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5 10:38:00

로니 모란

로니 머랜에서 넘어옴
로니 모란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대표팀
클럽
파일:리버풀 FC 라이버 버드 로고(레드).svg

14대(대행)

리버풀 FC 주장
조니 휠러
(1958~1959)
로니 모란
(1959~1960)
딕 화이트
(1960~1961)
}}} ||
잉글랜드의 축구인
파일:로니모란리버풀.jpg
로니 모란
Ronnie Moran
<colbgcolor=#eeeeee,#191919> 본명 로널드 모란
Ronald Moran
출생 1934년 2월 28일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사망 2017년 3월 22일 (향년 83세)
잉글랜드 머지사이드주 리버풀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잉글랜드|]][[틀:국기|]][[틀:국기|]])
직업 축구 선수( 레프트백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리버풀 FC (1949~1952 / 유스)
리버풀 FC (1952~1968)
지도자 리버풀 FC (1966~1998 / 2군 코치)
리버풀 FC (1966~1998 / 코치)
리버풀 FC (1991 / 감독대행)
리버풀 FC (1992 / 감독대행)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말년5. 대회 기록6. 같이 보기

[clearfix]

1. 개요

영국( 잉글랜드)의 축구인으로, 리버풀에서 태어나 리버풀 FC에서 1950년대 활약하며 팀의 첫 번째 전성기에 기여했고 은퇴 후에는 팀의 전성기 붉은 제국을 이끈 레전드 코칭 스태프 중 한 명이다. 또한 반 백년에 가까운 축구 경력에서 오직 리버풀만을 위해 헌신한 로컬 원클럽맨. 코치 시절에는 ' 부트 룸(Boot Room)'의 핵심 멤버이자 팀의 기강을 책임지는 코치로 명망이 높았다. 모란은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케니 달글리시로 이어진 팀의 전성기에서부터 팀이 로이 에반스 감독 체제로 이어지기까지 약 30년간 팀의 핵심 코치로서 헌신하였다. 리버풀의 20세기 중대사를 대부분 함께한 팀의 레전드인 만큼 Mr. Liverpool로 불리기도 한다.

2. 선수 경력

1934년에 리버풀 크로즈비에서 태어나 1949년경에 리버풀 FC 산하 유소년 팀 격인 C팀에 입단한 모란은, 이후 1952년 1월에 정식 계약을 맺어 1952년 11월 22일, 18세의 나이로 더비 카운티와의 경기에서 1군으로 데뷔했다. 선수 생활 2년차인 1954년에 팀이 강등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빌리 리델과 함께 리버풀의 1950년대를 이끌던 선수 중 하나였다. 1955-56 시즌을 기점으로 모란은 본격적으로 팀의 주전으로 올라섰고 1955년부터 1959년까지 단 6경기만 결장할 정도로 팀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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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의 로니 모란

그는 강인한 열정과 에너지를 발휘하여 상대 윙어에게 좀처럼 지지 않는 단단한 레프트백이었고 팀의 페널티킥을 전담할 정도로 킥력도 뛰어났다. 이에 1959년 모란은 빌 샹클리 감독 취임 뒤에도 팀에 계속 남아서 주장까지 역임하게 되었으며 이후 1961-62 시즌 2부 리그 우승을 이끌며 팀을 1부 리그에 승격시켰다. 2시즌 뒤에는 시즌 내내 7경기만 결장하며 팀의 핵심 자원으로서 꿈꿔왔던 팀의 1부 리그 우승까지도 이끌게 된다. 하지만 이후엔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고 1965년을 기점으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는 1965년 안필드에서 열린 인터 밀란과의 유러피언 컵 준결승에 출전한 뒤 2차전 산 시로에서 마지막 리버풀 1군 경기를 치렀다. 선수 생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란의 능력을 높이 산 샹클리는 그를 1966년부터 조 페이건이 이끌던 2군의 플레잉 코치로 임명했고 이에 모란은 2군에서 2년을 더 뛰며 팀에 도움을 주게 된다. 리저브팀에서 모란은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공을 세웠고 1968년에 비로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여 정식으로 1군 코치진에 합류한다.

