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0년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공문(孔文)으로 고표[1]의 아들. 양주 오군 무석현 출신.2. 생애
선천적으로 슬기롭고 사리에 밝았으며, 재물을 가벼이 하고 의를 귀하게 여긴 것으로 유명했다. 그의 친구 8명도 모두 큰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오군 태수 성헌을 위해 계책을 올린 적이 있어 효렴으로 천거되었는데, 허공이 와서 오군을 다스리자 고대는 성헌과 함께 허소의 집으로 피난을 간 후에 도겸에게 원군을 청했다. 도겸은 별 관심이 없어서 도와줄 생각이 없었지만 고대는 거기서 애태우면서 몸이 마르고 얼굴에 핏빛이 없어질 정도에 피눈물까지 흘리며 물조차 입에 대지 않으니 도겸이 그의 충절과 장렬함에 감복해서 군대와 허공에게 그를 건드리지 말라는 편지를 주어 보내게 된다.
하지만 고대의 모친은 허공에게 이미 갇힌 뒤였는데, 고대는 옛 친구 장윤과 심민에게 자신의 모친을 꺼내온다 하더라도 허공은 곧 후회를 하고 자신을 쫓을 것이니 미리 배를 준비하라고 부탁을 하면서 허공을 찾아가 그의 말빨 하나만으로 모친을 구출하고 준비한 배를 타고 탈출을 한다. 과연 그의 예측대로 허공은 그를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이미 장강을 건넌 뒤라 고대는 살아나게 되고 그 후로는 여요에 은거하게 된다.
하지만 200년 손책이 고대가 좌전을 잘 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하를 시켜 고대를 데려오게 해 좌전에 대해 강론을 받고자 했는데, 이 때 한 부하가
고대는 손책님이 단지 무력만 있는 무장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 말이 맞다면 그는 좌전을 논할 때 손책님을 상대하기 싫어 모른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라고 하며 또 고대에게는 손책님은 지는 것을 싫어해 만약 모든 손책님의 의문에 대답을 한다면 손책님은 화를 낼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끔씩 모른다고 대답해 그의 뜻을 어느 정도 맞추어 주십시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대님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고대는 과연 그 부하의 말이 옳다고 여겨 좌전을 손책과 논할 때 몇 번씩 대답에 모른다를 섞어 대답해 주니 손책은 분노, "이 녀석이 나를 우습게 보는 것이냐!" 라며 그를 투옥한다.그가 투옥되자 고대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땅바닥에 엎드려서 그를 풀어줄 것을 청했다. 문제는 손책이 누각에 올랐더니 수 리가 엎드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던 것. 이에 손책은 고대가 민심을 잡고 있는 것에 화가 나 그를 죽인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손책이 우길을 죽일 때 연의의 묘사가 고대를 처형한 사실에서 상당 부분 차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간 최후에 대한 연의의 괴이한 묘사 때문에 손책의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여겨졌지만 실상 꼭 그렇지만도 않은 셈. 차라리 연의에서 우길을 죽인 건 '백성들을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도사를 일벌백계한다'는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갖추고 있었지만[2] 실제 역사상에서 고대를 죽인 건 완전 억지로, 전적으로 학식에 대한 콤플렉스와 민심을 잡고 있는 고대에 대한 질투에서 기인한다. 하다못해 활동이 왕성한 정적이면 모를까 그냥 조용히 살고 있는 명사를 불러다가 그냥 쳐 죽여버린 것.
흔히 손책과 손권을 비교하는 논의에서 목표가 천하통일인지 할거인지 불분명한 손권보다 대국적 안목을 갖추고 확실한 비전을 내세웠던 손책을 리더십 측면에서 더 높게 평가하는 시각이 많지만, 고대와의 일화를 통해 보이는 모습을 보면 마냥 고평가하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당대의 일류 브레인이기에 나름의 인적 네트워크를 가동해 꾸준히 정보를 수집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손책과 일면식도 없는 적 세력의 책사인 곽가의 입에서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해 자멸할 것"이라는 혹평[3]이 나올 정도이니 잔혹한 성정을 짐작케 한다.
3. 기타 미디어
[1]
후한에서 낭중, 외황현령을 지냈고 《
후한서》에 열전이 있다.
[2]
황건적의 난 발발이 불과 16년 전 일이었고,
황건적의 완전 소탕까지는 한참이 더 걸렸다. 즉 당대 사람들의 기억 속에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도사가 저질러 놓은 사건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걸 감안하면, 사이비 도사를 벌한다는 것 자체는 그럭저럭 받아들여질 만한 명분이 됐다.
[3]
실제로도 손책은 강동의 호족 허공의 식객에게 보복당하고 그 상처가 악화돼 요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