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國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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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 황석영 |
원작 | 삼국지연의 |
출판사 | 창비 |
권수 |
초판 10권 (2003. 07. 10.) 특별합본호 3권 (2019. 07.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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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설가 황석영이 번역한 삼국지이다. 1999년 상하이 강소고적출판사에서 나온 '수상삼국연의'를 기반으로 했다. 김구용의 번역을 이은 정역류를 지향했다.2. 특징
비슷한 네임벨류의 대형작가가 쓴 이문열 평역 삼국지와 달리 원문 번역을 지향했다. 이문열과 동급의 대형작가가 삼국지연의 원문의 가치를 알리려고 하였다는 점에선 높이 평가할 수 있다.3. 장점
명색이 원문[1] 번역이라 큰 소리친 만큼, 번안 삼국지들과 달리 제갈량 사후 부분에 충실하다. 무려 전체 10권 중 한권 반 씩이나 할애한다. 이문열 삼국지나 기타 판본이 제갈량 사후 부분을 아예 무시하거나 대충 설명하는 것과는 크게 대조되는 점.[2]그런데 황석영 삼국지를 읽다 보면 본인이 참고한 원전이 가정본을 기초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번역본에 대하여 황석영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다. 황석영이 참고한 원전 역시 대부분 모종강본을 기초로 하고 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가정본과 모종강본의 내용상 차이점이 드러나는 대목은 모본의 내용을 따라갔다. 초기에는 모종강본 계열의 현토본을 번역했으되, 조조가 중원을 장악한 시점인 3권부터 모종강본 계열 교정 판본인 인문본을 번역했기 때문이다.
단, 3권부터는 확실히 인문본을 참조했다. 대표적인 증거로 3권의 33회에서 조조가 오환 정벌을 하는 장면에서 인문본 이전 판본에서 오환의 수령이 답돈이 아닌 묵돌로 나왔으나 인문본에서는 답돈이라고 올바르게 나온 것을 그대로 적었다.[3]
또 4권에서 손권이 인재를 맞아들이는 장면에서 인재들의 정보를 서술하는데, 인문본 이전의 판본에서는 회계의 능통이라 나오는데, 인문본에서 낙통이라 나온다.[4] 그리고 오찬의 한자가 인문본 이전에는 吳粲인데, 정사에서는 吾粲으로 나온다. 인문본에서는 정사를 바탕으로 수정했다.
4. 평가
4.1. 오류들
황석영 자신이 한문학/중문학 전공자가 아니며, 원문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지며, 번역에 자기 색깔을 너무 많이 넣었다.나는 주요한 전투장면에서는 건조한 원문에 다 나름대로의 신명을 얹어서 좀더 박진감있게 표현하려고 덧붙여 묘사하기도 했고,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 바로 눈앞에 진행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현재형 문장으로다듬기도 했다. ... 무엇보다도 나는 한문 실력은 접어두고라도 문장 속에 인용된 고사와 인물들에 대해 너무도 무지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국판과 한국판 대자전(大字典)을 붙잡고 씨름하는 사이에 시력이 옥살이할 때보다 더 나빠져서 안경을 두번이나 바꿔야 했다. 애매한 대목에서는 여러 사람들에게 문의하는 메일을 끊임없이 보내기도 했다. 등장인물이 당대보다 옛적의 일을 들어 설명할 때 연원을 몰라서는 문장도 되지 않고 대화가 엉뚱해지게 마련이었다. 그야말로 중국 고전 공부를 다시 하게 된 기간이었다.
-황석영 삼국지. '옮긴이의 말'
-황석영 삼국지. '옮긴이의 말'
1, 2권 한정으로 현토본[5]을 토대로 번역해 19회의 허사와 왕해가 여포의 명을 받아 원술에게 구원을 청하는 장면에서 가짜 황제인 원술에게 명상이라 안하고 명공이라고 한 오류를 범했다. 실로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6]
6권 64회에서, 재기한 마초가 농서의 여러 고을들을 침략하는데, "오로지 기주(冀州)만이 함락되지 않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기성(冀城)을 기주로 오기한 것이다. 덕분에 위강은 졸지에 양주 자사에서 기주 자사로 바뀌어 버렸다. [7]
제갈탄이 가충의 역심을 꾸짖는 장면(10권)에서, 제갈탄이 가충의 아버지 가규를 '가예주'라 언급하는데, 이때 괄호를 치고 '예주'가 가규의 자(字)라고 설명하는 오류가 있다. 가규의 자는 양도(梁道)이며, '예주'란 생전 그의 관직이 예주자사였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유비가 흔히 '유예주'로 불리던 것과 같다.
