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의 주요인물에 대한 약사(略史)이다.2. 고려의 주요인물
- 왕규
- 왕식렴
- 최지몽 - 태조부터 성종때까지 6명의 군주를 모시며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고 한다.
- 최승로 - 성종 때 시무28조를 올렸고, 고려의 기틀을 잡는 데 큰 공헌을 했다.
- 최량 - 고려 성종의 사부이며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지냈고, 고려 거란 간의 1차전쟁에서 하군사를 맡기도 했다.
- 서희 - 거란이 고려를 1차로 침범했을 때 중군사로 전쟁에 참전했으며, 소손녕과의 외교담판으로 강동6주를 획득하였다.
- 박양유 - 고려 성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거란의 고려 1차 침입 당시 상군사로 참전하였다.
- 한언공 - 고구려계 패서호족 출신이며, 고려의 기틀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재상이고, 목종 때 문하시중을 지냈다. 두 딸을 고려 왕실에 시집보냈다.
- 유방헌 - 후백제계 출신의 문신이며, 광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성종 때 여러 요직을 거쳐서 목종 때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지냈다.
- 김치양
- 강감찬 -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끌면서 여요전쟁을 고려의 승리로 완결지은 영웅이며, 문하시중까지 지냈다.
- 강조 - 목종을 폐위시키고 현종을 즉위시켰다. 다만 권세를 잡은 기간은 짧다. 후에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침입한 요 성종에 맞서 싸우다 통주 전투에서 대패해 끝내 포로로 잡혀 처형당했다. 죽음 직전의 순간에 요의 회유에도 끝내 넘어가지 않았다. 현종은 강조가 죽고 나서야 제대로 군주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 유방 - 거란 1차 침입 당시 낭장으로 안융진 전투에서 거란군을 물리친 영웅이며 목종이 병석에 누웠을 때는 친종장군으로 궁궐을 지켰다. 현종 이후 병부상서에 오른 뒤 승승장구하여 재상이 되었고 문하시중까지 지내면서 성종부터 정종까지 5대 임금을 섬겼다.
- 위수여 - 현종 즉위에 큰 공을 세운 재상으로, 문하시중까지 지냈다.
- 유윤부 - 문하시중을 지냈으며, 현종의 최측근이었다.
- 유진 - 척신가문 출신으로 목종이 병석에 누웠을 때 이부상서 겸 참지정사로 궁궐을 지켰고 현종을 즉위하게 하는 데도 공을 세웠으며 상서좌복야에 오른 뒤에 문하시중까지 지냈다.
- 김심언 - 최섬의 사위이며, 육정육사를 쓴 사람이기도 하고, 현종 때 예부상서를 거쳐 내사시랑평장사에 오르면서 재상이 되었다.
- 최사위 - 현종 즉위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으며, 형부상서에 올라서 여요전쟁 2차전투에 참전하기도 했고 문하시중까지 지내면서 고려를 전성기로 이끈 문신이다.
- 채충순 - 현종의 측근이며, 목종이 병석에 누웠을 때 중추원부사로 목종을 호종했을 뿐만 아니라, 거란의 침략 때 이부시랑으로써 현종을 끝까지 보필하였고, 이후 예부상서에 오른 뒤에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지내면서 고려를 전성기로 이끈 명신 중 한 명이다.
- 황보유의 - 현종의 측근이며, 척신 가문으로 현종 즉위에 공을 세웠고 재상까지 지냈다.
- 김은부 - 거란과의 2차 침입에서 현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유일하게 도움을 준 지방 유력자이며, 이후 세 딸이 현종의 왕후가 되면서 외척이 되기도 했다.
- 최항 - 최언위의 손자이자 현종의 최측근으로, 성종, 목종, 현종 등 3대 군주를 섬기면서 목종이 병석에 누웠을 때는 중추원사로 목종의 밀명을 받아서 대량원군을 데려오는 임무를 맡았으며 거란과의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고려를 안정화시키는 데 공을 세웠고, 고려를 전성기로 이끈 명신 중 한 명이다.
- 유소 - 고려 현종과 덕종의 측근으로, 천리장성을 쌓았다.
- 왕가도 - 김훈·최질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운 사람이며, 고려 현종의 측근으로 고려를 전성기로 이끄는 데 기여를 했다.
- 서눌 - 서희의 아들이자 문하시중까지 지냈으며 고려 초기 여러 군주들을 섬기면서 고려를 전성기로 이끄는 데 공헌한 재상이다.
- 황주량 - 고려 초기 여러 군주들을 섬기면서 재상까지 올랐으며, 칠대사적을 편찬하고 여진의 분쟁을 잘 처리했다.
- 최충 - 해동공자로 알려진 사람이자 사학12도의 원천인 9재학당을 설립하였고, 목종부터 문종까지 5대 군주를 섬겼을 뿐만 아니라 고려 문벌귀족 사회를 뿌리내리게 한 사람이다.
- 김훈(金訓) - 고려 현종 연간에 최질과 함께 반란( 김훈·최질의 난)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무신.
