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8:27:51

히나미자와 연속 괴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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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미자와 히나미자와 증후군 히나미자와 대재해 히나미자와 연속 괴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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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 목록
2.1. 이누카이 건설대신 손자 유괴사건2.2. 히나미자와 연속 괴사 사건
2.2.1. 쇼와 54년( 1979년) 공사 현장감독 토막살인 사건2.2.2. 쇼와 55년( 1980년) 시라카와 공원 추락 사건2.2.3. 쇼와 56년( 1981년) 신주 부부 변사 사건2.2.4. 쇼와 57년( 1982년) 주부 타살 사건
3. 사건의 진상
3.1. 이누카이 건설대신 손자 유괴사건3.2. 쇼와 54년(1979년)3.3. 쇼와 55년(1980년)3.4. 쇼와 56년(1981년)3.5. 쇼와 57년(1982년)
4. 쇼와 58년(1983년)
4.1. 사건의 진상

1. 개요

쓰르라미 울 적에의 배경이 되는 가공의 사건들.

쇼와 54년부터 57년(서기로는 1979년에서 1982년)까지 매년 발생한 히나미자와 와타나가시 축제날 밤에 한 사람이 사망하고 한 사람이 실종되는 원인불명의 사건을 " 오야시로님의 신벌"이라 칭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를 신벌로 여기는 쪽은 한 사람이 오야시로님의 분노를 사서 신벌로 사망하고, 이 분노를 가라앉힐 희생양으로 한 사람이 오니카쿠시 당했다고 여기고 있다.

특히 히나미자와 지구에 댐을 건설하려는데 반대했던 히나미자와 자치회가 주축으로 결성한 '오니가후치[1] 사수 동맹'과 그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댐 전쟁'과 관련이 깊다. 희생자는 모두 댐 전쟁에서 마을 주민들과 대립했거나 댐 전쟁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특징이 있다.

경찰 당국에서는 이 일련의 사망, 실종 사건은 연관성이 없다고 결론을 지었지만 히나미자와를 관할하는 오키노미야 경찰서의 오오이시 쿠라우도 경부는 이 사건을 오니가후치 연대의 주축이었던 히나미자와 3대 가문, 그 중에서도 소노자키 家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여 추적하고 있다. 통칭 사건부 S.(혹은 'S호 사건'이라고도 한다.)

게임 쓰르라미 울 적에의 기본적인 배경은 히나미자와 연속 괴사 사건이 발생한 5번째의 와타나가시인 쇼와 58년(서기 1983년) 6월이다.

2. 사건 목록

2.1. 이누카이 건설대신[2] 손자 유괴사건

히나미자와 연속 괴사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인 쇼와 53년, 히나미자와 지구에 댐 건설을 추진했던 이누카이 건설성 대신의 손자인 이누카이 토시키가 납치, 유괴된 사건.

사건의 파장을 우려한 건설대신의 요청을 받아들여 경시청은 이 사건을 비공개로 수사하였으며 유력한 용의자 중 하나로 오니가후치 사수동맹과 히나미자와의 유력자인 소노자키 家를 지목하여 신참 경관 아카사카 마모루를 히나미자와에 파견한다.
유괴범은 히나미자와 지구 댐 건설 계획을 동결시키는 조건으로 인질을 석방했고 그에 따라 모든 수사가 종결되었다.

히나미자와 연속 괴사 사건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다. 실질적인 게임의 시작이기도 하다. 히마츠부시 편의 배경.

2.2. 히나미자와 연속 괴사 사건

2.2.1. 쇼와 54년( 1979년) 공사 현장감독 토막살인 사건

히나미자와 지구 댐 건설 현장에서 현장 감독과 인부들이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 폭행으로 번져, 현장 감독이 집단폭행으로 살해당한 뒤 사지와 머리, 몸통이 절단, 6등분되는 토막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 당국은 이를 댐 건설에 반대한 마을 주민들의 린치에 의한 결과로 결론을 내렸다. 이후 범인 5명을 검거했으나, 1명은 끝내 검거에 실패했다.

