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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11><colcolor=#ece5b6> 생애 | <colbgcolor=#fff,#1f2023> 생애 · 평가 | |
매체 | 대중매체 | ||
능묘 | 장릉 | ||
기타 | 홍문연 |
1. 개관
鴻門宴. 홍문의 회(鴻門之會)라고도 한다. 기원전 207년 12월에 진나라가 멸망한 후 초한쟁패기 직전에 진나라의 수도 함양 근처의 홍문[1]이라는 곳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 초한지》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장면이다.뭔가 드라마틱해서 소설적 허구 같지만 일단은 《 사기》 <항우 본기>와 <번역등관 열전>에 기록되어 있는 사건이다.[2]
2. 상세
2.1. 배경
진나라 말엽에 봉기한 초나라의 항량은 옛 초나라 왕실의 혈육을 찾아 왕으로 삼아서 초군의 구심점을 찾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옹립된 사람이 바로 미심(芈心)이라는 양치기로 이 사람이 이른바 ' 초의제'[3]이자 '초회왕'이라고도 불리는 사람이다.회왕은 항우와 유방에게 병사를 나누어 서쪽의 진나라를 치도록 했는데 유방은 진나라의 심장부인 관중으로 바로 진격하게 하고, 항우는 북진하여 조나라 일대를 평정한 후 관중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로를 지시했다. 그리고 이 두 명 중에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을 먼저 점령하는 사람에게 관중왕의 자리를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이건 항우에게 대단히 불리한 명령이었는데, 거리상으로만 봐도 항우의 경로는 유방에 비해서 돌아가기 때문에 훨씬 멀었고, 무엇보다도 진나라의 명장인 장한이 이끄는 진나라 주력군이 조나라 일대에서 버티면서 다른 봉기군을 박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회왕이 이런 결정을 내린건 항우가 민간인 학살을 일삼았기 때문에 많은 제후들이나 백성들이 항우를 두려워만 할뿐 진심으로 따르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진나라의 심장부인 관중 지방에는 보다 온화한 면모로 사람들의 인망을 얻고 있었던 유방을 보내는게 낫다고 평가한 것이다.
어쨌든 유방은 진군 도중 책사인 역이기 등을 얻었고 그들의 도움에 힘입어 차근차근 관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거점들을 돌파하거나 항복을 받아 항우보다 한발 앞서 진나라의 수도인 함양에 입성했다. 유방은 이른바 '약법삼장'[4]을 발표하여 진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항복한 진왕 자영의 목숨을 부지해 주는 등 인기 정책을 펼쳤다. 이때 추씨 성을 가진 사람이 유방을 만나고는 제발 관중의 왕이 되어달라면서, 함곡관을 봉쇄해버리고 다른 제후들을 들이지 말라고 했다.[5] 스스로도 관중왕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유방은 주변 모사들과 상의 한마디 나누지 않고 이 계책을 따른다. 다만 항우가 무섭긴 했는지 군사들을 함곡관으로 보내면서 그저 지키기만 하라고 애매하게 명령을 내렸다.
한편 항우는 회왕이 군통수권자로 임명한 상관 송의를 살해해 구원군의 지휘권을 탈취한 후[6] 거록에서 장한의 진나라 주력군을 박살내는 등 여러 곳에서 전투를 벌인 후에야 관중으로 향할 수 있었는데, 함곡관이 열리지 않는 것에 대해 처음엔 진나라 군대가 버티는 것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항우는 유방이 먼저 함양에 입성했다는 소식을 듣자 격노하여 순식간에 함곡관을 돌파하고 함양 근교에 진을 쳤다. 이때 유방의 좌사마인 조무상이라는 사람이 항우에게 몰래 사람을 보내
"패공(유방)이 관중왕이 되고 자영을 재상으로 임명하여 보물을 모조리 독차지하고 있습니다."
