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28 02:44:52

교공

橋公
(? ~ ?)
1. 개요2. 정사 삼국지3. 삼국지연의4. 기타5.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자 대교 소교의 아버지로 손책 주유의 장인이다. 공(公)은 이름이 아니라 호칭이므로 본명은 불명이다.

2. 정사 삼국지

손책&주유가 이교 자매랑 약탈혼하면서 이교 자매의 아버지가 교공이라고 언급된다. 지방 호족이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이것말고는 기록이 없어서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 수 없다.

손책은 환성을 함락시킨 후 각자 대교와 소교를 취한 뒤 주유에게 "교공의 두 딸이 비록 떠돌게 되었으나(우리의 처첩이 되어 친정을 떠나 멀리 시집을 가게 되었으나) 우리 둘을 사위로 삼았으니 역시 충분히 기뻐할만 할 것이다."라 언급한 손책의 발언이 강표전에 기술되어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교공이 199년 무렵에는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음을 점쳐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교공이 죽었지만 저승에서라도 기뻐했을 것이라는 뉘앙스일 수도 있어서 확신은 금물이다.

삼국지집해에서 심흡한이 한나라의 제도에 따르면 삼공에 오르면 공이라고 불렀다는 점을 들어 이교의 아버지인 교공을 교현이라고 보았지만, 노필은 삼공이 아닌데도 장소와 정보 등을 장공 또는 정공이라 부른 예를 들어 심흡한의 의견을 반박했다.

3. 삼국지연의

딸들인 이교 자매처럼 성씨가 '다리 교(橋)'에서 '높을 교(喬)'로 바뀌어서 나온다. 원래 후한 말에는 사람 성으로 쓰는 교씨를 橋로 썼으나, 연의가 저술된 원말명초에는 더 간략한 형태인 喬로 썼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교공이 언급되는 것은 적벽대전 직전 조조가 단가행을 읊는 편이다. 여기서 조조는 "예전에 내가 교공이랑 친분이 있었는데, 교공의 미인 딸들을 손책&주유가 먼저 스틸해감. 아까비ㅠㅠ"라고 말하며다만 유부녀 취향인 조조가 더 불타올랐다는 설이 있다... 조조와 교공이 친분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이후 유비가 주유의 계책에 빠져 손부인과 혼인하러 올 때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분명 이전에 조조가 그를 언급할 때는 '교공'이라는 호칭으로 불렀지만 여기서부터 교국로(喬國老)라고 칭해지는데, '국로(國老)'는 '국가의 원로'라는 뜻으로 손책&주유의 장인이라서 매우 잘 대접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갈량은 바로 이 점을 파악하고서, 주유의 계책에 대비할 1단계 대응책으로 교국로를 포섭하기 위해 온갖 뇌물(…)을 바치는 한편, 손오 곳곳에 유비가 결혼을 하러 왔다는 소문을 흘린다.

이에 유비에게 호감을 갖게 된 교국로는 몸소 오국태[1]에게 가 결혼을 축하한다고 전하고, 손권이 이 계획을 비밀에 붙이는 바람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오국태는 황당하고도 분노하여 손권을 불러다 '네 어머니[2]가 이러라고 키웠냐'라며 갈군다. 이후 진상을 알게 된 오국태가 혼담을 취소난 이 결혼 반댈세하려고 하자 '사위 될 사람이 어떤지는 보고 결정하시죠'라고 권유해 결혼을 진전시키거나, 이후 유비와 오국태가 만났을 때 유비에 대해 온갖 칭찬을 하는 등 전폭적으로 오국태에게 유비에 대해 호감을 갖게 하여 손권&주유에 대해 방패막이가 되어준다.

결국 유비가 제갈량의 계책에 따라 손부인을 데리고 형주로 피신한 뒤부터는 등장하지 않는다.

4. 기타

연의에서 조조가 교공과 친분이 있었다는 언급이 나오기 때문에 교공이 조조의 관상을 봐주었던 교현과 동일인물로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연의에서는 교공의 성씨 글자가 미묘하게 바뀌긴 했지만 정사에서 성씨도 교공(橋公), 교현(橋玄)으로 같다.