쇼와 58년 현재까지도 도주한 범인은 행방불명. 시신의 오른팔도 끝내 발견되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히나미자와 지구 댐 건설 계획은 전면 백지화되었다.

2.2.2. 쇼와 55년( 1980년) 시라카와 공원 추락 사건

와타나가시 날 밤, 히나미자와에서 떨어진 관광지인 시라카와 공원 내 전망대의 난간이 무너져 이에 기대고 있던 히나미자와 주민 2명이 아래의 계곡으로 떨어져 추락사했다. 사고를 당한 2명은 댐 전쟁에서 댐 건설을 찬성해 마을 주민과 대립했던 부부. 그 중 부인의 시신은 발견되지 못해 실종으로 처리되었다.

이때 사망한 이들이 호죠 사토코의 부모. 사건의 생존자는 호죠 사토코.[3] 사토코는 사건 당시 차에서 자느라 부모님이 떨어진 것을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2.2.3. 쇼와 56년( 1981년) 신주 부부 변사 사건

와타나가시 날, 후루데 신사의 신주가 원인 불명의 병으로 급사. 부검 결과 급성 심부전증으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그 날 밤, 부인이 '스스로 오야시로님의 분노를 잠재우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된다. 오니가후치 늪에서 부인의 신발이 발견된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부인이 오니가후치 늪에 투신한 것으로 추정했다. 역시 부인의 시신은 찾지 못해 실종으로 처리되었다.

후루데 家 역시 오니가후치 사수동맹에 주축으로 참여했지만 후루데 신사의 신주는 댐 건설 찬성파인 호죠 가를 감싸 마을 주민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이때 사망한 이들은 후루데 리카의 부모다.

2.2.4. 쇼와 57년( 1982년) 주부 타살 사건

와타나가시 날 밤, 히나미자와 주민 1명이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해 숨진 채로 발견되고, 며칠 후 그녀의 아들이 행방불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사망자는 2년 전 사고사로 숨진 호죠 씨의 제수인 호죠 타마에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정신이상자를 범인으로 체포했으나 마약중독자였던 범인은 체포된 이후 구치소에서 약물중독으로 사망.[4]

그리고 그 날 이후 역시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토코의 오빠, 호죠 사토시[5] 실종되었다. 경찰은 사토시가 그 동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고 있었고 실종 직전 그 돈을 모두 인출한 것으로 미루어 가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쇼와 58년 현재까지 사토시는 행방불명.

3. 사건의 진상

3.1. 이누카이 건설대신 손자 유괴사건

오코노기 테츠로를 비롯한 이리에 기관 소속 야마이누의 소행이었다.

히나미자와 증후군을 연구하는 이리에 기관에서 증후군의 실험장 그 자체인 마을을 수몰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벌인 일이다.

이 일은 가문의 위세를 드높이려던 소노자키 오료에 의해 마을 사람들에게는 소노자키 가문의 행동이라고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지게 된다. 실제로 오료가 유괴를 지시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던 사람은 오료 본인 뿐이었다.

3.2. 쇼와 54년(1979년)

현장 감독과 실종된 주범의 히나미자와 증후군 L5 발병에 의한 우발적인 살해 사건.

사실 최초로 공격을 가한 쪽은 피해자인 현장 감독으로, 원인은 댐 건설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집요한 괴롭힘으로 정신이 불안정해져 히나미자와 증후군이 발병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후 공격을 당한 인부들이 현장 감독이 제정신이 아님을 간파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반격을 가해 감독을 살해했고, 이후 6명의 인부들 중 한 사람이 똑같이 증후군이 발병하면서 누군가 밀고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각자의 손으로 감독의 시신을 토막내게 하였다. 하지만 결국 6명 중 5명은 자신이 가진 시신 토막과 함께 경찰에 검거되었다.

