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도시 | |||
바탐 Kota Bat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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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인도네시아 | ||
지역 | 리아우 제도 | ||
면적 | 1,595 km2 | ||
인구 | 1,546,064(2020년 기준) | ||
시장 | 모하멧 루디 | ||
시간대 | UTC+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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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탐은 인도네시아 리아우 주 바탐 섬에 있는 도시로 싱가포르의 남쪽에 있는 섬이며 여기에 바탐시가 있다. 바탐 섬 자체는 전체가 리아우 주에 속한 곳이다.원래 이 곳은 오랑 라우트족의 거주지였다. 1960년대 이전엔 이들이 실질적 주인이였고 이땐 그냥 어업으로 먹고 사는 섬 동네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당시만해도 주민들은 원주민 오랑 라우트족 아니면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곳 화교들은 네덜란드에 동화되어 거의 루터교 신자이고 마인어를 쓰는 자바 섬의 화교들과 달리 그대로 민남어를 쓰고 불교를 믿어 왔는데 리아우 주의 본토인 수마트라의 위치가 비교적 북쪽이라서 가능했던 것이었다.
1960년대 중반 바탐은 당시 신생국으로 눈부시게 발전 중이던 싱가포르의 바로 옆마당이라는 점을 이용해 발전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좁은 국토를 지닌 도시국가 싱가포르에는 배후지가 필요했는데 그 배후지를 자처한 곳이 말레이시아 남부 조호르바루와 이 섬이었다. 조호르바루가 있는 조호르 주가 전기/수도/가스/식수 등을 공급해 준다면 이 섬에서는 인도네시아 본토와 싱가포르 간 무역을 중계하는 식이었다. 더구나 바탐 섬 앞바다에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데 그걸 싱가포르에 팔면 돈이 되었다. 즉 송유관을 통해 싱가포르 전역에 석유를 공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발을 위해 1960년대 말에 인도네시아 전국에서 지원자들을 뽑아서 바탐 섬으로 보냈다. 현재도 창이공항에 착륙할 때 바탐의 석유 시추 유전들이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공업화 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지정과 달리 실제로 공업은 그리 발달하지 않았고 대신에 앞바다인 남중국해에서 채굴되는 석유 시추와 관광업, 그리고 싱가포르의 배후지 역할로 그럭저럭 먹고 살고 있다.
그러한 연유로 인도네시아에서 경제력이 되는 동네 중 하나다. 리아우 주 자체가 그렇다. 처음 입도한 외국인들은 우중충해 보이는 풍경에 충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수도 자카르타나 발리를 제외한 타지 사람들에겐 시골 어촌치고는 이 정도면 되게 좋은 동네이다.[1]
인구는 이미 150만 명을 넘겼지만 50년 전인 1960년대에는 1만 명도 안 되는 시골이었다. 그러다가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경제개발 정책을 펼쳐서 인구가 늘어났다. 1980년대 말에는 10만 명을 돌파했고 2003년에는 50만 명을 달성했으며 2011년 100만 명 인구를 달성했다.
이렇게 써놓으면 무슨 대단히 개발된 곳으로 보이지만 싱가포르는 물론 조호르바루에 비해서도 상당히 낙후되었다[2] 위에 언급한 석유 붐이나 관광업, 싱가포르의 배후지 역할로 대도시가 되었어도 개도국의 대도시인 수준이다. 고도로 개발된 발리 같은 쾌적한 휴양지를 생각하면 안된다. 당장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전혀 문제없는 싱가포르와 달리 이 곳에선 동네에 따라 길거리 음식 잘못 먹으면 고생하며 물도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한다.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 있는 싱가포르와 달리 인도네시아는 수질이 불량한데다 정수시설도 낙후한 편이다.[3]
인구 대부분은 자바섬, 수마트라 본토 등 타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며 현재 원주민은 극소수다. 그리고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도 상당수다. 종교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90% 이상이며 그 다음으론 불교와 도교, 기독교 등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이 믿는 종교들이다. 리아우 제도의 종주지인 수마트라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불교, 도교를 그대로 믿어오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등 네덜란드에 대거 동화된 자바섬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과 다른 모습을 보였고 1990년대 이후에는 싱가포르의 영향으로 기독교 신자들도 많이 늘고 있다.
이 섬에도 한국인들이 좀 살고 있다. 주로 인도네시아 본토에서 이주해서 자영업이나 석유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인교회 목회자로 사역하거나 자영업을 겸하며 거주한다. 선교사들이 세운 한인교회도 있고 한식당도 여럿 있다. 사실 선교사들의 비중이 높다.