라고 모함하면서 자기가 제후가 되려고 했다. 꿍꿍이는 뻔히 보였던 것 같지만[7] 항우의 책사인
범증이 항우에게 '유방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 반드시 이번 기회에 없애야 한다'고 진언했고 항우도 유방을 죽일 기회만을 벼르고 있었다.항우의 삼촌이 되는 항백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유방의 책사인 장량과 친밀한 사이였다.[8] 항우의 총공격 계획을 알고 장량에게 가서 그 계획을 알려주고 장량에게 몸을 피할 것을 권했다. 장량이 이 사실을 주군인 유방에게 알렸다. 평소 온후했던 장량조차 화가 나서 도대체 어떤 작자의 말을 듣고 함곡관을 막았느냐고 따지자 유방은 궁색해져서 자신에게 간언한 사람을 핑계대었지만, 그럼 그쪽 군사들이 항우네보다 나을 것 같았느냐고 꾸짖자 더는 변명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며 장량에게 빌다시피하며 조언을 구한다. 장량은 우선 항백을 소개시켜주고 용서를 청하게 했다. 유방은
"난 항우 장군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지 사사로운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었소. 병사들로 하여금 함곡관 틀어막은 것도 도적들을 경계해서일 뿐이오.[9] 저희가 뭘 잘못했습니까. 제발 항장군께 잘 말씀해 주시오"
라고 간청했다. 이때 유방과 항백은 술잔도 나누고 혼담까지 나눴다고 한다. 그만큼 유방이 발등에 불 떨어진 나머지 항백에게 싹싹 빈 것이다.[10] 항백은 잘 말하겠다고 하면서 유방에게 다음날 직접 항우의 진영까지 와서 사죄할 것을 권했고, 유방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항백은 항우에게 돌아와서 유방의 말을 전하면서 유방이 관중에 들어와 진나라를 격파하고 진왕 자영을 사로잡은 공이 있는데 이런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도의에 맞지 않다고 진언하자 항우 역시 유방을 칠 계획을 거두어들였다. 항백이 유방 군영에 다녀온 것을 안 범증은 항우에게 내일 유방과 만나는 자리에서 유방의 목을 칠 것을 진언했는데, 자신이 옥결[11]을 들면 유방을 죽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이라고 했다.
2.2. 위기에 빠진 유방
이윽고 다음날 유방은 장량과 번쾌 이하 100여 기만을 데리고 홍문의 항우 군영에 나타나 사죄를 했다. 유방은 이런 말로 자신을 변명했다."저는 장군과 힘을 합쳐 진을 공격했습니다. 장군께서는 하북에서 싸우고, 전 하남에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저도 제가 먼저 함곡관에 들어와 진을 격파하고 여기서 장군과 다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소인배의 말 때문에 장군과 제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항우는 이 변명을 받아들였고, 친절하게 유방의 좌사마
조무상(曹無傷)이라는 자가 말한 것이라고
말하기까지 했다.[12]"이것은 패공의 좌사마인 조무상이 말한 것이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겠소."
분위기는 일단 잘 풀리고 술자리가 열렸다. 항우와 항백은 동쪽을 보고 앉고[13]
범증은 남쪽,
유방은 북쪽,
장량은 서쪽을 향해 앉았다. 연회가 한창 진행되고 항우도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14] 범증이 세 번이나 항우를 향해 옥결을 들어 유방을 죽이자는 신호를 했으나 항우는 모두 무시했다.계획이 틀어질 것을 염려한 범증은 밖으로 나와 항우의 족제(친척 동생)인 항장(項莊)이라는 사람에게
"군왕(항우)께서 모질지 못하시니 아무래도 직접 행동을 해야 할 듯하다. 그대가 들어가서 패공에게 술잔을 올리고 술잔이 비면
검무를 추어 흥을 돋구겠다고 한 뒤 즉시 패공을 베어버리도록 하라."
라는 지시를 내렸다. 항장은 곧장 연회장 안으로 들어가 유방에게 술을 올리고 "이런 술자리에 따로 즐길 만한 것이 없으니 제가 검무를 춰서 흥을 돋궈볼까 합니다."
(君王與沛公飮 軍中無以爲樂 請以劍舞)
라며 항우에게 청하자 항우는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검무의 의도를 바로 눈치챈
항백이 (君王與沛公飮 軍中無以爲樂 請以劍舞)
"검무는 원래 둘이서 추어야 제맛이죠!"