한정판은 기존 간행본을 크기를 줄여 재간행한 정도이기 때문에, 이 단락에서 말한 오류들이 수정되지 않았다
4.2. 긍정적 평가
-
교수신문이 발행한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김구용 삼국지와 함께 최고의 번역본으로 선정하며 아래와 같이 평했다.
오역을 최소화한 정역류이다. 그에 더해 황석영의 필력이 살아있다. 전문가의 자문을 잘 반영하였기 때문에 소설가의 번역이라도 신뢰할 수 있다. 연변본과 비슷한 부분을 들어 순수성을 문제 삼는 의견도 있다.
4.3. 부정적 평가
일부에서는 어중간하고 딱히 장점이 없는 판본이라는 비판이 있다. 원본에 가까운 번역을 장점으로 내세웠지만, 몇가지 오류를 지적당한 만큼 크게 신뢰성 있는 판본으로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또한 삼국지 연구자인
정원기 교수는 정역임을 내세웠음에도 실제로는 번역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어 문장의 아름다움을 살린 새 번역이란 평가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1. 저본 문제가 상당히 모호하다. ‘옮긴이의 말’에서는 대만 삼민서국(三民書局) 출판본의 오자와 탈자를 바로 잡은 상해 강소고적(江蘇古籍)출판사의 번체자(繁體字) 《수상삼국연의(綉像三國演義)》(1999년판)를 저본으로 했으며, 후에 전홍철 교수가 인민문학(人民文學)출판사본을 대조해가며 교정했다고 했으나, ‘일러두기’에서는 이 두 가지를 자신이 직접 저본으로 삼은 것으로 표기 했다.
2. 뿐만 아니라 강소고적출판사는 ‘상해’가 아닌 ‘남경’에 있다는 점, 중국 대륙에서 ‘번체자’ 삼국연의를 낸 곳은 ‘상해고적출판사’라는 점, 그리고 대만 삼민서국의 오류를 대륙 강소고적에서(즉 배인본(排印本)에서 배인본의 오류를) 바로잡을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과연 역자가 삼국지 판본이나 저본에 대한 기본지식을 갖추었는지, 과연 역자 자신이 직접 원전을 대하고 정역에 임했는지 묻고 싶은 부분이다.
3. 어느 일간지에서 지적한 적이 있지만, 앞서 간행된 모 출판사의 역본과 체재나 단락 구분, 오류 답습 등 비슷한 곳이 너무 많다. 이는 황석영 초판 간행본을 모 출판사 역본과 치밀하게 대조해보면 밝혀낼 수 있는 사실이다.
4.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서술문을 대화체로 바꾸었다거나 전투장면의 박진감을 살리기 위해 덧붙여 묘사하기도 했다는 말은 명백한 체재 변형이자 가공과 윤색을 더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직역 또는 정역이라 할 수가 없다.
5. 글맛을 살린다는 이유로 의역을 하는가 하면 앞에 올 말을 뒤로 돌리고 뒤에 올 말을 앞으로돌리는 등 이리저리 짜깁기를 하는 바람에 원문과 한줄 한줄 대조하며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역자가 강조하는 원전의 맛을 어떻게 느낀단 말인가?
6. 도처에 산재한 오역 부분이 적지 않다. 이 부분은 수정 가능한 것과 수정 불가능한 것들이 혼재하고 있다.( #)
1. 저본 문제가 상당히 모호하다. ‘옮긴이의 말’에서는 대만 삼민서국(三民書局) 출판본의 오자와 탈자를 바로 잡은 상해 강소고적(江蘇古籍)출판사의 번체자(繁體字) 《수상삼국연의(綉像三國演義)》(1999년판)를 저본으로 했으며, 후에 전홍철 교수가 인민문학(人民文學)출판사본을 대조해가며 교정했다고 했으나, ‘일러두기’에서는 이 두 가지를 자신이 직접 저본으로 삼은 것으로 표기 했다.
