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10:40:43

구원파

1. 개요2. 교리 논란3. 역사
3.1. 형성3.2. 분열
4. 분파5. 기타

1. 개요

세칭 구원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 대한예수교침례회(생명의말씀선교회), 대한예수교침례회(기쁜소식선교회)의 3개 교단을 통칭하는 말이다.

구원파라는 명칭은 교단 공식 명칭이 아니라 구원만 심각할정도로 집착 및 강조한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구원파를 이단으로 규정한 탁명환 전 종교문제연구소장이 구원파를 비하할 목적으로 만든 용어였으며 현재는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 '침례회'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기독교한국침례회와 성서침례교회 등 주류 개신교단과는 관계가 없다.

대한민국 주류 기독교 및 개신교계에서는 구원파가 구원 뒤에 오는 내 노력이 아닌 예수님에 의한 선한 성화의 삶을 가르치지않고 구원에만 집착하며 마치 주님의 은혜를 입은것을 본인들의 당연한 권리인것처럼 본인들이 짓는 죄와 계속 악행을 저지르는것에 대해 칭의(구원)받았으니 죄 없다 로 합리화 및 정당화를 주장한다하여 이단으로 분류된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

구원파가 세간에 유명해진 것은 구원파 3개 교단 대표 중의 한 명인 유병언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과 관련 있다는 의혹으로 조사를 받았으며 세월호 사고 때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병언은 오대양 사건과 무관하다는 검찰조사결과 및 청해진 해운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1] 그리고 유병언 측 구원파는 거듭난 이후에 함부로 살아도 된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며 억울해했고, 이는 정정보도들 및 법원의 판결문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

2. 교리 논란

  • 구원받은 사람은 다시 죄를 지어도 괜찮다고 가르친다는 논란 / 율법폐기론

구원파가 주류 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비판 받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한번 구원을 받은 후에는 죄를 지어도 상관 없다'거나 '죄를 지어도 죄가 안된다'라는 식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원파는 구원받은 사람이 계속 죄를 지으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심판을 받을 때 상을 받지 못하며 이를 부끄러운 구원 또는 불 가운데 구원이라고 가르친다.

특히 권신찬, 유병언의 구원파의 경우 '구원받은 후에는 아무렇게 살아도 된다는 교리를 가진다'는 부분은 허위사실이 맞다는 내용으로 법원의 판결문까지도 존재한다.[2]

  •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는 논란

구원파에서는 회개를 계속하는 것을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주장한다는 논란이 있다.

구원파는 특별히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구원 후의 죄에 대한 자백을 구분한 것뿐이라고 해명한다, 회개라는 말을 반성 정도의 보통 말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가진 회개(구원의 직전 단계)로 한정적으로 사용한 데서 빚어진 오해라는 것이다. 사람은 계속해서 죄를 짓게 되는데 구원받은 후의 죄는 자백하면 깨끗하게 하시는데 이 자백은 반성이라는 의미에서 회개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 구원에 대해서 날짜나 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면 구원받은 게 아니라는 논란

이 논란은 그들이 선교활동을 할 때 이와 관련된 질문을 종종 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구원파는 구원의 확신을 얻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믿을 뿐 거듭난 날짜와 시간, 장소를 특정하지 못한다 해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구원파는 지식적인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는 논란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사람은 알긴 알아도 믿어지지는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와 같이 아는 것과 믿어지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여기서는 단순히 지식적으로만 알아도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구원파가 주장한다는 내용인 것.

이에 대해 구원파는 지식적인 깨달음이란 객관적이기만하고 나와 무관한 듯한 지식이 갑자기 내게 너무나 중요한 사실로 다가올 때의 깨달음인데 지식의 이해와 체화를 구별하지 못한 오해로 설명한다. 죄와 예수님의 은혜는 많은 사람이 다 아는 지식이지만 그 사실이 자기 양심 안에서 회개와 믿음으로 그리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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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교회의 제도와 예배형식, 주일성수, 새벽기도, 축도 등을 무시하거나 부정한다는 논란이 있다.[3]

이러한 논란에 대해 정통교회가 시행하는 세례성사 성체성사를 하며, 주일성수를 지키고자 노력한다고 주장한다. 구원파의 입장은 이 링크를 참고하자.