- 최질(崔質) - 고려 현종 연간에 김훈과 함께 반란( 김훈·최질의 난)을 일으켜 일시적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무신.
- 박충숙 - 고려의 문신으로, 현종 때 예빈경으로 중군병마사에 임명되어 여요전쟁 2차전쟁에 참전했고, 이후 문하시랑평장사까지 지냈다.
- 소태보 - 숙종의 즉위를 도운 1등공신으로 문하시중까지 지냈다.
- 최사추 - 최충의 증손이자 이자겸의 장인이며 뛰어난 배경과 탁월한 재능으로 문하시중까지 되었고 고려 문벌귀족의 핵심을 이루었다.
- 김경용 - 신라 원성왕의 후손으로, 문하시중까지 지낸 사람이다. 다만 말년에 권세에 의지해서 재물을 너무 많이 탐하고 집을 너무 화려하게 꾸며서 세간의 평이 좋지 못했다.
- 윤관, 오연총 - 고려 예종 때 여진을 정벌하고 동북9성을 쌓았다.
- 이자연 - 딸 셋을 문종에게 시집보내 3명의 군주( 순종, 선종, 숙종)의 외조부가 된 초유의 인물. 고려 중기의 최대의 문벌귀족인 경원 이씨의 세도를 쌓아올린 인물이다.
- 이자의 - 이자연의 손자다. 헌종때 자신의 누이동생인 선종의 후궁 원신궁주의 아들이자 헌종의 이복동생이 되는 한산후 왕윤을 군주로 옹립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반란을 일으켰지만 계림공에 의해 제압당하고 살해당했다.
- 이자겸 - 이자연의 손자다. 예종에게 한 명, 인종에게 두 명의 딸을 시집보냈다. 그래서 인종은 이모 두 명과 혼인한 셈.[1]
- 척준경 - 이자겸과 한패였을 때는 물론이고 이자겸을 축출한 뒤엔 더더욱 권세가 커졌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에서는 직접적으로 그가 '권력을 휘둘렀다'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후 그의 행적을 보면 후대에 의해 과장됐을 가능성은 존재한다.
- 김부식 - 인종 시대 문벌귀족의 핵심인물.
- 임원후 - 인종 시대의 문벌귀족이며, 외척이기도 했다.
- 이의방, 정중부, 이의민, 최충헌 등을 비롯한 무신정권 역대 집권자들 - 여기서 유일하게 간신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경대승이다. 최충헌은 한국사 최고(물론 부정적인 의미로), 최악의 권신이라 불리기도 한다. 무신정권 당시 고려의 군주들은 허수아비나 다름없었고 모든 권력자들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최충헌은 연개소문과 더불어 한국사에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신하로 유명하다.
- 기철 - 누이인 기황후의 위세를 등에 업고 온갖 패악질을 부린 원간섭기 시대의 간신. 결국 병신정변때 공민왕에게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 신돈 - 초기에는 개혁에 앞장섰으나, 후기에는 타락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성계 일파가 창왕과 우왕을 내리 폐위시키며 폐가입진이란 논리를 내세웠기 때문에 신돈의 이미지를 왜곡했을 가능성이 높은 편.
- 이인임, 임견미, 염흥방 - 권문세족의 핵심으로 우왕 치세의 간신들. 무진피화때 의기투합한 최영과 이성계 일파에게 숙청당했다.
- 최영 - 이성계에게 숙청당하기 전엔 고려 최고의 권신이었다. 다만 최영 자신은 자기 절제에도 충실한 케이스였고 고려 왕실에 충성을 다했다.
- 이성계: 결국 조선의 국왕으로 즉위. 즉위하기 전에는 어쨌든 고려의 신하였으므로 고려의 권신에 포함. 무려 두 명의 왕을 자기 마음대로 갈아치웠다. 게다가 최영이 제거당한 후에는 이미 왕이나 다름없는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공양왕 시기에는 왕이 신하인 이성계가 언제 옥새를 가져갈까 걱정해야 되는 지경이었다. 한국사에서 유래가 없는, 왕이 신하와 동맹을 맺자고 제의하는 지경이었으니 이 당시 공양왕의 입지가 충분히 상상 가능할 것이다.
- 정도전 - 급진파 신진사대부에 속하는 고려의 권신이었으며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려 했다. 그로 인해 정몽주와 대립했고 결국에는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다.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권신으로 남았다.
- 정몽주 - 온건파 신진사대부에 속하는 고려 최후의 권신이자 충신이었으며[2]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고 했고 그로 인해 정도전과 대립했다. 결국에는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에게 밀명을 받은 이방원의 부하 조영규에게 선죽교에서 피살당한다. 그리고 결국 고려는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진다.
[1]
물론 인종이 원해서 한 결혼이 아니라 이자겸에 의해 강제로 한 혼인이었고, 후에 이자겸을 숙청하고 난 후 이모 두 명은 폐위된다.
[2]
그 이성계조차 정몽주가 건재할 때는 고려를 멸망시킬 생각을 하지 못하고 주저했으며, 이방원조차도 정몽주 암살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