라고 외치며 끼어들어 항장이 유방에게 접근하는 족족 막아세웠기 때문에 항장은 유방을 죽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연로한 항백의 체력이 먼저 소진되었으므로 유방의 생명은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다.2.3. 번쾌의 난입
분위기가 유방에게 극히 위태로움을 눈치챈 장량은 급히 군문으로 나갔고, 번쾌를 불러"사정이 급하니 당장 들어가서 패공을 구하시오!"
라고 말했다. 번쾌는 "내가 안에 들어가서 패공과 생사를 같이 하겠소."
며 결연히 칼과 방패를 들고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물론 위병들이 저지했지만 번쾌는 방패로 냅다 이들을 밀쳐버리고 난입해 항우를 쏘아보았다. <항우 본기>에 의하면
"번쾌가 들어서니 머리카락이 곤두서고, 눈초리는 찢어져 있었으며, 천하의 항우도 그 모습에 대경실색하여 검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고 한다. 항우가 "넌 누구냐?"
라고 묻자 장량이 번쾌를 소개[15]했다. 항우는 번쾌의 풍채와 패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참으로 장사로구나! 저 자에게 술을 내 주어라!"
라고 명령했다. 항우의 명령에 따라 내려진 커다란 술잔(또는 술단지)을 단숨에 들이키는 번쾌를 본 항우는 돼지 다리 고기를 내렸는데, 이것도 넙죽 받은 번쾌는 방패를 도마 삼아 고기를 그 자리에서 썰어(또는 아예 다리째로 손에 들고서) 마구 먹었다.
이런 상남자 먹방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항우는 다시 한 번
"그대는 참으로 장사로다! 더 마실 수 있겠는가?"
라고 물어보았고, 번쾌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장부가 술을 마다하겠습니까?"
라고 호쾌하게 대답했다. 번쾌의 이 행동에서 나온 말이
주당들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인
두주불사(斗酒不辭)이다.재차 술잔을 비운 번쾌는 문득 항우에게 의(義)가 무엇인지 아시느냐고 물었고,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항우에게 번쾌는 말을 이었다.
"우리 패공께서는 장졸들과 수고로움을 같이 하며 관중까지 왔습니다. 운 좋게도 관중을 먼저 점령하는 공을 세웠으나, 패공께서는 장군만을 기다리며 어떠한 재물도 탐내지 않고 고스란히 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는 포상을 내려주시지는 못할 망정
비겁한 멍청이들 말에 넘어가 패공을 의심해 해치려 하십니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한 항우는, 검무를 추던 항장과 항백을 물리게 한 뒤 번쾌에게 자리에 앉아 진정하라고 달래는 것이 전부였다. 번쾌는 당황하는 기색없이 장량 옆자리에 앉았다.
2.4. 유방의 도주
얼마 후 유방은 자리에서 일어나 용변을 보러 가는 척 하면서 번쾌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런데 빨리 도망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유방에게 번쾌가 이유를 묻자,"지금 내가 항우한테 하직 인사도 제대로 못했는데 그냥 가도 될까?"
라고 이야기했다. 번쾌는 버럭 성질을 내더니 "지금 항우의 진지는 칼과 도마이고, 패공께서는 생선이나 다름없는 이 마당에 예의범절을 지키냐 마느냐가 중요합니까?"
라고 일갈하며 바로 도망갈 것을 강권했다. 유방과 번쾌는 먼저 떠나면서 장량에게 대신 사죄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항우에게 바치려 했던 백벽 한 쌍과 범증에게 바치려 했던 옥두 한 쌍을 건네주었다.장량은 항우와 범증을 찾아가 유방 대신 하직인사를 전했다. 장량은
"패공께서 만취하시어 예를 갖추기 힘들기 때문에 직접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제가 인사를 드리러 왔으니, 부디 이 선물을 받으시고 노여움을 푸십시오."
라고 말하며 선물을 건넸다. 항우가 유방을 걱정하는 척 말을 건네자 장량은 "패공은 낮이나 밤이나 장군의 위엄을 두려워하십니다. 지금은 이미 돌아갔을 것입니다."
라고 둘러댔다. 장량이 물러가고 나서, 항우는 유방이 술도 몇잔 못하는 약골이라 생각했던지, 아니면 자기한테 쫄아서 황급히 달아났다는 사실에 흡족해졌는지 그를 겁쟁이라 비웃으며 선물받은 백벽을 옆에 두고 장식했다.하지만 범증은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옥두를 칼로 깨뜨리더니,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내뱉었다.