  • 유병언 전 회장의 사업이 하나님의 일이며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구원이고 예배라는 교리를 가졌다'고 주장했다는 논란

    • 구원파는 성도들의 사업이 성도들의 원활한 친목의 장으로써 활용되어 왔으며, 구원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놓으신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지 위와 같은 이유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교리는 가진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다. 구원파의 입장


  • 신약성경 중 하나인 로마서를 즐겨서 인용한다.
    그쪽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로마서 10번 정도는 읽어봐야 한다.'

  • 한국 개신교의 실태를 통렬하게 비판한 《천하무적 아르뱅주의》에서 극딜한 바 있다.
저자는 칼뱅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가 이상하게 짬뽕이 된 구원론을 '아르뱅주의'라고 비꼬고 있는데, 아르뱅주의의 논리가 극단화된 것이 다름 아닌 구원파라는 것.
"만일 내가 구원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살인해도 구원받을 수 있어!" 구원파식 구원론에서 이 주장을 어떻게 오류라고 판정할 수 있겠는가. (같은 책, 260~1면)
이에 대해 이요한파 로마서 6장 2절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를 언급하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고범죄 및 자범죄를 최대한 회피하려는 반응을 보인다고 반론한다.

3. 역사

3.1. 형성

영국 선교사 딕 욕(덕인영, Dick York)이 1960년대 자신의 구원관을 가지고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형성되었다. 그런데 딕 욕은 정식 교단에서 안수를 받은 기록은 없고, 말 그대로 개인 신앙을 설파하러 온 자로 알려져 있다. 딕 욕, 케이스 글라스(길기수, Kees Glas), 데릭 얼 등은 한국에 와서 선교학교를 만들었고 1기생이 바로 유병언, 박옥수였다. 당시 대구 칠성교회 시무였던 권신찬 목사는 청강생으로 함께 했다.

권신찬-유병언계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를 만든 권신찬은 51년 11월 장로교 목사 안수를 받지만 62년 12월에 제명당한다. 한국기독교이단문제연구소 심영식 이사장에 따르면 "다른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침례를 받고 장로교 교리와 다른 주장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신찬 목사는 구원을 받은 후 성경에 나온 세례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다는 뜻인 침례라는 걸 알고 당시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받게 되는데 당시 장로교회의 헌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면직되었다고 한다. # 이때의 외국인 선교사가 바로 네덜란드 출신 독립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와 영국 선교사 딕 욕이다.

박옥수는 딕 욕에게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고 주장하나 나중에 딕 욕 본인은 안수를 준 사실을 부인하였다. 현대종교 관련 기사. 또한 길기수 선교사 측의 단체 역시 그들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이름을 도용당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신찬 목사와 유병언 전 회장은 1960년대 초 외국인 독립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대구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공부했고, 이후 1963년부터는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전도 활동을 펼쳤다.이들은 평신도운동으로 시작해 한국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고 1981년 12월에 교단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견 아래 기독교복음침례회로 교단의 형태가 갖춰지게 되었다 .

3.2. 분열

1972년 권신찬 목사의 사위 유병언[4]이 TEAM선교사에게 목사 안수를 받고[5] 극동방송국 부국장에 임명되었다. 그 후, 극동방송국과의 마찰로 물러난후 평상시 생활에서도 신앙생활을 해야한다는 취지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사업의 취지에 동감한 사람들이 후원을 하였으나 그 중에 일부가 사업확장을 위해 사업을 하나님 일이라 하여 성도들의 노동을 착취한다고 공격하는 측과 옹호하는 측으로 나뉘었다. 1980년대 종이비누를 만들어 판매하고 그 후, (주) 세모 스쿠알렌 판매 등 여러 사업을 벌였다. 1977년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권신찬 등 몇 명이 사업을 반대하였으나 오히려 유병언의 설명을 듣고 옹호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1982년 말 권신찬이 유병언 사장의 사업은 하나님의 일이라 하여 유병언의 손을 들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 기독교복음침례회는 특정 개인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든가 기도고 예배라는 교리를 가진 사실이 없다고 밝혔고 ( 링크) 정정보도가 받아들여져 기사가 나기도 했다. 정정보도