증후군이 발병한 인부는 오른팔을 들고 도주하다 발작 상태로 이리에 기관에 발견되었고, 히나미자와 증후군의 병원체 발견을 위한 생체 실험에 이용되어 사망한다. 오른팔은 그 때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사건은 어영부영 묻혔고, 소노자키 오료가 뒤에서 암약했다는 소문이 돌았다.[6] 친아버지나 마찬가지였던 사람을 잃은 오오이시는 이 일로 분노하여 소노자키 가문을 집요하게 노리게 된다. 마츠리바야시에서 리카에게 소노자키 가문이 관계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감독의 묘에 성묘를 한다는 것을 알게된 오오이시는 더 이상 소노자키 가문을 적대하지 않게 된다.

3.3. 쇼와 55년(1980년)

괴사 사건 중 유일하게 직접적으로 진상이 밝혀지지 않으나, 이리에 쿄스케의 추측으로서 호죠 사토코의 히나미자와 증후군 발병에 의한 우발적 살해사건이라는 정답이 제시된다.

처음에 이리에는 사토코를 돌보면서 호죠 부부의 죽음으로 사토코가 히나미자와 증후군이 L5로 발병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사고 이전에 이미 사토코는 L5였다. 엄마의 계속된 이혼과 재혼으로 사토코는 새 아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실제로 어떤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한 적도 있었다.[7] 때문에 사토코 시점에서의 오마케 내용을 보자면 텍스트 색깔이 점점 붉어지면서[8], 새아버지와 어머니가 가족여행 중에 사고로 위장하여 자신을 죽일 거라고 의심암귀하며, 정당방위로서 자신이 밀어버리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타타리고로시에서 사토코가 케이이치를 의심하여 다리 밑으로 밀어버리는 것도 하나의 복선.

사토코가 진료소에 입원해 있을 때 오오이시가 "차에서 자고 있던 사토코가 어떻게 호죠 부부가 추락한 걸 아느냐"고[9] 의심하는 걸 듣고 이리에는 진상을 깨닫게 된다. 이후 사토코가 충격을 먹을 것을 우려한 이리에가 타카노에게 부탁해 야마이누가 이 사건을 조작하게 부탁하여 살인이 아닌 사고사로 위장되었다.

호죠 씨의 시신은 발견되었으나 부인의 시신이 끝내 발견되지 않은 것은, 결국 설계된 일이라 볼 여지가 거의 없는 그저 우연. 하지만 이 사실은 3년차 '오야시로님의 저주'에 교묘히 이용되어 이른바 저주의 공식을 형성하는 요소가 되었다.

미오츠쿠시에서는 발병한 사토코가 그 근처에서 정상으로 돌아온 순간 울타리가 붕괴하여 추락사한 것으로 나온다. 다만 미오츠쿠시는 원작자의 검수도 없고, 설정붕괴도 많은지라...

3.4. 쇼와 56년(1981년)

"오야시로님의 신벌"을 위장한 타카노 미요의 계획 살인.

당시 이리에 기관은 히나미자와 증후군의 연구를 위해 후루데 家의 협조를 받아 '여왕 감염자'로 추정되는 리카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리카의 상태 이상으로 인해 후루데 家에서 더 이상의 협조를 거부하여 히나미자와 증후군에 대한 연구가 어렵게 되자, 리카가 부모의 동의 없이 연구에 협력할 수 있도록 저지른 사건.

후루데 부부 중 남편은 약물 투여를 통해 살해하고 아내는 전 여왕 감염자라는 명목 아래 타카노에게 납치당해 산 채로 뇌를 해부당해 사망한다.

3.5. 쇼와 57년(1982년)

사토시의 히나미자와 증후군 발병에 의한 살해 사건. 이후 사토시의 실종 사건은 이리에 기관의 소행이었다.