3. 지도자 경력

모란은 1966년부터 조 페이건이 이끌던 2군 리저브팀의 플레잉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여 1968년 은퇴 이후 1군과 2군을 오가는 풀타임 코칭 스태 오랫동안 하게 되었다. 지도자 생활 내내 벤치에서 목소리가 컸던 모란은 선수들의 동기를 북돋아주었고 동등한 잣대로 선수들을 꾸짖으며 우승을 할 때마다 선수들이 자만하지 않도록 했다. 그는 프리시즌 때마다 라커룸을 돌아다니며 낡은 신발함에서 지난 시즌의 메달을 꺼내면서 이렇게 다그쳤다. "이건 이제 아무것도 아니야. 제군. 어디다 치워버리고 다음 시즌으로 갈아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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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의 위대한 ' 부트 룸' 코치진들
,좌측부터 빌 샹클리,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로니 모란, 루벤 베넷, 톰 손더스,


모란은 1968-69 시즌에 공식적으로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풀타임 코칭 스태프진에 합류하여 곧장 빌 샹클리, 조 페이건, 밥 페이즐리 루벤 베넷의 초창기 ' 부트 룸'을 구성했다. 그는 1군과 2군을 오가는 역할을 처음에 주로 맡았는데 1971년엔 정식으로 리저브 팀의 감독을 맡았고 1972-73년에는 리버풀의 2군을 센트럴 리그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부트 룸의 코치들이 전통적으로 그래왔듯이 모란은 외부의 주목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고 동료나 팀에 앞서 본인을 드러내려 하지도 않았지만, 경기장 벤치에서만큼은 선수들에게 크게 소리치며 지시를 내리는 목소리 큰 코치로 유명했다. 그만큼 모란은 경기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선수들의 동기를 북돋는데에 능했다. 이러한 모란의 코칭은 리버풀 성공 신화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그는 샹클리, 페이즐리, 페이건, 달글리시를 거치는 클럽의 눈부신 전성기 동안 내내 핵심 코치로서 팀에 기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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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페이즐리 감독 시절 ' 부트 룸'에서
,좌측 상단의 인물이 로니 모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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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유러피언컵 우승 당시 조 페이건 감독과 함께
파일:external/news.bbc.co.uk/_50731751_1990titlebootroomgetty.jpg
케니 달글리시 감독, 로이 에반스 코치와 함께

이후 1991년 2월 달글리시가 감독직에서 물러났을 때 모란은 선수단을 이끌 수 있는 자질을 인정받아 감독 대행으로 부임해 10경기 가량 임시로 감독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가 맡은 첫 경기는 1991년 2월 23일 루턴 타운과의 원정 경기였다. 그는 클럽으로부터 자질을 인정받았으나 정식 감독직을 맡기는 꺼린 것으로 알려졌고[1], 결국 1991년 4월 그레이엄 수네스가 달글리쉬의 후임으로 정식으로 임명되었을 때 감독직에서 내려왔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리버풀 FC/달글리시 체제(1기) 문서
3.6.1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파일:external/i4.thejournal.co.uk/JS32630813.jpg
1992년 FA컵 결승전에서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끈 로니 모란

수네스 체제에서도 1군 코치로서 자리를 지켰던 그는 1992년 4월 수네스가 심장 수술을 위해서 경기에 나올 수 없게 되자 다시 임시로 감독직을 이어받았다. 이에 그는 1991-92 시즌 리그 마지막 7경기와 FA컵 준결승 재경기를 대행으로 지휘해야했다. 모란은 FA컵 준결승에서 승리하여 1992년 FA컵 결승 진출을 만들어냈다. 이후 FA컵 결승전에서는 수네스가 일부 업무에 복귀하여 라인업을 직접 짜며 복귀했지만, 회복이 온전치않아 선더랜드 AFC를 상대로 모란이 또 다시 대신 경기장에서 팀을 이끌어야했다. 리버풀은 모란의 지시 아래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후 7월에 수네스가 회복하자 그는 코치직으로 다시 복귀했다.