2. 뿐만 아니라 강소고적출판사는 ‘상해’가 아닌 ‘남경’에 있다는 점, 중국 대륙에서 ‘번체자’ 삼국연의를 낸 곳은 ‘상해고적출판사’라는 점, 그리고 대만 삼민서국의 오류를 대륙 강소고적에서(즉 배인본(排印本)에서 배인본의 오류를) 바로잡을 이유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과연 역자가 삼국지 판본이나 저본에 대한 기본지식을 갖추었는지, 과연 역자 자신이 직접 원전을 대하고 정역에 임했는지 묻고 싶은 부분이다.
3. 어느 일간지에서 지적한 적이 있지만, 앞서 간행된 모 출판사의 역본과 체재나 단락 구분, 오류 답습 등 비슷한 곳이 너무 많다. 이는 황석영 초판 간행본을 모 출판사 역본과 치밀하게 대조해보면 밝혀낼 수 있는 사실이다.
4. 생동감을 살리기 위해 서술문을 대화체로 바꾸었다거나 전투장면의 박진감을 살리기 위해 덧붙여 묘사하기도 했다는 말은 명백한 체재 변형이자 가공과 윤색을 더한 것으로, 진정한 의미에서 직역 또는 정역이라 할 수가 없다.
5. 글맛을 살린다는 이유로 의역을 하는가 하면 앞에 올 말을 뒤로 돌리고 뒤에 올 말을 앞으로돌리는 등 이리저리 짜깁기를 하는 바람에 원문과 한줄 한줄 대조하며 읽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역자가 강조하는 원전의 맛을 어떻게 느낀단 말인가?
6. 도처에 산재한 오역 부분이 적지 않다. 이 부분은 수정 가능한 것과 수정 불가능한 것들이 혼재하고 있다.( #)
이후 정원기 교수는 황석영 삼국지에 있는 오류를 지적하고, 옌볜인민출판사의 출간본을 표절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황석영이 정원기에게 반론함으로써 둘은 신문 지면을 통하여 몇 차례 논전을 펼쳤으나, 마지막에 황석영이 "1. 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대등하게 토론할 형편이 못 된다 2. 나는 전문가에게 자문 받고 책 냈으니 그 사람들과 토론해라 3. 지적 중 상당수는 수긍하기 어렵다"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고 토론은 거기서 끝났다.[8] #1 #2 #3 #4
위 토론이 흐지부지된 이후에도
정원기 교수는 황석영 삼국지를 이문열 삼국지 미만이라며 혹평했다.
흥미도나 소설 구상 면에서 평가하면
이문열이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원문 번역에서 오역한 부분이 많아서 어느 중국 교포가 무려 1천 군데가 넘는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인명인 '예양(豫讓)'을 지명으로 오역하는 식이다. 이런 걸출한 작가의 번안본이 나오기 전 제대로 된 정역본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 중국어 원문을 기준으로 적벽대전 부분인 43~50회 내용을 집중 검토한 결과 황씨의 삼국지는 중국 옌볜인민출판사의 '삼국연의'와 동일 오류가 반복되고 문장 흐름도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그 문제를 두고 모 일간지에서 반론·재반론을 거듭하다가 황석영씨 측에서 감정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토론을 중지하고 말았다. 그만한 대형작가라면 이문열이나 장정일처럼 번안본을 내는 게 더 당당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 중국어 원문을 기준으로 적벽대전 부분인 43~50회 내용을 집중 검토한 결과 황씨의 삼국지는 중국 옌볜인민출판사의 '삼국연의'와 동일 오류가 반복되고 문장 흐름도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그 문제를 두고 모 일간지에서 반론·재반론을 거듭하다가 황석영씨 측에서 감정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토론을 중지하고 말았다. 그만한 대형작가라면 이문열이나 장정일처럼 번안본을 내는 게 더 당당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
사실 읽어보면 첫 문장부터가 원문과 꽤나 다르고 제멋대로 단어를 바꾸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고전의 느낌을 살리지도 못했으며, 문체도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많다. 결국 원문을 가지고 번역하긴 핬지만 재구성과 오역만 많은 번역본인 셈.