2. 여행 팁
사실 이 문서가 작성된 건 골프 때문이다. 바탐은 골프장이 많은 섬이다. 그래서 유명 골퍼들이 자주 연습하러 온다.원래 동남아시아에서 잘 사는 주변국인 싱가포르나 호주에서 라운딩하러 오곤 했는데 입소문이 퍼져서 2017년 이후부터 한국과 홍콩, 일본 등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싱가포르를 거쳐 바탐으로 골프치러 오게 되었다. 한국에선 신혼여행으로 자주 가는 이웃 빈탄 섬에 가려져 듣보잡이던 곳이었으나 골프 하나만으로 이제는 그 빈탄의 인지도를 뛰어넘었다. 특히 신혼여행 목적지가 더 먼곳인 칸쿤이나 한적한 팔라우 등으로 확대되고 빈탄의 수질이 좋지 않아 요즘에는 싱가포르를 가도 빈탄을 잘 안가고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의 레고랜드를 가면서 10-20대 젊은 세대에겐 되려 빈탄보다 바탐이 더 잘 알려졌다.
유명한 골프장은 인다 푸트리 컨트리클럽과 타마린 골프클럽이다.
골프칠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은 대부분 쇼핑을 즐긴다. 물가가 싱가포르의 반의반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4] 유명한 쇼핑몰은 메가 몰 바탐, 그랜드 바탐 몰, BCS 몰, 나고야 힐 쇼핑센터[5] 가 있다. 그러나 바탐에 있는 폴로 랄프 로렌 상점은 진품이 아니라 가품이니 조심해야 한다. 차라리 살 거면 조호르 갈 때 싸게 사는 게 낫다.
바탐은 전술했듯이 화교 비중이 높다. 중국계가 많은 수마트라 중에서도 이 섬에 그 수가 제일 많은 편이다. 자바 섬의 중국계는 이미 대부분 네덜란드화되어 루터교 신자고 언어도 마인어를 주로 쓰며 중국어를 못 한다. 그러나 이 섬을 비롯한 수마트라 쪽은 아직까지도 민남어를 쓰며 불교를 믿는 화교도 좀 있다. 물론 인도네시아 화교 사회의 주류 종교는 이미 루터교 등 개신교이지만 수마트라 화교의 경우는 불교/도교 비중도 높은 편이며 전통문화를 잘 보존 중이다.[6] 그래서 일명 중국사원이라 부르는 도교 도관도 이 섬에 있고 볼거리이다.
섬 인구 대부분이 무슬림인 탓에 이 곳의 그랜드 모스크 역시 관광지이다. 앞의 중국사원과 비교해서 보면 전혀 달라지는 느낌에 재밌어질 것이다. 바탐 그랜드 모스크는 타 모스크와 달리 비무슬림인 외국인도 안을 들여볼 수 있다.[7][8]
3. 가는 법
시골의 일개 섬이라서 당연히 한국과의 직항 따위는 없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으로 싱가포르에 입국해서 오면 된다. 싱가포르에서는 하버프론트 센터(Harbour Front Centre)[9]에서 페리를 타면 되며[10]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인도네시아는 원칙적으로 무비자 입국이 안 되어 페리터미널에서 도착비자를 스티커로 붙여 주었으나 현재는 무비자 입국도 가능하다.[11] 물론 이동자유협약이 체결된 싱가포르 여권 소지자들이 아닌 한국인들은 도착비자를 요구할 수도 있어 여전히 도착비자를 사서 붙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2018년 이후로는 한국인들도 무비자로 가도 문제 없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저가 항공사인 파이어플라이 항공(Fire Fly Airline)을 타고 이 곳으로 올 수도 있다. 그리고 자카르타에서 국내선을 타도 된다. 그러나 둘 다 싱가포르에서 페리를 타는 것에 비해 비싼 편으로 돈이 많이 깨지고 자카르타에서 올 경우 되려 빙 돌아와야 해서 시간적으로도 손해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생각보다 입국이 까다로운 나라에 속하기도 한다.[12] 즉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본토 등을 거칠 메리트는 굳이 없고 보편적 루트는 싱가포르로 입국해 거기서 들어오는 것이다.
즉 싱가포르에서 들어오는 게 가장 편하다. 어차피 여기나 조호르 주나 싱가포르의 곁다리라 메인은 싱가포르를 여행하는 것이다.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도 바탐에 자주 들른다.
