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5:34:21

호남 자민련

1. 개요

충청도 지역 정당으로 유명했던 자유민주연합(자민련)에 빗대어, 특정 정당을 ' 호남 지역 정당'에 불과하다고 놀리는 용어이다. 과거에는 민주당계 정당에 이런 호칭이 자주 따라붙었고, 특히 2006년 4회 지방선거부터 2008년 18대 총선까지는 민주당계 정당의 최대 암흑기로 다수 선거에서 연달아 호남을 제외한 지역에서 전국적으로 참패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민주당이 호남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정당이 되었기 때문에 잘 쓰이지 않게 되었고, 이제는 민주당계 정당보다는 민주당계 정당에서 파생되었거나 호남계를 위주로 분열된 소수당 중 호남에만 의석을 갖는 정당에게 더 자주 사용되고 있다.

2. 사례

2.1.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새천년민주당

파일:South_Korean_Legislative_Election_2004_districts.svg.png
17대 총선 지역별 결과. 지도에서 청록색 새천년민주당이다.
새정치국민회의의 후신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16대 대통령 선거 승리 이후 집권여당이였던 새천년민주당은 그 이후 열린우리당이 분당 된 후 노무현 탄핵 소추에 한나라당과 함께하는 바람에 결국 대참패를 거뒀다. 그나마 경상도와 강남3구라도 지킨[1] 한나라당과 달리 말 그대로 호남 자민련이 되었고, 이것이 사실상 호남 자민련이란 멸칭의 시작이였다.

물론 광진구 을, 중구, 강북구 을, 영등포구 갑, 노원구 갑, 양천구 을, 안산시 상록구 갑, 남양주시 갑, 속초시·고성군·양양군,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등 일부 지역구에선 소지역주의와 인물론으로 인해 꽤 선전했긴 하지만, 결국 탄핵 역풍으로 전원 낙선을 이뤘으며, 그 호남에서도 5석만 건지면서 대참패를 하면서 조직력이 제대로 박살났다.

2.2.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민주당 열린우리당

파일:민선 4기 광역자치단체장 060531.png 파일:민선 4기 기초자치단체장 060531.png
4회 지선 지역별 결과. 지도에서 청록색 민주당, 노란색 열린우리당이다.
이후 2005년에 '새천년'을 뺀 민주당으로 바뀌었다.[2]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이기긴 했으나 양 당 모두 한나라당에게 밀려 호남에서밖에 이기질 못했다.[3] 민주당이 확보한 광역자치단체장 광주광역시장 전라남도지사 총 2석이고, 확보한 기초자치단체장 20석 중 15석이 광주광역시+전남 지역이었다.

2006년 재보궐선거에서 조순형 의원이 성북구 을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민주당계 정당 지지층의 지지세를 확인하고, 2007년 6월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한 김한길계가 창당한 중도개혁통합신당과 합당, 중도통합민주당으로 개편되었으나, 2달도 안 되어 김한길파가 도로 집단 탈당하며 도로 민주당이 되는 바람에 다시 호남 지역정당으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이후인 2008년에 민주당은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과 합쳐져 통합민주당으로 재탄생했지만 또 참패했다.

3. 유사 사례

3.1. 국민의당, 그리고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민생당

파일:국민의당(2016년) 로고.svg 파일:민주평화당 로고.svg 파일:대안신당 로고.svg 파일:민생당 로고.svg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이 내부 갈등 끝에 안철수계 호남계, 김한길계가 탈당하여 국민의당을 창당하며 나뉘어졌고, 20대 총선 이후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석권함과 동시에 호남 외 지역은 서울 2석( 노원구 병 - 안철수, 관악구 갑 - 김성식)만 거둔 것에 대한 비유이다.[4] 거기에 당내 거물급 인사들이 대부분 동교동계-호남계 출신이 많은 것도 한몫했다.[5]

다만 2016년의 국민의당에게 "호남 자민련"이라는 타이틀은 꼭 부정적 의미는 아니었다.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으로 여겨졌던 호남 대부분의 의석을 석권했다는 것은 분명 아주 의미있는 성과였으며, 심지어 수도권에서도 비례대표는 양당을 제치고 1위를 한 지역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돌풍은 빠르게 식기 시작했다.

19대 대선에서 국민의당은 전북에서는 이전부터 민주당과 엇비슷하다 트리플스코어에 가깝게 밀리는 등 호남 중에서는 가장 약세인 편이고 20대 총선에서 8석을 석권한 광주광역시, 19대 대선에서 득표율 30.7%를 기록해 그나마 가장 선전한 전남에서 지지세가 강한 편이다. 특히 전남 서부에서는 국민의당의 지지세가 강해 일부 시, 군에서는 안철수 후보가 40% 초반대의 득표를 하기도 했다.