唉!豎子不足與謀!奪將軍天下者,必沛公也。吾屬今為之虜矣!
"아! 애송이와는 큰 일을 도모할 수 없구나! 항장군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바로 패공이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포로로 잡히게 될 것이다!"
한편, 죽다 살아난 유방은 잊지않고, 귀환하자마자
조무상의 목부터 날렸다."아! 애송이와는 큰 일을 도모할 수 없구나! 항장군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바로 패공이다. 우리는 모두 그에게 포로로 잡히게 될 것이다!"
3. 의의 및 평가
홍문연은 그 자체로도 스릴 넘치는 드라마지만, 그 내용을 파고들어보면 초한쟁패기를 관통하는 중요한 의의를 둘 찾을 수있다.첫번째 의의는 위기에 빠진 유방이 간신히 살아나온 사건이었다 라는 점이다. 이후 유방이 파촉왕으로 임명되고 항우의 표적이 되자 유방 본인과 휘하 장수들은 절망하여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항우와 마지막 결전을 치를려고 했지만, 소하가 뜯어말려 간신히 진정하고 권토중래를 기약하여 끝내는 중국의 패자가 되었다.
두번째 의의는 항우의 빈틈이 많은 정치적 감각을 드러냈고, 유방이 이를 눈치챈 점이다. 유방의 목에 칼끝까지 다 겨눈 상태에서 죽이지 않고 보내준 항우의 변덕과 어리석음도 크지만, 홍문연 사건 자체부터 항우의 터무니없는 횡포의 결과였다. 당시의 항우는 제후왕도 아니었고 송의를 죽여 하극성을 저지른 데다가, 독단적으로 다른 제후에게 책임을 물으려고 하는 행위 자체가 큰 문제였다. 초 회왕에게 보고도 올리지 않고, 일방적으로 유방에게 자기를 거역(?)한 책임을 묻겠다며 관중을 기습한 행동에는 아무런 명분을 찾을 수 없다. 그냥 자기 기분 나쁘다고 저질러놓고 본 것이다. 반면 유방에게는 초회왕의 명을 받들어 함양을 점령했고, 그곳을 다스리기 위해 주둔하고 군을 배치했다는 명분이 있었다.[16]
항우와 범증의 당초 계획도 그냥 트집 잡아서 술자리에 끌고 와서 담가버린다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공식적이거나 정당한 절차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즉 항우가 유방을 공격하려던 짓은 사적제재였고, 연회를 열어 유방을 죽이려던 것은 암살이었다. 당시 항우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최강의 군웅이었기에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지만, 상황이 조금만 달랐다면 온 제후들의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항우도 이 점은 알았는지, 번쾌가 면전에서 대놓고
그나마, 이렇게 욕 먹을 짓을 전부 해서라도 유방을 없앴으면 잠깐의 실리는 분명 얻었을 것이다. 이러니 저러니해도 유방은 분명 항우의 강력한 라이벌이었고, 이후 초한전쟁 역시 유방을 중심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유방이 없는 중국 대륙에서 항우에게 반기를 들었을 만한 제후왕은 제나라의 전광 정도가 점쳐질 뿐, 대다수는 팽성전투 한 번에 바로 항우에게 붙었을 정도로 비굴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유방 포지션을 그대로 따라갔을 제후가 나타났을 게 분명하지만 그건 유방을 죽이지 않아도 일어났을 일이었고, 단기적으로는 한나라와 제나라와의 양면 전쟁이 아닌 제나라와의 1대1 구도로 흘러갔을 터라 아무리 제나라와 팽월이 날고 기어도 항우를 이겨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항우는 유방을 놓아주면서 먹을 수 있는 욕은 다 먹고, 실리도 잃은 것이다. 1,000원을 투자해서 100원의 이득이라도 건졌어야 했는데, 그 100원조차 내다버린 격이다.
4. 허구?