호죠 사토시는 2년 전의 일로 부모를 잃고 동생 사토코와 함께 차기 친권자인 숙부 호죠 텟페이와 숙모 타마에에게 떠맡겨졌다. 하지만 양부와도 번번이 반목했던 사토코가 숙부 내외와도 계속 충돌했고, 원래부터 사람됨이 좋은 편은 아닌 데다 댐 전쟁 때의 사건으로 인해 호죠 가문 전체를 따돌림하는 마을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숙부 내외의 정신 상태 역시 안 좋아지면서 타마에는 노골적으로 사토코를 학대하게 되었다.[10]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토시는 사토코를 숙모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굳이 싸움에 끼어들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사토시의 정신 상태도 악화 일로를 걸어 결국 히나미자와 증후군이 발병해 버렸다.

쇼와 57년에는 3년째 이어진 와타나가시 날의 괴사 사건에 대한 이야기가 '오야시로님의 저주'라는 이름이 붙은 채 마을을 떠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해 초 히나미자와 분교로 전학 온 류구 레나로부터 '신벌'의 전조에 대한 이야기까지 들은 사토시는, 최근 경험하게 된 '하나 더 많은 발소리'가 저주의 전조이며 올해의 저주의 대상은 자신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그리고는 자신이 사라진 뒤 타마에의 폭력을 그대로 감당해야 할 사토코에 대한 걱정과 자신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를 끼치는 환경을 제거하고자 하는 억눌려 있던 욕망에 결국 마음을 빼앗기면서 범행을 결단, 실행하고 만다. 하지만 명백한 동기와 한심스러울 정도의 범행 수법, 그리고 숙부 내외를 저주의 대상으로 예상하고 감시하던 오오이시 때문에 사토시는 그대로 범인으로 반쯤 확정되었고, 소노자키 시온이 급한 대로 알리바이를 만들어 보호하려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오오이시의 추적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11] 결국 사토시는 숙모를 죽인 이후로도 계속 경찰의 수사에 시달리며 피폐한 상태였던 것이다.

한편 사토시는 사토코에게 생일 선물로 곰인형을 사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숙모 살해 이후 사토코의 생일 당일에야 필요한 액수를 채워 인형을 구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곰인형이 너무 커서 자전거를 탄 채로 집까지 가져갈 뾰족한 방법이 없었기에 이리에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대로 이리에의 차에 곰인형을 싣고서 귀가한다. 하지만 차 안에서 사토시는 주변 사람 모두가 숙모로 보이는 환각에 빠져들며 발작을 일으킨다.[12] 사토시는 병의 치료를 위해 이리에 기관 지하에 격리된다.

이후 야마이누에 의해 거짓 목격 정보가 만들어져 가출로 위장되었다.

4. 쇼와 58년(1983년)

오니카쿠시 편에서는 와타나가시 날 밤, 토미타케 지로의 시체가 자신의 목을 긁어서 죽은 상태로 발견되고 동행하던 여자는 행방불명되었다. 이후 마에바라 케이이치는 자신을 위협하려고 든 류구 레나 소노자키 미온을 금속 베트로 후려쳐 죽였다. 그 뒤, 케이이치는 쫓아오는 남자들을 보고 도망치다가 토미타케의 사인과 같은 의문의 죽음을 맞는다.

와타나가시 편에서는 오니카쿠시 편과 같이 와타나가시 날 밤, 토미타케 지로의 시체가 자신의 목을 긁어서 죽은 상태로 발견되지만 타카노 미요의 시체가 불에 탄 상태로 드럼통에서 발견되었다. 이후 키미요시 키이치로, 후루데 리카 호죠 사토코, 소노자키 시온이 행방불명되었다. 그 뒤, 소노자키 미온이 촌장과 리카, 사토코를 죽였다고 했고 시온은 지하실에 가둬놓았다고 자백했다. 이후 소노자키 오료도 행방불명되었다고 나온다. 이후 미온이 나타나 케이이치를 불러 그의 배를 칼로 찌른다.[13] 그 뒤, 미온이 시온을 자택에서 떨어뜨려 죽였다고 나온다. 하지만 미온은 진작에 지하실 우물에 떨어져 죽었다고 나온다.