5. 여담
- 황석영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되었던 시절에 창작욕구를 달래기 위해서 삼국지 번역에 손을 댔었다. 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삼국지 출간을 제의하자, 황석영은 노후 대책을 마련할 겸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황석영 본인이 말하기를, 창비에게 선인세를 돌려주고 계약을 파기하고 싶었을 만큼 삼국지를 번역하는 건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다고.
- 황석영의 네임 벨류 + 문학 시장에서 가장 큰 출판사 중 하나인 창작과비평사의 마케팅 파워 + 괜찮은 디자인과 중국 화백의 실감나는 삽화 때문에 대중적으로 많이 퍼진 삼국지에 속한다.
- 황석영판을 기초로 만화가 이충호가 만화 삼국지를 그리기도 했다. ( 마이러브를 그린 그 이충호. 하지만 그림체는 마이러브 때와 비교해서 상당히 달라졌다.) 황석영판을 그대로 옮긴 건 아니고 이충호가 각색한 장면이 있다.
- 2019년 7월에 판매 부수 200만 부 돌파 기념으로 한정판이 나왔다. 출판사 블로그 링크
- 2020년 12월에 6권짜리 개정판이 나왔다. 개정판은 우석대 전홍철 교수가 간체, 번체자 텍스트의 대조와 교열작업을, 성균관대 임형택 교수가 한시번역을 각각 감수해 문장의 완성도를 높였다. 기사링크
[1]
모종강본 계통 텍스트인 인민문학출판사본(이하 인문본)을 번역함.
[2]
다만 이건 황석영 삼국지의 장점이 아니라, 원문 번역 삼국지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 사양이다.
[3]
이문열은 거기서 그냥 이민족의 우두머리의 대명사 정도로 해석해서 퉁쳤는데, 그 이유는 답돈이라는 이름을 몰랐던 것이 컸다.
[4]
물론 그 원인이 능통이 다시 나올 때 15살밖에 안 되었다는 서술이 있어서 그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낙통이라고 고친 듯하다. 정사를 기준으로 하면 이 또한 말이 안 되기는 매한가지이다. 낙통은 능통보다 어리다. 아마도 연의에서 낙통이 잠깐 나오고 마는 엑스트라라서 나이가 언급되지 않으니 낙통의 이름을 대면서 바꾼 것 같다.
[5]
현토본이란 無父無君之言乎아, 식으로 한문인 원문 뒤에 한글로 토를 달아놓은 것을 현토본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것은 제갈량이 설종과 설전을 벌일 때 조조를 옹호하면서 항복을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정당성을 역설하며 한 말인데, 그 뜻은 무려 "무슨 애비도 임금도 없는 소린가?" 이다(...) 즉, 유교적으로는 사문난적의 뜻을 대놓고 말한 셈.
[6]
이건
본삼국지에 나온 부분도 있지만, 그게 아니어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이치인데, 자신을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한낱(어디까지나 황제 입장에서.....) 고관으로 깎아 내렸으니 허사와 왕해의 목이 달아나지 않는 게 신기하지 않은가?
[7]
참고로 하북지방은 중원지역과 더불어 고대 중국에서 가장 발달하고 풍요로운 지역이었으며, 기주는 여기서도 가장 생산력이 높고 인구가 많은 주였다. 실제로 조조는 원래 허(허도/허창)를 기반으로 세력을 키웠으나, 원소 사후 하북지방을 점령한 이후 기주의 업에서 살면서 업이 실질적인 수도로 기능한 바 있다. 동탁이 한나라의 수도였던 낙양을 불태운 이후 한동안 업은 중국에서 가장 번창한 도시였다.(조비 때 복원된 낙양으로 다시 천도한다. 북동쪽에 위치한 업은 위치상 수도로 부적합하기 때문) 게다가 기주는 조조의 영토에서도 전선과 먼 안쪽에 위치해있다. 만약 기주가 직접 위협당하는 상황이라면 조조는 세력 자체가 위태롭다.
[8]
물론 이는 상업 출판물을 총대 매고 번역한 황석영이 할 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