사업에 관해서 사업에 반대하던 교인들(이요한 등등)이 대전에 모여 '복음 수호 위원회'를 결성하고 권신찬을 찾아 갔으나 권신찬은 유병언을 옹호한다. 이후 이요한은 일요일 집회에서 전단지를 돌리며 공격하자 이것을 막는 측과 실랑이를 벌이고 결국 따로 교회를 만들었다[6]. 그 후, 구원파는 1983년부터 대한예수교 침례회(생명의말씀선교회)와 기독교 복음침례회 2개 교단이 기독교복음침례회로부터 갈라짐으로써 구원파는 원래부터 권신찬의 교단과는 상관없이 별도로 있던 박옥수의 기쁜소식선교회까지 합쳐서 총 3개 교단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4. 분파

구원파는 3개의 분파로 나뉘어져 있으나 이들 분파간에 상호 교류는 없다. 권신찬-유병언파는 기독교복음침례회이며, 이요한파는 생명의말씀선교회, 박옥수파는 기쁜소식선교회이다.

이요한 생명의말씀선교회는 구원파라 칭해지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구원파의 구원론과 생명의말씀선교회에서 설명하는 구원론이 많이 다르며 자신들의 구원론은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구원받은 후의 회개 또한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구원날짜를 알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 하는 것은 허무맹랑하다고 말한다. 즉 구원론에 있어서 기성교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이 교회를 다니는 연예인이 직접 나서서 구원파와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출처)
그러나 구원관에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극단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을 전파하는가 하면 베리칩을 666표라고 주장하는 등 정통 교단에서 주장하는 예언의 성취에 대한 해석과는 많이 다름을 알 수 있다.

4.1. 권신찬- 유병언파( 기독교복음침례회)

4.2. 이요한파(대한예수교침례회/ 생명의말씀선교회)

4.3. 박옥수파( 기쁜소식선교회)

5. 기타

  • 연예인 중에서도 여기 관련 교회 다니는 인물들이 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종교가 무종교라고 자처해 온 박진영이 실은 구원파라고 디스패치에서 주장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7] 이에 대해 마녀사냥이라는 반응도 있고, 세월호 관련 문제를 유병언 패거리만 다루자면 뭔가 기삿거리가 부족해서 기레기들이 더 오버한다는 반응, 더불어 이런 연예인 목록을 아무개 교회에서 냈다고 종파 싸움이라는 다양한 의견도 있다. 비록 구원파는 정통 개신교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었지만, 비기독교인들 중에는 구원파도 다 같은 기독교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구원파 각 분파들간의 사이는 상당히 나쁘다.
  • 2020년 8월 경 자신들의 교리를 변호하는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진실탐험대


[1] 관련 보도 [2] 원고 교단이 구원받은 후에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교리를 가진다는 부분은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하여 정정보도 청구의 대상이 되고_서울남부지방법원 2018가합1545 정정.반론청구, 2018가합1552(병합) 정정청구 서울남부지방법원 2018가합1545 정정.반론청구, 2018가합1552(병합) 정정청구.페이지 5번 항목 참조 [3] 정통 예전론에서는 예전 자체가 구원을 준다고 하진 않으나, 예전의 의식 속에서 임재하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고, 양심과 회심을 불러 일으키는 유익을 긍정한다. [4] 1966년 권신찬의 딸 권윤자와 결혼. [5] 이 안수를 유효한 안수로 볼 수 있는지는 기독교복음침례회 문서 참조 [6] 이요한 목사의 주장으로는 생명의 위협도 가하였다고 한다. [7] ( 관련 글, 게시중지가 되기도 했다 박진영/논란 및 사건 사고 문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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