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의 천생연분 Match Made in the Heav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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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등급 | 15세 이상 시청 가능 |
방송사 | MBC |
진행 | 강호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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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논픽션 시츄에이션 러브 버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ㄹ라이어티[1]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밤! 유후~~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밤! 유후~~
천생연분 역대 킹카 퀸카 사진
MBC에서 방영된 전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2002년 6월 8일부터 주말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목표달성 토요일의 한 코너로 방영되다가 2002년 10월 19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목표달성 토요일이 2년 8개월 만에 끝나면서[2] 단독 프로그램이 되어 2002년 10월 26일부터 2003년 10월 4일까지 방송했다.[3] 목표달성 토요일 시절까지 포함하면 총 방송 기간은 1년 4개월.
시작할 때 나왔던 BGM은 진혜림 - A lover's concerto[4].
강호동이 처음으로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런칭한 프로그램으로, 2000년대 짝짓기 예능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강호동이 "강호동의 천생연분"에서 처음으로 도입부에 "댄스신고식과 개인기"[5]를 만들어 선보임으로써 본격적인 버라이어티 예능의 출발을 알리기도 했는데, 그 수혜자들이 비, 세븐, 전혜빈, 팀, 은지원, 윤은혜, 이진성 (청담동 호루라기), 최정원, 윤정수, DJ DOC의 정재용, 유민, 황보, 김흥수, 조성모, 오승은, 정소영, 오지호 등으로, 가히 스타 탄생의 산실이었고, 웬만한 연예인들은 거의 다 출연했을 정도. 이후 강호동이 SBS로 자리를 옮김과 동시에 자매품인 리얼로망스 연애편지를 런칭해 연애 버라이어티 예능의 대미를 장식하기도 했다.
이미 1980년대 당시부터 프로그램 내에서 러브라인을 이용하는 경우는 심심찮게 있었고,[6] 당대 네임드 연예인들이 여럿 나와서 소개팅 프로그램에서 경쟁하고 선택받으려 한 것 역시 1990년대 중반 SBS와 KBS, MBC 등에서 꽤 방영했던 바가 있다. 오래 전에 MBC에서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시초인 '청춘 만세(1977~1979)', '청춘 데이트(1989~1990)', '사랑의 스튜디오(1994~2001)' 같은 연애 버라이어티 프로그램들도 천생연분 이전에 꽤 존재했었다.
다만 이전의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는 것은 단순히 선택 받는 것이 아니라 상대 연예인과 커플을 이룬 상태에서 함께 게임을 하기에 어찌 보면 선택의 여부가 중요하지 않아 시청자들이 보다 러브라인에 더 몰입해 볼 수 있었던 것. 이것은 오늘날 예능의 러브라인에 직접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998년의 캠퍼스 영상가요를 시작으로 단독 MC를 맡았고[7], 그 유명한 프로그램 2001년 MC대격돌 최장수 MC를 맡다가 다시 친정 MBC로 넘어간 강호동은 본인의 이름 석자를 처음으로 내건[8] 이 "강호동의 천생연분"의 대히트를 계기로[9] 제2의 전성기를 알리며 본격적인 국민 MC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또한 동방송사인 MBC 내에서도 애정만세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천생연분의 히트 후 KBS에서는 산장미팅 - 장미의 전쟁을, SBS는 이후 강호동을 영입하여 사실상 완전히 동일한 포맷인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등의 여러 아류 프로그램들을 제작하여 방영했다.
MBCentertainment 유튜브를 통해 코너 단위로 끊어서 영상이 올라와 있다. 유튜브에서 '강호동의 천생연분'을 검색하면 손쉽게 시청이 가능하다.
2. 유행어
- 신토불이: 사실상 이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유행어. 신나는 토요일 불타는 이밤의 줄임말로, 2000년대 초반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다 기억하는 유행어다.
- 킹카, 퀸카, 떠나라!: 최종 투표를 통해 선정된 킹카와 퀸카들에게 강호동이 이들에게 말했던 멘트였다.
- 이사돈: 전혜빈의 별명. 댄스 신고식에서 '이'십 '사'시간 '돈'다 라는 뜻이다.
- 0표 클럽: 최종 선택 때 표를 받지 못하면 자동 가입된다. 고정 게스트였던 윤정수와 신정환이 주요 멤버였고, 윤정수는 회장까지 맡았다. 또한 회비까지 걷었다고 한다.
- 질질질: 커플 선정 때 선택을 받지 못하면 양팔을 잡혀 질질질 끌려간다는 것에서 유래했다.
