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21:47:29

교향곡 제5번(차이콥스키)


므라빈스키,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960년 녹음.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정식 명칭: 교향곡 제5번 E단조
(Sinfonie Nr.5 e-moll op.64/Symphony no.5 in E minor, op.64)
1. 개요2. 곡의 형태
2.1. 1악장2.2. 2악장2.3. 3악장2.4. 4악장
3. 악기 편성4. 초연과 출판5. 그 외

1. 개요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번호 붙은 것 중 다섯 번째 교향곡. 흔히 4번, 6번과 함께 후기 3대 교향곡으로 일컬어진다.

자필 악보에 따르면 4번을 완성하고 10년 좀 넘은 뒤인 1888년 6월에 작곡에 착수한 것으로 되어 있고, 자신의 후원자였던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에게 8월 26일 보낸 편지에서 교향곡을 완성했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두 달이라는 상당히 짧은 기간 동안 쓰여졌다고 보여진다. 완성한 곡의 악보는 프랑스의 테오도르 아베-랄르망에게 헌정되었다.

실패한 결혼으로 인한 심한 정신적 압박 속에서 작곡한 4번과 달리, 이 시기에는 폰 메크 부인의 든든한 재정 후원과 더불어 모스크바 근교의 클린에 위치한 마을에 자택과 사무실을 마련해 상대적으로 작곡 여건이 양호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차이콥스키 자신은 메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동안의 교향곡들이 논리적인 면모나 구성상의 견고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 이 곡에서 그런 결점을 만회하려고 했다고 술회하고 있다.

2. 곡의 형태

표준적인 4악장제로 되어 있지만, 흔히 스케르초가 오는 3악장에 왈츠를 삽입하는 등 독특한 아이디어로 구성한 모습이 보인다. 이는 원래 고전 시대 정립된 교향곡의 형식에서는 3악장에 스케르초 대신 춤곡인 미뉴에트가 들어갔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리고 1악장에 나오는 주요 주제를 후속 악장들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사용하는 등 곡에 좀 더 면밀한 통일성을 부여하고자 한 시도도 엿볼 수 있다.

2.1. 1악장

1악장은 무겁고 어두운 서주가 붙은 소나타 형식인데, 맨 처음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가락은 이후 곡 전반에 걸쳐 계속 나오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다. 이어 현악기의 반주 위에서 클라리넷과 바순이 어두우면서도 당김음이 들어가 리듬감을 살리는 첫 주제를 연주한다. 이 주제가 현악기 등 다른 악기로 옮겨가면서 흐름이 점차 격해지다가 현악기의 표정 풍부한 가락과 관악기-현악기가 주고받는 이행부를 연주하면서 두 번째 주제로 들어간다.

두 번째 주제는 역시 현악기가 계속 연주하는데, 다소 우울한 느낌의 첫 주제와 달리 장조로 되어 있고 우아한 느낌으로 제시된다. 이 주제가 발전하면서 첫 주제의 변형이 더해지고, 또 한 차례 부풀었다가 다시 진정되면서 바로 발전부로 들어간다. 발전부의 주요 소재는 첫 번째 주제고, 여기에 두 주제 사이의 이행부도 적당히 첨가되어 자유로우면서 극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재현부에서는 첫머리와 마찬가지로 클라리넷과 바순이 그대로 첫 주제를 다시 제시한 뒤 악기 편성과 진행, 두 번째 주제의 조성을 조금씩 바꿔가며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 논리대로 진행된다. 종결부도 첫 번째 주제의 변형으로 되어 있고, 점차 멀어져가는 행진곡 풍으로 사그라들면서 다소 황량하게 끝맺는다.