모란은 수네스 감독 체제 이후 그의 동료이기도 했던 로이 에반스 감독 체제에서도 계속해서 코치직을 맡았다. 에반스는 모란이 선수와 코치 시절을 모두 포함해 리버풀에서 모신 9번째 감독이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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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 에반스 감독과 함께

에반스 체제가 끝나자 로니 모란은 마침내 은퇴를 선언하고 1998년 리버풀을 떠났다. 밥 페이즐리와 함께 그는 리버풀에서 선수부터 코치, 그리고 임시직이었지만 감독까지 소화했던 구단의 레전드로 남게 되었다. 그는 코치 경력에서도 체력 코치, 1군 메인 코치, 2군 코치, 리저브 팀 매니저, 1군 임시 감독과 키트맨에 이르기까지 클럽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했다. 1949년부터 1998년에 이르는 약 50년의 기간동안 리버풀에만 헌신해 온 리버풀 출신의 원클럽맨 커리어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모란은 지도자로서 경기에 대한 빈틈없는 지식과 더불어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방법론에 능력이 있었고, 벤치에서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필드를 호령하며 선수들의 기강을 잡는데 기여했다. 또한 팀 규율에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그는 훈련장에서 선수들에게 강인한 훈련을 지휘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깊은 존경심을 얻기도 했다.

4. 말년

약 5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리버풀에만 헌신했던 모란은 리버풀 팬으로 돌아가 은퇴 이후 경기를 이따금씩 관전했고 2011년에는 달글리시가 감독으로 부임하자 훈련장을 찾아 얼굴을 비추기도 했다. 이후 모란은 2017년 3월 22일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다.
파일:external/i3.liverpoolecho.co.uk/dti86513.jpg
2000년에 안필드를 방문한 토니 모란
파일:external/assets.liverpoolfc.tv/moran500.jpg
2011년에 멜우드에 방문하여 케니 달글리시 감독과 함께

2017년 3월에는 모란의 리버풀 커리어를 상세히 기술한 책 'Mr. Liverpool'이 출판되었다. 2019년에는 리버풀이 선정한 '리버풀을 만든 인물들' 14위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5. 대회 기록

6. 같이 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d00027><tablebgcolor=#d00027> 파일:리버풀 FC 라이버 버드 로고(화이트).svg 리버풀 FC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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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1888년 ~ 현재
초대
바클레이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2대
맥케나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3대
왓슨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
4대
애시워스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5대
맥퀸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6대
패터슨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7대
케이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8대
웰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9대
테일러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0대
샹클리
( 샹클리 체제)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
★★
11대
페이즐리
( 페이즐리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
★★★★★★
12대
페이건
( 페이건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3대
달글리시
( 달글리시 체제(1기))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
★★
14대(대행)
모란
( 모란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5대
수네스
( 수네스 체제)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16대
에반스
( 에반스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16&17대
에반스& 울리에
( 에반스&울리에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17대
울리에
( 울리에 체제)
파일:프랑스 국기.svg
★★
18대
베니테스
( 베니테스 체제)
파일:스페인 국기.svg
19대
호지슨
( 호지슨 체제)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20대
달글리시
( 달글리시 체제(2기))
파일:스코틀랜드 국기.svg
21대
로저스
( 로저스 체제)
파일:북아일랜드 국기.svg
22대
클롭
( 클롭 체제)
파일:독일 국기.svg

23대
슬롯
( 슬롯 체제)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프리미어 리그 / FA컵 / EFL컵 / EFL 챔피언십
UEFA 챔피언스 리그 / UEFA 유로파 리그 / UEFA 슈퍼컵 / FIFA 클럽 월드컵
}}}}}}}}}}}}}}} ||



[1] 모란은 구단이 권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정식 감독에 생각이 없었으나, 후에 생각이 바뀌어 보드진에 정식 감독직을 맡겠다는 요청을 했다곤 한다. 그러나 보드진은 이미 일주일 전에 수네스를 정식 감독으로 선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늦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고. [2] 모란은 선수 시절 조지 케이, 돈 웰시, 필 테일러, 빌 샹클리 아래에 있었고 이후에 샹클리를 포함해 밥 페이즐리, 조 페이건, 케니 달글리시, 그레이엄 수네스, 로이 에반스 감독 아래에서 코치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