으로 1차 3연패 당시 호레이스 그랜트는 성격이 섬세하고 순한 편이라 조던의 갈굼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조던의 워싱턴 시절에 만난 콰미 브라운도 항목에 나와 있지만 거의 트라우마에 가까울 정도로 조던을 두려워했다. [51] 오리는 사이드스텝이 빠른 선수가 아니라 비슷한 키의 케빈 가넷에게도 정신없이 털렸는데, 가넷보다 빠른 조던이라면 아이솔레이션으로 손쉽게 제치고 중거리슛을 넣으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다른 세 명의 선수들은 눈치를 채고 다 코트 반대쪽으로 몰려가서 조던에게 공간을 줬는데, 롱리만 눈치없이 필요도 없는 스크린 걸어주러 가면서 하킴을 데려간 것이다. 결국 조던은 중거리슛 옵션이 봉쇄되고 베이스라인 돌파쪽에는 하킴이 지키고 있어 어쩔수 없이 중앙으로 돌파했는데 골밑엔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따라온 하킴까지 있었다. 이들을 제치고 어찌어찌 레이업을 올려놓긴 했으나 그 사이 따라온 오리에게 블럭을 당한 것. 손쉬운 중거리 점퍼 하나가 사실상 트리플팀을 제치고 올리는 더블클러치라는 초고난이도 플레이로 바뀌엇으니 조던도 열받을만하다. [52] 픽앤롤의 장점은 픽앤롤이 이뤄지면 순간적으로 매치업이 바뀌어 미스매치가 이뤄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데릭 피셔-샤킬 오닐이 존 스탁턴-칼 말론을 막을 때, 말론의 스크린 이후 순간적으로 발이 느린 오닐이 스탁턴과 매치업이 되고 185cm의 피셔는 206cm에 탱크같은 몸을 지닌 말론을 막아야된다. 레이커스가 유타에 그토록 털렸던 이유, 그리고 장신 론 하퍼를 스타팅 PG로 영입한 이유. 그런데 이 상황에선 조던을 센터치고 발이 빠르고 수비범위가 넓은 하킴이, 롱리를 키는 208cm에 달하는데다 운동능력이 매우 뛰어난 오리가 막게되어 미스매치의 의미가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조던이 스크린을 활용하지 않고 반대편으로 간 것이다. [53] 당시 조던은 이미 역대 넘버 1위치였으나 1차 복귀 이후 다음 시즌이라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시즌이었다. [54] 여담으로 이는 야오밍의 아버지/어머니의 키들과 똑같다. [55] 이혼의 이유가 룩 본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기에 둘은 갈라지고도 좋은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전 부인 켈리 예이츠는 룩이 아직도 "최고의 아빠이고 최고의 인간이자 훌륭한 남자"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