2.2. 2악장

2악장은 A-B-A' 세도막 형식의 느린 악장인데, 형식은 단순한 편이지만 템포의 움직임을 비롯한 음악의 변화 양상이 매우 격심해 곡 전체에 환상곡 스타일의 분위기를 내고 있다. 저음 현악기 위주의 장중한 서주 뒤에 호른이 첫 주제를 연주한다. 악기 특유의 음색을 살린 굉장히 감미롭고 호소력 짙은 선율인데, 이후 큰 인기를 얻어 여러 형태로 리메이크 되었다('그 외' 항목 참조). 이어 오보에가 호른과 함께 짤막한 댓구를 더하고, 첼로가 호른이 연주한 선율을 받아 반복하기 시작하면서 변형이 시작되고, 한 차례 큰 클라이맥스를 이룬다.

중간부에서는 템포가 약간 빨라져 클라리넷이 약간 어두우면서도 유창한 분위기의 주제를 연주한다. 이 주제를 기반으로 여러 악기가 주고받으며 또 변형시키고, 흐름이 점차 격렬해지면서 1악장 서주의 클라리넷 주제가 트럼펫을 앞세운 관악기들의 강한 연주로 갑툭튀한다. 이 대목이 갑작스럽게 끝난 뒤 현악기의 피치카토 이행부를 거쳐 제1바이올린이 호른이 연주한 선율을 받아 낮은 현에서 재현하면서 후반부로 들어간다.

후반부의 전개 방식은 전반부와 비슷하지만, 주제를 수식하는 대선율이 좀 더 율동감있게 바뀌고 1악장 서주 주제를 이번엔 트롬본이 또 한 번 뜬금포로 터뜨려주는 등 훨씬 드라마틱한 면모가 강조되고 있다. 이 흐름이 진정되고 나면 첫 호른 주제와 오보에의 댓구를 조합한 온화한 종결부가 뒤따르며 마무리된다.

2.3. 3악장

3악장은 트롬본과 튜바가 사용되지 않는다.[1] 구성면에서는 상술한 대로 세도막 형식의 왈츠인데, 요한 슈트라우스 2세 류의 일반적인 무도회 혹은 연주회용 왈츠와는 상당히 다른 맛을 내고 있다. 전반부는 현악기가, 후반부는 관악기가 중심이 되어 연주하는 첫 번째 대목은 상당히 감미로운 분위기로 되어 있고, 바순이 연주하는 경과구는 당김음이 상당히 많이 사용되어 일반적인 3박의 흐름을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중간부는 현악기들의 빠른 16분음표 음형 위주로 진행되며, 왈츠 보다는 차이콥스키의 또 다른 장기였던 발레 음악의 느낌이 강하게 난다. 이어 오보에가 전반부 주제를 다시 연주하며 후반부로 들어오는데, 후반부의 전개는 전반부와 비슷하지만 전에는 없던 새로운 이행 악구가 끼워져 있다. 이어 1악장 서주의 가락이 클라리넷과 바순의 연주로 또 슬그머니 끼어들어 연주되고, 1악장과 2악장처럼 조용히 끝나는가 싶다가 여섯 번의 강한 화음 연주가 이어지며 마무리된다.

2.4. 4악장

첫머리부터 1악장 서주의 가락이 E장조로 바뀌어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다소 근엄하면서도 어두운 기색을 많이 날린 형태로 연주하면서 곡의 해피 엔딩을 예견하게 한다. 여기에 트럼펫의 팡파르풍 악구와 금관의 장중한 화음이 곁들여지고, 목관에 의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다시 트럼펫 팡파르가 이번에는 현악기의 격렬한 트레몰로를 곁들여 이어지다가 크게 부푼 뒤 어두운 분위기의 이행부가 뒤따른다.

서주에 이은 주제 부분은 팀파니의 트레몰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지속음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나머지 현악기들이 격렬한 내려긋기 음의 연속으로 되어 있는 첫 주제를 연주한다. 이 주제를 관악기들이 가세해 한 차례 반복하고, 흐름이 잠시 진정된 뒤 오보에와 저음 현악기가 주고받는 이행부가 뒤따른 뒤 다시 격해지다가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두 번째 주제가 뒤따른다.