중국인민대학 석좌교수인 한자오치(韓兆琦)[17]는 홍문연이 허구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는 다음과 같다.-
항우가 대군 400,000명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나 유방은 수성하는 입장인데다가 100,000명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유방이 방어하던 함곡관은 당시 천하제일험관으로 불릴 정도로 지형적인 이점과 그 굳건함을 자랑하는 관문이었다. 《
손자병법》에 따르면
공성전에는 3개월 이상의 준비와 병력의 ⅓이 기본으로 날아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먼 곳에서 달려온 항우가 한군 100,000명의 일부가 지키고 있는 함곡관을 만만히 볼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따라서 쉽게 항우가 쓸어버릴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2. 관중의 민심은 이미 유방에게 넘어간 후라 쉽게 관중을 빼앗을 수 없다.
3. 이미 관중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에게 관중을 주기로 한 상황이니, 항우가 억지로 뺏는다면 욕을 먹는 것은 항우다. 따라서 홍문연은 항우가 유방을 쉽게 내치지 못한 것, 그리고 항우가 순박한 인물임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항우가 얼마나 비상식적인 인간인지를 생각하면 아주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라는 재반박도 있다. 첫 번째 주장의 경우 항우의 비상식적인 통솔력, 거록대전으로 드높아진 항우의 위신을 생각하면 쉽게 쓸어버리지 못한다고 확답할 수 없으며, 두 번째와 세 번째 주장의 경우 애초에 신안대학살의 예시로도 볼 수 있듯 항우는 백성들과 제후의 평가를 두려워할 위인이 아니므로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5. 이야깃거리
워낙 드라마틱한 장면이라서인지 경극 등에서 묘사되곤 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사건인지 이때의 검무를 춤극화한 <항장무>라는 고종 때 민간 가무극에서 유입된 유일무이한 궁중연극도 있다. 오늘날 홍문연이라는 말은 '음모와 살기가 가득한 살벌한 연회'를 뜻하는 관용구로 쓰인다.중국에서는 홍문연이라는 단어가 특정 상황을 지칭하는 관용문구로 고정되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 삼국지연의》이다. 유비가 조조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채마밭을 가꾸던 중, 술자리에 초청받아 조조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된다. 잠시 후 유비가 조조에게 불려갔다는 말을 들은 관우와 장비는 급히 달려가 호위병들을 제치고 술자리에 난입한다. 그런데 이게 웬걸, 유비와 조조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푸른 매실을 안주 삼아 천하의 영웅을 논하는 중이었다. 놀란 조조가 어쩐 일이냐고 묻자, 관우는 칼춤이라도 추어 술자리의 흥을 돋우려고 왔다며 둘러댄다. 하지만 이윽고 관우와 장비의 마음을 꿰뚫어본 조조는 형제의 의리에 감탄하며 "여기가 홍문의 연회장이 아닌데, 어찌 항장과 항백이 필요하겠는가?" 라고 말한다. 관우와 장비가 그 말을 듣고 머쓱해하자, 조조는 "이 두 번쾌에게 술과 고기를 내리도록 하라." 하고 명한다.
또한 훗날 유비와 유장의 회동 중에 방통이 위연에게 검무를 추게 하여 유장을 척살하려는 장면이 있다. 유장 측에서도 장임이 위연의 상대를 맡아 그를 견제하며 함께 검무를 추었다.[18] 이를 보고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눈치챈 유비가 "도대체 무슨 짓들이오! 이 자리가 홍문연인 줄 아는가! 당장 그만두게!" 하고 호통을 쳐 칼춤을 중지시켰다.
뛰어난 시대적 고증으로 호평받은 < 초한지: 영웅의 부활>에서는 영화적 각색이 들어갔다. 한나라의 통일 후, 역사를 기록하기 위해 홍문연의 일화를 듣던 소하는 당시 주변에는 항우의 군사가 깔려있었을텐데, 번쾌 혼자 그 군사들을 전부 뚫고 연회 자리까지 밀고 들어오는것이 말이 되냐고 반문하며 당시 유방을 몰래 지켜주던 사람이 있었음을 밝힌다. 범증과 항장이 짜고 유방을 검무로 죽이려는 것까지는 동일하지만 당시 유방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았던 항우가 집극랑 한신을 시켜 항백이 유방을 보호하도록 언질을 주게끔 하였고, 장량과 함께 밖에 나가 번쾌를 데려오도록 시킨 것으로 전개된다.[19] 즉, 범증으로부터 유방을 지켜주던 사람은 항우와 한신이었던 것이다.
