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5:41:51

네거 반잠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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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치 독일 국기.svg 제2차 세계 대전의 독일 해군 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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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거(Neger)[1]
1. 제원2. 개요3. 기본 구조4. 첫 실전에 나서다5. 노르망디를 기습한 인간어뢰 부대

1. 제원

개발 시기: 1943년
운용 시기: 1943 ~ 1945년
생산수: 약 200 + 300척
배수량: 2.7톤
전장: 7.60 m / 폭: 533 mm
동력: AEG-AV 76 Eto 12마력 전동 모터 1기
항행 속도: 3.2 ~ 4.2노트
항주 거리: 4노트 항주시 48해리 (89 km)
무장: 533 mm 전지 어뢰

2. 개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 해군이 실전에 배치한 공격용 반잠수정 네거는 사람을 아에 가두고 자폭하는 일본 해군 가이텐과는 달리 자폭 병기는 아니었으나 일반적으로 인간어뢰로 평가받는 무기였다. 반잠수정인 관계로 잠항은 할 수 없었지만 커닝 타워만 내밀고 어두운 야간을 틈타 운용하도록 설계되어 육안으로 찾아내는 것은 아주 어려웠다. 네거 잠수정은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실제로 독일 해군에서 제식 병기로 채택되었고, 전과도 세운 바 있는 실존했던 무기였다.

배터리를 추가로 장착하여 항주거리를 늘린 개량형도 있었는데, 이 형식은 마르더(Marder), 하이(Hai) 같은 파생형이 만들어졌다. 마르더는 네거가 잠수하지 못하는 결점을 개선하여 커닝 타워를 늘리고 수심 10m 정도까지 잠항하는 능력이 있었고 하이는 수중항주 능력이 있었지만, 기본적인 성능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네거가 약 200척, 그리고 마르더와 하이는 대략 300척이나 건조된 것을 보면, 독일 해군도 전쟁 말기에는 이처럼 비인도적인 병기를 쓰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본형인 네거의 경우는 보통 잠수정에서는 잠항에 필수적인 밸러스트 탱크 같은 설비가 없었기 때문에, 잠수복을 입은 승무원이 타고 있는 조종실에 물을 채워 넣어서 커닝 타워만 수면 밖으로 내민 상태로 전투 행동을 취했다.

3. 기본 구조

네거의 구조는 아주 간단해서, 유보트에 탑재되는 533 mm 어뢰를 개조한 함체 아래에다 1발의 어뢰를 매단 심플한 형상이다. 동력이나 기관도 G7e 전지 어뢰의 것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이 병기를 설계한 리하르트 모아(Richard Mohr)는 G7e 어뢰를 기반으로 네거를 디자인했다. 우선 탄두가 실리는 부분을 비우고 그 위치에 투명한 캐노피를 덮은 조종실로 개조했다. 일반적인 고폭탄두를 갖춘 G7e 어뢰는 네거 반잠수정 아래쪽에 매달리는데 그 상태에서 항주하기에 충분한 부력을 확보해주었다. 따라서 네거의 배수량은 2.7톤에 불과하며 4노트 속도로 항주하면 48해리의 항속 거리를 지니고 있으며, 이때 조종은 어뢰 내부의 전기회로에 연결된 레버를 조작해 실행했다.

처음 해상 실험에서는 30노트라는 고속을 발휘했지만 이대로는 마음먹은 대로 조종하기도 어렵고 항속거리가 짧아 배터리의 배선을 바꿔 속도를 떨어뜨리는 대신 항속 시간을 늘렸다. 수상 항주속도를 4노트까지 떨어뜨리자 네거가 행동 가능한 시간은 10시간이 되었다. 항법장비 같은 것은 따로 없기 때문에 승무원이 손목에 찬 나침반과 해도에 의지했고, 호흡에 필요한 공기는 잠수정 내부에 탑재한 드래거(Dräger)제 독립 호흡 장치를 통해 공급되었다.