3. 진행 순서
맨 위에 서술한 강호동의 호들갑스러운 오프닝 멘트로 시작. 2002,2003년 MBC 연중캠페인이 정정당당 코리아였던 탓에 강호동은 저 멘트 이후 정정당당당하며 카메라에 박치기 모션을 시전하기도 했다. 오프닝 대본 중에는 주로 MBC 사장님[10]과 면담을 가졌다라는 내용이 있었다. 이후 남-녀 게스트를 소개하며 근황토크를 한 뒤, 댄스신고식 코너 '댄스 댄스'로 이어가며 몸을 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는 여의도 MBC 앞마당 또는 세트에서 진행된다.이후 장소를 이동해 세트 내[11]에서 1차 게임을 진행한 뒤, '중간 결정 내 마음을 뺏어봐'라는 코너를 통해 1차 커플을 매칭한다. 커플 매칭은 여성이 앉아 있으면 그 여성 뒤로 관심있는 남성들이 방석 레이스를 벌여 여성 뒤로 가면, 이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거절당했을 경우 위 유행어 문단에서 설명한 질질질이 필수요소로 나오게 된다. 여기에 주로 당한 사람이 김흥수.
그리고 매칭된 커플대로 게임을 1~2개 더 펼친 뒤, '킹카 퀸카 떠나라'라는 코너로 최종 커플 선택을 진행한다. 남자, 여자 각 1명씩 최다득표자가 각각 킹카, 퀸카가 된다. 이 때 화면에 게스트들의 얼굴만 나오는데, 마지막 칸에 있는 꽉찬 강호동의 얼굴사진이 백미...
마지막 선택에서 최종 킹카, 퀸카로 선택되어 뽑히면 사실상 하차와 같기 때문에 쥬얼리의 이지현이나 신정환 등의 고정 출연자들은 킹카, 퀸카를 못했으며, 하더라도 최대한 몇 주차 끌다가 시켰다. 베이비복스의 윤은혜 역시 해당 프로그램의 최종회에서 퀸카가 되었다.
당연하지만 작가 등 스태프가 방송에 쓰이는 게임들을 제작하는데, 이 프로그램 내에서는 천생연분 게임연구소에서 박사들이 자체적으로 개발했다라는 설정을 넣었다. 이를 이용해 강호동은 게임 시작전 사과방송을 한다면서 알고 보니 이 분들이 박사학위가 없더라는 식으로 농을 치기도 했다.
4. 출연자 및 수혜자
당시 난다 긴다는 네임드 연예인[12]부터 신인, 무명 연예인까지 한번쯤은 대부분 이 프로를 거쳐갔다. 세인들의 기억에 각인된 주요 출연자들만 적어보자면 이렇다.- 은지원: 4차원과 철없는 이미지[13]를 탄생시켜 현재 위치까지 올랐다. 강호동은 "젝스키스 때의 카리스마는 온데간데없고 신정환과 윤정수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고, 신정환은 모 프로그램에서 "요즘 초등학생들은 개그맨인 줄 알아!"라고 말하면서 그 당시 최고로 손꼽혔던 신정환도 은지원을 인정했다. 그 뒤로 은지원은 1박 2일로 인해 확실한 예능인으로 자리잡았다.
- 비: 데뷔곡 "나쁜 남자"가 그저 그런 성적을 찍고 일찍 활동을 접는 것은 물론 1류 가수도 못 될 뻔 했으나, 이 천생연분에서 춤 잘 추는 매력남으로 이름을 알린 걸 발판으로 후속곡 "안녕이란 말 대신"의 흥행과 여러 CF도 찍으면서 1집 활동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특히 33회(2003.6.14)에서 선보인 3단 꺾기 댄스는 전설의 레전드로 남았고, 그가 앨범 들고 나올 때마다 이 영상이 계속 언급된다. 심지어 주간 아이돌에 출연해서는 저 댄스를 재연까지 했다. 성시경 커플과 커플 게임을 할 때 여성을 안고 장시간 버티기 게임을 진행했던 것도 볼거리였다.
- 전혜빈: 당시 걸그룹 LUV 멤버로 활동 중이었는데('빈'이라는 예명을 썼다.), 댄스 댄스 코너에서 매번 빛났다. 항상 턴 댄스를 즐겨했고, 이 덕에 위의 '이사돈' 별명과 함께 개인으로는 큰 인기를 얻었으나, 팀 활동의 흥행으로 이어 가지 못한 뒤 침체기를 겪게 되나 나중에 솔로 가수로, 그리고 배우로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 세븐: 딱 데뷔 시점에 들어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댄스 댄스 마지막에는 항상 시그니처인 '7'로 마무리를 했다.