드라마 < 삼국>에서도 여실히 등장했는데 이 이전에도 방통과 위연이 남다른 협력관계를 형성해가는 매개체로 등장하면서 유장이 유비를 신뢰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일본의 《삼국지》 기반 애니메이션인 < 일본TV 삼국지: 하늘을 나는 영웅들(天翔ける英雄たち)>이라는 애니메이션에서는 유비가 손부인과 혼약을 하는 장면에서 홍문연이 나온다. 여기서는 유비를 암살하려는 주유와 이를 막기 위해 조운이 검무를 추고, 이를 오국태가 말리는 것으로 끝난다. 하여튼 술자리에서 검무를 추면서 누군가를 죽이려는 음모가 있다면 거의 100% 홍문연의 오마주이다.
《 적룡왕》에서도 이 장면은 나온다. 그런데 항장의 검무에 작중에 항백이 등장하는데도 장량이 상대하는 것으로 각색되었다. 또한 번쾌가 난입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번쾌가 아예 항장을 몸으로 눌러서 제압해 버린다.
중국의 이인항 감독이 <홍문연>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국내에서는 <초한지: 천하대전>이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다. 원제가 <홍문연>인만큼 홍문연을 중심으로 스토리가 짜여있고, 무엇보다 유방이 백수건달이 아닌 의해로운 사람으로 나온다거나, 한신이 무쌍찍는 인물로 나오는 등[20] 사실과 너무 다른 내용이라 많은 비판이 있다. [21]
< 태조 왕건> 2화에서 궁예와 호족들이 모여있는 가운데 환선길이 검무를 추는 사이 유금필이 끼어들어 항장(환선길)과 항백(유금필) 포지션으로 오마주되는데 잠시 겨루고 궁예의 만류로 그만 둔다.
홍문연이 벌어진 홍문은 오늘날의 섬서성 시안시 임동현 동부. 이곳에 가면 홍문연이 열린 유적지로 꾸며 놓았고 당시 연회장을 재현해 놓고 있다.
2016년 2월경, 북한이 광명성 로켓을 발사하며 국제사회를 도발하는 데 대응하여 한국의 박근혜 정부에서 사드 배치를 적극 검토했을 당시, 불쾌감을 느낀 중국 외교부에서는 한국의 움직임을 홍문연에서 항장이 칼춤을 추는 데 비유해 논평하기도 했다. 한국 영토 내 사드배치를 둘러싼 정국이 진행되는 와중에, 중국의 외교부장 왕이가 '항장무검 의재패공'(項莊舞劒 意在沛公)의 고사를 인용, 미국을 항우에, 한국을 항장에, 그리고 중국을 유방에 비유하는 발언을 통해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해 자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을 비판하면서[22] 다시금 이 고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
鴻門. 현재는
섬서성
서안시 임동구 홍문보촌
[2]
하지만 아래에서 보듯이 허구로 보는 설도 있긴 하다.
[3]
사실 초회왕은 진나라의 농간 때문에 진으로 끌려가 타지에서 객사한 왕이지만, 미심을 찾아내서 왕으로 올린 후 일부러 같은 이름인 초회왕으로 받든 것이다.타지에서 객사한 최후도 닮았다
[4]
1.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 2. 재물을 훔치거나 사람을 상하게 한 자는 죗값을 치른다. 3. 이 두 가지 외의 진나라 법은 모두 철폐한다.
[5]
항우가
장한을 옹왕으로 봉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유방에게 관중 땅을 줄 생각이 전혀 없을거라며 설득한다.
[6]
원래 군사를 일으킨 건 항량이 다 해놓았고, 명분을 세우기 위해 회왕을 세워놨던 것인데 그 항량이 장한과의
정도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항우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고, 회왕과 과거 초나라 귀족들이 부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초나라 귀족들의 우두머리 뻘인 송의는 제나라 등과 협상을 하면서 가던 중이라 그렇잖아도 먼 길에 더욱더 시간을 지체하고 있었고, 다혈질인 항우를 거친 무부라고 생각해서 매우 싫어했다.