하지만 조조와 교공이 친분이 있다는 언급은 연의의 창작으로 정사에는 그런 내용이 없다. 그리고 교현은 조조나 유비보다 두 세대 위의 인물로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사망했다. 정사의 교공은 손책에게 처발린 지방 호족으로 추측되며, 중앙의 명사인 교현과는 동일 인물이 아니다.[3]

정사 삼국지를 번역한 진기환은 손책 주유가 이교를 맞은 장소가 유훈의 본거지이자 교유가 과거에 주둔하던 환성이란 점을 들어 교공이 교유일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교유가 손책을 존중했고, 손책이 환성을 점령한 시점이 교유 사후라는 점으로 보아 친분이 있던 교유의 가족을 거둔 것이라는 것이 이 주장의 요지. 단순 진가환만의 고유 해석은 아니고 바이두 백과도 해당 해석이 있어 본토안 중국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진 설이다.
교유는 당시 교씨 인물 가운데 손책과 아는 사이임이 확실시된다.삼국지는 "원술의 대장 교유와 장훈이 모두 (손책)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도리상 손책에게 '교공'이라 불릴 정도였다. 교유는 197년에 전사했다.《원술전》에 따르면 197년 6월 원술이 죽었다고 한다.[4]그의 가족은 물론 '부곡남녀'(원술의 부하 가족)까지 모두 완성으로 데려갔다. 6개월 뒤 손씨가 완성을 부수고 이교를 얻으면서 부친이 전사하고 완성으로 달아나는 등 그녀들의 참상은 떠돌던 시기의 처지와 맞닿아 있다.

한편 완성을 무너뜨린 후 이교 외에 높은 지위에 있던 원술의 딸 원부인(元夫人)도 훗날 손권의 비빈이 되었다.그렇다면 손책과 주유가 교유의 두 딸을 아내로 삼는 것도 이치에 맞다.
바이두 백과 소교 문서 #

다만 이것도 반박이 있는데, 진짜 교유의 딸이었으면, 오히려 오서에서 그것을 기록했을텐데 그런 이야기가 당시에는 없다는 거다. 손오의 경우 위나 촉한과 다르게 당대 여성들의 이름까지 기록된 경우가 많은데[5] 정말 교유의 딸이었으면, 약탈혼같이 데려가 첩으로 취한게 아니라 교유의 딸을 거두고, 교씨의 이름까지 기록됐을것이다.

5. 미디어 믹스

파일:전략교공.png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 등장한다.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위의 오류를 그대로 차용하여 교현과 교국로를 동일시해 '교현 = 교국로' 설의 확대에 한몫했다. 하지만 13부터는 대교와 소교의 열전에서 '희곡 등에서 아버지인 교공을 교현과 혼용해서 쓰고 있다.'고 서술하여 오류를 바로잡았다.

진삼국무쌍 시리즈에서도 대교 소교의 아버지를 교국로가 아니라 교현이라고 표기한다.

소설 비열한 성자 조조에서도 대교와 소교의 아버지가 교현이라고 나온다.

화봉요원에서도 등장. 강동의 이름난 부호이며 엄백호의 물주로서 회계성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회계성에 손책이 쳐들어오면서 위험에 처한다. 교공의 가솔들은 그에게 명성이 자자한 용병이 보호자로 있어 걱정하지 않고 먼저 피난했으나 그 용병이란 게 하필 손권 패장이었다. 이미 교공의 저택은 반장 서성에게 점거당해있었고, 손권은 집안 재물들을 다 줄테니 보내달라는 교공의 말에도 아랑곳 않고 대교와 소교를 확보해 손책과 주유의 결혼 상대로 점찍는다.


[1] 삼국지연의에서 창작된 손권의 이모&계모다. [2] 손권의 친모 무열황후를 뜻한다. [3] 애초에 교현과 교공의 생몰년 차이가 심하게 난다. 그리고 199년에 대교, 소교의 나이가 15세 전후 혹은 그 이하란걸 감안해보면 교현이 사망한 이후에 대교, 소교가 태어났다는 소리인데 교현=교공이라는 건 여러모로 말이 안 맞는다. [4] 199년 6월의 오기. [5] 보연사, 반숙등의 여인 이름도 실록에 적힌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