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갑에서 자료화면으로 등장한 룡남산텔레비죤의 오프닝 영상. 오프닝 문구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낸 친필구호인 자기 땅에 발을 붙이고 눈은 세계를 보라!이다.
1. 개요
북한의 방송사. 김정일의 55세 생일인 1997년 2월 16일 조선교육문화텔레비죤이라는 이름으로 개국한 뒤 2012년 9월 5일 현재의 이름인 룡남산텔레비죤으로 개칭하였다. 방송의 내용은 대한민국의 한국교육방송공사와 비슷하다. 방송 주체는 다른 방송과 같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개성텔레비죤의 1992년 10월 10일 방송 시작 영상.
사실 이 방송은 김일성의 59세 생일인 1971년 4월 15일 개국한 대남방송 성격의 개성텔레비죤을 전신으로 한다. 당시 보도 자료에 따르면 대남방송 송출용 장비는 1964년부터 개성 시내에 설치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방송은 평양, 개성 지역을 위한 PAL 방식과 남한을 향한 NTSC 방식으로도 방송하고 있었다. 대남용 채널 번호는 처음에는 13번이었다가 1971년 5월에 8로 변경했고 1978년에는 10으로 변경되었다. 9번을 사용하는 KBS 1TV와 11번을 사용하는 MBC TV의 사이였다. 때문에 남한에서는 8번과 10번에 방해전파를 걸어놓음과 동시에 T-DMB 채널을 송출해놓았다. 하지만 정말 간혹 서울에서도 이 방송의 수신이 가능했던 적이 있다고... 방송시간도 처음에는 평일에는 20시~22시 30분 사이에 방영하다가 19시~23시 30분로 확대되었고, 1990년대에는 평일 18시~23시 사이에 방송했다. 컬러 방송은 1991년 10월 10일부터 시행했다.[1][2] 자체 제작 프로그램은 거의 없었으며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제작한 영상물을 그대로 틀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방해전파로 인해 시청률이 저조한지라 선전효과가 떨어졌고, 어쩌다 전파가 잡히더라도 선전선동 콘텐츠 위주라 매우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갈수록 가중되는 경제난으로 인해 예산도 부담되었으며, 무엇보다 위성방송 시대가 개막되며 굳이 거액을 들여가면서 개성텔레비죤을 운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어서 1997년 2월에 폐국하고 방송장비 및 인원을 대내용으로 돌렸다고... 애초에 어찌어찌 남한에서 전파가 잡혀도 1990년대 초반까지 흑백 방송을 고수한 채널의 선전을 컬러 TV로 보고 선동당할 사람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방송 내용은 주로 영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어학 강좌나 교양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대략 남한의 ebs와 성격이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북한 당국은 조선중앙텔레비죤을 통해 '사회주의 교육에 관한 테제' 발표 35주년이 되는 2012년 9월 5일[3]부터 김일성종합대학이 있는 룡남산의 이름을 따 룡남산텔레비죤으로 개칭한다고 밝혔다. 기존에 해오던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 외에도 다양한 편집물, 외국 예술영화, 대학생 체육경기 등을 보낸다고 한다. 또한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등의 전자도서관 자료도 방송된다고 한다. 교육방송이지만 예산 문제로 전국방송을 2016년부터 시작했다. 송출 시간대는 2019년 기준, 평일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밖에 되지 않는다.(...)
2. 관련 문서
[1]
이때문에 KBS에서도 1TV와 2TV를 DMZ에서 송출한적이 있다고 한다.
[2]
왜 90년대 초반까지 흑백 방송을 고수했는지 여부는 전혀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의 실태를 감안하면 남한이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라는 허위 선전 때문에 방송국 직원들이 '남조선은 아직도 흑백 방송을 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다'라고 착각해서 흑백을 고수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NTSC 방식은 PAL이나 SÉCAM 방식과는 달리 컬러방송으로만 쏴도 흑백TV로도 동일하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저 놈들은 괜히 흑백방송 신호로 구분하여 쏜 셈이다.
[3]
북한의 교육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