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7 06:44:15

김동화

파일:김동화 만화가.jpg
1. 개요2. 작품

1. 개요

대한민국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1950년 11월 10일 출생으로 1974년 나의 창공으로 데뷔. 본명 김종철. 링크. 데뷔 때부터 1차 필명인 '김정의'로 활동했으며 한승원과 결혼하면서 만화계를 떠났다가 1979년 '우리들의 이야기'를 발표하면서 현재의 필명(김동화)으로 활동해왔다. 기사, 링크

순정만화가 한승원의 남편이다. 사실은 한승원이 김동화의 문하생이었으나, 이후로 연애 감정으로 발전하게 되어서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수정과 친한 친구로도 알려져있다. 1970년대 가난하던 시절에 알게되어 서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만화가로서 길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아기공룡 둘리 초안을 김수정이 발표 전에 김동화에게 보여주자, 당시 주둥이가 길었던 둘리를 보고 "이거 뭔 악어새끼냐?" 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기사

초기에 순정만화 장르로 활약을 많이 했으나[1] 보물섬, 만화왕국, 아이큐 점프 같은 소년잡지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년 만화를 많이 그렸고 이후 성인물로 장르를 전환하여 " Mr.블루"나 "투엔티세븐" 같은 잡지에 "황토빛 이야기", "기생 이야기" 같이 고전의 색채가 짙은 작품을 내놓았다. 장르마다 그림체를 과감하게 변화시키는 특징을 가져서 눈썰미가 제법 좋은 독자가 아니면 동일 작가란 걸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이후에는 한국 만화계의 중진으로 대우받고 있는 것도 1990년대 그림체의 개변 및 성인향 고전 순정만화가 그 작품성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2002년 김동화와 한승원을 인터뷰한 기사가 조선일보 문화면에 크게 실렸다.

이 필명은 사실 일종의 '패밀리 네임'으로, 초기 순정만화 시절 자신은 데생, 연출과, 출판사에 가는 등의 대외적인 일을 주로 했고, 한승원이 글을 쓰고 펜터치를 했다. 기사. 이는 당시 출판 풍토 때문이다. 만화계에서는 화실에서 오랫동안 공헌한 멤버에게 작가 본인의 이름을 같이 달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 슬럼프가 왔을 때 1993년 당시 개봉했던 영화 서편제를 보고 충격을 받아 한국식 미를 만화로 옮기는 것으로 극복했다.

장난감 자동차 수집광으로 유명하다. 해외에서도 수백만원 값어치로 희귀품이 된 고전 모델까지 다수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내에게 바가지도 많이 긁혔다고…

의외로 만화계에서 감투(?)를 많이 썼다. 한국만화가협회장을 지내기도 했고, 2017년부터 2년 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기사

2. 작품



[1] 당시 특성상 단행본 화가 되어 있지 않은 작품이 많아서 자료를 구하기가 참 어렵다. 초 레어가 된 그의 작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