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1 11:52:25

루이 헨드릭 포트기터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루이 헨드릭 포트기터
Louis Hendrik Potgieter
파일:1000136125.jpg
출생 1951년 4월 4일
남아프리카 연방 하우텡주 프리토리아
사망 1994년 11월 12일 (향년 38세)
남아프리카 공화국 게베하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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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디스코
직업 가수
포지션 보컬, 댄서
신장 190cm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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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가수. 징기스칸의 멤버로 1대 칸이다.

2. 생애

1951년 4월 4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조상은 네덜란드 출신이고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며 그의 아버지는 프리토리아의 영업 이사였다고 한다. 또 그에게는 한 명의 형제와 4명의 여자 형제가 있었다.

그는 학교 축제에서 춤을 추고 안무를 만들기도 했으며 학교를 마친 후에는 2년간 그래픽아트를 공부하여 패션 디자이너, 음악가, 댄서의 꿈을 가졌다고 한다.

21세까지 아무런 발레 수업도 받지 않았으나 요하네스버그 극장의 발레 감독을 소개받았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감독은 3개월의 수습기간을 주었고 그는 그 3개월간 연습실에서 매일 6, 7시간을 연습했다.[1] 그는 그럼에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마침내 고용되었으나 그의 자리는 맨 끝줄이었다. 그리고 2년 후에 그는 솔로 댄서로 데뷔하여 그의 큰 꿈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발레 단장으로서 독일 울름으로 간 그의 친구의 초대로 루이스는 독일로 떠나 울름에서 1년을 생활하고, 스위스의 장크트갈렌에서 1년을 보냈는데 그는 큰 무대에 서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다가 프랑크푸르트로 여행 갔을 때 1년에 서너번 보는 오디션에서 합격하여 뮌헨의 극장에 고용되었다.

그는 그 극장에서 오페레타를 해야 했으나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하나 극장에서의 생활은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우연히 다양한 TV쇼에 나올 수 있게 되었고 유명한 안무가 윌리엄 밀리(William Millie)가 댄서를 찾고있던 랄프 시겔에게 데려가 관심을 끌도록 하여 그는 오디션에서 통과하였다.

그는 그 전까지 징기스칸의 멤버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고 그때 당시 그룹의 성공을 믿었을 거라고 자신에게 물어봤었다면 아니라고 천번 이야기했을 것이라 말했다.

루이는 데뷔 후 가운데서 춤을 추는 퍼포먼스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룹 해체 후에는 1986년 레슬리 만도키, 헨리에테 하이헬과 함께 다른 가수들과 징기스칸 패밀리를 결성하여 활동하기도 했으나 1993년 안타깝게도 에이즈로 요절하면서 사람들의 추모를 받고 있다.

그가 사망한 후에는 2대 칸인 슈테판 트라크가 그의 빈자리를 대신했으나 2018년에 탈퇴하면서 이후에는 보조 멤버로도 활동하기도 하였다.


[1] 이걸 그는 3개월간 동물처럼 연습해서 뼈에 감각이 없었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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