타타리고로시 편에서는 와타나가시 날 밤, 마에바라 케이이치가 호죠 텟페이를 오키노미야 길로 유인한 뒤 금속 베트로 마구 때려 죽였다. 그러나 타카노 미요를 만나 그녀도 죽기를 바라며 저주한다. 이후 토미타케 지로의 시체와 케이이치가 저주한 대로 타카노의 시체가 와타나가시 편과 똑같이 나와 발견되었다. 이후 죽었던 텟페이가 돌아왔다고 호죠 사토코가 말했다. 그 뒤, 케이이치는 이리에 쿄스케 오오이시 쿠라우도가 죽기를 저주했고, 저주한 대로 이리에가 수면제로 자살했고, 오오이시도 역시 행방불명되었다. 그 이후에 후루데 신사에서 배가 갈라진 후루데 리카의 시체가 발견된다. 패닉에 빠진 사토코가 케이이치를 다리에 밀쳐 떨어뜨렸고, 케이이치는 이 마을 모두가 죽기를 저주한다. 바로 다음 날, 저주한 대로 히나미자와 대재해로 케이이치를 제외한 히나미자와의 주민들이 죽었다. 케이이치는 취재하려는 파파라치 기자가 익사하길 저주하면서 죽는다. 12년 뒤, 저주한 대로 그가 익사한 걸로 나온다. 사토코는 사망이 아니라 행방불명되었다고 나온다.

히마츠부시 편에서는 타타리고로시 편에서 일어난 사건과 똑같았으나, 오오이시 쿠라우도 대신 쿠마가이 카츠야가 행방불명되었다.[14]

메아카시 편에서는 와타나가시 편의 진상이 드러난다. 추가로 이리에 쿄스케가 거처 불명이라고도 나온다.

츠미호로보시 편에서는 류구 레나가 마미야 리나 호죠 텟페이를 손도끼로 살해했다. 와타나가시 날 밤, 토미타케 지로 타카노 미요의 시체가 발견되고, 레나가 히나미자와 분교를 습격하여 학생들을 통째로 인질로 잡고 분교를 폭파시키려고 하나 케이이치에게 저지당한다.

미나고로시 편에서는 와타나가시 날 밤, 후루데 리카는 죽을 운명에 놓인 토미타케 지로 타카노 미요를 살리기 위해서 경고를 한다.

4.1. 사건의 진상

오니카쿠시 편은 마에바라 케이이치의 발병. 타카노 미요가 종말 작전을 시행하기 위한 5년째 신벌을 위장한 빌드업으로 토미타케 지로를 마취하여 그에게 약물 H173을 주입해 자전거와 함께 자신의 차에 실어 '자전거가 발견된 장소'에 버려지고, 토미타케의 마취가 풀리자마자 그는 L5 증상이 폭발하여 환각과 싸우며 도망치다 '토미타케의 시체가 발견되는 장소'에 이르러 자기 손으로 목을 찢어 죽었다. 그 뒤, 타카노는 케이이치를 효과적으로 발병시키기 위한 걸로 추정되어 준비되었던 자신의 가짜 사체는 사용하지 않고 자신은 실종으로 남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마에바라 케이이치는 발병이 나 케이이치를 걱정하며 계속 신경써주는 류구 레나와 소노자키 미온을 범인으로 인식해 죽였다. 그 뒤, L5 증상까지 다다른 케이이치는 토미타케와 같은 자살을 하게 된다.