[7]
'유방이 재물을 다 취했다'고 조무상이 고하는 바로 다음 줄에서 범증이 '욕심많던 유방이 재물을 하나도 가지지 않았다니 그 뜻이 거대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8]
항백이 살인을 하여 위기에 빠졌었는데 장량이 이를 구해준 인연으로 친교를 맺었다고 한다.
[9]
이 조감도는 현재 함곡관 역사문화여행구의 것이지만 주변 지형의 험준함과 특히 통로의 비좁음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히 참고할 만 하다. 그저 도적 따위를 막으려면 약간의 병력을 배치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대규모의 병력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누구의 진입을 막으려던 것인지 그 의도는 상당히 명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도적을 경계하려던 것일 뿐입니다" 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항백과 항우가 정말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것인지는 조금 달리 생각할 여지도 있긴 하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유방이 항우에게 개길 의도, 즉 항우의 관중 진입을 저지하고 자신이 관중을 차지할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진짜로 항우군이 나타나서 밀고들어오자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굴복하여 데꿀데굴 구르며 멍멍짖고 싹싹 빌어댄다면 '속는 척' 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문제로 본 것일 수도 있다. '정치적 판단력이 형편없기로 유명했던 항우가 설마 그런 정치적 판단을 했겠는가?' 싶을수도 있으나,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군사적으로는 분명 탁월한 전술지휘관이었던 항우가 방어태세로 배치된 병력의 동향을 못 알아봤다는 것은 더 말이 안된다 싶고, 또 정치적 판단력이 형편없던 항우니까 '정말 유방이 굴복했다'고 오판했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는 것. 사기에 기록된 기사대로라면 '유방이 겁을 먹었다'고 비웃었다는 항우의 반응 역시 이런 해석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항우(와 항백)의 모습을 보며 미치고 팔딱뛰던 범증의 반응 역시, 꼭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에 속아넘어가서' 가 아니더라도 "유방 저놈이 지금 당장 쫄리니까 굴복한 척 하는거지, 진짜 당신한테 숙일 놈일 줄 아느냐? 이 위기만 넘기면 다른 꿍꿍이로 우릴 노리기 시작할게 뻔한데 왜 그걸 눈치 못 채느냐?" 고 열받은거라면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10] < 초한전기>에서 꽤나 실감나게 묘사된다. '난 이제 억울하게 죽겠구려…이게 다 항 장군을 위한 거였는데…이제와선 다 부질없는 짓이군요.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항 장군과 이렇게 되는 것이 안타깝구려' 등등 온갖 청승을 떨면서 감성팔이를 시전하는 유방 & 장량과 거기 걸려들어서 점점 불쌍해 죽겠어서 울상이 되어가는 항백의 얼굴이 백미다(…). [11] 玉玦. 일종의 패옥 같은 것. 옥결의 玦은 결심할 '결'(決)과 발음이 같다. 즉 유방을 죽일 결단을 내리라는 뜻이다. [12] 범증이 머리 끝까지 빡친 이유가 있다. 밀고자의 정체를 그냥 대놓고 공개했으니... [13] 동향으로 앉는 것은 존귀함을 상징한다. [14] 《초한지》에서는 유방에게 술을 많이 먹임으로서 그가 술로 인한 실수를 하여 항우가 죽이도록 유도하려 했으나 술을 따르던 진평이 눈치채고,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해 항우가 먼저 취하도록 해서 실패했다고 한다. [15] 장량이 소개해주지 않고 번쾌가 스스로 "항장군께서 장수는 안들이시니 춥고 배고파서 들어왔소!" 라고 소리쳤다는 설도 있다.
번쾌 배고프다! 번쾌도 먹을 줄 안다!
[16]
함곡관에서 항우의 군대를 막은 것도, 항우의 군대가 신안대학살을 일으켜서 함양의 민심이 불안해하고 있으니 그걸 막기 위해 배치했다고 둘러대면 나름 명분을 세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17]
중국인민대학 석좌교수로 《
사기》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자이기도 하다. yes24의
소개글) 참고.