바탐 경제구역청은 바탐 항 나딤 국제공항을 국제공항으로 확장시키려는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13] 참고로 이 확장사업의 개발 및 운영사업을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수주하게 되었다. # 2023년 부터 인천 ~ 바탐 간 전세편이 생긴다고 한다. #
4. 여담
참고로 선진국인 싱가포르에 있다가 이 섬에 오면 조금 충격받을 수 있다.[14] 이 섬의 낙후한 광경들 때문이다.바탐은 전술했듯 개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며 그나마 수도 자카르타와 너무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인 리아우 제도에 있는지라 중앙정부의 관심 밖에 있어서 경제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석유 붐이나 싱가포르의 배후지 역할, 그리고 최근의 골프 관광 등으로 어느정도 성장하긴 했지만 자세히 보면 싱가포르에 비해 몇십 년 뒤떨어져 있으며 위생이 열악하다.[15] 그래서 위생에 주의해야 한다.[16] 물은 꼭 미네랄 워터를 사 마시고, 길거리 음식은 되도록이면 먹으면 안 된다.[17]
앞에서 말햇듯이 리아우 조호르 술탄국의 영역이면서 영국의 식민지가 되고 말레이시아 연방의 영토인 리아우-조호르 주(州)가 되었다면 돈 많은 조호르 정부가 바탐을 싱가포르의 대항마로 만들었을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되었다면 바탐은 페낭처럼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 중 하나였을 것이다.
아니면 리아우 제도가 싱가포르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후 싱가포르의 일부가 되어서 싱가포르 본토가 속한 싱가포르 주와 별개의 리아우 주의 바탐시로 발전하고 싱가포르 본섬의 인구를 바탐으로 어느 정도는 내보내 인구밀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18] 물론 그랬다면 동티모르 하나에도 민감하게 굴던 인도네시아답게 무력으로 탈환을 시도해서 정세가 자칫 복잡해졌을 가능성이 높다.[19]
물론 1990년대 이후 싱가포르의 산아 제한 정책으로 인구가 조절되며 인구밀도 문제가 해결되고 싱가포르 경제가 이때쯤 완전한 선진국으로 자리잡으며 바탐 떡밥은 쏙 들어간 지 오래다. 이제 바탐과 싱가포르는 상호 보완 관계로 자리잡았다.
[1]
1970년대~
1980년대 개발도상국 처지였던
대한민국의 50만 ~100만 사이에 지방도시들과 같다고 볼수 있다. 그때 현재는 광역시로 승격된
대전광역시,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등 2선급 지방 거점도시들도 현재와 비교하면 낙후했지만 주변 농촌들에 비하면 별천지였다.
대전만 해도
충청도의 종주도시로 깡촌 오브 깡촌이던 주변의
논산시,
공주,
부여군,
청원군,
옥천군,
영동군,
보은군,
괴산군,
증평군,
조치원읍,
금산군 등과 비교하면 완전 별천지였으며
호남 남도의 종주도시
광주광역시도 낙후한 호남이라지만 꽤 발달한 곳이어서
전라남도 각지 농어촌에서 이주하는 인구가 많이 몰렸다. 수도권 다음으로 발달한
영남의 북부 중심지
대구는 말이 필요없어서
지하철 계획도 일찍부터 나왔다. 이때 대구지하철 계획에서 벌써
경산시,
영천시,
청도군,
구미시,
의성군,
김천시,
성주군,
합천군,
고령군 등 근교 지역을 이을 계획을 짜놓기까지 했다.
[2]
싱가포르는
2020년대
서울이나
부산보다도 훨씬 발달했다. 당연한게 싱가포르는 1인당 GDP에서 한국을 훨씬 앞서고 미국이나 일본보다도 월등히 잘 사는 나라다. 서울과 달리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며 마천루가 서울보다 높이가 낮아서 그렇지 경제력과 삶의 질에서 서울을 한참 앞선다.
조호르바루는
말레이시아라는 나라가 아직은 선진 개발도상국이라서
1990년대 ~
2000년대 초
대구광역시,
대전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등 지방 광역시들과 유사하다.
쿠알라룸푸르-슬랑오르 수도권이 대략
1990년대 말 ~
2000년대 초
서울 수도권의 분위기가 난다. 바탐은
1970년대 한국 중 ~ 대도시라 할 수 있는
춘천시,
전주시,
목포시,
여수시,
마산시,
진주시,
강릉시,
원주시 정도 수준이다. 애초
인도네시아가 한국의
1970년대 말~
1980년대 초 정도 수준인 나라이며 아직까지
가사도우미 및
외국인 노동자 송출로 외화벌이를 하는 나라다.