이어서 호른과 클라리넷이 8분음표로 연주하는 빠른 반주 위에서 현악기들이 두 번째 주제를 변형시킨 가락을 연주하다가 현악기와 목관악기들이 상승음계를 연주하는 가운데 금관악기들이 하강하여 마지막에는 반주하는 저음현악기와 팀파니만 남게 되고 거기에 트롬본이 무겁게 두 번의 저음 화음을 내뱉는다.

그 직후 분위기가 반전되어 목관악기들이 희망찬 분위기의 딸림주제를 연주하고 점차 격렬해지면서 음악이 한차례 올라갔다가 내려온뒤 금관악기가 총 등장해서 서주의 가락을 행진곡 풍으로 위풍당당하게 연주하며 발전부가 시작된다.

발전부는 2악장처럼 템포 변화가 격심한 편은 아니지만 서주에 등장한 가락들이 부수적으로 계속 얽히면서 꽤 복잡하면서도 격렬하게 진행된다. 금관악기가 서주의 가락 연주를 마친 후 요란한 이행부를 거쳐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 있는 C장조 스케일[2]을 트롬본과 트럼펫이 연주하고 그 이후 금관이 연주하는 화음을 받아 딸림주제가 현악기들의 억센 반주를 타고 첼로와 콘트라베이스, 목관악기 순으로 연주되다가 점점 사그라들더니 마지막에는 현악기의 반주만 남기고 사라진다.

그 이후 전체 관현악이 마치 놀래키려는 것처럼 튀어나오고 바이올린이 다시 분위기를 격렬하게 만들고 고조시키려는 듯한 가락을 연주하며 재현부가 시작된다. 이 가락을 트롬본이 받아서 뒷부분을 발전시켜 연주한 뒤[3] 다시 첫 번째 주제가 재현된다.

재현부의 구조와 전개는 앞서와 비슷하나, 후반부에 가서 발전부의 시작 부분처럼 올라가다가 전과 다른 느낌으로 다시 내려와서 서주의 가락이 다소 느리고 장중하게 트롬본과 트럼펫 순으로 호른의 댓구를 곁들여 연주된다. 이후 트럼펫과 호른이 서주에 나왔던 팡파르를 연주하는 가운데 목관악기들이 그 팡파르에 가세하여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마침내 서주에서 금관만이 연주했던 화음을 모든 악기가 다같이 합주하며 주의를 환기시킨다.[4] 관현악의 음이 멎고 한 숨 돌린 뒤 곡의 대단원인 종결부가 이어지는데, 목관의 셋잇단음표 반주가 깔리는 가운데 1악장 서주의 가락이 현악기에서 완전히 어두운 기색을 떨쳐버리고 득의양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가락을 다시 오보에와 트럼펫이 받아 화려하게 재현하고, 한 차례 크게 부풀어오른 뒤 템포를 프레스토(Presto)로 상당히 빠르게 가져가면서 속도감을 더한다. 코다의 최후반부에서는 다시 속도가 살짝 느려지면서 1악장의 첫 주제를 변형한 가락이 오보에와 트럼펫에 의해 최대한의 힘으로(con tutta la forza. 셈여림 기호는 쿼드러플 포르테 ffff) 연주되고,[5] 전체 관현악이 강하게 연주하는 네 번의 화음으로 성대하게 끝맺는다.

3. 악기 편성

관현악 편성은 플루트 3(3번 주자는 피콜로를 겸함)/ 오보에 2/ 클라리넷 2/ 바순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현 5부(제1 바이올린-제2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 4번과 비슷하게 플루트족만 세 대를 쓰는 변칙 2관 편성이지만, 타악기는 팀파니 외에는 사용되지 않는다.[6]

4. 초연과 출판

1888년 11월 17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차이콥스키 자신의 지휘로 처음 무대에 올랐는데, '고통을 극복하고 환희로' 라는 베토벤 중기 스타일의 도식을 살린 곡이라 청중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다만 비평가들의 경우에는 차이콥스키가 형식과 논리에 신경을 썼다고는 해도 곡이 너무 조야하고 지나친 자기 과시욕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는 여론이 많았다.

