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6:53:30

김우열

김우열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2

KBO 보유 기록
KBO 규정타석 타자 무병살타 1982년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bordercolor=#131230> 파일:두산 베어스 엠블럼.svg 두산 베어스
역대 주장
(OB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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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c0281f> 1982 1983 1984 1985 1986~1987
김우열
윤동균 이홍범 이홍범
이종도(임시 주장)
이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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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김형석 김광림 김상호 이명수
<rowcolor=#ffd700> 1998~2000 2001~2002 2003 2004 2005
김태형
안경현
김민호 안경현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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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
김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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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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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원
오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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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원
김재환 (임시 주장)
김재환 허경민 양석환 양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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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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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000> 초대 2대 3대
김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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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1992)
신용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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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한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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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995)
<rowcolor=#000000> 3대 4대
감독 대행
김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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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김성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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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1999)
감독 대행
김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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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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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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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2대 3대 4대
강대중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3~1984)
배수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5)
이충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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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감독 대행
이광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7)
5대 6대 7대 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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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감독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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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10대 11대 12대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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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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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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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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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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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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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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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3대 24대 25대 2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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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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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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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이정훈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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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 베어스 등번호 3번
팀 창단 <colbgcolor=#c0281f><colcolor=#ffffff> 김우열
(1982~1985)
결번
빙그레 이글스 등번호 3번
팀 창단 김우열
(1986~1987)
김한근
(1988)
OB 베어스 등번호 3번
결번 김우열
(1989)
강형석
(1990)
두산 베어스 등번호 81번
강인권
(2007~2011)
김우열
(2012~2013)
강동우
(2014~2022)
}}} ||
파일:external/images.sportskhan.net/l_2012040702000261000069641.jpg
김우열
金宇烈 | Woo-Yeol Kim
출생 1949년 9월 9일 ([age(1949-09-09)]세)
충청북도 영동군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선린중학교 (졸업)
선린상업고등학교 (졸업)
포지션 3루수, 외야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제일은행 야구단 (1968~1970, 1974~1981)
OB 베어스 (1982~1985)
빙그레 이글스 (1986~1987)
지도자 빙그레 이글스 1군 타격코치 (1988)
OB 베어스 2군 타격코치 (1988~1990)[2]
OB 베어스 1군 타격코치 (1990)[3]
OB 베어스 잔류군 타격코치 (1991~1992)
쌍방울 레이더스 1군 타격코치 (1994)
쌍방울 레이더스 1군 수석코치 (1995)[4]
쌍방울 레이더스 감독대행 (1995)[5]
경희대학교 야구부 타격 인스트럭터 (2002~2003)
한일장신대학교 야구부 타격코치 (2004)
두산 베어스 2군 타격 인스트럭터 (2012)[6]
두산 베어스 2군 감독대행 (2012)[7][8]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13)
두산 베어스 2군 타격 인스트럭터 (2022)[9]
병역 해병대 야구단 (1971~1973)
본관 경주 김씨 상촌공파[10]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이모저모5. 연도별 주요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이경진 & 김우열.png
1982년 KBO 최초 올스타전 당시 이경진과 악수를 나누는 김우열

OB 베어스(現 두산 베어스), 빙그레 이글스 소속 야구선수,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OB 베어스 시절 등번호는 3번. 트레이드마크는 구레나룻.

2. 선수 경력


귀여운 구레나룻, 그의 아름다운 홈런스윙

1949년 충청북도 영동군에서 태어나 서울특별시로 이사하여 선린중학교 1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68년 한국실업야구에 데뷔했으며 제일은행과 해병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175cm, 60kg 초반대 체중[11]이라는 홈런왕 치고는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팔뚝 힘으로[12] 엄청난 타구 비거리를 자랑했으며 동대문운동장(철거)에서 비공식적으로 150m의 장외홈런을 날린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실업리그 통산 100홈런을 넘긴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하다.[13] 또한 발이 빠르고 볼넷을 많이 얻어내는 플레이스타일이어서 그런지 홈런왕 이미지와 달리 4번보다는 주로 1번, 3번 타순에 이름을 올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1969년 실업리그 홈런왕을 시작으로[14] 74년과 80년에도 홈런왕을 차지했으며 70년대 초반엔 박영길, 강병철 등과 70년대 후반엔 김봉연 등과 홈런왕 경쟁을 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홈런타자로 활약했다.
파일:external/blog.koreadaily.com/13011737_2.jpg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OB 베어스 선수시절