[18]
나중에는 양측에서 각각
유봉,
유괴,
냉포,
등현이 칼을 빼들고 우루루 몰려나와 검무를 췄는데 이쯤 되면 사실상
난전이었다. 누가 봐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19]
그러니까 번쾌는 당시 항우군이던 한신이 곁에 있어 군사들의 제지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20]
취한 상태에서 번쾌+하후영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회왕을 지키면서 암살자 수십명을 썰고, 항우 다음가는 맹장인 용저를 1:1로 이긴다!
[21]
다만 명배우들의 열연과 무엇보다 호쾌한 액션만큼은 큰 호평을 받았다.
[22]
라고는 했지만
유시민은 왕이의 저 말은 미국한테 말하는 척하면서 실은 한국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고 지적했다. 어쨌든 한국도 중국과 같은 동북아시아 문화권이므로 동양 고전과 고사를 인용하는 비유가 이쪽과는 아예 문화권이나 정서가 전혀 다른 미국보다 훨씬 몸에 와 닿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조감도는 현재 함곡관 역사문화여행구의 것이지만 주변 지형의 험준함과 특히 통로의 비좁음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히 참고할 만 하다. 그저 도적 따위를 막으려면 약간의 병력을 배치하는 것으로 충분한데 대규모의 병력을 배치했다는 점에서 누구의 진입을 막으려던 것인지 그 의도는 상당히 명확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도적을 경계하려던 것일 뿐입니다" 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항백과 항우가 정말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것인지는 조금 달리 생각할 여지도 있긴 하다. 왜냐하면 이런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유방이 항우에게 개길 의도, 즉 항우의 관중 진입을 저지하고 자신이 관중을 차지할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진짜로 항우군이 나타나서 밀고들어오자 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굴복하여 데꿀데굴 구르며 멍멍짖고 싹싹 빌어댄다면 '속는 척' 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 문제로 본 것일 수도 있다. '정치적 판단력이 형편없기로 유명했던 항우가 설마 그런 정치적 판단을 했겠는가?' 싶을수도 있으나,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군사적으로는 분명 탁월한 전술지휘관이었던 항우가 방어태세로 배치된 병력의 동향을 못 알아봤다는 것은 더 말이 안된다 싶고, 또 정치적 판단력이 형편없던 항우니까 '정말 유방이 굴복했다'고 오판했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이는 것. 사기에 기록된 기사대로라면 '유방이 겁을 먹었다'고 비웃었다는 항우의 반응 역시 이런 해석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항우(와 항백)의 모습을 보며 미치고 팔딱뛰던 범증의 반응 역시, 꼭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에 속아넘어가서' 가 아니더라도 "유방 저놈이 지금 당장 쫄리니까 굴복한 척 하는거지, 진짜 당신한테 숙일 놈일 줄 아느냐? 이 위기만 넘기면 다른 꿍꿍이로 우릴 노리기 시작할게 뻔한데 왜 그걸 눈치 못 채느냐?" 고 열받은거라면 전혀 이상할 것은 없다. [10] < 초한전기>에서 꽤나 실감나게 묘사된다. '난 이제 억울하게 죽겠구려…이게 다 항 장군을 위한 거였는데…이제와선 다 부질없는 짓이군요. 죽는 건 두렵지 않으나 항 장군과 이렇게 되는 것이 안타깝구려' 등등 온갖 청승을 떨면서 감성팔이를 시전하는 유방 & 장량과 거기 걸려들어서 점점 불쌍해 죽겠어서 울상이 되어가는 항백의 얼굴이 백미다(…). [11] 玉玦. 일종의 패옥 같은 것. 옥결의 玦은 결심할 '결'(決)과 발음이 같다. 즉 유방을 죽일 결단을 내리라는 뜻이다. [12] 범증이 머리 끝까지 빡친 이유가 있다. 밀고자의 정체를 그냥 대놓고 공개했으니... [13] 동향으로 앉는 것은 존귀함을 상징한다. [14] 《초한지》에서는 유방에게 술을 많이 먹임으로서 그가 술로 인한 실수를 하여 항우가 죽이도록 유도하려 했으나 술을 따르던 진평이 눈치채고, 정확히 그 반대로 행동해 항우가 먼저 취하도록 해서 실패했다고 한다. [15] 장량이 소개해주지 않고 번쾌가 스스로 "항장군께서 장수는 안들이시니 춥고 배고파서 들어왔소!" 라고 소리쳤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