[3]
이는 말레이시아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싱가폴한테 물을 공급하는지라 인니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다.
[4]
다만 짝퉁을 조심해야 한다.
[5]
예전에
일본군 주둔지였다. 이름은 일본 주부지방
아이치현의 그
나고야에서 따왔다.
[6]
자바 화교의 경우 서구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으며 중국어와 영어를 이중으로 사용하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싱가포르인들과 달리
중국어도 잘 못하고
중국계 싱가포르인들 상당수처럼 이들 자바 출신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도 기독교인 비중이 높다. 심지어 자바 출신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중국계 자각이 약한 경우도 수두룩하다.
수마트라,
칼리만탄,
술라웨시 등지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이 오하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처럼
중국어도 할 줄 아는 경우가 많고 중국계라는 자각이 강하다.
[7]
같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역인
메단의 그랜드 모스크는 비무슬림이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 외관만 구경 가능하다. 사실 외관은
알라딘 궁전같은 화려한 외양인데 안은 막상 볼 게 없이 횅하기로 소문나 있다. 사실 이슬람교의 예배는 금방 끝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모스크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모이기 위한 공간이라 예배당 이상의 공간은 딱히 갖추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름난 모스크여도 의외로 내부 구조는 대부분 단순하다.
[8]
이슬람교는 비종교인과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고 민감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모스크들 중 개방된 곳은 세계를 뒤져봐도 그리 많지 않다.
[9]
센토사 섬으로 가는
케이블카도 이 하버프론트 센터에서 출발한다.
[10]
홍콩-
마카오 간 제트포일과 같다.
[11]
출장이나 사업차로 온거면 비자 필요
[12]
한국인들은 그나마 여행 목적으로 온 거면 잘 보내주지만 방글라데시,파키스탄,인도네시아 등 개도국 국민들한테는 무비자이더라도 강압적이게 심사를 한다. 이유는 저런 국가 출신들의 경우 말레이시아 내 불체자 비율 과반수를 차지해서 입국을 어렵게 하는 거다.
[13]
현재 항 나딤 공항의 정기적인 국제선은 쿠알라룸푸르행 바틱 항공편 밖에 없다. 그나마 가끔씩 운행하는 메카행이 있지만 1년에 2~3번 밖에 없다.
[14]
사실 싱가포르에서도 조호르 바루 가도 충격 받을 정도는 아니다. 그냥 싱가포르 와곽 지역의 연장선으로 보일 정도
[15]
바탐을 자주 드나드는
싱가포르인 기성세대들에 의하면 바탐은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의 한 주로부터 독립한지 15년 정도 되었던
1980년대 초반 느낌이 난다고 한다. 이 시기면 창이 신공항이 외곽 황무지 창이에 막 개항하고
싱가포르 MRT가 첫 삽을 뜨고 건설되기 시작하며
HDB가 비샨, 주롱, 탬피니스 등 여러 근교 신도시에 들어서며 본격적으로 개간을 시작하던 시절이다. 싱가포르가 현재처럼
선진국이 된건 리콴유의 경제개발 정책이 성공하고
홍콩 반환의 반사이익을 얻기 시작한
1987년~
1990년 사이의 일이다.
[16]
한국의
1970년대 및
1980년대 수준이고
1990년대 및
2000년대 한국에 비해서는 훨씬 열악하다.
[17]
다만 이건 다른 외곽 지역의 얘기지 시내에 있는 건 가격 좀 되는 건 먹어도 된다. 그래도 조심하자.
[18]
다만 그러면 싱가포르는 싱가포르시와 바탐시라는 두 개의 도시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도시국가 신세를 면하고 어느정도 국토를 갖추게 되어 조금 낫긴 했을 것이다. 도시국가는 독립국 구실을 하기 거의 어렵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 경우 싱가포르는 초창기 고생하지 않아도 될 뻔했다.
[19]
사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의 패권국 중 하나답게
1960년대 초에 사라왁, 사바, 브루나이를 침공해 칼리만탄을 순수 인도네시아령으로 만들려 했고
1960년대 말엔 서뉴기니에 개입해 독립국가가 되거나
파푸아뉴기니에 들어갈 예정이던 현재의 서파푸아를 일개 주로 편입시켰고
1970년대 중반부터
2002년까지
포르투갈이 철수한
동티모르에 침공한 후 점령하여 친 인도네시아파들을 사주해 독립 세력을 제거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