- 정재용: '따라쟁이' 기믹. 댄스 댄스 코너에서 춤 잘 추는 사람을 보면 항상 따라하기 바빴다. 위에 언급한 비 3단 꺾기 댄스를 따라하려다 시작부터 뒷목을 우두둑! 소리가 날 정도로 꺾은 장면은 레전즈 명장면이었다. 참고로 잊혀진 팩트인데, 초창기에 잠깐 정재용은 강호동과 동일선상에 있던 MC였는데, 호흡도 나쁘지 않았지만[14], 정재용은 후에 일반 게스트가 되어버리고 그 자리는 윤정수와 신정환이 완벽하게 메울 시점에 떠나게 된다.
- 이진성: 일명 청담동 호루라기. 싸이가 천생연분을 출연했을 때 댄스 댄스에 정장 차림에 호루라기를 연신 불면서 커플 댄스를 추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 본명이 공개되어 연예활동을 간간이 했다. 자신은 라디오에 출연해 "이 별명이 칠순까지 갈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연예인이 아닌 싸이의 지인으로 등장해 고정 출연했다.
- 최정원: 추소영&빈과 삼각구도를 형성했던 인물[15]. 항상 나오면 진지한 멘트를 읊어대고 존댓말로 강의를 하는 듯 한 모습에 진지청년, 진지교수라는 기믹들과 대시하는 말투가 매우 느끼하다는 평을 받아 마가린 최라는 꼬리표가 현재에도 붙어다닌다.
- 김흥수: 훤칠한 키에 당시 갈색머리를 하고 있어서 그가 등장하면 일본 스타일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 조성모: 한참 잘 나감과 동시에 신비가수 이미지를 벗을 때 출연하여 매력을 보여줬지만, 거의 신나게 놀림받는 역할이었다. 박용하, 황인영과 더불어 킹카&퀸카에 2번 선정되었으며, 황인영과는 동시에, 2번 킹카 & 퀸카로 선정되었다.
- 오지호가 푸켓으로 여행간 특집에 게스트로 나온적이 있는데, 이때 너무도 부족한 예능감으로 참 많이 애를 썼었다. 오죽하면 오지호에 관련된 밈은 거의 신정환과 강호동의 입에서 나왔는데 2+3=오지호도 그렇고 강호동은 몇차례나 기를 못펴는 오지호가 안쓰러웠는지 영원한 팬이 되겠다고 띄워주기도 했다. 이때의 에피소드를 강호동이 훗날 오지호가 출세해서 무릎팍도사에 나왔을 당시 털어놓기도 했는데, 오지호도 그땐 그랬다며 홀기분하게 웃는 모습이 백미였다.
당시에는 대다수가 20대였다. 비나 세븐, 최정원은 그 당시에 20대 초반이었고 신정환과 윤정수가 나름 노장이었는데 30대 초반이었다. MC인 강호동이 30대 초중반이었고 여자 출연자들도 윤은혜, 유민, 추소영, 오승은도 20대 초반이었다.
5. 역대 킹카&퀸카 커플
- 1대: 이종수, 한채영
- 2대: 박광현, 한은정
- 3대: 신동엽, 정다빈
- 4대: 최민용, 김정화
- 5대: 홍경민, 박경림
- 6대: 성시경, 황보
- 7대: 이상민, 이혜영
- 8대: 비, 김민경
- 9대: 박수홍, 양미라
- 10대: 이성진, 한은정
- 11대: 정재용과 시범아가씨 (단독)
- 12대 임창정, 유민
- 13대 김창열, 오승은
- 14대 새가 된 싸이 (단독)
- 15대 정태우, 이세은
- 16대 심은진, 장나라 (동성 커플)
- 17대 조한선, 추소영
- 18대 김정훈, 유민
- 19대 박용하, 전혜빈
- 20대 김흥수, 이재은
- 21대 박용하, 이유진
- 22대 조성모, 황인영
- 23대 제비가 된 김건모 (단독)
- 24대 강균성, 간미연
- 25대[17] 조성모, 황인영
- 26대 김민종, 정려원
- 27대 최정원, 조여정
- 28대 이서진, 변정민
- 29대 SE7EN, 박정아
- 30대 이휘재, 유니
- 31대 은지원, 윤은혜 (마지막회)
6. 비판
- 2002~2004년 시점에서 선정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여성이 청자켓을 벗고, 민소매 차림으로 춤을 추는 장면이 선정적이라는 것. #
- 한국여성민우회에서 나쁜 프로그램으로 선정하였다. "여성출연자에게 섹시한 춤을 강요, 자극적인 것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의 수위는 주말 가족 시청 시간대를 무색케 만들었다"는 이유. #
7. 여담
2003년 6월 경 방송된 역대 댄스댄스 하이라이트 |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프로그램은 2003년 10월 4일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유는 프로그램 런칭 전 강호동과 1년간 MC 계약을 맺었는데, 이후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대체적으로 시청률에 따라 프로그램 존폐가 좌지우지되지만[18], 이 때까지는 MC의 계약기간이나 프로그램 정기개편, 부분조정[19] 시즌에 따라 MC 물갈이가 이뤄졌다.