이 때문에 차이콥스키 자신도 이 곡에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지만, 이듬해 1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재연과 3월에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린 서유럽 초연에서 호평을 받으면서 다시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1892년에는 보스턴에서도 첫 미국 초연이 이루어져 호평을 받았고, 이후에도 연주 횟수가 계속 늘어 차이콥스키 교향곡 중 가장 연주 빈도가 높은 곡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출판은 초연 직후 모스크바의 유르겐손 음악출판사에서 관현악 총보와 파트보, 차이콥스키의 후배였던 세르게이 타네예프가 편곡한 피아노 2중주용 악보로 동시에 출판되었다.

5. 그 외

  • 1980년대 초반 한국을 대표했던 대중가요 작곡가였던 이범희는 이 교향곡 전체를 관통하는 운명의 동기를 차용하여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곡을 완성하였다. 이 노래는 가수 민해경의 초기 대표곡으로 한 때 큰 사랑을 받았다.
  • 2악장의 호른 선율이 너무 감미로왔기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여기에 영어 가사를 붙여 Moon Love라는 대중가요로 개작했다. 이 노래는 이후 글렌 밀러 쳇 베이커 등의 유명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하기도 했고, 존 덴버도 자신의 곡 Annie's Song의 주제를 이 선율에서 일부 빌어오기도 했다.
  • 고통을 극복하고 환희로 향한다는 도식 때문인지, 독소전쟁 레닌그라드 공방전으로 사방이 포위되어 있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이 곡이 사기 진작을 위해 자주 연주되고 방송되었다. 그 중 공방전 초기였던 1941년 10월 20일에 레닌그라드 방송 관현악단이 시내의 필하모닉 홀에서 개최한 공연이 엄청난 깡다구 덕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가 되었다.
    2악장 초반부 연주 도중 독일군의 포격과 폭격이 시작되었는데, 원래대로라면 모두 방공호로 대피하는게 정상이었지만 악단과 지휘자, 청중들 모두 자리를 뜨지 않고 전곡을 계속 공연했다. 이 실황은 마침 BBC를 통해 영국 런던에도 생중계되었고, 포성이 생생하게 들리는 와중에 진행된 공연을 통해 소련이 아직 저항할 힘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는 선전 효과도 톡톡히 봤다. 이후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등의 동시대 작품이 등장할 때까지 이 곡은 대독 저항의 상징으로 레닌그라드 외에도 소련 각지에서 계속 공연되었다.

[1] 여기서의 트롬본과 튜바 말고는 이 교향곡에서 한 악장을 통째로 쉬는 악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2] 도-미-솔-도-미-솔-도-미-솔-솔 [3] 이 때 연주한 가락은 그대로는 변형된 형태든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즉, 곡 전체에서 유일하게 이 부분에서만 연주되고 사라지는 가락이다. [4] 이 부분이 워낙 거창하기 때문에, 공연 때 곡이 끝난 줄 알고 박수가 나오는 경우가 꽤 자주 있다. 심지어 본고장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인데, 1952년에 푸르트벵글러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공연했을 때의 실황 녹음에도 이 대목이 끝나자마자 객석에 터져나온 박수 소리가 그대로 실려 있을 정도. [5] 이 때문에 이 대목에서는 지휘자에 따라 트럼펫보다 소리가 작은 편인 오보에와 호른에 악기를 높이 들고 연주하는 소위 벨 업(Bell up)으로 연주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 [6] 지휘자의 가필로 4악장 후반부에서 심벌즈를 치는 경우가 있다. 주로 50년대 이전의 네덜란드의 로열 콘서트헤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멩겔베르크는 1회, 판 켐펜은 2회 타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