1982년 KBO 리그가 개막하자 만 33세의 늦은 나이로 OB 베어스에 입단해 다섯 시즌 동안 뛰면서 통산 타율 0.278를 기록했다. 전성기가 지난 뒤에 프로에 입단한 탓에 그렇게 뛰어난 성적을 내지는 못했지만 지금도 올드팬들에게는 OB 베어스 초창기의 최고 인기선수로 기억된다.[15] 거기에 특유의 구레나룻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여서 검은 색종이를 옆머리에 붙이고 야구했던 베이스볼 키즈들이 있을 정도.
파일:external/blog.koreadaily.com/26235719_1.jpg

이후 갑작스러운 시력 저하와 쇠퇴한 타격, 그리고 김성근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1986년 신생팀 빙그레 이글스로 이적하여 재기를 꿈꿨으나 이렇다 할 활약 없이 1987년 시즌 후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

선수 은퇴 후 빙그레 이글스 타격코치를 시작으로 OB 베어스 쌍방울 레이더스의 코치를 역임했다. 한편 쌍방울 코치 시절이던 1995년에는 한동화 감독의 중도 사퇴로 잔여 시즌 동안 쌍방울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시즌 후 정식 감독 승격설도 돌았지만 정작 김성근이 부임하면서 그 해를 끝으로 프로야구계를 떠났다.

1995년 쌍방울 코치직을 그만둔 후 오랜 기간 야인으로 지내면서 잊혀졌는데, 야인 시절 골프연습장 운영[16] 등 개인 사업을 하면서 한동안 야구와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에 대한 열정은 잊지 않았는지, 2000년대 이후에는 양평군 리틀야구단 총감독, 경희대학교 야구부 타격 인스트럭터 등 후진 양성에 힘쓰면서 야구와 인연은 어느 정도 이어 나갔다.

2011년 4월 2일, 두산 베어스의 잠실 개막전 시타자로 나서며 오랜만에 베어스 팬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마침 시구는 베어스 영구결번 박철순이, 시포는 김경문 감독이 맡으며 오랜만에 베어스 원년 멤버들이 모였다.

2012년 4월부터 두산 베어스 2군 타격 인스트럭터로 활동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비록 정식 코치가 아닌 인스트럭터 신분이지만 그래도 1995년 이후 약 17년 만에 프로야구계로 돌아온 셈. 과거 OB 시절부터 응원해 온 올드 팬들 사이에서는 구단이 김우열을 인스트럭터로 영입했다고 하자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이 시절에는 송재박 2군 감독을 옆에서 보필하며 1군에서 타격감을 잃고 내려온 선수들을 직접 지도해 타격감을 찾게 해서 다시 1군으로 올려 보내는 등, 지도자로서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마침 1군 타격이 전체적으로 부진했다 보니 두산 팬들 사이에서 인스트럭터로만 모시기 아깝다는 여론이 있었다. 그러다가 1군 타격진의 막장화로 인해 송재박 2군 감독이 1군 타격코치로 보직을 바꿔 올라가면서[17] 잔여 시즌 동안 2군 감독대행을 맡았다. 팀 사정상 급하게 2군 감독대행을 맡아 무난하게 수행했다는 평.

시즌 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스카우트 출신 송일수가 2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감독직을 넘겨주고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바뀌었다. 어쨌든 인스트럭터 신분에서 벗어나 정식 코치 보직을 받은 셈. 그런데 2013년 12월 코치직에서 물러나면서 두산 유니폼을 벗었다. 그의 뒤를 이어서 새 2군 타격코치로 강동우가 부임했다.

이후로는 나이도 있고 하다보니 프로 코치로는 은퇴하고, 양평에서 리틀야구단을 차려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골프도 즐기며 여생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그러던 중 2022년 4월부터 친정팀 두산 베어스 2군 타격 인스트럭터로 다시 복귀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다만 시즌 내내 계속 인스트럭터로 근무하는 것은 아니고 5월까지 임시로 지도에 나선다고 한다.

4. 이모저모

  • 선수 시절 풍성한 구레나룻에 비해 앞머리는 상당히 빈곤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모자는 악착같이 쓰고 다녔는데, 어느 날 외야수로 출전하여 경기 도중 뜬공을 쫓다가 강한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자 쫓던 공은 나 몰라라 하고 뒤로 뛰어가 모자를 찾아쓰느라 안타를 내주었다는 엽기적인 전설이 있다. 그런데 그게 TV로 중계 중이던 경기였대나 뭐래나. 당연히 당시 감독이던 김영덕은 뒷목을 붙잡았고 벌금을 먹었다고...