이후 2주간 하이라이트가 방송된 뒤 11월 1일부터 서경석, 탁재훈이 MC를 맡았던 <심리 버라이어티 누구누구>[20]가 편성되었지만,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고 반년만에 종영되었다. 그 뒤 리얼로망스 연애편지가 동일한 MC에 비슷한 포맷으로 히트를 치면서 사실상 이 작품의 계승자가 되었다.
옴부즈맨 프로그램 문서에 등록된 마린블루스 4컷만화에 나오는 ' 심은진의 섹시댄스'가 바로 이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것으로, 해당 방송분량 때문에 주의를 받기도 했다.
10여년이 지난 뒤 이 프로그램의 후신격을 자처하는 천생연분 리턴즈가 MBC every1에서 재탄생했고, MBC에서 잠시 방송한 적도 있다. 자세한 건 문서 참조.
' 리얼쇼 부킹부킹'이라 하여 천생연분의 19금 격 패러디 프로그램도 등장한 적이 있다. 성인물이었으며 진행은 양배추. #
[1]
녹화 시작 때 강호동이 꼭 이 멘트를 하고 시작했다.
[2]
이 무렵의 목표달성 토요일은 천생연분 외의 다른 코너들은 줄줄이 실패만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결국 MBC는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목표달성 토요일을 종영시키고 천생연분을 아예 자체 독립 프로그램으로 내보냈다.
[3]
이후 10월 11일과 (10월) 18일 2주간은 하이라이트를 틀어줬다.
[4]
1960년대 곡의 리메이크이다.
[5]
이 댄스신고식과 개인기가 나중에 모든 버라이어티 예능의 교본이 되었고 지금도 활용하고 있다.
[6]
대표적으로 실제
주병진의 어머니가 프로그램과 짝사랑 기믹이던
노사연과 진짜로 사귀는 거냐고 물어봤던 일이 있다.
[7]
1995~1996년도부터
최수종 등 인기 연예인들과 공동 MC를 맡기도 하였다.
[8]
본인 이름을 걸고 하는 프로는 A급 이상이 되어야 가능했다.
[9]
그 당시 원탑 예능으로 이 프로로 강호동은 2003년
백상예술대상 예능 남자상을 수상하였다.
[10]
이 시기에 재직한 MBC 사장은 김중배, 이긍희다.
[11]
스타 서바이벌 동거동락과 같은 세트로 보인다.
[12]
김건모,
신동엽도 이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음악의 신도
당시 그 분과 동반출연한 바 있다.
[13]
젝키 때도 멤버들과 팬들 사이에서 이런 이미지였다. 그래서
이경규와 강호동이 예능인으로 키웠다.
[14]
후에 강호동은 정재용과 각자
무릎팍도사와
재용이의 순결한 19라는 프로그램으로 동시간대 경쟁을 하게 되는데, 그때 정재용이 잠깐 무릎팍도사
이하늘 편에 친히 출연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15]
다른 회차에서 최정원이 아닌
조한선을 선택한 추소영이 후에 방영된 회차에서 빈에게 프로포즈를 하러 나간 최정원을 보고 이의제기를 했었다.
[16]
추소영과 오승은은 후에
배슬기와 함께
더 빨강의 멤버로 활동하게 된다.
[17]
King of Kings & Queen of Queens 특집.
[18]
이 당시에도 시청률에 따라 종영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는데, 그 예가
좋은 친구들과
이홍렬쇼,
코미디 세상만사,
호기심 천국 등이다. 다만, 이 때는 신설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아 시청률이 하락한 경우다.
[19]
2010년대 들어서
EBS를 제외한 지상파방송사들은 예전처럼 봄, 가을 정기개편을 꼭 챙기지 않고, 수시로 편성 부분조정을 한다.
[20]
약 두 달 전 2003년 9월 10일 추석 특집으로 파일럿 편성된 <Who?>가 반응이 좋아 정규 편성된 프로그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