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Liv Melody | ||
본명 |
강열음새(姜熱音?) Liv-Melody Yeoleumsae K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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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98년 2월 11일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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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한국 | 신체 | 157cm, 42kg, A형 |
학력 |
줄리어드스쿨 음악학교 커티스 음악원 학사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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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 2003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 협연 데뷔 | ||
가족 |
사촌
도설한(River Seolhan Doh) 도설희(Bonita Seolhee Doh) 고양이 Katherine Bl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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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RIVERHEIDI | ||
종교 | 무교 | ||
취미 | 독서 |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뮤직 프로듀서
1. 개요
세계 최고 바이올린 신동
냉정하고 차가운 연주로 유명
냉정하고 차가운 연주로 유명
아버지 어머니는 한국국적. 이스트만 음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아버지와 미국에서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이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리브-멜로디 강은 미국에서 활동했던 바이올리니스트다.
2. 어린 시절
음악가로 활동하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예술사 학사 학위를 받고 이스트만 음대에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아버지와 서울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피아니스트이자 피아노 레슨가로 활동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리브-멜로디 강의 이름은 다분히 음악적이다. 미국식 이름에도 'Melody'라는 단어가 들어가며, 한국식 이름인 '열음새'는 그녀의 아버지가 손수 지어준 이름으로, '새처럼 자유롭고 뜨거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 되어라'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약 3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타고난 절대음감과, 아무리 복잡한 악보라도 한번 보고 암기해 연주하는 천재적인 두뇌와 재능을 타고났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뿐만 아니라 트럼펫, 트럼본, 플룻, 첼로, 드럼 등 다양한 악기의 연주도 가능했으며 특히 드럼 연주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
한국 나이로 6살, 본 나이로 4살이 되던 해 최연소로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린 협연을 해 화제를 모았다. 8세 때는 줄리어드스쿨 음악학교 예비과정에 입학해 도로시 딜레이를 사사했다. 도로시 딜레이는 리브-멜로디 강에 대해 '프로 연주가와 견주어 비교해 보아도 손색이 없다. 정열적인 음악을 놀랍도록 냉정하게 연주하기도 하고, 음악적 해석이 어디로 튈 줄 몰라 예측할 수 없다. 천재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다. 차가운 매력을 가진 꼬마 거장이다'라고 찬사를 쏟아냈다. 전액 장학금 및 전학기 수석이라는 성적으로 졸업한 후, 2010년 미국 3대 음악학교로 유명한 커티스 음악원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했다. 당시 여러 유명 평론가들의 여론은 '백년에 한 번 나오기도 힘든 천재'라는 평이 주를 이뤘다.
리브-멜로디 강은 매우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초견으로 암보가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음악 이외의 것들에도 기억력이 비상했다. 또한 독서를 좋아해 고전 명작들을 섭렵했고, 매일 아침마다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지를 읽으며 세상에 대한 식견을 넓혀 나갔다. 덕분에 매우 논리적이며 생각이 깊다고 한다.
리브-멜로디 강에 대한 주위의 평가는 대체로 '겸손하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도 불구하고 절대 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리브-멜로디 강이 여러 극찬을 받았던 것은 엄청난 천재성 때문도 있지만, 그녀는 실제로 지독한 연습벌레였다. 어린 나이에도 하루 10시간이 넘는 맹연습을 계속했다고 한다. 그녀의 연습을 그만두게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화를 내야만 했다. 이렇게 연습에 매달린 이유는 그녀가 지나친 완벽주의자이기 보다는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정말로 '행복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실제로 바이올린을 연주하다 끓어오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해 미친듯이 몸을 흔들다 탈진해 쓰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3. 사춘기 시절
흔히 대부분의 음악가들이 그렇 듯 리브-멜로디 강도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 사춘기가 되자 감정기복이 굉장히 심해졌다. 2011년, 자신의 공연을 보러 오던 도중 부모가 빗길에 차가 미끄러지는 사고로 사망하자, 조울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시련들은 그녀의 감수성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는데, 이 당시 그녀의 연주는 도저히 그 나이대의 연주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완숙한 감정표현과 한계 없는 테크닉으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탄성을 자아냈다. 가끔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북받쳐오르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오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이렇게 부모를 잃은 슬픔과 상처받은 감정을 바이올린으로 치유하던 그녀에게 2012년 또 다시 큰 시련이 찾아온다. 부모를 잃고 난 후, 부모처럼 의지하던 사촌오빠이자 자신과 같은 학교인 커티스 음악원에서 피아노 전공으로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도설한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자 리브-멜로디 강은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도설한의 자살 이유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는 감성이 지나치게 예민했는데, 한 지인의 말에 빌리자면 리사이틀이 다가올 때면 감히 말을 못 걸 정도라고 한다. 따라서 평소에 멀쩡하다가도 우울증이 엄습해 와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 날도 충동적으로 위스키와 수면제를 치사량으로 복용해 자살을 하게 됐다. 말 그대로 너무 급작스럽고 허무맹랑한 죽음이라 리브-멜로디 강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살한 도설한의 쌍둥이 동생인 도설준마저 각별했던 형을 잃은 후 우울증에 빠져 지내다 2013년 목을 매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리브-멜로디 강은 극심한 우울증을 앓게 된다. 우울증이 너무 심해 3달 이상 말을 하지 않기도 하고, 자해를 하는 일이 계속되자 결국 그녀는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미국을 떠나 한국에서 사촌언니이자 도설한과 도설준의 막내동생인 도설희와 살게 된다. 또한 대인기피증 증세가 심해지고 자신이 언론에 공개되는 사실을 극도록 두려워한 나머지 그녀의 이모가 나서 인터넷에 있는 그녀와 관련한 모든 자료를 지우기 위해 각종 언론사에 요청하기도 했다. 결국 현재 인터넷에서는 그녀에 대한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실어증을 앓았던 리브-멜로디 강은 현재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한다. 그녀는 다시 바이올린을 연주해보려고 노력은 했으나 바이올린을 집어들 때마다 너무 큰 슬픔과 두려움이 엄습해 와 무섭다며 바이올린과 영원히 이별을 고한게 된다. 어린 나이에 엄청난 천재성을 드러내며 반짝 떠올랐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큰 아픔을 겪고 모든 것을 접어야만 그녀의 상황에 많은 이들이 가슴 아파했다. 하지만 최근 지인의 말에 따르면 리브-멜로디 강은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 간 것에 대해 행복하며, 제 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다시는 바이올린을 연주하지는 않겠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했던 과거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면서 진심으로 행복했고, 사춘기 시절 변덕스럽던 내 감정들을 치유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옛날의 나와는 전혀 다른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이별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정말 간절해졌고, 한층 더 감정적으로 성숙해진 것 같다. 너무 감사하게도,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 특별한 경험을 해보았고,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다행히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새롭게 모든 것을 시작할 수 있어 행복하다. 나는 아마 음악과는 영원히 이별하지는 못할 것 같다. 현재는 평범하게 익명으로 작곡과 뮤직 프로듀싱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