    근데 이게 은근히 심각한 컴플렉스여서 선수 시절 김재박은 꼭 태그할 때 김우열의 모자를 벗기곤 했다고 한다. 그러면 관중들은 깔깔 웃고 김우열은 창피해하고. 그렇게 상대팀 강타자의 멘탈을 흔들어 놓았다는 그시절 낭만 이야기가 있다. 여튼 70세 노인이 된 현재도 꼭 모자를 잊지 않고 다니는 슬픈 탈모인.
  • 작은 체구를 극복하기 위해서 연습이나 시합 때마다 큰 소리를 지르며 사기를 북돋았기 때문에 아가리 혹은 죠스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 #

5. 연도별 주요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기록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OB 62 210 .310 65 8 0 13
(공동 4위)
41 43 14 44 .533
(4위)
.428
(4위)
1983 95 333 .291 97 21
(공동 3위)
5
(공동 2위)
9 56 48 10 44 .465 .373
1984 95 318 .274 87 11 1 12 49 38 13 52
(5위)
.428 .373
1985 56 153 .242 37 4 0 7 22 28 7 23 .405 .341
<rowcolor=#ffffff>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6 빙그레 34 62 .210 13 1 0 0 5 3 0 8 .226 .272
1987 1군 기록 없음
<rowcolor=#373a3c> KBO 통산
(5시즌)
342 1076 .278 299 45 6 41 173 160 44 171 .445 .375

6. 관련 문서


[1] 해병대 야구단 복무 시절 외야수로 전업하였다. [2] 1988년 5월 24일~1990년 6월 18일 [3] 6월 19일~ [4] ~5월 15일 [5] 5월 16일~ [6] 4월 5일~ [7] 6월 29일~ [8] 2군 타격 인스트럭터와 겸직 [9] 4월 12일~5월 [10] 경주 김씨 상촌공파 20세손 ◯환(煥), ◯렬(烈), ◯기(冀) 항렬. 개그맨 김기리의 아버지뻘, 개그맨 김준호의 할아버지뻘, 프로게이머 김택용의 증조할아버지뻘이다. [11] 프로필과 달리 실제 키는 170cm 정도라고 한다. 그리고 체중이 59kg 나갈 때 실업리그 홈런왕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몸무게 50kg대의 홈런왕을 상상해보자. 또한 33세에 시작한 프로선수 생활 내내 체중이 70kg을 넘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12] 손목이 아니라 팔뚝의 힘이라고 김우열 본인이 강조했다. 김우열의 타격 메커니즘은 스윙 시 공이 배트에 맞을 때의 순간적인 힘으로 타격을 했다. [13] 김우열은 실업리그 통산 160홈런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실업리그 통산 100홈런 이상을 기록한 선수는 박현식, 김응용, 박영길, 김우열 등 4명이다. [14] 당시 홈런왕을 차지했음에도 아시아 야구선수권 대표팀에 뽑히지 못해 논란이 된 바 있다. [15] 실업시절 전성기에 비해 프로시절은 그다지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평범하기만한 성적을 거두지는 않았다. 프로야구 원년엔 홈런 공동 4위를 기록하기도 하였고 4년간 뛰던 OB에선 간판급 성적을 기록하였다. 프로야구 원년에는 전반기 40경기를 소화한 시점에서 홈런 11개로 1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6월 22일 삼성전에서 홈스틸을 시도하다 이만수와 충돌해 부상을 당해 한달 넘게 결장했고 결국 후반기엔 홈런 2개만을 추가하고 시즌을 마쳤다고 한다. 초창기 OB 베어스의 클린업 김우열- 윤동균- 김유동은 리그에서도 강력했던 클린업이었다. 당시 두산음료가 코카콜라 보틀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세 사람의 머릿글자를 따서 코크(KOK) 트리오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름은 조금 무리수였지만 실력만큼은 굉장했다. [16] 실제로 김우열은 본인이 골프를 즐겨치는 뿐만 아니라 남에게 골프를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로 야구인 중 골프 실력이 꽤나 뛰어난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이것도 은퇴 후 코치 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골프에 입문했는데, 자신이 골프를 잘 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17] 원래 2012 시즌 두산 1군 타격코치는 이명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부터 팀 타선이 전체적으로 부진하자 이명수 코치를 2군으로 내리고 이토 쓰토무 수석코치가 타격코치까지 겸직했는데, 이마저도 한계가 있어 결국 송재박 2군 감독을 1군 타격코치로 콜업해야 했다. 어찌보면 나비효과인 셈. [18] 다만 끝내기 홈런으로 겨우 승부가 결정될 정도로 막상막하였던 영화 속의 묘사와는 달리, 실제 박철순 감사용의 1982년 맞대결 경기는 박철순 OB 베어스가 여유 있게 승리했다. [19] 여담으로 김우열 배역을 맡은 하정우는 골수 LG 팬으로 유명한데 영화에선 한지붕 라이벌인 두산 베어스의 전신인 OB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었다. 그래서인지 영화에서 하정우의 표정을 보면 좀 뚱해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극심한 고부갈등으로 수년간의 법정소송을 거친 끝에 이혼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