와타나가시 편은 소노자키 시온의 발병. 토미타케 지로와 타카노 미요의 죽음은 똑같이 타카노의 빌드업이었으나 이후 발병난 시온은 소노자키 오료와 소노자키 미온을 스턴건으로 기절시켜[15] 미온을 지하 고문실에 가둬놓고 자신이 미온인 척 행세했다. 그 뒤, 키미요시 키이치로, 후루데 리카, 호죠 사토코를 지하 고문실에서 미온이 보는 앞에 고문하여 죽였고 케이이치를 잡아서 죽일려고 했으나 경찰이 출동하여 가둬놓았던 미온을 지하 우물에 떨어뜨려서 죽인 뒤, 시온으로 다시 바꿔 구출된다. 하지만 시온은 오키노미야의 집에서 계속 미온의 환청에 시달리게 되어 밖으로 나가 케이이치를 찌르고 별장 창문으로 들어오려다 헛디뎌 툭 튀어나온 지붕에 떨어져 머리를 부딪힌다. 시온은 아직 죽지 않았지만 사토코를 잘 대해주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는 걸 깨달아 죄책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굴려 떨어져 사망한다.

타타리고로시 편은 우연의 일치. 마에바라 케이이치와 호죠 사토코 둘 다 L5 증상까지 다다른 것이다. 호죠 텟페이가 돌아왔다는 건 발병난 사토코의 환상이었고, 이리에 쿄스케의 음독 자살은 홍차를 준비하던 야마이누가 방해되는 이리에를 자살로 위장해 제거한 거였고, 오오이시 쿠라우도의 행방불명은 종말 작전에 방해되는 경찰을 제거한 거였다.[16] 토미타케 지로와 후루데 리카의 죽음 역시 케이이치가 저주하지도 않았는데 죽어서 우연의 일치가 설명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히나미자와 대재해가 일어난 것은 종말 작전이 성공적으로 실행된 것이었다. 파파라치 기자의 익사도 역시 12년 뒤에서야 일어나서 우연의 일치로 봐야 할 것이다. 사토코의 행방불명은 야마이누에게 붙들려 이리에 기관으로 납치되었던 것이다.
타타리고로시 편에서 처음 나온 이리에 쿄스케의 자살, 오오이시 쿠라우도와 쿠마가이 카츠야의 행방불명, 후루데 리카의 죽음, 히나미자와 대재해 오니카쿠시 편에서도 똑같이 일어났을 것이다.[17]

히마츠부시 편은 이미 타타리고로시 편을 서술해서 없다. 하지만 오오이시 쿠라우도 대신 쿠마가이 카츠야가 죽은 것이 아니라 오오이시 쿠라우도가 살아남았다고 보는 게 맞다. 타타리고로시 편에서는 쿠마가이 카츠야의 행방불명이 언급이 안 됐지만 살해당했다고 치면 히마츠부시 편의 오오이시는 살아남아서 운 좋게 아카사카 마모루에게 사건을 말해줄 수 있는 것이었다.

메아카시 편은 와타나가시 편과 유사하지만 엄연히 다른 세계다. 전체적인 사건의 진상은 와타나가시 편과 같지만 후루데 리카의 죽음은 리카가 소노자키 시온의 발병을 치료하려고 찾아갔지만 실패하여 고문 당해서 죽기 전에 부엌 칼로 자신을 찔러 자살한 것이다. 이리에 쿄스케의 거처 불명은 정황상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18]

츠미호로보시 편은 류구 레나의 발병. 레나가 마미야 리나와 호죠 텟페이를 살해한 뒤, 타카노 미요의 스크랩을 받고 오오이시 쿠라우도를 만나 발병하게 된다. 이후 L5 증상까지 다다라서 학교까지 점거해 학생들을 인질로 삼았으나 케이이치가 말려 히나미자와 증후군을 극복하게 된다. 하지만 그 뒤, 히나미자와 대재해가 일어나 마을 전체가 몰살당했다.

