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00:30:39

한용희

본명 한용희(韓龍熙)
출생 1931년 9월 7일
충청북도 청주시[1]
사망 2014년 12월 5일 (향년 83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본관 청주 한씨
가족 배우자, 슬하 3남
종교 개신교[2]
학력 홍익대학교 신문학과 (학사)

1. 개요

대한민국의 방송 PD, 작곡가.

2. 생애

10대 때부터 노래, 특히 동요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교 재학 중이던 1948년 서울 장충동의 어린이들을 모아「종달새 동요회」를 개최해 열의를 보였다.

경찰공무원에 종사하던 도중인 1954년 한국방송공사 프로듀서로 입사했으며, 누가 누가 잘하나의 초대 PD를 담당, 1974년 『한국동요 반세기』를 집필하는 등의 공로가 동요의 보급에 널리 기여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원래 직업은 방송 PD지만 음악인으로 더욱 유명한데 특히 1950~60년대에 작곡가로 활약하였으며, 그가 작곡한 동요 중에서는 현재도 애창되는 곡들이 많다. 정식으로 음악에 대해 배운 적은 없고, 독학으로 작곡을 익혀 한국 동요의 거목으로 자리 잡았다고 알려져 있다.

1999년 인터뷰에는 1987년부터 동요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았으며, "가요를 부르는 자녀를 대견해하는 부모들이 더 큰 문제다. 가정에서 동요를 함께 부르며 아이들의 고운 심성을 길러줘야 한다."고 비판했다. #

2014년 12월 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3. 주요 작품

4. 수상 및 경력


[1] 네이버 프로필 기준. 부고 기사에는 서울 출생으로 기재된 것으로 보아 출생만 청주에서 한 것으로 추정된다. [2] 성가대에서 활동했었다. [3] 쟁반노래방 78회 미션곡. 그리고 전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