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2 18:36:54

한글이 적혀 있는 찻잔

파일:한글이 적혀 있는 찻잔.jpg

1. 개요2. 내용3. 외부 링크

1. 개요

17세기 초, 일본 야마구치 현 하기() 지방에서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끌려갔던 조선인 도공이 만든 한글 다완.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내용

한글묵서다완(한글墨書茶盌), 추철회시문다완(萩鐵繪詩文茶碗) 등으로도 부른다.

조선시대 후기, 임진왜란 종전 직후인 1600년대 초에 일본 야마구치 현으로 끌려갔던 한 이름 모를 한국인이 만든 찻잔이다. 현재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 이도다완의 초기 모습이기도 하다.

하기 지역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인 도공들이 정착한 곳으로, 이 곳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이 귀하게 여기는 조선의 막사발 모양의 찻사발을 만들어 명성을 얻었으며, 이후 이곳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를 하기야키(萩燒)라 부르고 훗날 시간이 지나 하기야키 중에서도 조선의 막사발 같은 모양을 이도다완()이라 특징하게 되었다. 현재 다수의 이도다완이 일본의 국보가 되어 있다. 특히 하기 지방의 이도다완은 한국만의 전통 도자 기술로 인하여 사용하면 할수록 사발의 색깔이 변했기 때문에 '하기의 일곱 변화(萩の七化)'라고 불리며 일본 고위 귀족층에게 칭송받았다.

이 찻잔에는 한글 시조 1수(首)가 쓰여 있다.
개야 즈치 말라 밤 살ᄋᆞᆷ 다 도듯가 / ᄌᆞ목지 호고려 님 지슘 ᄃᆡᆼ겨ᄉᆞ라 / 그 개도 호고려 개로다 듯고 ᄌᆞᆷ즘ᄒᆞ노라
개야 짖지 마라, 밤 사람이 다 도둑이냐? / 두목지 호고려님 찾아 다녀오노라. / 그 개도 호고려 개로다, 듣고 잠잠하노라.
찻잔에 적힌 글은 당시 고국 조선에서 유행하던 시조를 변형한 것이다. 18세기 초에 필사된 고시조집 《고금명작가(古今名作歌)》에는 원작으로 추정되는 한 작품이 실려있다.
개야 즛지 마라 밤 ᄉᆞ람이 다 도적가 / 두목지 호걸이 님 츄심 단니노라 / 그 개도 호걸의 집 갠지 듯고 ᄌᆞᆷᄌᆞᆷᄒᆞ더라
개야 짖지 마라, 밤 사람이 다 도적이냐? / 두목지 호걸님 찾아 다니노라. / 그 개도 호걸의 집 개인지 듣고 잠잠하더라.
두목지 당나라 시대의 유명한 미남이다. 함께 정을 나눌 두목지 같은 사람을 찾아 다니는데 개 짖는 소리가 방해될까봐 개를 꾸짖었으나, 자신의 사정을 얘기하니 개가 짖지 않는 것을 보고 저 개도 두목지의 개인지 궁금해하는 내용이다.

찻잔을 만든 도공은 여기서 ' 호걸'을 '호고려()'로 바꾸어 적었는데, 호고려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잡혀온 조선인을 현지 일본인들이 부르던 호칭이다. 사랑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평범한 애정 시조였던 원작을 객지에 끌려온 본인의 상황에 맞게 번안한 것으로, 밤중에 조선인 동포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개가 짖자 달랬더니 잠잠한 것을 보고 '이 개도 조선의 개인가 보다' 하는 내용이 되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도공들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 때문에 조선의 도공들이 일본의 훌륭한 대우 때문에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기를 원했다는 인식이 재고되기도 했다. 실제로 조선인 포로들 중 성공한 사람도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억류되어 있었으며 노예로 매매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시조에서 '다니다' 대신 'ᄃᆡᆼ기다'라는 표현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동남 방언으로 간주하고 경상도 출신 포로가 쓴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댕기다'는 경상도뿐만 아니라 전라도, 평안도, 함경도 등지의 방언에도 남아있는 표현이므로 확실하지 않다. 당장 강원도 원주에서 간행된 《 가례언해》에서도 '나ᄃᆡᆼ기다(나다니다)'라는 어휘가 문증된다. 'ᄌᆞ목지'와 '지슘'은 원래 시조를 어렴풋하게만 기억하던 도공이 '두목지(杜牧之)'와 '추심(推尋)'을 오기한 듯하다.

파일:한글이 적혀 있는 찻잔2.jpg

일본에서 제작된 만큼 원래는 일본 지역의 전통 문화재로서, 근대 들어 교토의 고미술 수집가 후지이 다카아키(藤井孝昭)가 소장하고 있던 것을 훗날 그의 가족들이 찻잔에 새겨진 한글의 내력을 알게 된 후 한·일 양국의 화합을 기원하며 2008년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에 무상 기증한 것이다. #

3. 외부 링크