국민의당-바른정당 합당 반대로 생겨난 민주평화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추진한 양당의 합당에 반발한 호남계 의원들 중 대부분이 탈당하여 민주평화당에 합류했다. 특히 국민의당 내의 상당수의 호남의원들이 탈당했기에 신설합당한 바른미래당에서의 호남의 색채는 매우 옅어지고, 탈당한 이들이 민주평화당에 합류했기 때문에 민주평화당은 거의 호남 지역정당으로 자리잡았다. 거기에 민주평화당 출범 이후 열린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된 민주평화당계 당선자들이 호남권에 집중되어 있고, 민주평화당 당적을 가진 지역구 국회의원들마저 호남에만 의석이 있어서 호남 자민련이라는 별칭이 더 적합하게 되었다.

결국 당내 계파 갈등 끝에 박지원, 천정배 등 광주·전남 의원들이 대안신당으로 떨어져나갔고, 정동영, 조배숙 등 전북 의원들은 잔류하면서 민주평화당은 전북 자민련, 대안신당은 전남 자민련이라는 이름이 적격이게 되었다.[6]

이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위해 민주평화당 대안신당, 유승민계와 안철수계가 떨어져나가고 손학규계만 남은 바른미래당 민생당으로 합당하면서 뿔뿔이 흩어졌던 옛 국민의당 시절의 호남계 세력이 하나로 뭉치게 되었다. 그리고...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민생당은 비례대표는 물론이고 호남에서마저 한 명도 당선시키지도 못하며 아예 원외정당으로 전락, 자민련에 비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7] 역시 TK 자민련이란 멸칭을 받은 미래통합당조차도 대경권은 철저히 지켜냈고, 부울경 강원도 그리고 강남3구에서도 지난번보다 선전해 지지층을 재건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과 대비된다.

게다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해 0석의 결과를 얻게되며 호남 자민련이 아닌 호남 신자민련이 되었다. 핵심 인사들인 정동영, 천정배, 유성엽, 주승용 등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했고 윤영일, 조배숙은 국민의힘으로 전향했고 손학규 등은 탈당한 상황이다.

그리고 동교동계 원로들이 고령이 되어서 대부분이 정치에서 은퇴한 상황이고, 그나마 있는 유력 인사도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으로 옮겨간 상황인지라, 호남계 정당은 앞으로 탄생할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

4. 전남 서부 자민련?

미국에서는 북부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른다. 북부에서는 동부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른다. 동부에서는 뉴잉글랜드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른다. 뉴잉글랜드에서는 버몬트주 사람들을 양키라고 부른다.
양키 문서에 언급된 미국 농담

엄밀히 말하면 위의 새천년민주당-민주당과 국민의당-민주평화당은 호남 자민련이라기 보단 전남 서부 자민련이 더 적합하다.[8] 이에 대해서는 호남 내에서 특히 전남 서부와 전남 동부의 차이점을 이해해야 한다.

겉보기엔 호남 전체가 정치적으론 다 똑같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전북특별자치도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간에 엄밀한 차이가 존재한다. 영남의 대경권 부울경 간의 차이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편이지만 민주당계 정당의 역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민주당계 정당 동교동계 친노로 분열되어야만 나타나는 차이이기 때문이다. 광주·전남이 전북보다는 현재 보수계열 정당[9]에 극렬히 반대하는 성향은 사실이다. 당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의 당선이 매우 극적으로 읽히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지역주의 성향이 매우 강하다 보니 민주당계 정당이 갈라진 상황에서는 전남 출신인 DJ 계열의 보수적인 동교동계의 지지가 높고 반면 전북에서는 민주당계 정당 중에서는 주로 친노, 친문 계열의 진보적인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가 높은 편이다.

전북과 광주, 전남의 차이도 있지만 전남 안에서도 그 차이가 크다. 김대중 대통령의 고향이자 정치기반인 목포를 중심으로 하는 전남 서부와 전남에 강력한 영향력을 주는 광주권, 전남 동부로 분류되는 여수, 순천, 광양 일대 지역인 일명 여순광의 민심은 미묘하게 다르다. 전남 동부는 경상남도와 가깝고 지역차별이 횡행하던 시절에도 남해고속도로를 통해 영남과 교류를 많이 해온 지역이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대표되는 전남 서부~서남부와 달리, 전남 동부는 오히려 경남의 지리산권 지역과 한려수도 섬진강 수계로 묶여있는 점도 크게 작용한다. 전남 내부에서는 상대적으로 전남 서부에 비하면 정치적으로 소외되어 있어서, 동교동계에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동교동계 인사의 대부분이 목포, 무안 등 전남 서부 출신인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는 소외된 것에 비해 경제력이나 인구 면에서는 전남 동부의 우위가 확연하다 보니 이 부분도 전남 서부와 동부의 대립에 영향을 주고 있다.