미나고로시 편은 후루데 리카의 때늦은 대처. 표면적인 진상은 타타리고로시 편과 같지만[19] 리카가 토미타케 지로의 살인이 일어나게 않게 '토미타케의 시체가 발견되는 장소'에 경찰을 배치해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때는 토미타케는 죽을 운명이었기 때문에 장소만 바뀐 채 토미타케의 시체가 발견되었다. 타카노 미요는 자신을 가짜 시체로 바꿔쳤고, 리카는 뒤늦게 오오이시에게 호위를 부탁했지만 야마이누에게 살해당했고, 부활동 친구들과 함께 야마이누로부터 도망치려다 끝내 차례차례 살해당한다. 마지막 차례가 된 리카는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고 이 일을 다음 세계에서도 기억하기 위해 마취를 당하지 않고 살해당하게 된다.


[1] 히나미자와의 옛 이름. [2] 2001년 개편 이전까지 존재했던 기관인 건설성(현재 국토교통성)의 대신으로, 한국으로 치면 국토교통부 장관. [3] 와타나가시 축제날은 댐 건설을 찬성했다는 이유로 마을 주민들이 호죠 부부를 적대시했기 때문에 호죠 가족에게 껄끄러운 날이라, 가족끼리 축제날에 가족여행을 갔다. 다만 사토시는 야구행사 때문에 가족여행에 불참했다. [4] 원작 메아카시 기준으로는 스포크를 삼켜서 사망. [5] 사토시는 타마에의 아들이 아니며 부모님이 죽은 이후, 타마에가 남매를 받아주었기에 보호자가 타마에가 된 것이다. 이를 엄마로 착각하고 있던 것. [6] 사실 집단 괴롭힘을 주도한 것은 소노자키 가문이니 틀린말은 아니다. [7] 다만 호죠 씨에게는 실제로 학대를 당하지 않았다. 소노자키 오료와의 언쟁에서 보인 과격한 모습 때문에 오해하기 쉽지만 성격이 안 좋은 것이지 사토코에게는 최대한 아버지처럼 대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사토코가 L5 때문에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와타시오 신지테.. [8] 이는 레나처럼 히나미자와 증후군의 증세가 점점 심해진다는 묘사. [9] 사토코의 증언으로는 자신은 차에서 계속 자고 있었다고 했는데, 당시 사토코가 차 안에서 울고 있던 것을 발견한 공원 인부에게 사토코는 부모님이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헌데 차를 세워둔 위치에서는 사고 현장이 보이지 않는다. [10] 텟페이는 외도를 탈출구로 삼아서 집에 거의 머물지 않았기 때문에 타마에에 비하면 학대의 횟수 자체는 많지 않았다. [11] 다만 오오이시는 사토시가 살인범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음에도 사토시의 신병을 적극적으로 구속하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이는 역시 타마에의 죽음을 4년차 연속 괴사 사건으로 판단하고 사토시의 범행에도 어떤 식으로든 소노자키 가문의 입김이 닿아 있을 것이라 착각했기 때문에, 사토시를 배후를 낚아올릴 떡밥 취급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12] 그런 상황에서도 이리에만큼은 숙모로 착각하지 않았다. 이리에에 대한 사토시의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 물론 이리에가 이때 적극적으로 환각을 부정하며 진정시키려 했다면 사토시는 이리에마저 공격했을 것이 거의 확실하며, 이리에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진료소에 도착할 때까지는 경거망동을 하지 않았다. [13] 다행히 운 좋게도 살긴 했다. [14] 호죠 텟페이 건은 미지수. [15] 오료는 여기서 이미 죽었다. [16] 언급되지 않았지만 동행하던 쿠마가이 카츠야도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17] 사건이 일어나기 전, 케이이치가 사망했으므로 시점이 끊겨 뒤에 어떻게 됐는지 알려주지 못해서 언급되지는 않았다. [18] 와타나가시 편에서도 역시 살해당했을 것이다. [19] 하지만 여기에선 호죠 텟페이를 살해하지 않고 해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