네거 승조원은 함체 앞쪽에 세워진 기준대를 통해 목표를 아크릴 수지로 만든 투명 돔 앞쪽에 달린 망원경으로 응시하면서 둥근 캐노피 둘레에 그려진 분각 눈금을 육안으로 겹쳐서 보고 방위각을 측정했는데, 나중에는 돔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두 번째 기준 돌기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이 정도 개량만으로는 파도치는 해수면에 바짝 낮게 붙은 시야로 정밀한 항법이나 조종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관측 위치가 너무 낮다 보니 표적함의 실루엣을 찾아내거나 피아식별이 어려워지는 문제가 따라오게 된 것이다.

어쨌든 네거가 목표에 제대로 접근했다면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데, 한 발 뿐인 어뢰의 사출은 돌이킬 수 없고 취소할 수 없는 조작이었다. 네거는 특공 병기로 설계된 것은 아니었으나 바로 이 단계에서 어뢰를 분리하는데 실패하게 되면 잠수정도 그대로 어뢰에 딸려가 탈출할 수단도 전혀 없이 운명을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어뢰가 분리하는데 실패할만한 요인이 너무도 많았다. 회로의 자체적인 고장이나 옆으로 흐르는 해류가 선체를 통째로 뒤집는다던가, 재수가 없으면 항행 도중에 어뢰 분리핀에 해초나 폐그물 같은 이물질이 끼어 이탈이 불가능해지기도 했다.

게다가 이 네거의 탑승구와 커닝 타워를 겸하는 투명 돔은 물을 채우고 나면 대기압 차이가 커져 안에서는 거의 열 수가 없게 되는 탓에 승무원이 타고 항주하는 순간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주 어려워지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과 임무 자체의 위험성 때문에 네거의 승조원은 사망 확률이 80%에 달할 정도로 대단히 높았다. 1943년부터 건조가 개시된 네거는 약 200척이 완성되었으며, 처음으로 실전에 투입된 것은 1944년 4월이었는데, 이 첫 출격에서 9할의 네거 승무원이 전사하고 말았다. 1944년까지 네거는 그 같은 희생을 치룬 댓가로 1척의 경순양함과 1척의 구축함, 그리고 3척의 캐서린급 BAMS 소해정을 격침시켰다.

4. 첫 실전에 나서다

1944년 3월, 몇 척의 네거가 처음으로 실전 배치되고 첫 임무가 4월 20일에서 21일 밤 사이에 실행에 옮겨졌다. 30척의 네거로 구성된 공격 부대가 이탈리아의 안치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연합군의 함선들에 접근해갔다. 그중에서 17척이 무사히 작전 행동에 들어갔지만 13척은 작전을 개시하기도 전에 파도에 뒤집히거나 고장으로 행동 불능이 되었고, 후퇴할 때는 단지 3척만이 무사히 귀환했으며 실제로 뇌격에 성공한 것은 단 1척도 없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공격받은 연합군은 이 신병기에 관한 정보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에 더해 파도에 떠밀려 해안가에 좌초한 네거들과 그 안에서 갇힌 채로 죽은 독일 수병들을 보게 되자 이 신무기의 전모가 드러났다.

오토 스코르체니는 이 작전에 자기 휘하 프리덴탈 특수부대원들도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자서전에서 주장한 바에 따르면 순양함 1척을 대파하고 어뢰정 1척을 격침했으며 30,000톤에 달하는 수송선을 격침 또는 손상시켰다나 어쨌다나. 투입 인원은 20명이고, 작전 당일에 네거 7기가 무사히 귀환했으며 다음날 추가로 귀환한 승무원이 6명이었으므로 전체 손실은 7명이었다는 것이 스코르체니의 주장이다.