가장 큰 차이로 전남 동부는 친노 - 친문 정치성향이 동교동계 정당보다 매우 압도적이다. 2004년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을 심판하고 열린우리당에 몰표를 몰아준 역사가 있었다. 2016년 총선에서는 순천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국민의당이 모두 의석을 차지하기는 했으나, 전남 서부에서 국민의당이 받았던 지지에 비해 당시 문재인 - 김종인 체제의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당과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유지했다. 가장 큰 특징으로 순천시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재선했으나 당시 1위와 2위 대결은 새누리당 이정현 vs 더불어민주당 노관규의 양강 대결이었고 국민의당이 3위로 밀려난 모습을 보였다.

그 후 전남 동부에서 반 국민의당 정서가 강하게 불면서 17년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2배 차이로 압도했다. 실제로 순천시의 문재인 후보 득표율은 당시 전국 1위였다. 18년 지방선거에서는 고흥군 선거구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더불어민주당이나 민주당 출신 무소속이 승리했고 민주평화당이 참패를 했다. 특히 전남 동부 정치의 중심 지역인 순천시에서는 민주평화당으로 출마한 모든 후보 중에서 2인, 3인 동시당선이 되는 시의원마저도 1명을 제외하고 다 쓸려나가버렸다.

민주당계 정당이 갈라진 시기에 좀 더 보수적이었던 새천년민주당-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광주·전남에서는 항상 타 지역에 비해 눈에 띌 정도로 높은 득표율을 항상 차지했었고, 해당 지역에 1위를 못하더라도 타 지역에 비해 높은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곤 했었다.

다만, 민주당계 정당이 갈라져있던 상태에서 치러진 대선(17대, 19대)은 보수정당계 대선 후보를 제외한 당선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을 밀어주자는 심정 때문인지 기존의 지지세가 좀 더 낮았던 정당의 후보에 표를 줬다.[10][11]

19대 대선에서는 당시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토론회에서 스스로 네거티브를 하는 실책을 벌이기도 했었고, 또 그 당시 문재인 대세가 쉽사리 꺾이지 않고 지속되면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호남에서 1위의 득표율을 얻고 PK과 함께 지방의 득표율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로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민주평화당은 오직 호남에서만 5군데에서 승리하며 호남 자민련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마저도 민주당의 공천 실패로 겨우 확보했을 정도며, 실제로 압승한 지역은 함평, 해남 이렇게 2곳이었다.(나머지 지역에선 3~5% 차이로 갈렸다.)

물론 호남의 광역단체장과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는 크게 패배했으며, 심지어 광주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5. 관련 문서


[1] 다만 경상도 강남3구조차도 상당수 지역구에서 열린우리당이 30%대 후반 ~ 40% 중반대를 득표하며 한나라당이 꽤 고전했다. [2] 이 민주당은 꼬마민주당이라 불리기도 했다. [3] 이 당시 참여정부 임기 후반에 접어들며 레임덕 현상이 강해졌던 데다가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내부 분쟁 등 정권 심판론이 불었던 탓에 일찌감치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되었던 선거였으며, 실제로 광역자치단체장 16곳 중 무려 12곳에서 한나라당이 승리했다. 반대로 열린우리당은 전북지사 딱 1석만 건져내며 민주당계 정당 역사상 최악의 대참패를 기록한 선거였다. [4] 심지어 이들 지역도 호남 출신 이주민이 많은 지역이라 결국 호남 자민련이라는 그늘에서 자유롭기 어려웠다. [5] 다만 비례대표에선 무려 더불어민주당을 꺾고 전국 2위를 기록했는데 이런 점을 보면 호남 외 지역에서도 꽤나 선전했다. 호남 출신 당선인들이 대부분 자력으로 생환이 가능한 인물들이었던 탓에, 아무래도 정당 지지도에 비해 인물이 부족했던듯 보인다. [6] 다만 황주홍은 전남에 지역구를 두었으나 민주평화당, 김종회 유성엽은 전북에 지역구를 두었으나 대안신당 소속이었다. [7] 적어도 자유민주연합은 망해가는 상황에서도 충청도에서만큼은 의석을 획득했었기 때문이다. [8] 여담으로 자유민주연합과 그 이후의 충청도 지역 정당인 국민중심당, 자유선진당은 대전, 충남에서는 기반이 나름 튼실했지만 충북에서는 비교적 부진한 편이었다. [9]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 미래한국당- 국민의힘. [10] 17대 대선에서는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광주, 전남에서 80%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었다. 그래도 민주당 후보 이인제의 득표율이 두 번째로 높았던 곳이 전남(2.39%)이었다. 1위는 이인제의 연고지인 충남(2.46%). [11] 단 17대 대선 당시는 대통합민주신당 창당과 정동영 후보 선출로 당내 친노가 크게 위축되어 있었고, 비례대표를 제외한 민주당의 모든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정동영 후보를 지지하며 대통합신당에 합류해 있었다. [12] 이에는 새정치연합을 통해 들어온 안철수계를 배척하고자 했던 전통적 친노 지지자도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