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대한민국 헌법재판소 재판관 고중석 高重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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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11B2B><colcolor=#E6B366> 출생 | 1937년 9월 18일 |
전라남도 담양군 | |
사망 | 2024년 6월 30일 (향년 86세) |
재임 기간 | |
헌법재판소 재판관 ( 윤관 대법원장 지명 / 김영삼 대통령 임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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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9월 15일 ~ 2000년 9월 14일 | |
가족 | 배우자 문인자, 1남 2녀 |
학력 |
광주고등학교 (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 법학 / 학사) |
경력 |
제14회
고등고시 합격 헌법재판소 재판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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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법조인. 前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역임했다.고재호 前 대법관의 조카이기도 하다.
2. 생애
1937년 9월 18일, 전라남도 담양군에서 태어났고 광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1962년 제14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후 1966년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했다. 이후 서울민사지방법원·서울형사지방법원·서울고등법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가정법원·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전주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전주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광주고등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광주고등법원장을 지내던 1994년 9월 윤관 대법원장 지명으로 헌법재판관에 임명되어 2000년 9월까지 재임하였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2024년 6월 30일, 향년 86세로 사망했다.
3. 주요 판결
- 1996년 2월 16일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의 위헌법률심판에서 위헌 의견을 냈다. 그러나 결과는 4대 5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1] 형법상 내란죄 공소시효가 15년이기 때문에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5.18 민주화운동 모두 1995년에 공소시효가 만료된 상황이었으나 이 법이 통과되면서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한 신군부 인사들을 사법적으로 단죄할 수 있게 되었다.[2]
- 1996년 사형제도를 규정한 형법 41조와 250조에 대해 합헌 취지의 다수의견을 내면서 “사형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공포심과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서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 1997년 동성동본 혼인금지 제도에 위헌 취지의 다수의견을 냈다.
- 1997년 교수협의회 활동 이력으로 교사 재임용이 거부된 사건에서 거부 사유 및 구제 절차가 규정되지 않은 당시 사립학교법에 대해 위헌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