5. 노르망디를 기습한 인간어뢰 부대

연합군의 대규모 함대가 상륙 거점을 명확히 하지 않고 도버 해협을 온통 뒤덮은 채 접근하자, 이를 막기 위한 독일 잠수함들은 즐겨 쓰던 울프팩 전술을 쓸 수 없게 되고 산개를 강요당했다. 이에 잠수함대를 보조하기 위하여 네거 부대에 의한 두 번째 대규모 공격이 시도된다. 이번 잠수정 편대는 40척 이상으로 편성되고 옹플뢰르(Honfleur) 부근의 숲에 차린 카 퍼반트(K-Verband : 1944. 4~1945. 4. 26) 지휘소에 의해 통제받았다. 1944년 7월 5일부터 6일까지 24척의 네거 반잠수정이 연합군 함대를 공격해서 HMS 매직(Magic)과 케이토(Cato) 2척의 영국 소해정을 침몰시키고 호위함 HMS 트롤로프(Trollope)를 격침시키는 전과를 세웠다. 네거 부대는 고작 9척만 돌아올 수 있었다.

2차 공격은 7월 7일~8일 사이의 야간에 21척의 잠수정으로 다시 가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빛이 밝아 견시들에게 발각되어버렸고, 연합군 전투기 폭격기, 그리고 호위함들까지 벌떼처럼 달려들었다. 네거 부대는 해상과 하늘로부터의 맹공에 노출되었지만, 그 대신 사냥감들이 모여든 덕에 목표를 골라잡기가 수월해졌다. 독일 잠수정들은 소해정 HMS 필라데스(Pylades)를 일격에 가라앉히고 자유 폴란드 해군에 임대되었던 다나에급 경순양함 ORP 드래곤(Dragon) 함의 옆구리에 어뢰를 명중시켜 대파시켰다. 만재배수량 5,600톤짜리 이 순양함의 승조원들은 나중에 함을 포기하고 퇴함하게 된다.

1944년 7월 20일, 영국 해군의 구축함 HMS 이시스(Isis)도 네거에서 발사된 어뢰에 명중 당하고 전력으로 해수를 퍼내며 캉(Caen) 북쪽에 접한 세인 만(Baie de la Seine)에 간신히 정박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영국인들은 이 피해가 독일군의 신무기에 의한 것임을 다음날 아침까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당시 공격을 받고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서 20여명이 이구동성으로 독일군의 인간어뢰가 자신들의 배를 가라앉혔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임무에서 전쟁 영웅이 하나 탄생했는데, 바로 발터 게르홀트(Walther Gerhold : 1921~2013) 해군 행정 상병이다. 게르홀트 수병은 자신이 세운 무공으로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퍼의 함장을 지냈던 명지휘관 헬무트 헤예(Hellmuth Heye) 해군 중장에게 직접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구축함 행정병 출신이던 그는 스스로 네거 승조원으로 자원했고, 기사철십자장 수훈 직후 전쟁영웅이 전사할 시 해군의 사기를 꺾을 수 있다는 해군 상층부의 판단에 따라 제독 집무실 타자병으로 직책 변경되어 육상에서 근무, 해군 행정 하사로 진급한 뒤 종전시까지 살아남아 전후 서독에서 독일 경찰로 근무하며 독일 통일까지 지켜본 뒤 90세 넘게 장수했다.

같은 해 8월 3일, 헌트급 구축함 HMS 퀀(Quorn)은 넵튠 작전(Operation Neptune) 동안 수송 선단의 엄호를 맡고 있었다. 이것은 노르망디 상륙을 감행하는 오버로드 작전을 해군이 지원한 것이었는데, 독일군이 출동시킨 고속정(Schnellboot)과 폭발물을 장착한 모터 보트, 거기에 더해 인간어뢰와 루프트바페까지 합세하여 격렬한 협동 공격을 받은 결과 침몰했다. 이 공격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구조될 때까지 바다 위에 뜬 채 8시간 이상을 기다려야만 했고 130명의 승조원들이 전사하는 피해를 입었다.

1944년 11월 2일에 벨기에 북부의 항구도시 오스텐트(Ostend)에서 가까운 해안가에서 가라앉은 HMS 콜세이(Colsay)가 네거 부대가 거둔 마지막 전과였는데, 이 사건 이후 독일 해군의 인간어뢰 부대는 대부분 출격 기회를 기다리며 대기하다가 패전을 맞이하게 된다.



[1] 독일어로 니그로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